완전히 어두워졌는데도 마녀들은 집으로 돌아가기는커녕 오히려 밝았을 때보다 더 활발하게 놀고 있었다. 사탕꽃을 입에 물며 작년 식물부의 야심작 반딧불이꽃이 하늘을 장식하는 걸 보며 퍼블리가 말했다.

저거 우리 학교 식물부 애들이 만들었어요.”
아무 말 없이 반딧불이꽃을 톡톡 건드리는 마법사의 모습에 신이 났는지 퍼블리는 말을 더 꺼내기 시작했다.

내일이 바로 우리 학교 동아리들이 단체로 실력발휘 하는 날이에요! 물론 다른 학교 애들도 열심히 하겠지만...우리 동네는 당연히 우리 학교가 하니까 응원해야죠! 식물부가 올해도 뭔가 단단히 준비한 것 같은데 꼭 보고 싶어요!”
퍼블리가 열심히 말하는 동안 마법사는 어느새 반딧불이꽃을 손에 올려놓고 살펴보고 있었다. 반딧불이꽃을 이루고 있는 마법들이 고등마법이라고는 할 수 없었지만 다른 마법을 중첩시키는 기술력은 꽤나 높이 살만 했기에 눈길이 갔다. 분명 어른이 되고 얼마 지나지 않아 왕궁 마녀가 되거나 아니면 독자적인 기술력으로 세상을 살아갈게 분명했다. 꽃과 만든자에 대한 감상을 끝낸 마법사는 퍼블리가 열심히 설명하고 있는 식물부를 보러 내일도 나올까 고민하던 순간 누군가를 눈에 담았다.

엄마?”
퍼블리는 말하던 걸 멈추고 마법사의 시선을 따라 고개를 돌렸다. 그리고 곧 눈에 들어온 자를 보고 반가운 기색이 만연해졌다.

아난타 선생님!”
멀리 있는데다가 지나가는 마녀들이 많아서 그런지 이름을 불린 당사자는 딴 곳만 바라보고 있었다. 마법사는 가늘게 뜬 눈으로 아난타라고 불린 자를 집중해서 바라보려고 했지만 역시나 멀어서 얼굴이 제대로 보이지 않았다. 보이는 거라곤 머리에 쓴 동그란 모자와 멀리서도 눈에 띄는 동그란 안경이었다.

저번에 얘기했던 그 선생님이에요! 인사하러 가요!”
퍼블리는 마법사의 손을 잡아끌며 조금 빠른 걸음으로 지나가는 마녀들 사이로 길을 찾아 다가가기 시작했다. 가까워질수록 더 자세히 볼 수 있었다. 누군가랑 대화하는지 옆을 바라보며 입은 웃음을 머금은 채 쉴 새 없이 움직이고 있었다. 그러다가 시선을 느꼈는지 돌아보는 순간

선생님!”

지나가던 마녀들이 잠깐 시야를 가렸지만 바로 마주하게 된 얼굴은 상당히 동글동글한 인상이었다.

퍼블리 학생?”
안녕하세요!”

지나가다가 발견했다는 둥 아까 학생들도 많이 인사하러 왔다는 둥 서로 얘기를 주고받던 둘의 대화는 아난타의 시선이 돌려지는 걸로 마무리 지었다.

저번에 제대로 인사도 못 드렸네요. 이번에 신성지대에서 온 마법사 아난타예요.”
마법사가 살짝 의아함을 품자 눈치 챈 퍼블리가 작은 목소리로 모자를 가져다주러 왔을 때 옆에 있었다고 속삭였다.

퍼블리의 어머니입니다. 저번엔 제가 인사할 새도 없게 갔으니 인사를 하지 못한 데에 신경 쓸 필요는 없습니다.”

역시나라고도 할 수 있는 딱딱한 말이었다. 그에 퍼블리가 살짝 입 끄트머리를 달달 떤 채 웃으며 아난타를 바라봤지만 아난타는 그리 무안하거나 불쾌한 기색은 없었다. 그보다는 오히려 아난타의 표정에 놀라 애써 달고 있던 미소가 단번에 날아갔다.

