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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달

단편 2016. 7. 30. 23:33

"자네 복장불량이네."


그는 자신이 다니는 학교가 다른 곳에 비해 눈에 띈다고 생각한 적은 종종 있었다. 정확히 말하자면 특정 학생들이 눈에 띄어 학교 자체가 뭉뚱그려진 간판으로 내세워진 거나 다름 없는 상황이라고 생각했다. 또래에 비해 유난히 덩치가 큰 학생들이라고 단정짓기에는 지나치게 덩치가 큰 학생들이 있는가하면 머리 색과 눈 색이 다양한 학생들이 있었다. 물론 그들이 염색을 한 게 아니냐라는 단정에 그들은 본인들의 머리 색은 자연이라고 받아쳤다. 우스운건 그 질문같지도 않은 단정들은 학교 밖에서 온 것이고 정작 그들이 발을 밟고 있는 학교는 아무런 말도 없었다. 심지어 다른 평범한 학생들도 아무런 문제 없이 그들을 대했다. 학교가 붙잡는 건 교복을 제대로 입었는가에 대한 것 뿐, 정작 유난히 기시감을 느끼는 건 다름아닌 그 특정 학생들 중에 속해 있는 그였다.


그리고 그 앞에서 그를 붙잡은 선도부 또한 특정 학생들 중 하나였다.


"넥타이가 다 안 말라서 그렇습니다만 처음이니까 봐주십쇼?"


그는 절대 그가 느낀 기시감을 밝히지 않았다. 그저 다른 학생들처럼 아무런 내색도 하지 않았다.


"교칙은 지키라고 있는 걸세. 그리고 자네 기록을 보면 처음은 아니네만?"


선도부는 이 학교 학생들 중의 모든 특이함을 가지고 있는 사람이나 다름 없었다. 붉은 색의 머리카락과 동공은 물론 흰 색이 있어야할 곳까지 푸른 색인 눈은 물론 전혀 학생같지 않은 말투는 어른스럽다기 보단 말 그대로 어른같았다. 하지만 그의 모습과 함께 듣는다면 영락없는 애늙은이였다.


"에이 선배님과 만난 건 처음이잖슴까? 후배의 애교를 봐서라도 좀 봐주십쇼~"


교문에서 복장을 단속하는 선도부는 일주일마다 바뀐다. 선도부에선 다시 본인의 차례가 돌아오는 건 한달 정도였다. 이번의 선도부는 처음 마주친 사이였다. 선도부의 넥타이 색은 매고 있는 사람의 머리카락처럼 빨갛다. 한 학년 위의 선배를 내려다보던 그는 그가 자신하는 눈웃음을 흘리며 은근슬쩍 자리를 벗어나려고 했지만 선도부의 손에 들린 펜은 아랑곳 않고 종이 위를 움직였다.


"그래, 자네 이름이 치트로군. 현재까지 쌓인 벌점은 16점이네, 이제 17점이 됐군."


20점이 되면 교칙에 따라 벌을 내릴테니 그렇게 알게.


첫번째 주였다.


"선배님~? 패치 선배님~?"


그날 이후로 그, 치트는 복장을 단속하는 선도부의 손과 눈에 걸리지 않았다. 다만 그는 그를 잡았던 선도부 선배를 계속해서 찾아왔다.


"뭔가? 벌점을 없애달라고 시위하는 건가?"


"아아 벌점따윈 상관 없슴다. 전 그저 선배님이 보고 싶어서 찾아온거라구요?"


"언제부터 자네와 내가 쉬는시간마다 만나고 이름도 붙일 정도로 친근한 사이였지?"


"처음만난 그 순간부터?"


"헛소리."


신기하게도 치트는 그가 있는 곳을 귀신같이 알아채고는 바로 앞에서 나타나기 일쑤였다. 치트가 그에게 찾아와 하는 말은 별거 없었다. 대체 어떻게 찾아오냐는 의심섞인 그의 질문에 어느정도 입에 발린 대답을 하고 수업종이 치는 것과 동시에 자신의 반으로 돌아갔다. 그렇게 2주정도 넘어가자 친근하게 이름을 붙여서 불리게 된 패치도 질문하는 걸 포기한 상태였다. 그렇게 한달이 지나고 다시 차례가 돌아왔다.


