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루 만에 너무나도 많이 충격적인 일들이 닥쳐왔다. 게다가 방금 들은 건 대체 무슨 말일까, 퍼블리는 그대로 생각하는 걸 멈추고 싶었지만 아무도 들어오지 않는 조용한 감옥 안은 매우 지루했고 지루함은 모든 걸 짓누르고 밀어내는데 효과적이었다. 지루함에 못 이긴 퍼블리는 다시 머리를 굴려봤지만 아무리 생각해도 지금 이 상황은 정말 자기가 생각해도 이상하고 한 번도 상상해본 적 없는 상황이었다. 마녀왕국 내의 서점에서 떡하니 판매하는 책을 가지고 다짜고짜 금서라고 하고 감옥에 잡아넣는 것도 이상하지만 애초에 퍼블리의 짐을 허락 없이 뒤졌다는 말이니 이곳 신성의 마법사들이 상식적이라고 할 순 없었다. 만약 아니카가 이에 대해 알게 되면 과연 어떤 말들을 할까 싶었지만 우선 여기서 나가는 게 먼저였다. 바닥을 더듬어 일어나려던 퍼블리의 손에 무언가 닿자 바로 들어올린다. 아까 퍼블리와 함께 감옥으로 던져진 금서라고 불렸던 책이었다.

이게 금서라니...”
나오는 말에 담겨있는 건 당황이 대부분이었지만 그 중엔 황당함도 섞여있었다. 책 표지에 적혀있는 건 우리들이라는 단순한 제목이고 책을 펼쳐보면 서점에 팔기 위해 복사본으로 만들어진 책이지만 원본의 상태가 엉망이었는지 글이 아닌 손이 가는 대로 낙서를 한 것만 같았다. 쓸 때마다 잉크가 뒤죽박죽이었는지 선의 굵기도 제각각인 이 책은 바로 아난타가 몰래 알려준 도서번호 책이었는데 왜 이 책을 알려준 건지 이해가 가지 않았다. 물론 당사자한테 물어보기 위해 도서실의 책을 가져올 순 없으니 새로 하나 사서 챙겨왔는데 이게 금서라고 불리고 감옥으로 들어가게 만들 책인 줄 누가 알았겠는가. 한숨을 내쉬며 감옥 안에서 여기저기 흩어져 있는 제 짐들을 모아오기 시작했다. 먼지가 묻긴 했지만 크게 망가지거나 찢어진 건 없어서 다행이었다. 한숨을 쉬며 짐들을 끌어안은 퍼블리는 창살 툭툭 쳐봤지만 단단했고 지금 너머엔 아무도 없었다. 등을 기댄 벽도 더듬어보자 차갑고 딱딱한 돌의 감촉이 느껴졌다. 여기엔 흔한 촛불도 없었지만 그나마 감옥 안에서 창살의 바로 반대편에 있는 벽은 네모낳게 뚫려있어 햇빛이 쏟아져 들어왔다. 물론 거기에도 창살이 빽빽하게 서 있어 거길 통해 나가는 건 무리였다. 밤이 되면 어두워질 테니 살펴보기 힘들어 아직 해가 저물지 않았을 때 전부 살펴보려 하던 퍼블리는 뒤에서 들려오는 발소리에 그대로 살펴보던 걸 멈추고 몸을 뒤로 돌렸다.

괜찮으신가요오~?”

보라색 머리카락이 구불구불 내려와 목에 닿을 듯 말듯하게 짧았다. 둥근 호선으로 감고 있는 눈이 어쩐지 긴장을 풀어주는 것과 동시에 눈매를 가리는 것 같았다. 갑자기 나타난 상대는 감시하러 온 기사도 범죄자의 얼굴을 보러온 사제도 아니었다. 입고 있는 옷과 모자는 매우 익숙했고 무엇보다 척 보면 마법사가 아니라...

...여긴 어떻게 오신 거예요?”
몰래 왔어요오.”
“.....학술적 교류 요청하러 오신 마녀 분 아니세요?”
네 맞아요오.”

그럼 왕궁 마녀 맞죠...?”
네에.”
끝으로 갈수록 늘어지는 말투가 긴장을 풀게 하는 걸 뛰어넘어 힘이 빠지는 듯한 느낌이 들기까지 했다. 퍼블리 외에 이곳에 있을만한 마녀는 학술적 교류를 요청하러 온 왕궁 마녀밖에 없었다. 처음 보는 왕궁 마녀에 신기함과 반가움 보다는 당황스러움이 먼저 올라왔다. 애초에 어떻게 알고 여기로 몰래 온 건지 알 수가 없었으니 말이다. 하지만 그런 퍼블리의 생각을 읽기라도 했는지 왕궁 마녀가 말하는 게 더 빨랐다.