“...우리 예전에 만났던 적이 있지 않나요?”
마법사의 시선이 잠깐 퍼블리에게 닿았다가 다시 아난타에게로 돌아갔다. 받은 어투는 그저 안부를 묻듯이 가벼웠지만 마법사는 잠시 아무 말이 없었다가 입을 열었다.

적어도 지금 제 기억엔 없습니다.”

마법사의 대답에 살짝 눈을 감았다가 뜬 마법사는 어딘가 후련하면서도 아쉬워보였다. 그리고 그 뒤에 이어진 건 미안함이었다. 계속 지켜보던 퍼블리가 의아해했지만 그 이유는 금방 풀어졌다.

, 이런...인사를 나눈지 얼마 되지 않았지만 바로 가야할 것 같네요. 내일 있을 행사 때문에 지금 교직원들이 난리가 아니에요.”
괜찮아요! 저랑 엄마도 해가 졌으니 조금만 더 즐기다가 집에 돌아가려고 생각 중이었거든요.”

그럼 내일 봐요 퍼블리 학생, 그리고 퍼블리 어머님도 나중에 보게 될 때 제가 먼저 인사드릴게요.”
그렇게 서로 인사하고 퍼블리와 함께 자리를 뜨던 마법사는 다시 고개를 뒤로 돌려 멀어져가는 아난타를 눈에 담았다. 그에 마침 똑같이 뒤돌아보던 아난타와 마주쳤다. 무언가 입모양으로 짧게 말하고는 고개를 다시 제 앞으로 돌리는 모습까지 보던 마법사는 퍼블리의 부름에 그제야 고개를 돌렸다. 하지만 이번엔 반대로 누군가가 부르는 바람에 얼마 가지않아 멈출 수밖에 없었다.

~블리!”
선도부 일로 축제를 즐기지 못한 아니카였다. 퍼블리는 반갑게 인사하려다 문득 옆에 있는 마법사를 생각하고 식은땀을 흘리기 시작했다. 저 멀리 묻혀놨던 불안감이 아니카가 다가올 때마다 싹트고 올라오기 시작했다. 당연하게도 아니카는 그런 퍼블리의 불안을 모르고 있었다.

날뛰는 모기떼들 제압하느라 시간 다 갔네.”
...지금 끝난 거야?”
아니 아직 할 일이 남았어. 그냥 가다가 너 보이길래 인사하러 온 거야. 오늘 축제 즐기는 건 진작해 포기했지 뭐.”
그런데 가까이 다가온 아니카는 마법사를 아는 체 하지 않았다. 아니 애초에 곁에 있는 걸 전혀 눈치 못챈 것처럼 퍼블리만 보고 얘기했다. 그러다 퍼블리는 마법사가 상품들을 주머니에 넣었을 때 마녀들이 눈길도 주지 않은 걸 떠올렸다.

일단 내일 봐! 내일은 선도부들도 축제를 즐기라면서 선생님들이 선도부들 대신 뛸 거래. 그래서 내일은 같이 놀 수 있을 거야.”
그렇게 말을 끝낸 아니카는 손을 흔들며 다시 제가 있던 곳으로 돌아갔다. 퍼블리는 아니카의 모습이 보이지 않을 때까지 손을 흔들다가 마법사를 힐끔힐끔 쳐다봤다. 마법사는 별말 없이 그저 하늘을 바라보고 있었다. 달이 아까보다 조금 높게 떠있었다. 그리고는 다시 고개를 내렸다.

가지.”

