때마침 불꽃놀이가 시작되면서 사회자가 나타나 박수를 치며 시선집중 마법을 펼치는 것으로 대회가 시작됐다. 이번엔 작년보다 더 치열하고 빵들의 크기가 컸다. 빵으로 만든 집과 다리가 나왔으니 말은 다 한 거나 마찬가지였고 사람들은 과연 저 둘 중 누가 우승할까 예상하며 내기를 시작했지만 한창 불타오르고 있는 도중, 대회는 결국 작년처럼 비둘기들의 난입으로 엉망이 되어 흐지부지 끝나버렸다. 이런 비둘기들의 행패에 참가자들과 관객들은 우체부측에 항의를 넣으려고 했지만 우체부측 비둘기도 아닌데다가 야생 비둘기는 자기네들 관할이 아니라며 딱 잘라 거절하는 비둘기 대표 전서구는 그대로 날아올라 자리를 떴다. 물론 그 뒤로 이어진 야유는 말할 것도 없었다.

근데 매년마다 드는 생각인데 저 비둘기 진짜 크다. 역시 대표라서 그런가?”
내 생각엔 많이 먹어서 저렇게 큰 게 아닌가 싶은데?”
대회 결과에 그다지 관심 없던 마녀들은 전서구가 어째서 저렇게 큰지 추측하기 시작했다. 그 덕에 항의와 추측들이 난무하는 관객석 한가운데 아니카가 입을 열었다.

개판이네.”

그렇게 개판이 되어버린 대회는 사회자가 애써 웃는 표정으로 마무리 지었지만 목소리에서 느껴지는 떨림과 물기는 어찌할 수 없었다. 마녀들은 엉망이 된 대회를 뒤로하고 제각기 축제를 즐기러 가거나 둘째 날의 축제를 즐기기 위해 일찍 집으로 돌아가는 발걸음을 재촉한다. 퍼블리와 아니카는 남아서 축제를 즐기는 쪽이었고 얼마 안 가 각자 커다란 바구니에 빵을 한가득 안게 되어 난감하게 내려다보다가 곧이어 서로를 향해 손을 뻗었다. 그렇게 가위바위보 결과 패배한 퍼블리는 아니카 몫의 빵 바구니까지 들고 기운 빠진 발걸음으로 집에 돌아갔다.

축제 내내 집 안에 있었던 마법사는 퍼블리가 돌아오자 읽던 책을 내려놓고 인사하려고 했지만 양손에 든 빵바구니를 발견하자마자 올라오려던 인사가 턱하고 막혀버려 잠깐 동안 아무 말 없이 퍼블리를 바라보고만 있었다. 곧이어 정신 차린 마법사가 빵바구니를 퍼블리의 손에서 가져와 손을 뻗자 하얀 빛이 잠깐 반짝이고는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그에 의아해하던 퍼블리가 다가와 물어본다.

뭐 한 거예요?”
보존마법을 걸어놨다.”

이 정도 양이면 다 먹기도 전에 썩을 게 분명하다며 덧붙이는 말에 퍼블리는 아무 말 하지 않고 빵바구니를 부엌에 있는 식탁 위에 옮겨놓았다. 아마 한 달 동안 삼시세끼 둘이서 꼬박꼬박 먹어야 사라지지 않을까 싶었다. 그렇게 한동안 없어지지 않을 빵들을 애써 외면하며 대회에서 비둘기들이 난동을 부린 사건에 대해 얘기했다.

우체부측에 대표 비둘기 덩치가 엄청 크더라고요! 저 그렇게 큰 비둘기는 처음 봤어요.”
혹시 그 비둘기 이름이 전서구?”
! 어떻게 아셨어요?”
어째선지 마법사의 표정이 미묘해졌다. 퍼블리를 향한 건 아니었지만 바로 앞에서 본 퍼블리는 보기 힘든 표정에 놀라면서 당황했다.

“...어디서 정보를 얻었나 했더니만...”