아직 어른도 안 된 어린 마녀가 밧줄로 꽁꽁 묶여 험악해 보이는 기사들한테 끌려가는 게 걱정됐어요오. 여기 감옥들을 둘러봤는데 보호자도 안 보이고 혼자밖에 없네요오. 그리고 지금은 분명 학기 중일 텐데...어쩌다가 여기 와서 갇힌 건가요오?”

마녀의 말에 상대방이 자신을 봤을 때 마법사들은 마법사로 마녀들은 마녀로 본다는 걸 확신한 퍼블리는 곧이어 이어진 질문에 식은땀을 흘리기 시작했다. 보호자도 없이 왕국 밖, 그것도 신성지대까지 와서 감옥에 갇혀있는 것과 학교를 다니던 학생이라는 것까지 들킨 마당인데다 상대는 무려 왕궁 마녀였다. 눈앞의 마녀가 찾아오기 전까진 일이 꼬여도 이렇게 꼬일 수가 없어 더 이상 꼬일 것도 없다고 생각했는데 아직 꼬일 게 남아있던 제 상황이 매우 감탄스러운 동시에 여기서 더 최악의 경우는 대체 어떤 경우일까 궁금하면서도 참담한 심정이었다. 마녀의 질문에 아난타와 마법사에 대한 얘기는 쏙 빼고 여행 나오다가 왕국 내에서 샀던 책이 금서 취급을 받고 있다는 얘기를 꺼내자 가만히 듣고 있던 마녀는 무언가 고민과 곤란한 기색이 섞인 신음을 흘리고 있었다.

일이 상당히 복잡해요오...안 그래도 여긴 큰 집단인 데에 비해 다른 집단에 대한 폐쇄성을 많이 보이는 데라 좀 곤란하네요오...게다가 마녀왕국 내에서 이곳에서 금서로 취급되는 책을 자유롭게 판다는 걸 여기 마법사들이 알게 되면 굉장히 난리가 나요오.”

확실히 기사단장이 보인 반응을 보면 지금 당장이라도 눈앞의 왕궁 마녀까지 잡아넣고 금서를 자유롭게 사고팔고 본다며 왕국으로 기사들을 이끌고 들이닥칠 것만 같았다. 어찌해야할지 상당히 곤란해 보이는 모습에 퍼블리가 조심스럽게 입을 연다.

저기, 저는 괜찮아요. 계속 여기 계시면 곤란해질 테니까 얼른 돌아가시는 게 좋을 것 같아요.”

전혀 괜찮지 않아요오. 아직 어리신 분이 감옥에 갇혀야할 이유는 없어요오. 설령 그게 진짜 금서라고 해도 그게 이유가 될 수는 없는데다가 멋대로 짐을 뒤졌다는 얘기니 더더욱 곱게 넘어갈 수 없어요오.”

팔짱을 낀 채 고민하고 있던 마녀는 주머니에 손을 넣더니 무언가를 꺼내 건넸다. 퍼블리가 머뭇거리며 손을 내밀자 그 위에 작은 네모 판이었는데 그 위에 숫자와 문자가 복잡하게 써져있었다.

왕궁 내의 제 개인 사무실로 이동하는 마법 물품이에요오. 사용하는 방법은 거기에다가 마력을 불어넣고 빛이 날 때 지정된 암호 주문을 외우면 되는 거예요오. 암호는일터예요오.”
최대한 기사들이 여기 내려오지 않게 붙잡고 있겠다는 말을 끝으로 마녀는 빠르게 퍼블리의 시야에서 사라졌다. 이름이 뭐냐고 물어보려던 퍼블리는 그저 얼떨떨한 눈으로 손에 들린 판과 마녀가 있었던 자리를 번갈아보고 있을 뿐이었다. 뒷목을 긁다가 뒤를 돌아본 퍼블리는 무언가 결심한 눈으로 일어섰다.

