깨달은 순간 올라오는 소름에 퍼블리가 팔을 문질렀다. 처음 아니카와 주변의 마녀들의 반응을 봤을 때 느꼈던 대놓고 이상하고 상대방이 전혀 이상함을 느끼지 못해 자신만 느끼고 있는 막연한 두려움과는 달랐다. 이번에는 알기에 소름이 돋을 수밖에 없었다. 아난타에 의해 저주라는 걸 알게 됐을 때 이것도 저주거나 혹은 저주의 영향의 일부라고 생각했는데 결과가 기묘했다. 물론 그동안 의문이 해결됐다는 묘한 안심과 마법사에 대해 더 집중했기 때문에 금방 생각을 놓아버렸지만 잘 생각해보면 참 이상했다. 저주에 직접적으로 언급도 안 했는데 왕궁 마녀가 아닌 마녀들이 메르시, 즉 공주에 대해서 알고 있는 건 말 그대로 공주가 존재한다, 좀 더 나아가면 축제로 인해 공주의 추억은 빵과 연관이 많다 뿐이었다. 이 정도는 자세히 알기 전에 퍼블리도 아는 부분이었다. 단순히 공주가 저주에 걸렸으니 공주에 대해 얘기하는 것만으로도 저주의 영향을 받는다면 퍼블리도 진즉에 영향을 받아 어른이 되지 않는 공주를 자연스럽게 받아들였어야 했다. 퍼블리는 이에 대해 안일하게 넘겨버린 자신을 자책하고 있었지만 현실은 자책할 시간을 주지 않았다.
“...그런데 아빠를 찾는다고 했죠?”
“응...응?”
“아까 얘기할 때 아빠를 찾으려고 나갔었다고...”
그 말에 퍼블리가 쩡하고 굳어버렸다. 자신의 이야기를 할 때 무의식적으로 엄마가 아닌 아빠라고 해버린 걸 떠올렸다. 아빠를 찾으러 왕국 밖으로 나갔었다고 곧이곧대로 얘기하다니 마녀만 사는 왕국에서 필사적으로 제 정체를 감추고 살아왔던 마법사의 노력이 무너지는 게 눈에 보였다. 그럴 줄 알았다며 호호 웃는 아니카와 한숨 쉬며 잔소리할 준비를 하는 마법사의 모습은 덤이었다. 상당히 곤란해 하는 모습이 역력한 게 의아했는지 빨갛게 부은 눈으로 퍼블리를 바라보고만 있었다.
“그...저...저기....사실 그게...아..빠...는 맞는데...그....”
“응?”
“와..왕국 내에서 산 게...잠시...그....”
“왕국 내에서 산 게 왜?”
“응?”
이번에는 퍼블리가 반문했다. 마녀들만 사는 마녀왕국. 여기에서 마법사가 살고 있는 건 단순히 여기로 이사왔다라는 수준이 아니다. 지나가는 마녀 하나 붙잡고 마법사가 여기서 살고 있다라고 말한다면 단순히 놀라는 수준으로 끝날 게 아니다. 그런데 바로 눈앞의 마녀, 그것도 이 왕국의 공주가 마법사가 여기 살고 있는 게 왜 그렇게 안절부절 못할 일인가 싶은 반응으로 퍼블리를 보고 있었다.
“그...여긴 마녀들만 사는 마녀왕국이니까...?”
“누가 그래?”
“...어?”
“여긴 처음에 마녀들이 모이고 마녀들이 많이 살아서 마녀왕국인 거지 마법사가 안사는 건 아니야. 엄마는 물론 아빠도 여기서 살았고 오빠들이랑도 여기서 살고 원래 홀...리랑 프라이드도 여기서 살았었어. 그 둘은 나중에 따로 나가서 마법사들을 모아 살았지만.”
이건 또 처음 듣는 얘기였다. 물론 이제 역사책을 완전히 믿을 수가 없었지만 저주로 인한 몇십년의 공백뿐만 아니라 그 전의 사실들도 쏙 빼버리다니 그 때 살았던 마녀들이 지금도 멀쩡히 살아가고 있는데 이들의 대담함에 감탄이 나올 정도였다. 묘하게 신성 측의 홀리와 프라이드에 대해 말할 때 목소리가 다시 가라앉은 것 같았지만 다시 넘긴 퍼블리는 메르시에게 현재 마녀만 살아가고 있는 이 왕국에 대해 얘기했다. 과연 표정은 좋지 않았지만 무언가 예상했다는 듯한 표정이었다.