그렇게 둘은 다시 집으로 돌아갔고 돌아가는 동안에도 퍼블리가 불안해할 말은 나오지 않았다. 여느 날처럼 씻고 하루를 마칠 준비를 한 마법사는 잘 자라는 인사를 끝으로 방으로 들어갔고 퍼블리도 방으로 들어가 침대에 누워 제 손목의 팔찌를 쓰다듬고는 침대 옆 탁상 위에 두고 잠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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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거보세요!”
앞으로도 생길지도 모르지만 적어도 퍼블리에게 있어서 오늘은 최근 중에 가장 행복하고 기분이 좋은 날이었다. 물방울을 뿜어대는 나비 머리장식을 제 머리 위에 올려놓고 돌아보는 퍼블리는 처음으로 축제를 돌아다녔을 때보다 더 환하게 웃고 있었다. 그러다가 갑자기 눈을 동그랗게 뜨고는 멍하니 바라보기만 하니 마법사가 스스로 마주 짓던 웃음도 눈치 채지 못하고 왜 그러냐고 묻자 퍼블리는 잽싸게 아무것도 아니라며 다시 앞장서서 복작거리는 마녀들 사이를 갈라 길을 만들었다. 그러다가 마녀들이 일제히 탄성을 지르며 위를 올려다보자 그에 따라 올려다본 둘의 눈에 비둘기들이 입에 가루가 든 병을 물고 날아다니면서 하늘에 그림을 그리고 있었다. 마법사는 어제 퍼블리에게 들은 난동 피운 비둘기들이 떠올랐지만 굳이 입 밖으로 꺼내진 않았고 퍼블리는 다행히 그런 마법사의 생각을 모른 채 비둘기들이 그리는 모글리제의 산들바람을 보고 있었다. 그러다 비둘기들 아래에 장신구를 파는 가게가 보였고 마녀들은 그런 광고에 넘어가주며 장신구 가게로 다가갔다. 당연히 가판대에 자리잡은 장신구들의 무늬는 모글리제의 산들바람이었다. 퍼블리 또한 마녀들을 따라가더니 장신구 색이 하나 다른 팔찌 한 쌍을 사서 파란색 팔찌를 마법사한테 넘겼다.

제 건 빨간색이에요!”

아마 빨간색은 마법사를, 파란색은 퍼블리 본인을 가리키는 것이리라.

퍼블 리가 주위를 돌아볼 수 있을 정도로 자라서 같이 다니는 축제는 둘 모두에게 즐거웠다. 처음에 퍼블리는 마법사가 그냥 아무런 선호 없이 제가 가자는 대로 따라가면 어떡하나 싶은 게 무색하게도 마법사는 생각보다 호불호를 잘 나타냈다. 싫다고 딱 잘라내기보단 거기 있는 것보단 저기 있는 게 더 좋다는 식이었다. 마법사가 선호하는 행사는 퍼블리가 좋아하는 행사와 많이 겹쳤다. 마법보다는 몸을 쓰는 행사였는데 그 중에서 마법사가 가장 적극적으로 참여한 건 공을 던져 물건을 맞추는 행사였다. 범상치 않은 운동실력을 보여주며 마법사까지 경쟁상대에 포함해 상품을 싹 쓸어오던 퍼블리도 이것만큼은 마법사를 이기지 못했다. 던지는 족족 맞추고 엄지손톱 크기의 얼음꽃무늬 돌조각도 맞춰서 떨어뜨리는 걸 보고 사실 마법사의 정체는 흑기사단도 정화하는 자들이 아닌 공 던지기 요정 볼라의 후손이거나 아니면 볼라 본인이 마녀와 마법사 사이에서 놀고 싶어서 그들 사이로 숨어든 게 아닌가 싶었다.