죄송해요. 아직 여기에 볼일이 있어요.”
판을 주머니에 넣은 퍼블리는 제 짐들과 책을 챙겨들고 바지에 묻은 먼지들을 툭툭 털었다. 해가 점점 땅 아래로 가는지 들어오는 빛이 가늘어졌다. 퍼블리는 그 빛이 들어오는 구멍 아래의 벽으로 가 몇 번 심호흡을 한 후 품속에서 고이 간직한 유리병을 꺼내 벽을 향해 있는 힘껏 던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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확인사살과 같은 문 너머에서 들려왔던 말에 퍼블리에게 잠시 다른 방에서 기다려달라고 양해를 구한 대사제는 기사단장에게 안내를 부탁했고 퍼블리는 반쯤 정신이 나간채로 따라가 안내된 방에서 기다리기 시작한지 한 시간이 지났지만 여전히 충격은 쉽사리 가시지 않았는지 멍하니 앉아있기만 했다. 기사단장은 그 모습을 보고 있다가 밖에서 부르는 소리에 나가고 방 안엔 퍼블리 혼자만 있었다. 그러기를 몇 분 더 있다가 자세를 바로 하더니 다시 머리를 굴리기 시작했지만 결론은 아난타가 신성 측의 마법사였다는 거짓말을 했다는 거였고 어디까지가 진실인지 알 수 없다는 점에서 벗어날 수 없었다. 애초에 그에 대해 잘 아는 것도 아니었지만 누구에게나 친절했던 자가 알 고보니 엄청난 거짓말로 그 자리에 있었다는 건 큰 충격인 건 여전했다. 게다가 퍼블리는 마법사에 대해 얘기도 해 본 자였기에 혹시나 싶은 불안감이 밀려올라오다가 고개를 젓는 걸 반복했다.

“...그런데 이 거짓이 단순히 책에다 낙서로 몇 줄 뻥으로 쓴 수준이 아니란 말이지...”
학술적 교류를 위해 왔다는 거였는데 이건 단순히 학생들을 속인 걸 떠나 왕궁까지 속였다는 거였다. 그렇게 생각하다가 아까 전 학술적 교류를 요청하는 마녀가 왔다는 말이 다시 떠올랐고 퍼블리가 다녔던 학교만 속인건가 싶었지만 애초에 왕궁에서 선별하고 학교 측에 연락하는 방식이었기에 왕궁을 속였다는 건 변함이 없었다. 그렇게 생각하다보니 말을 전부 다하기 전에 왕궁 마녀가 찾아온 게 다행이구나 싶었던 퍼블리는 이제 어찌해야할지 눈앞이 깜깜해졌다. 학교까지 뒤로하고 왔는데 정작 찾으러 온 목표는 거짓인데다 애초에 속하지 않은 자였고 그가 원래 속했던 곳의 마법사들은 어디 있는지 알 수도 없었다. GM은 전서구가 여행 중이라면 못 찾는다고 못을 박았고 지금 다시 돌아가면 학교에서 무슨 일이 있었냐고 물어보는 건 당연한 일이고 제 아빠의 실종사실을 알리면 왕궁 마녀가 나서긴 나서겠지만 마법사인 걸 들키면 곤란하니 전단을 뿌린 건 의미가 없어진다. 그 전에 퍼블리가 왕궁 안으로 잡혀 들어갈 판이었다. 마법사를 보호자로 둔 데다가 미성년자 보호 마법도 안 걸린 퍼블리를 왕궁 측에서 가만히 둘리가 없었다.

하지만 퍼블리가 예상치 못한 건 곧바로 닥쳐올 일이었다.

 

당장 포박해라!!”

...?!”
아까 나갔던 기사단장의 외침과 함께 무장한 기사들이 방 안으로 와르르 쏟아 들어왔다. 당황한 퍼블리가 벌떡 일어나 주춤거리며 물러났지만 어느새 나갈 구멍 없이 빙 둘러싼 기사들이 다가와 퍼블리를 밧줄로 묶기 시작했다. 오늘따라 충격적인 일이 너무 많이 튀어와 아프게 치고 가기 바빴다.

..잠깐만요!! 갑자기 왜 이래요?!”
그들의 첩자인 주제에 뻔뻔스럽기까지 하구나!”

그들이라뇨?! 대체 누구...”

네 짐에서 증거까지 나왔는데 끝까지 발뺌할 셈이냐?!”
그렇게 말하고 퍼블리 앞에 무언가를 툭 던져 놓았다. 그건 바로 학교 수업들이 끝나갔을 무렵 왕국 내의 서점에서 샀던 책이었다. 게다가 그 책은...