..?”
“GM 기억나나?”
얼마 전에 찾아가볼 생각까지 했던 이름이 나오자 속으로 뜨끔한 퍼블리는 입으로 대답이 나오기도 전에 반사적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손을 들어 올려 눈에서부터 쓸어내리던 마법사는 가라앉은 목소리로 말한다.

“GM 전용의 연락용 비둘기인줄 알았더니...”

“...?”
뭔가 엄청난 말을 들은 퍼블리는 그저 멍하니 반문하기 바빴고 그런 반응에도 마법사는 무언가 깊은 생각에 빠져있는지 아무런 말이 없었다. 어색한 침묵 끝에 말을 먼저 꺼내 깨뜨린 건 마법사였다.

혹시 어딘가 가고 싶은 데가 있으면 전서구를 타고 가면 될 거다.”
...타고..? ...비둘기를요?”
마녀와 마법사들의 발길이 닿은 곳이 있는 한 전서구가 모르는 곳은 없을 테니.”

그 말에 퍼블리는 그 덩치 큰 비둘기가 자신을 태운 채 날아다니는 걸 상상했다. 날아다니는 건 비행마법을 쓸 줄 아는 마녀들 중에서 균형 감각이 좋거나 오랜 연습 끝에 터득한 마녀들이나 심심할 때 해보는 걸로 인식이 되어있다. 직접 몸에다가 비행마법을 거는 건 위험하니 신발이나 나무판자에다가 마법을 거는 경우가 많은데 문제는 단순히 마법을 건 것만 아니라 날아다닐 때 그 위에서 균형을 잘 잡아야한다는 점이었다. 그래서 날아다니는 건 이러한 비행마법 및 균형을 잡는 것에 대한 적절한 시험과 평가를 거쳐야만 허가가 내려왔다. 그런데 비둘기를 타고 날아다니는 건 상상도 못했던 부분이었다. 물론 사람을 태울 정도로 큰 비둘기는 전서구 외엔 없었고 나머지는 전부 사람 손보다 조금 더 큰 비둘기들이니 탄다고는 생각도 못하는 게 분명했으니 당황하는 건 당연했다.

그런데 GM할아버지 전용 비둘긴 줄 알았다고요?”
그 분이 연락하는 수단 대부분이 전서구를 통해서 편지를 보내는 거니까.”
대부분이라는 말은 다른 소수의 방법들도 있다는 뜻이었다. 어쨌든 생각지도 못하게 GM과 연락할 방법과 날아다니는 방법을 얻게 됐으니 퍼블리는 기쁜 마음을 숨기지 못하고 환하게 웃었다. 마법사는 그저 전서구를 타고 날 수 있다는 게 기쁠 일이었나라고 생각하며 넘어갔다.

그렇게 기분 좋은 축제 첫 날의 저녁은 당연하게도 빵이었다.

 

“GM할아버지랑 연락할 수 있는 방법을 찾았어!”
바로 다음날인 축제 둘째 날 퍼블리는 아니카와 만나자마자 흥분하며 어제 얻은 정보를 말했다. 아니카는 자초지종을 들으며 여전히 웃는 얼굴이지만 내심 놀란 어조로 말을 꺼낸다.

“GM할아버지 범상치 않으신 분이란 건 알고 있었지만 설마 비둘기 우체부 대표가 전용 비둘기가 아닌가 싶을 정도로 연락 수단으로 쓰다니.”

알고 보니 원래 전용 비둘기였는데 GM이 비둘기 우체부를 설립하고 대표로 전서구를 앉힌 게 아니냐는 추측을 꺼내자 퍼블리는 설마라고 말했지만 묘하게 설득력 있는 말에 땀을 삐질 흘렸다.