어떻게 그렇게 잘 던져요?”
하다보면.”
던지기 실력을 빌미삼아 과거를 살짝 떠볼까 싶었지만 바로 나온 마법사의 대답에 포기한 퍼블리는 다음 행사를 찾기 시작했다. 그러다 문득 잔뜩 타온 상품들이 떠올랐는지 마법사를 돌아보자 주머니에 넣는 모습에 그저 할 말을 잃었다. 여기서 말하는 주머니는 따로 들고 다니는 가방이나 가죽 혹은 천 주머니 같은 게 아닌 말 그대로 옷에 달려있는 주머니였다. 물론 그게 뭐가 이상하냐고 묻는 다면 사람 상품 중엔 작은 상품들도 있었지만 어른 마녀 얼굴만한 그릇도 있었다. 그 그릇까지도 기껏해야 손보다 조금 넉넉한 주머니에 들어가고 있다 이 말이다. 당연하게도 마법을 썼겠지만 무게의 부피와 중량을 무시하는 마법을 각 상품들에다가 일일이 걸었을지 아니면 주머니에다가 걸었을지는 마법사만이 알 뿐이었지만 확실한 건 그 마법 자체가 상당한 고등 마법이라는 건 마녀들과 마법사들은 물론 다섯 살 먹은 어린 애들도 알고 있다는 점이다. 그런데 이런 모습을 마녀들이 돌아다니는 길 한가운데서 보이는데 지나가는 마녀들은 눈길 하나 안 주니 그 외 더한 마법 자체를 본인에게 걸었을 게 뻔했다. 퍼블리의 질린 기색이 섞인 눈빛을 느꼈는지 고개를 들어 눈을 마주봤다. 마법사의 눈빛은 왜 그렇게 보느냐라는 뜻도 담지 않았다. 그저 담담하게 바라보고 있을 뿐이었다. 마치 이제 익숙해질 때도 되지 않았냐는 듯한.

“...궁금한 게 있는데 물어봐도 돼요?”
질문을 듣고 나서 판단하지.”
그에 퍼블리는 그냥 입을 다물었다. 대답하고 싶지 않은 답이라면 대답하지 않겠다는 뜻이나 다름없는 말이었으니. 묵묵히 주머니에 전부 집어넣던 마법사는 다시 발을 움직이기 시작했고 앞에 있던 퍼블리 또한 그 모습에 뒤돌아서 다시 앞장서기 시작했다. 그렇게 얼마나 걸었을까 뒤따르던 마법사가 아하고 아주 작은 감탄을 내며 멈춰선 퍼블리의 시선을 따라가 보니 까르르 웃는 아이들과 눈을 빛내는 어른들 손에 들린 무지개 구슬에 닿았다.

아까 그 학생이네?”

...? ?”

다시 돌아올 줄 알았어! 어이 거기 채스터! 얼른 돈 내놔! 내가 기른 구슬 재료들은 이 왕국에서 제일 싱싱하고 색을 잘낸다고 자부했잖아?”

성질도 급하긴! 아직 해보겠다고 말도 안 꺼냈잖아! 게다가 그냥 지나가던 길이었는데 같은 길을 밟은 건지 아닌지도 구분 안 하고!”
구분하고 말고가 뭐 있어? 어차피 이 길 계속 가면 분수대밖에 안 나오잖아. 괜히 돈 주기 싫어서 입씨름하지 말고 순순히 포기해라?”

돈 주기 싫은 건 당연한 거고 포기하기엔 아직 이르지.”

두 마녀의 대화를 듣던 마법사는 금세 상황을 파악했다. 무지개 구슬을 보고도 안 만든다며 떠난 퍼블리가 다시 돌아와 만들겠다고 할지 아니면 그대로 안 올지 내기를 했을 터. 하지만 퍼블리가 내기 대상이 되었어도 그리 기분 나쁜 느낌은 들지 않았다. 그만큼 퍼블리가 축제를 즐길 기분이 아니었다는 뜻이기도 했으니 말이다. 다시 한 번 무거운 손이 올라와 잊지 말라는 듯이 심장을 꽉 쥐었다. 그렇게 서로를 향해 소리치면서도 친절하게 재료를 참가자들에게 나눠주던 두 마녀는 입을 멈추고 퍼블리를 바라봤다. 퍼블리는 중간부터 다시 무지개 구슬에 시선이 팔려 둘이 나눈 외침들은 흘려들어 내기 자체를 모르고 있었다. 때마침 고개를 든 퍼블리가 웃으면서 외쳤다.

만들래요!”

채스터라고 불린 마녀는 벌레 씹은 표정으로 주머니에서 돈을 꺼냈다.

마법사는 이번엔 참가하지 않고 퍼블리가 만드는 걸 구경했다.

