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네 복장불량이네."
그는 자신이 다니는 학교가 다른 곳에 비해 눈에 띈다고 생각한 적은 종종 있었다. 정확히 말하자면 특정 학생들이 눈에 띄어 학교 자체가 뭉뚱그려진 간판으로 내세워진 거나 다름 없는 상황이라고 생각했다. 또래에 비해 유난히 덩치가 큰 학생들이라고 단정짓기에는 지나치게 덩치가 큰 학생들이 있는가하면 머리 색과 눈 색이 다양한 학생들이 있었다. 물론 그들이 염색을 한 게 아니냐라는 단정에 그들은 본인들의 머리 색은 자연이라고 받아쳤다. 우스운건 그 질문같지도 않은 단정들은 학교 밖에서 온 것이고 정작 그들이 발을 밟고 있는 학교는 아무런 말도 없었다. 심지어 다른 평범한 학생들도 아무런 문제 없이 그들을 대했다. 학교가 붙잡는 건 교복을 제대로 입었는가에 대한 것 뿐, 정작 유난히 기시감을 느끼는 건 다름아닌 그 특정 학생들 중에 속해 있는 그였다.
그리고 그 앞에서 그를 붙잡은 선도부 또한 특정 학생들 중 하나였다.
"넥타이가 다 안 말라서 그렇습니다만 처음이니까 봐주십쇼?"
그는 절대 그가 느낀 기시감을 밝히지 않았다. 그저 다른 학생들처럼 아무런 내색도 하지 않았다.
"교칙은 지키라고 있는 걸세. 그리고 자네 기록을 보면 처음은 아니네만?"
선도부는 이 학교 학생들 중의 모든 특이함을 가지고 있는 사람이나 다름 없었다. 붉은 색의 머리카락과 동공은 물론 흰 색이 있어야할 곳까지 푸른 색인 눈은 물론 전혀 학생같지 않은 말투는 어른스럽다기 보단 말 그대로 어른같았다. 하지만 그의 모습과 함께 듣는다면 영락없는 애늙은이였다.
"에이 선배님과 만난 건 처음이잖슴까? 후배의 애교를 봐서라도 좀 봐주십쇼~"
교문에서 복장을 단속하는 선도부는 일주일마다 바뀐다. 선도부에선 다시 본인의 차례가 돌아오는 건 한달 정도였다. 이번의 선도부는 처음 마주친 사이였다. 선도부의 넥타이 색은 매고 있는 사람의 머리카락처럼 빨갛다. 한 학년 위의 선배를 내려다보던 그는 그가 자신하는 눈웃음을 흘리며 은근슬쩍 자리를 벗어나려고 했지만 선도부의 손에 들린 펜은 아랑곳 않고 종이 위를 움직였다.
"그래, 자네 이름이 치트로군. 현재까지 쌓인 벌점은 16점이네, 이제 17점이 됐군."
20점이 되면 교칙에 따라 벌을 내릴테니 그렇게 알게.
첫번째 주였다.
"선배님~? 패치 선배님~?"
그날 이후로 그, 치트는 복장을 단속하는 선도부의 손과 눈에 걸리지 않았다. 다만 그는 그를 잡았던 선도부 선배를 계속해서 찾아왔다.
"뭔가? 벌점을 없애달라고 시위하는 건가?"
"아아 벌점따윈 상관 없슴다. 전 그저 선배님이 보고 싶어서 찾아온거라구요?"
"언제부터 자네와 내가 쉬는시간마다 만나고 이름도 붙일 정도로 친근한 사이였지?"
"처음만난 그 순간부터?"
"헛소리."
신기하게도 치트는 그가 있는 곳을 귀신같이 알아채고는 바로 앞에서 나타나기 일쑤였다. 치트가 그에게 찾아와 하는 말은 별거 없었다. 대체 어떻게 찾아오냐는 의심섞인 그의 질문에 어느정도 입에 발린 대답을 하고 수업종이 치는 것과 동시에 자신의 반으로 돌아갔다. 그렇게 2주정도 넘어가자 친근하게 이름을 붙여서 불리게 된 패치도 질문하는 걸 포기한 상태였다. 그렇게 한달이 지나고 다시 차례가 돌아왔다.
"자네 복장불량이네."
그리고 패치는 또다시 그에게 벌점을 줬다.
"한달 동안은 멀쩡히 다녔는데 한달만에 또 넥타이가 아직 안 말랐나?"
"하하 이거 참 분명 어젯밤에 널어놨는데 말이죠."
"18점이네."
두번째 주였다.
치트는 이번엔 쉬는시간 뿐만이 아니라 점심시간에도 패치를 찾아왔다. 패치는 한숨한 번 내쉬고는 묵묵히 제 몫으로 배분된 식판으로 눈을 돌렸다.
"아니 웬 한숨임까?"
"그건 자네가 더 잘 알지 않나?"