근데 너희 엄마와도 면식이 있는 것 같은 그러면 굳이 GM할아버지한테 묻는 게 아니라 바로 전서구한테 물어보면 되는 거 아니야?”
그 말에 깨달음을 얻었다는 얼굴로 감탄한 퍼블리가 지금 당장이라도 전서구한테 달려가려는 걸 아니카가 잡아 세웠다. 적어도 축제 끝나고 찾아가자는 의견과 당장 가자는 의견이 분분한 가운데 누군가가 다가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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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름에 열리는 축제는 왕국에서 열리는 축제 중에 가장 성대한 축제지만 열리는 기간은 사흘이라 많이 짧다고들 외치고는 하지만 이런 축제를 길게 이어갈 자신은 없었는지 몇 년 전부턴 축제기간을 늘리자는 외침이 줄어들었다. 각 거리에서 열리는 축제가 아닌 왕국의 주도 하에 왕국 전체 거리의 모든 번화가와 상가들이 한꺼번에 축제를 여는 거니 사흘 내에 전부 즐기지 못하는 건 당연했다. 축제의 첫째 날은 빵집이 가장 바쁘다. 첫째 날은 추억이라고 불리며 온갖 빵을 만들고 먹는 날이었다. 본인이 직접 만들어 먹는 마녀들도 있지만 거의 대부분의 빵 만들기 달인들이 실력발휘를 하는 날이었고 당연하게도 그 빵들을 먹어보고 싶어 하는 마녀들이 줄을 서니 얼마 안 가 동나는 건 당연했다.

그런데 우리 근육이. 올해는 안 물어보네?”
?”

이제 얼마 안 있으면 불꽃놀이가 시작되고 대회가 열릴 차례라 미리 와서 자리를 잡은 둘은 주머니에 담아놓은 빵을 하나씩 꺼내먹으며 시간을 때우고 있었다.

그 왜 작년까지만 해도 당연한 질문 같은 거 하고 그랬잖아.”

그 말에 퍼블리는 눈을 깜빡이고 아니카는 한숨 비슷한 숨을 내쉬며 웃었다. 둘은 그 자리에서 머릿속으로 시간을 거슬러 올라갔다.

 

은데 웨 빵인그까

의문을 해소하기도 전에 빵이 너를 먼저 먹어치울 것 같은데?”
입 안 가득 빵을 밀어 넣은 퍼블리는 먹으면서 의문을 가졌다. 축제 첫 날인 추억은 현 왕국의 왕이나 공주의 추억을 토대로 여는 날이었다. 아니카는 그런 퍼블리의 의문에 근처에 있던 사과주스를 건네주면서 제 생각을 꺼낸다.

공주님의 추억이 빵이니까.”

흐아! 그러니까 왜 공주님의 추억인지 궁금하다고.”

공주님한테 빵에 대한 추억이 많나보지.”

내 말은 왜 왕의 추억이 아니라 공주님의 추억인지가 궁금한 거야.”

당연한 걸 묻네. 왕은 공주님이 성인이 되기 전에 돌아가셨고 공주님은 아직 성인이 되지 않아서 여전히 공주님이잖아.”

그 대답 또한 영 납득할 수 없었는지 퍼블리의 눈이 가늘어졌지만 아니카는 호호 웃으며 퍼블리를 끌고 여기저기 돌아다니기 시작했다. 둘은 빵을 만들어보기도 하고 만든 빵을 다른 마녀들과 교환하거나 나눠주면서 축제를 즐겼다. 여전히 찜찜한 표정을 지으며 생각에 빠져있던 퍼블리는 아니카를 따라다니다가 결국엔 깊이 생각하는 걸 묻어두고는 축제를 즐기기 시작했다.

저거 봐봐! 빵으로 만든 옷이래!”

매년 볼 때마다 저런 마녀 꼭 있더라. 대체 어떻게 만드는 걸까?”