퍼블리는 제 앞에 놓인 무지개에 들어가는 세가지 색 열매들을 섞이지 않게 잘게 빻기 시작했다. 곱게 빻은 가루들을 투명한 진액과 함께 동그란 틀 안에 넣자 틀이 빙글빙글 돌아가기 시작했다. 틀도 투명해서 안쪽이 다 보였는데 가루들이 부딪히며 새로운 색을 만들어내고 옆에서 조금씩 마법기구가 조정을 하자 어느 정도 양이 정해진 기본 색들은 섞여 색이 변하지 않고 그대로 남아 빙글빙글 돌고 있었다. 마침내 완성한 무지개 구슬은 정말 무지개를 담은 것처럼 예쁘고 한눈에 들어왔다. 구슬을 만들고 나니 어느새 해가 하늘 한 구석을 빨갛게 태우며 내려가고 있었다. 이번에도 퍼블리가 앞장섰지만 어디 가는지는 알 수 있었다. 아까 내기에서 이긴 마녀가 말했던 대로 둘이 가고 있는 길의 끝엔 분수대밖에 나오지 않으니 말이다.

손 좀 줘보세요.”

분수대에 앉자 퍼블리가 대뜸 손을 내밀고 말했다. 그에 오른손을 내밀려다가 고개를 젓자 왼손을 내밀자 퍼블리의 손이 가는 곳은 다름 아닌 비둘기로 광고하던 데에서 샀던 팔찌였다. 거기에 무지개 구슬을 대며 집중하던 퍼블리가 손을 놓자 구슬이 원래 팔찌 장식이었다는 듯이 자연스럽게 붙어있었다.

어때요? 괜찮죠?”
접착 마법으로 붙였는지 꽤나 감쪽같았다. 구슬을 만들 때보다 더 집중했었던 퍼블리는 뿌듯한 미소를 지었고 마법사는 팔찌에 붙은 구슬을 만져보다가 큰 충격을 받으면 금방 떨어지겠다고 충고하려고 했지만 차마 뿌듯해서 웃는 퍼블리에게 말할 순 없었다. 나중에 몰래 더 보강하겠다며 접착 마법을 뒷전으로 미룬 마법사는 주머니에서 무언가를 꺼냈다. 아까 공 던지기에서 얻은 얼음꽃무늬 돌조각이었다. 마법사가 몇 번 손으로 쓸자 울퉁불퉁하던 돌조각 표면이 매끄러워지고 모양이 구슬처럼 동그랗게 변했다.

.”

신기하게 바라보던 퍼블리가 반사적으로 손을 내밀었고 마법사가 팔찌에다가 가공한 돌조각을 댄 후 얼마 지나지 않아 무지개 구슬처럼 자연스럽게 팔찌 장식으로 자리 잡았다. 남색과 파란색 바탕의 돌조각 위에 새겨진 얼음꽃무늬는 정교했고 눈길을 사로잡았다.

진짜 예뻐요!”

퍼블리가 눈을 빛내며 예쁘다고 연신 외치고는 손을 높이 들어 얼음꽃무늬 돌조각 장식을 얻은 빨간색 팔찌를 계속 바라보고 있었다. 그런 퍼블리의 모습에 마법사는 반대로 손을 들지 않고 고개를 숙여 무지개 구슬 장식을 얻은 파란색 팔찌를 보고 있었다. 얼마 지나지 않아 해가 완전히 하늘을 까맣게 태우고 사라질 때 쯤 다시 비둘기들이 날아오르기 시작했다. 낮에 봤던 비둘기들처럼 병을 입에 물고 가루를 흩뿌리며 까만 하늘에 그림을 그리기 시작했다. 어디선가 표절이라고 외치는 목소리가 들렸지만 그 속에서도 웃음기가 서려있었다. 분수대에 앉아있던 둘은 하늘을 바라보며 축제를 되새겼고 다시 축제를 즐기러 일어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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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땅따먹기야?”
이번엔 땅따먹기 수준이 아니야!”

급하게 뛰어온 선도부는 이번엔 그런 귀여운 말이 아닌 폭동 수준이라고 했다. 축제 둘째 날은 아직 학생들의 무대가 아니었지만 혹시 모를 사태에 대비해 다시 한 번 그들의 성과를 두드려보는 날이었다. 물론 둘째 날은 자유라고 불리고 있었으니 이것도 어찌 보면 축제 중의 구경거리라고 할 수 있었다.