"자네 복장불량이네."


그리고 패치는 또다시 그에게 벌점을 줬다.


"한달 동안은 멀쩡히 다녔는데 한달만에 또 넥타이가 아직 안 말랐나?"


"하하 이거 참 분명 어젯밤에 널어놨는데 말이죠."


"18점이네."


두번째 주였다.


치트는 이번엔 쉬는시간 뿐만이 아니라 점심시간에도 패치를 찾아왔다. 패치는 한숨한 번 내쉬고는 묵묵히 제 몫으로 배분된 식판으로 눈을 돌렸다.


"아니 웬 한숨임까?"


"그건 자네가 더 잘 알지 않나?"


"흐음...글쎄요~"


치트는 아무런 말 없이 패치가 점심을 먹는 모습을 빤히 바라볼 뿐이었다. 패치 또한 그의 시선에 아랑곳 않고 묵묵히 먹기 시작했다. 패치가 식사를 마칠 때까지 치트의 몫은 전혀 줄어들지 않았다. 그렇게 일주일이 흐르고 쉬는시간은 물론 점심시간 마저 패치의 앞에 치트가 있는 건 다른 학생들 눈에도 자연스러워졌다. 그럴 때마다 매번 치트의 몫은 줄어들지 않았다. 그에 패치가 조금 눈길을 주면 그저 태연하게 웃으면서 그제야 한술 뜨곤 했다. 그렇게 한달이 지나고 다시 차례가 돌아왔다.


"자네."


더이상 뒷말은 붙이지 않았다. 패치는 눈을 특유의 날카로운 눈매로 휑한 그의 목덜미를 흘기고는 펜을 움직일 뿐이었다. 이번엔 치트 또한 아무런 말도 하지 않고 빙긋 웃고 있었다. 펜이 멈추는 것과 동시에 운동장을 가로지르려던 그의 뒤로 낮은 목소리가 나직하게 경고했다.


"1점 남았네."


세번째 주였다.


"이젠 아예 굶는 건가?"


"뭐 어차피 먹지도 않으니까요. 아, 설마 걱정하시는 검까?"


"덕분에 음식물 쓰레기가 줄어들겠군."


치트는 더이상 식판을 들고 오지 않았다. 하지만 여전히 패치의 앞에 앉아서 그를 빤히 쳐다볼 뿐이었다. 짧게 톡 쏘아붙인 그는 뾰족한 표정을 짓고는 시선을 돌렸다. 얼마지나지 않아 부스럭거리는 소리에 그는 한숨을 뱉었다.


"한숨 쉬지 마십쇼. 빨리 늙습니다."


"학교 식당 내에서 당당하게 급식을 버리고 간식 먹는 녀석한테 듣고 싶지 않은 말이네만?"


분홍색 봉지에서 보기만해도 단내가 나는 분홍색의 얇은 칩을 꺼내든 치트는 여전히 태연하게 웃는 낯으로 과자를 씹었다. 아무래도 딸기맛인지 딸기향이 그들의 주위로 확 퍼지기 시작했다.


"취향 참 특이하군."


"이게 의외로 중독성이 있슴다. 하나 드시겠슴까?"


"사양하지."


치트는 이제 매번 분홍색 봉지를 들고다니기 시작했다. 점심시간 뿐만이 아니라 쉬는시간에도 패치 곁에서 딸기칩을 꺼내들었다. 그 덕에 그들에게선 언제나 인공적인 딸기향이 돌기 시작했고 패치는 못마땅한 표정을 지으며 그에게서 조금 떨어지려고 했다. 그럴 때마다 그는 우는 시늉을 하며 은근슬쩍 다시 패치와의 거리를 좁혔다. 얼마지나지 않아 패치 또한 그 인공적인 딸기향에 익숙해졌지만 그는 그저 한숨을 내쉬면서 자신의 마음을 나타냈다. 그렇게 한달이 지나고 다시 차례가 돌아왔다.