"흐음...글쎄요~"
치트는 아무런 말 없이 패치가 점심을 먹는 모습을 빤히 바라볼 뿐이었다. 패치 또한 그의 시선에 아랑곳 않고 묵묵히 먹기 시작했다. 패치가 식사를 마칠 때까지 치트의 몫은 전혀 줄어들지 않았다. 그렇게 일주일이 흐르고 쉬는시간은 물론 점심시간 마저 패치의 앞에 치트가 있는 건 다른 학생들 눈에도 자연스러워졌다. 그럴 때마다 매번 치트의 몫은 줄어들지 않았다. 그에 패치가 조금 눈길을 주면 그저 태연하게 웃으면서 그제야 한술 뜨곤 했다. 그렇게 한달이 지나고 다시 차례가 돌아왔다.
"자네."
더이상 뒷말은 붙이지 않았다. 패치는 눈을 특유의 날카로운 눈매로 휑한 그의 목덜미를 흘기고는 펜을 움직일 뿐이었다. 이번엔 치트 또한 아무런 말도 하지 않고 빙긋 웃고 있었다. 펜이 멈추는 것과 동시에 운동장을 가로지르려던 그의 뒤로 낮은 목소리가 나직하게 경고했다.
"1점 남았네."
세번째 주였다.
"이젠 아예 굶는 건가?"
"뭐 어차피 먹지도 않으니까요. 아, 설마 걱정하시는 검까?"
"덕분에 음식물 쓰레기가 줄어들겠군."
치트는 더이상 식판을 들고 오지 않았다. 하지만 여전히 패치의 앞에 앉아서 그를 빤히 쳐다볼 뿐이었다. 짧게 톡 쏘아붙인 그는 뾰족한 표정을 짓고는 시선을 돌렸다. 얼마지나지 않아 부스럭거리는 소리에 그는 한숨을 뱉었다.
"한숨 쉬지 마십쇼. 빨리 늙습니다."
"학교 식당 내에서 당당하게 급식을 버리고 간식 먹는 녀석한테 듣고 싶지 않은 말이네만?"
분홍색 봉지에서 보기만해도 단내가 나는 분홍색의 얇은 칩을 꺼내든 치트는 여전히 태연하게 웃는 낯으로 과자를 씹었다. 아무래도 딸기맛인지 딸기향이 그들의 주위로 확 퍼지기 시작했다.
"취향 참 특이하군."
"이게 의외로 중독성이 있슴다. 하나 드시겠슴까?"
"사양하지."
치트는 이제 매번 분홍색 봉지를 들고다니기 시작했다. 점심시간 뿐만이 아니라 쉬는시간에도 패치 곁에서 딸기칩을 꺼내들었다. 그 덕에 그들에게선 언제나 인공적인 딸기향이 돌기 시작했고 패치는 못마땅한 표정을 지으며 그에게서 조금 떨어지려고 했다. 그럴 때마다 그는 우는 시늉을 하며 은근슬쩍 다시 패치와의 거리를 좁혔다. 얼마지나지 않아 패치 또한 그 인공적인 딸기향에 익숙해졌지만 그는 그저 한숨을 내쉬면서 자신의 마음을 나타냈다. 그렇게 한달이 지나고 다시 차례가 돌아왔다.
"방과후 학교 체육관으로 오게."
그 말을 끝으로 패치는 더이상 아무런 말도 하지 않았다. 벌점 20점을 채운 치트는 그저 어깨를 들썩이고는 목에서 느껴지는 바람을 느끼며 운동장으로 발을 내딛었다.
"3분 늦었네."
"선생님께서 조회를 조금 늦게해서 말임다~"
치트는 오늘 쉬는시간은 물론 점심시간에도 패치에게 오지 않았다. 그 모습이 생각보다 어색했는지 학생들은 지나가면서 서로 다른 곳에 있는 패치와 치트를 흘끗 돌아보기 일쑤였다. 개중에 오지랖 넓은 학생은 그들에게 직접 다가가 물어봤지만 패치는 아무런 표정변화도 없었고 치트는 그저 웃음을 지었다. 다만 둘 다 침묵으로 그들을 내쫓았다.
"이제 곧 있으면 축제기간이라서 매우 바빠지니 미리 물품들을 정리해야하네. 그 기간동안 거들게."
그의 뒤로 딸기향이 훅 다가왔다.
"선배님. 저 넥타이 좀 매주시겠슴까?"
노란색 넥타이를 꺼내든 치트는 여전히 웃는 얼굴이었다. 갑작스런 그의 요구에 패치는 별 동요없이 등을 돌려 뾰족한 표정으로 그를 바라봤다.
"매주시면 다음부턴 복장 제대로 갖추겠슴다."
한숨과 함께 빠른 속도로 넥타이를 낚아챈 손은 능숙하게 움직였다. 말끔하게 자리잡은 노란색 넥타이는 언제나 그를 바라보는 노란 눈처럼 그의 바로 앞에 있었다. 그보다 머리하나 높게 자리잡은 노란색이 내려오는 순간 그는 노란 넥타이를 꾹 누르며 밀어내고 입을 열었다.
"적어도 목덜미의 빨간 건 지우고 나서 오는 게 예의 아닌가?"
그 말을 끝으로 패치는 유유히 자리를 벗어났다. 멍하니 그의 뒤를 바라보던 노란색들이 조금씩 들썩이며 웃음을 흘리기 시작했다.
한달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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