아무래도 인원수가 많은 동아리들이 연합을 한 것 같아. 인원이 아닌 각 동아리들이 할 수 있는 행사 규모에 맞춰서 배분해준 구역이라고 해도 듣지를 않아!”

선도부라고 하지만 앞도적인 숫자에는 진땀을 흘리고 거의 피신하다시피 물러날 수밖에 없는데 인원수 많은 것들끼리 붙어먹었다는 말에 아니카도 늘 달다시피 하던 웃음을 거두고 머리를 짚었다.

많은 새..녀석들도 축제 행사를 이끌어가는 건 몇 명만 뽑는 거잖아. 그놈의 인원수가 많다느니 인원이 많으니 자리가 많아야한다느니...걔네들 거기 땅에다가 재료 농사짓거나 마력 발전소 하나 세워서 행사 안 이끄는 애들 마력 쏟아 붇는대?”

곧이어 날선 말들이 잔뜩 쏟아져 나왔다. 아니카를 부르러 왔던 선도부는 식은땀과 울상을 지으며 아니카를 데려갔고 퍼블리는 그대로 혼자 남게 됐다. 자유라고 불리는 축제날이었지만 통제하는 마녀에게 있어선 축제 중에 자유란 거의 없었다. 동행인이 통제하러 가버린 터라 남은 마녀는 곤란해질 수밖에 없었다.

...어떡하지?”
작년까진 아니카가 선도부가 아니었으니 항상 같이 축제를 즐겼다. 물론 퍼블리가 아니카에게 엄마랑 축제를 즐기지 않고 자기랑 즐기게 돼서 서운해 하지 않으시냐고 물어봤지만 그에 아니카는 처음엔 몇 번 같이 가지 않겠냐고 물어봤지만 이제는 신나게 술 마시러 나간다고 대답했다. 아무래도 또래끼리 노는 게 더 즐거운 건 어른이든 아이든 똑같았다.

물론 퍼블리는 친구가 아니카만 있는 게 아니었다. 다만 아니카보다 덜 친해서 같이 축제를 돌아다니고 싶은 친구들은 아니었다. 더군다나 이미 그 들도 제 짝인 친구들이랑 돌아다니고 있을 테니 더더욱 같이 돌아다닐 마음은 들지 않았다. 멍하니 분수대에 앉아서 축제가 한창 시작되는 모습들을 천천히 눈에 담기 시작한 퍼블리는 새삼스럽게 축제가 굉장히 소란스럽다는 걸 깨달았다. 아니카와 함께 있을 때는 느끼지 못했는데 축제란 건 가만히 있는 마녀에겐 매우 소란스럽게 다가왔다. 그렇게 계속 앉아 있다가 분수가 이제 그만 가라는 듯이 물 몇 방울을 퍼블리의 등에 떠미는 손처럼 뿌리자 그제야 일어나 소란스러운 축제 무리로 걸어 들어갔다. 무지개 구슬을 만드는 행사와 투명한 아이스크림을 만드는 행사 등등 다양한 행사들이 있었지만 딱히 즐기고픈 마음이 없었던 퍼블리는 그저 한 발짝 떨어져 구경만하고 있었다. 그러다가 무지개 구슬 재료를 나눠주고 설명하고 있던 마녀가 그런 퍼블리를 발견했다.

학생! 학생도 한 번 만들어 봐요!”

, 아뇨! 저는 그냥 구경이 더 즐거워서요!”