"방과후 학교 체육관으로 오게."


그 말을 끝으로 패치는 더이상 아무런 말도 하지 않았다. 벌점 20점을 채운 치트는 그저 어깨를 들썩이고는 목에서 느껴지는 바람을 느끼며 운동장으로 발을 내딛었다.


"3분 늦었네."


"선생님께서 조회를 조금 늦게해서 말임다~"


치트는 오늘 쉬는시간은 물론 점심시간에도 패치에게 오지 않았다. 그 모습이 생각보다 어색했는지 학생들은 지나가면서 서로 다른 곳에 있는 패치와 치트를 흘끗 돌아보기 일쑤였다. 개중에 오지랖 넓은 학생은 그들에게 직접 다가가 물어봤지만 패치는 아무런 표정변화도 없었고 치트는 그저 웃음을 지었다. 다만 둘 다 침묵으로 그들을 내쫓았다.


"이제 곧 있으면 축제기간이라서 매우 바빠지니 미리 물품들을 정리해야하네. 그 기간동안 거들게."


그의 뒤로 딸기향이 훅 다가왔다.


"선배님. 저 넥타이 좀 매주시겠슴까?"


노란색 넥타이를 꺼내든 치트는 여전히 웃는 얼굴이었다. 갑작스런 그의 요구에 패치는 별 동요없이 등을 돌려 뾰족한 표정으로 그를 바라봤다.


"매주시면 다음부턴 복장 제대로 갖추겠슴다."


한숨과 함께 빠른 속도로 넥타이를 낚아챈 손은 능숙하게 움직였다. 말끔하게 자리잡은 노란색 넥타이는 언제나 그를 바라보는 노란 눈처럼 그의 바로 앞에 있었다. 그보다 머리하나 높게 자리잡은 노란색이 내려오는 순간 그는 노란 넥타이를 꾹 누르며 밀어내고 입을 열었다.


"적어도 목덜미의 빨간 건 지우고 나서 오는 게 예의 아닌가?"


그 말을 끝으로 패치는 유유히 자리를 벗어났다. 멍하니 그의 뒤를 바라보던 노란색들이 조금씩 들썩이며 웃음을 흘리기 시작했다.


한달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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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그저 내가 알고 있었던 것들을 가르쳐줬을 뿐이네."

나긋나긋하게 주위를 감싸는 목소리는 처음 듣는 사람이 듣기에도 얌전히 잡힐 만큼 끌어당기는 매력이 있다. 목소리 앞에 자리잡은 커다란 검은 바위는 그 틈새로 서로 다르게 물들어 있는 빛을 힐끗힐끗 내보이며 그 자리에 앉아서 그의 이야기를 듣고 있었다. 그는 몇 번이고 깜빡임을 반복하는 하얀 빛과 붉은 빛을 놓치지 않고 마주하면서 손으로 입을 감싸듯이 턱을 괴면서 말을 이어간다.

"하지만 내가 알고 있었던 것들이 그들에겐 모르는 것들이었다는 게 문제였던 거지."

밝게 빛나는 머리카락이 몇가닥씩 짝을 이루고 흘러내리면서 이마를 쓸어간다. 뿐만 아니라 눈까지 뻗어오는 마리카락에 그는 나머지 손을 들면서 다시금 머리카락을 올리며 눈을 감싸고 있는 낯선 물건을 다시 제자리로 고쳐 쓴다. 손가락 사이로 새어나오는 말들은 아무런 감정을 담아두지 않았지만 살짝 눈동자를 덮으며 아래로 휘어지는 눈매는 꽤 부드럽다.

하지만 손 아래의 입이 웃고 있지 않는 건 그 누가 알았을까.

 


"드디어 날이 밝았군."