이건 이곳에서 금지된 책! 저주 받은 그들이 저주를 담은 책이다! 뻔뻔스럽게 신전까지 이 책을 들고 오다니, 그 배짱은 높이 사지만 우리 신성은 신의 은총과 대사제님의 말씀의 보호 아래 있으니 소용없다!”
아니, 그 책은...”
당장 이 녀석을 저주물품들과 함께 감옥에 집어넣어라!!”

그렇게 퍼블리는 제 짐들과 함께 감옥 안으로 들어가게 됐다. 끌려가는 내내 대체 무슨 소리냐며 목 아프게 소리쳤지만 저를 끌고 가는 기사들은 들은 척도 안하고 감옥 안으로 밀어 넣었다. 감옥에 들어가면서 몸을 묶은 밧줄은 풀어줬지만 빽빽하게 서있는 쇠창살 때문에 나갈 순 없었다. 이게 대체 무슨 일인가 싶어 아까와는 다른 심정으로 멍하니 앉아있는 퍼블리를 때마침 감시역으로 들어온 기사가 혀를 차며 안타깝다는 눈으로 바라보고 있었다.

거 아직 새파랗게 어린 풀인데 금서를 갖고 여기 들어오다니...”

금서요?”
다시 정신을 차린 퍼블리가 묻자 기사가 창살 옆에 털썩 주저앉으며 말하기 시작한다.

그래 금서. 보아하니 넌 아무것도 모르고 녀석들한테 이용당한 것 같은데 어린 녀석이 무작정 모르는 마법사를 믿으면 안 되지.”

무작정 모르는 마법사를 믿으면 안 된다는 말에 아난타의 곤란한 말투가 따끔히 가슴을 찌르고 지나갔다.

녀석들이 누군데요?”
누구긴 저주받은 녀석들이지. 본인의 죄로 인해 살이 썩어가는 끔찍한 저주를 받은 그 녀석들은 다른 마법사들한테 저주를 옮기려고 마법사들이 많이 모여 있는 이곳 근처를 기웃거리고 있고 그걸 넘어서 여기로 여행 오는 자들을 이용하려고 해. 지금 너처럼.”
말을 들은 퍼블리가 그대로 멈춰서 아무 말도 안 하자 겁을 먹은 거라 생각한 기사가 안타까운 표정을 지으며 멸시가 담긴 어투로 술술 말하기 시작한다.

사실 그 녀석들도 나쁜 녀석들은 아니었는데 정화 때의 죄가 무거웠던 거지. 얼마나 큰 죄를 지었으면 그런 끔찍한 저주를 받게 됐는지 원, 대사제님과 기사단장님은 정화 당시에 직접 뛰어든 분들이니 알고 계시는데 저렇게 입 다물고 있는 걸 보면 얼마나 심각한 수준이길래 입에 담아도 끔찍한 죄였는지 짐작이 안 가. 이래서 밸러니의 숲이 문제야 문제. 대사제님이랑 기사단장님이 하루가 멀다 하고 녀석들을 견제하고 있어서 여기가 이렇게 안전한 거야. 여기가 잘 보면 바다 바로 옆이지만 건물들이 등지고 있어서 여기 사는 마법사들만 알고 여행 오는 마법사들은 대부분 모르고 떠나. 녀석들을 바다로 몰아냈으니까 호기심에 바다 쪽으로 가까이 가게 하면 녀석들한테 당하는 거지. 너 혹시 바다 쪽으로 간 거니?”
아뇨. 바다가 있는 줄도 몰랐어요.”

? 그럼 아직 땅에 남아있는 녀석들이 있단 말이야? 이거 큰일인 걸 얼른 보고하러 가야겠어!”

..잠깐만요! 정화 때라니 그럼 녀석들이 대체 누구였는데요?!”
그에 기사가 완전히 사라지기 전에 짧게 내뱉고 가버렸다.

누구긴! 흑기사단 녀석들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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짐을 잠깐 맡아두겠습니까?”
그 말에 퍼블리는 잠깐 머뭇거리다가 등에 메고 있던 짐을 넘겼다. 어차피 제일 중요한 장미꽃잎은 제 품에 있다. 짐을 받아든 기사단장은 물품을 관리하는 마법사에게 넘기고 앞장서기 시작했다.

따라오십쇼.”