초콜릿으로 옷을 만드는 마녀도 있던데 뭘.”
이어 빵으로 만든 목걸이나 팔찌 같은 게 등장하기 시작했다. 아니카는 어쩐지 지루하다는 얼굴로 보고 있었지만 본격적인 축제의 시작을 울리는 불꽃놀이가 터지는 시간은 아직 멀었고 지금 돌아다녀봤자 빵을 만들거나 나눠주거나 받는 것 밖에 할 게 없었다. 불꽃놀이가 시작된 후엔 본격적으로 대회가 열린다. 각 거리의 빵집 주인들과 빵 전문가라고 외치는 마녀들이 우승하기 위해 치열하게 대결하는 건 볼만했기 때문에 얌전히 앉아서 기다렸다. 퍼블리는 사과주스를 홀짝이며 아니카를 힐끔 쳐다봤다. 그러다 다시 시선을 앞으로 돌리는가 싶더니 다시 아니카를 힐끔 쳐다보는 걸 몇 번이고 반복했다. 물론 눈치 좋은 아니카는 이런 퍼블리의 시선을 모를 리가 없었다.

우리 근육이 왜 우승 빵을 노리는 비둘기 우체부처럼 날 힐끔거려?”

그에 퍼블리는 뚱한 얼굴로 아니카를 똑바로 쳐다봤다.

이상해서.”
빵으로 묘기 부리는 저 전문가들이? 아님 내가?”

전부.”
뚱한 표정으로 대답한 퍼블리는 완전히 아니카에게서 시선을 떼고 마침 비둘기가 빵 목걸이를 낚아채는 현장을 눈에 담았다.

어디가 이상한데?”
전부. 사실 빵 축제 자체는 이상하지 않아. 어차피 현재 왕은 없고 공주님만 있는 그런 상황이니까. 공주님이 왕이 되는 거 외엔 그다지 바뀌지 않으니까 축제 첫째 날 자체는 이상할 게 없어.”
그럼 우리 근육이는 뭐가 이상하다는 거야?”

아니카.”

퍼블리는 어쩐지 울 것 같은 얼굴로 다시 아니카를 똑바로 쳐다본다.

너 아까 내가 한 말 기억해?”
그 많고 많은 말들 중에 무슨 말?”
그에 퍼블리는 입을 열었고 시간이 마치 멈춘 것처럼 길게 늘어지기 시작했다. 뭐라 입을 움직이는 퍼블리였지만 이상하리만치 집중이 되지 않아 한 번 눈을 깜빡이던 아니카는 위에서 들려오는 터지는 소리에 고개를 들어올렸다.

어머나 벌써 불꽃놀이 시작이야?”

그 때 다시 본 퍼블리의 얼굴은 슬픔과 더불어 무언지 모를 거에 대한 공포로 얼룩져있었다.

 

그 때 네 얼굴을 네가 못 봐서 그래. 나 아직도 기억나.”

아아 그거? 해결됐다고 해야 하나? 그래서 까먹었어.”
그런 표정까지 지어놓고선...그 때 내가 무슨 미련 남아서 떠돌아다니는 시체가 됐나 싶었잖아.”

그에 퍼블리는 어색하게 웃으면서 마저 얘기를 이어갔다.

보통 성인이 되는 나이는 20살이지?”

보통이 아니라 당연한 거지.”
밸러니 숲 정화 때가 60년 전이지?”
정확히는 64년 전이야.”

뭐 한 50년까지는 청춘인 나이라고 하지만 거기서 10년 정도 더 가도 젊은 축에 속하려나? 어린 건 확실히 아니고.”
그건 평균 기준이라서 뭐라 말하기 애매하네. 요즘엔 80까지도 젊대.”

잠시 쉬어가던 퍼블리는 마저 얘기를 덧붙였다.

그래. 그리고 현재 공주님이 그 정화 때 참가한 쪽이고.”

우리 마녀들 측은 공주님이 직접 군대를 이루고 선발에 나서서 간 거니까. 그래서 지금 공주님을 많이 지지하고 있잖아. 그런데 얘기가 딴 데로 새는 것 같은데 누가 네 작년까지 끝없던 질문을 해결해준 거니?”
그에 퍼블리가 멋쩍게 웃으면서 말했다.