그 말을 듣는 것과 동시에 잔뜩 깃털이 달린 날개와 더불어 육중한 몸을 바닥에 늘어뜨린 모습이 꽤 피곤해 보인다. 물론 하루종일 파란색의 머리카락 한 올이라도 찾아내기 위해 파란 하늘을 하루종일 날개로 휘젓고 녹색 땅을 발에 댄지 얼마 지나지 않아 달콤한 휴식처가 될 땅은 물론 분명히 파란색이었던 하늘 마저 검게 물들어버리고 말로만 듣던 언데드들과 서서히 묻혀져가던 검은 전쟁이 다시금 모습을 들어낼 것이라는 상황과 전혀 의외의 인물에게서 튀어나온 반전에 지칠대로 지쳐버린지 오래였다. 더군다나 반전을 발견한 사람은 본인이었으니 말 다한 거나 다름 없었다.

"그보다 여기 배였어!?"

몸은 지쳤을 지언정 전서구의 목청은 영원하리. 분명 그들이 엎치락 뒤치락 했던 모래사장 옆은 바로 바다였으니 모래사장에서 얼마 떨어지지 않은 곳의 집이라고 생각했었다. 모래사장에서 얼마 떨어지지 않은 곳은 맞았지만 그들이 있는 곳은 다름 아닌 바다 위였다. 부리를 벌린 채 쉴새없이 호들갑을 떠는 전서구의 모습에 비해 상당히 대조될 정도로 차분하게 앉아있는 퍼블리 또한 시선은 창문 너머의 나누어진 푸른색들을 향하고 있지만 눈동자는 매우 흐리다. 녹색 눈동자에 뛰어들어 휘젓는 진실들은 흐려진 것 만큼 감당하기 힘든 것들이었다. 알 수 없는 막막한 무언가가 앞을 가로막고선 날카로운 창들을 들이민다. 그 확실치 않은 것들은 아마 검은 진실에서 튀어나온 배신감이리라.

우습게도 녹색은 불신을 품지 않는다.

"이상한 점이 너무 많아요."

충격에 가라앉은 배처럼 가라앉아있을 거라 생각되던 목소리는 아직까지 모래사장 위에서 투닥거리고 있었는지 의외로 낭랑하다.

"확실히 모든 게 이상하긴 하지만 정원지기님을 의심하기엔 아직 설명되지 않은 부분들이 많아요. 게다가 제가 정원지기님을 만난 건 하늘이 두 번 바뀐 정도지만 정원지기님이 이곳에 오시고 나서 하늘이 14번은 바뀌었어요. 만약 정원지기님이 범인이라면 바로 오신 그 푸른 날의 밤이 사라졌어야해요."

묵묵히 말을 들고있던 언데드들은 순박한 눈을 깜빡이고 있을 뿐 아무런 말도 하지 않는다. 전서구 또한 쉴새없이 움직이던 부리를 잠시 멈추고 커다란 눈동자를 데룩 굴린다.

"사실 저는 정원지기님을 믿고 싶어요. 방금 전에 말했다시피 정원지기님을 만난 건 고작 두 번째 푸른 날인데다가 그저 제가 일방적으로 뒤를 따르는 것 뿐이었지만 그래도 정원지기님이 범인이 아니라는 생각이 들어요. 아니 어쩌면..."

푸른 빛을 머금은 흰 색의 가닥들이 고개가 움직이는 방향에 따라 흔들리며 창문 너머로 내려오는 햇빛과 부딪히는 모습과 동시에 아래에 자리잡은 녹색은 햇빛을 받아들였는지 선명하다.

"그 분 또한 피해자일 수도 있어요."

기억에도 없는 너는 무엇을 그리 확신하는 거지?

배를 향해 부딪히는 파도소리가 제법 시원하다. 서로 다른 파란색들 사이의 선 위를 끊어놓는 배는 여전히 같은 자리에 우뚝 떠있다. 그곳은 무대이며 주인은 관객이고 손님은 내적 갈등을 해소하고 있는 배우이니라. 그것은 극적이지만 그 누구도 거짓이라 말하지 못 한다.

"형님!! 형니이이임!!!"