그렇게 말한 퍼블리는 마녀들 사이를 빠져 나와 다시 분수대가 있는 쪽으로 향했다. 이상하리만치 기분이 가라앉았다. 분명 축제는 소란스러운데 제 주변은 조용한 것 같았다. 아니카가 그렇게 수다스러운 건 아니었지만 늘 범상치 않은 말을 꺼낸 터라 기억에 잘 남게 되고 잔상이 떠오른다는 걸 혼자 있게 돼서야 느끼게 됐다. 그러다가 기분이 완전히 가라앉은 아니카가 지금쯤이면 엄청난 독설을 날리고 있을 거란 생각에 여름인데도 한기가 느껴지면서 당할 애들을 생각하니 이상하게 웃음이 나왔다. 그렇게 가라앉은 기분 아래에서 웃음을 건져 올리던 퍼블리는 곧이어 눈앞에 나타나는 얼굴에 살짝 물기 어린 웃음을 지었다.

“...아빠랑 같이 축제 즐기고 싶었는데...”
아주 예전에 퍼블리가 마녀왕국에 오고 나서 처음으로 맞게 된 축제 때 마법사는 그런 퍼블리를 달래주기 위해 손을 잡고 축제를 돌아다녔다. 볼을 부풀린 퍼블리는 그저 땅만 보고 걸었지만 얼마 안 가 축제의 화려함에 시선과 서운함을 빼앗겼다. 신나게 뛰어다니기 시작한 퍼블리는 아마 환하게 웃고 있었을 거고 뒤에서 퍼블리를 보고 있던 마법사가 무슨 표정을 지었을지는 같이 있던 퍼블리 또한 몰랐다. 계속 앞만 보며 뛰어다녔으니 당연히 모를 만도 했다. 어쩌면 한 번 쯤은 뒤돌아봤을지도 모르지만 아무리 머리를 굴려도 기억이 안 난다. 그 때의 마법사도 지금의 마법사처럼 온 몸을 꽁꽁 싸매다시피 옷을 입었다. 그런데도 그 때 주위 마녀들은 마법사한테 시선을 주지 않았다. 어째서? 퍼블리는 잠시 의문을 가지며 다시 한 번 눈앞을 전부 차지하는 마법사의 옷차림을 살펴봤다. 마녀나 마법사의 시간은 어른이 되고 난 후 굉장히 느리게 흐른다고 들었다. 기억속의 마법사 또한 지금과 별 다를 바가 없었다. 그런데...

“...옷까지 너무 최근인데?”
분명 그 때 유행하거나 입던 옷이랑 지금 입는 옷이랑은 현저히 다르다. 꽁꽁 싸매는 건 똑같아도 당시에 사서 입는 옷이니 유행은 따라갈 수밖에 없었다. 그런데 기억에서 튀어나온 마법사의 옷차림은 너무 최신에 유행하는 옷차림이 아닌가. 그 때 마법사의 표정이 미묘하게 찌푸려졌다.

?”
눈을 깜빡이고 비벼서 다시 봐도 마법사는 사라지지 않았다. 분수대 앞에 서있는 마법사는 그런 퍼블리의 행동에 어쩐지 식은 눈으로 쳐다보고는 퍼블리에게 다가왔다.

...”
엄마.”
..엄마.”
환상이 아니었다. 실제 마법사였다. 축제 기간 내내 집 안에 틀어박혀있었던 혹은 있어야할 마법사다.

엄마?”
믿기지 않는다는 듯이 반문하는 퍼블리에 마법사는 다시 눈썹을 찌푸리다가 그동안 제 행동들을 돌아보고 반사적으로 나오려는 한숨을 삼켰다. 아무리 사정이 그랬다하더라도 제가 생각해도 보호자 자격을 박탈해야할 것 같았다. 퍼블리가 멍하니 마법사를 쳐다보며 말했다.

왜 나왔어요?”
그리고 제 입을 틀어막았다. 기껏 나왔는데 왜 나왔냐고 묻다니, 무언가 볼일이 있어서 나온 게 틀림없을 텐데 말이다. 마법사라고 늘 집 안에 틀어박혀 있는 건 아니었다. 어디론가 나가기도 했다. 그런데 축제 때 나오는 일은 그 때 이후로 없었는데...어쩐지 알 수 없는 기대감이 몽글몽글 솟아오르는 그 때

축제 때 같이 돌아다니지 않겠냐고 했잖나.”
짓누르던 것들이 이 순간만큼은 모두 물러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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