아난타 선생님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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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법사를 보자마자 든 생각은 바로 방금 전까지 얘기하던 저주였다. 퍼블리는 지금 당장이라도 달려가서 그에 대해 묻고 싶었다. 아빠는 흑기사단이었고 숲에 들어갔으며 저주를 받았냐고, 그리고 그 저주는 지금도 아빠를 괴롭히고 있냐고 물어보고 싶었다. 슬픔, 조급함, 아닐 거라는 미약한 기대와 절박함이 목 끝까지 쌓인 퍼블리는 망설이지 않았다. 눈을 마주치자마자 마법사에게로 달려간 퍼블리는 주변의 시선들은 물론 뒤에 있을 아난타도 잊고 입을 열려던 순간

..!?”

갑작스레 무언가가 머리 위로 푹 내려와 시야를 가렸다. 당황한 퍼블 리가 허둥거리며 잡고 올리자 분명 바로 앞에 있었던 마법사는 어느새 교문 밖으로 유유히 나가고 있었다. 갑작스레 알 수 없는 상황에 얼떨떨하게 서있던 퍼블리 뒤로 아난타가 다가와 말한다.

모자네요?”

...?”
퍼블리 학생한테 모자를 씌워주고 바로 가버리셨는데...제 모자를 빌려드릴까 싶었는데 다행이네요.”

그 말에 퍼블리는 잡고 있던 걸 잡아 내렸다. 분명 집에 두고 온 모자였다.

저 분은 퍼블리 학생의 어머니신가요?”
네에...”

그제야 퍼블리는 주위를 돌아봤다. 짐을 나르던 학생들은 퍼블리와 마법사에게 시선을 주다가 금방 다시 돌리거나 밖으로 다시 나간 마법사를 제법 오래 보고 있다가 모습이 안 보일 때쯤 곁의 친구와 함께 뭐라 얘기하기 시작했다. 아마 여름인데도 한겨울 마냥 온 몸을 꽁꽁 싸매다시피 옷을 입었는데 망토까지 걸치고 있었으니 그에 대해 뭐라 얘기하고 있을 게 뻔했다. 고개를 돌려 이번엔 아난타를 바라보자 의아해졌다. 딱히 별일 없는 듯이 물어보던 목소리와는 다르게 아난타는 식은땀을 흘린 채 이미 사라지고 없는 마법사의 뒷모습을 쫓기라도 하듯 마법사가 사라진 방향을 계속해서 바라보고 있었다.

선생님?”

당황, 놀람 등 기타 알기 힘든 여러 가지 감정들이 녹아들어있던 얼굴이 자신을 부르는 퍼블리를 향하자 담은 감정은....

“...혹시 퍼블리 학생 어머님께선 왕궁 마녀신가요?”
? 아뇨! 전혀요!”

이 모자에 이미 방어마법이 새겨져 있네요. 원래 우리가 축복으로 내릴 방어마법보다 더 강하고 고차원적인 걸요? 이 정도 마법실력이면 우리 학교 선생님들을 훨씬 뛰어넘었어요.”

퍼블리는 그에 뭐라 말해야할지 혼란에 빠졌다. 하지만 아난타는 그저 감탄하고 싶었던 건지 더 물어보지 않고 벌써 시간이 이렇게나 흘렀다며 인사하고는 먼저 자리를 떴다. 그에 퍼블리는 모자를 끌어안은 채 아난타의 모습이 보이지 않을 때까지 보고 있다가 근처에 있던 평평한 돌 위에 털썩 앉았다. 모자를 만지작거리다 쓴 퍼블리는 그냥 흘러듣는 것처럼 아무런 반응 없이 듣는 마법사가 실은 제 말을 자세히 듣고 있었다는데 기쁜 마음이 들었다. 바로 이 모자가 그 증거가 아닌가. 아마 어제 저녁에 했을 말을 기억하는 게 틀림없었다. 다만 기쁨보다 더 많은 심란함이 짓누르는 터라 웃음이 나오진 않았다. 아난타가 말한 저주라는 게 계속해서 머릿속을 맴돌고 있었다. 그러다가 방금 사라진 아난타에 대해 다시 생각했을 때 이번엔 의아함이 불쑥 튀어나왔다. 분명 아까 퍼블리가 부를 때 돌아보며 담은 감정은 분명

“..뭔가 도서실에서 책 못 빌리게 됐을 때보다 훨씬 더 미안해보이던 표정이었는데?”