무언가에 부딪혔는지 작게 흔들리던 것도 잠시, 곧이어 들이닥친 언데드들은 날이 밝자마자 작은 배를 타고 어디론가 배를 몰던 이들이었다. 방 안의 모두가 그들을 주목하는 가운데 순박한 눈은 답지 않게 두려움을 가득 담고 이가 듬성듬성 나있는 입은 파르르 떨리고 있었다. 그들이 가지고 온 소식은 전혀 반길만한 것이 못 됐다.

"메르시가 사라졌어요!!!"

또다른 어두운 무대가 열린다.

 

"기억할 수 있어?"

무엇이 그리 두려운지 떨리는 목소리는 어리다.

"글쎄..."

확신을 갖지 못한 채 무덤덤하게 말을 꺼내는 목소리는 어른이다.

"글쎄라니, 내가 제일 싫어하는 말이네."

불만 가득한 목소리가 사방을 부딪혀보지만 돌아오는 건 싸늘한 정적 뿐이다.

"이젠 모르겠어..."

흰 색과 검은 색이 요동친다. 공간이 그의 마음을 대변하는 것인지 그의 마음이 공간을 따라 복잡해지는지 오직 그 만이 알 수 있다.

"나는 후회하고 있는 건가?"

목소리는 처음부터 하나다.

 

"여기는...."

몸을 일으키는 것과 동시에 몸을 두르고 있는 녹색의 천이 흔들린다. 천 사이로 삐져나온 머리카락은 천과 달리 붉은 색이었고 순식간에 시선을 사로잡을 만큼 강렬했다. 묻은 흙먼지를 털어내며 천천히 주위를 둘러보는 그는 다름아닌 정원지기다. 푸른 눈에 담기는 것은 여전히 아무것도 없는 검은 공간이었고 문득 무언가를 느낀 것인지 갑자기 그는 고개를 세차게 돌려 위를 올려다봤다.

"...역시 그녀석은 예찬(禮讚)이었나?"

푸른 빛이 날카롭게 쏘아보는 곳엔 아까까지만 해도 없었던 것이 떡하니 존재하고 있었다. 아니 애초에 존재할 리가 없는 것이 그의 눈에 자리를 잡는다.

"하얀 달...빌어먹게도 여전하군."

검은 곳에 자리잡고 있는 것은 이질적인 하얀 점이다. 아니 점이라고 부르기엔 크기는 그가 부른 이름처럼 달같았지만 달이라고 하기엔 티 하나 없이 완벽한 흰 색의 점은 위화감이 들기 마련이었다. 하얀 달을 쏘아보던 그는 갑작스럽게 들려오는 목소리에 잽싸게 어딘가로 몸을 숨겼다.

"우와앙! 달이 엄청 새하얘!"

"그러게요? 신기해라..."

그들의 눈엔 보이지 않겠지만 그는 바위 뒤로 숨으면서 그들을 지켜보고 있었다. 작은 등불을 손에 쥐고 돌아다니는 그들 중 키가 큰 남자의 모습을 보며 헛기침이 나오려던걸 간신히 눌러 담았다. 그 남자는 이곳에 있을 리가 없고 있어서는 안 될 존재였다.

"그런데요, 용사님. 우리 어디까지 온 걸까요? 분명 바다가 나올 때가 됐는데..."

"우웅..."

이리저리 삐죽 뻗친 푸른 머리카락과 순진하게 깜빡이며 반짝이는 녹색 눈은 해가 지기 전까지 돌아오지 않은 퍼블리와 전서구가 애타게 찾아다니던 존재였다. 바위에 올린 손이 힘을 가득 쥔 채로 긁어내리면서 손톱 밑의 여린 살에 상처를 낸다. 바위 뿐만 아니라 서로를 깎아내려는지 살벌하게 갈리는 잇새로 잔뜩 가라앉은 목소리가 분노에 가득 찬 말을 내뱉는다.

"그 솟은 머리를 뽑아버릴 자식이 대체 무슨 생각이지!?"

바위에 스며들은 핏자국 또한 그의 분노를 여실히 보여준다.

Posted by 메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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