“사실 예전부터 그렇게 마법사랑 마녀를 단순히 다르다는 게 아닌 그렇게 서로 뭉쳐서 나누는 느낌이 아래에 깔려있었지만...아빠 덕분에 아무 말도 안 나온 거였어. 오빠들도 한몫했고. 아무래도 상대적으로 마녀들이 더 많았었고...결국은 그렇게 됐구나...”
씁쓸함을 가득 담은 말이 조용히 흘러나왔다. 그와 동시에 전서구가 했던 조각 케이크 비유가 떠올랐다.
“그래서 퍼블리 언니의 아빠 이름은 뭐야?”
“어...언니라니...”
“잠든 시간은 빼야지! 그럼 퍼블리 언니인 거 맞잖아?”
어느새 순식간에 언니가 되어 있었다. 환하게 웃으면서 능청스럽게 말하는 모습이 부은 눈만 아니었다면 아까까지 울던 아이라고는 생각할 수 없을 정도로 자연스러웠다. 마법사의 이름을 묻는 걸 재촉하자 어차피 이미 흑기사단도 알고 있으니 메르시도 알아도 상관없다는 생각에 순순히 마법사의 이름을 말했다.
“패치.”
“...어?”
“빨간 머리에 파란 눈 마법사야.”
전서구의 반응이 떠오른 퍼블리가 확인사살을 덧붙였다. 당황한 기색이 역력한 채로 눈을 깜빡이던 메르시는 얼마 안 가 다시 웃음을 되찾았다.
“역시 그 오빠 보살피는 기질 탁월하다니까?”
“보살피는 기질?”
“항상 그 용사 오빠 보살피다시피 했잖아! 어. 설마 언니 생길 때쯤에 드디어 독립했대?”
용사에 대해서는 이미 알고 있었다. 마법사가 아닌 전서구와 흑기사를 통해 듣게 된 거긴 하지만 항상 용사 곁에 있었다고 했었고 전서구의 말을 빌리자면 곁에 있는 것뿐만이 아니라 뒷바라지하고 다녔다고 했다. 여기 메르시의 말도 합쳐보면 거의 애 키우는 수준이나 다름없었다. 용사가 독립하니 진짜 애를 키우고 싶어졌나보다라는 장난스러운 말에 퍼블리는 마냥 웃을 수는 없었다.
“아 진짜 그 오빠들 재밌었는데! 정확히는 용사 오빠가 사고를 치고 패치 오빠가 수습을 하는 게 일상이었어. 그러고 보니 흑룡 아저씨는 괜찮대?”
“흑룡?”
또 처음 듣는 이름이었다. 마법사 곁에 있었던 게 용사만이 아니었던 건가? 의아해하는 퍼블리의 모습에 메르시도 의아해했다.
“어...그럼 GM 할아버지는?”
“GM 할아버지는 알아.”
“음...그런데 왜 흑룡 아저씨는....그럼 컨티뉴 할아버지도?”
분명 하늘의 현자 이름이었다. 그런데 현자의 이름이 왜 여기서 나온단 말인가. 순간 뇌리를 스쳐가는 말이 있었다.
하늘의 현자 컨티뉴가 속한 소수정예 다섯.
“그...숲에 들어갔던 마법사야?”
“그 때 흑룡 아저씨는 흘러나오는 밸러니의 마력 중 거의 대부분을 막느라 무리해서 GM 할아버지랑 같이 물러나 있었어. 숲에 들어갔던 건 컨티뉴 할아버지랑 용사 오빠, 패치 오빠야.”
'장편 > 마녀를 키우는 마법사' 카테고리의 다른 글
마녀를 키우는 마법사 chapter 3 -generation.6- (0) | 2017.10.29 |
---|---|
마녀를 키우는 마법사 chapter 3 -generation.5- (0) | 2017.10.15 |
마녀를 키우는 마법사 chapter 3 -generation.3- (0) | 2017.10.08 |
마녀를 키우는 마법사 chapter 3 -generation.2- (0) | 2017.10.07 |
마녀를 키우는 마법사 chapter 3 -generation.1- (0) | 2017.10.05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