뭐에 대해 미안한 표정이었을까. 순간 도서번호가 스쳐지나갔지만 고개를 저었다. 일단 뭐든 간에 마법사한테 직접 물어보는 게 좋을 것 같았다.

 

너희 엄마가 오셨다고?”

.”

모자 가져다주러?”
“....”

너희 엄마가?”
아니카는 눈을 크게 뜨며 믿기지 않는다는 투로 계속해서 물어보고 또 물어봤다. 그도 그럴게 왕국 내에서 마법사의 비밀을 알고 있는 자는 퍼블리를 제외하면 아니카 밖에 없었다.

학교가 멀다고 할 순 없는데 번화가를 지나칠 수밖에 없잖아! 물론 장 보러 갈 때 근처 작은 상가는 가보겠지만 이렇게 마녀가 많이 돌아다니는 번화가를 지나쳤다고?”
아무리 마녀왕국의 옷을 입는다 해도 마녀는 마녀고 마법사는 마법사라는 게 대번 티가 난다. 그런데 마법사는 15년 동안 들키지 않고 살아왔다. 그만큼 들키지 않는데 심혈을 기울었다는 건데 그 결과가 바로 저렇게 꽁꽁 싸맨 모습이다. 누구라도 저렇게 체형이 가려질 정도로 입고 목을 가리다 못해 입까지 가리고 모자까지 쓰면서 눈만 제대로 볼 수 있을 정도로 싸매면 그 알맹이가 마녀인지 마법사인지 아니면 마법인형인지도 알 수 없을 거다. 그리고 그 다음은 되도록 마녀들이 돌아다니는 곳에 가지 않는 거였다. 퍼블리가 학교를 다닐 수 있게 입학서를 작성하러 갔을 때와 입학식 때, 단 두 번만 학교에 왔었다. 마녀가 많은 번화가를 지나고 마녀가 많은 학교에.

“...대체 무슨 일이람?”
아니카는 드물게 늘 달고 살다시피 하던 웃음마저 지운 채 심각한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반면에 퍼블리는 마법사가 그렇게 제 안전에 신경을 쓴다는 걸 깨닫고 쑥스러운 표정으로 머리 위에 쓴 모자를 만지작거렸다. 실제로 번화가를 지나다가 퍼블리 위로 망치가 떨어졌었는데 모자가 푹 꺼지거나 쓸린 흔적은커녕 오히려 망치가 깨졌다는 웃지 못 할 일화가 탄생했다. 그 때 아니카가 질린 목소리로 대체 학교에서 우리 모자에 무슨 마법을 건 거냐고 했을 때 마법사의 이야기가 나오게 됐고 아니카는 헤어지는 갈림길에 도착할 때까지 심각했다.

집에 도착하기 전에 퍼블리는 분명 마법사에게 물어보려는 마음이 그득했지만 막상 문을 앞에 두자 아무 말도 나오지 않았다. 사실 저번에 예전에 구해했던 마법사와의 사이를 끝냈다고 했던 그 날 퍼블리는 문득 무서워졌다. 이제까지 말하지 않은 데에 이유가 있고 계속해서 물어본다면...거기까지 생각한 퍼블리는 문을 열고 들어갔다.

엄마. 얼마 안 있으면 축제인데 같이 돌아다니지 않을래요?”
저녁을 먹을 때 용기를 내보려 했으나 나온 말은 저것뿐이었고 그 이상은 없었다. 그렇게 진전 없이 하루가 지나고 또 하루가 연달아 지나갔다.

그리고 드디어 축제가 다가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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