기사들이 입고 있던 갑옷처럼 흰 건물 안의 마법사들은 전부 흰 바탕천에 금색 자수와 장식들로 이루어진 옷을 입고 있었다. 복도를 지나가다가 종종 열려있는 문틈 사이론 일제히 두 손을 모으고 고개를 숙인 마법사들이 모여있었다. 신과 신앙에 대해서 얼핏 들어본 적 있었지만 이렇게 직접 보는 건 처음인 퍼블리는 그저 신기한 눈으로 둘러볼 뿐이었다. 앞장서서 길을 안내하던 기사단장이 잠깐 몸을 틀어 시선을 줬다.

혹시 신앙에 관심 있습니까?”
말로는 들어봤는데 직접 보는 건 처음이라...”
저희가 하는 건 그저 신을 믿고 신의 말씀을 따라 행할 뿐,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닙니다.”

신의 말씀이요?”
대사제님께서 신이 내려주시는 말씀을 받고 저희에게 내려주시는 겁니다. 지금 신의 목소리를 들을 수 있는 건 대사제님뿐이죠.”

신은 어디 계시는데요?”
신은 언제나 저희 곁에 있습니다.”
철저한 논리주의 마법사한테서 자라온 퍼블리에게 신이란 존재는 크게 와닿지도, 자세히 들어본 적도 없는 존재였다. 이는 마법사가 딱히 신과 신앙에 대해 가르칠 필요성을 못 느낀데 생긴 일이었다. 지금 퍼블리는 신을 그저 신성 측의 마법사중 한명으로 이해하고 있었고 언제나 우리 곁에 있다는 기사단장의 말에 이해하기 힘들다는 얼굴을 하게 된 건 당연한 수순이었다.

아무래도 신을 믿는 분은 아니신가보군요.”

...아니..그러니까...신이라는 분은 어떻게 늘, 그것도 모든 마법사들의 곁에 있다는 건지...”
신은 절대적인 존재이니 늘 저희의 마음을 헤아리기 위해 저희의 믿음을 바탕으로 곁에 계십니다.”
퍼블리는 그쯤에서 더 묻는 걸 포기했다. 애초에 신은 논리적으로 설명해야하는 존재가 아니었다. 둘은 더 이상 아무런 대화도 나누지 않고 마저 걸음을 옮기기 시작했다. 가는 도중에 문틈 너머로 들려오는 찬송가와 기도문을 읊는 소리를 들으며 완전히 낯선 세상에 떨어진 느낌을 받으며 뒤를 따라가자 곧이어 도착한 곳은 지금까지 봤던 나무로 된 문들과는 달리 돌로 이루어진 새하얀 문 앞이었다.

이곳이 바로 대사제님께서 기도를 올리시는 방이자 신의 말씀을 내리고 곤경에 처한 분들의 이야기를 들어주시는 방입니다.”
그렇게 말하고 문을 세 번 두드리자 안에서 들어오라는 말이 나왔다. 문을 열자 군데군데 이가 빠져있는 원탁이 먼저 눈에 들어왔고 그 너머에 수염이 풍성하고 꽤 긴 지팡이와 다른 사제들의 옷과 비슷하지만 조금 다른 옷을 입고 있는 마법사가 앉아있었다.

만나서 반가워요. 전 이곳 신성의 대사제 홀리라고 해요. 미숙하게나마 신의 말씀을 전달하는 일을 하고 있죠.”

그가 바로 대사제이며 신성의 대표자였다. 생각보다 온화하게 말하고 움직이는 모습 또한 위엄이 있다기보단 가만히 뒤에서 머무르며 이야기를 듣고 전달한다는 느낌에 신기하다는 생각이 든 퍼블리였다. 가까이에 있는 의자에 앉으라는 부드러운 권유가 다가왔고 조심스레 앉은 퍼블리는 원탁에 시선을 두다가 숨을 들이쉬며 고개를 들어 대사제에게로 돌렸다.

대사제님의 도움이 필요하신 분입니다.”

프라이드가 직접 데려오신 분이라니...뭔가 일반 사제들과 기사들로도 해결이 힘든 일을 겪고 계신 분이군요.”

그저 마법사 선생님을 찾으러 온 게 뭔가 굉장히 해결 불가능한 힘든 일이 된 거에 약간 어색한 웃음을 지은 퍼블리는 그에 대해 얘기하려고 했지만 기사단장이 한 발 더 빨랐다.

저희 쪽에서 아난타라는 분을 찾고 있다고 합니다.”
아난타라...”

지팡이를 툭툭 땅에 두드리며 생각에 잠겨있던 대사제는 퍼블리와 눈을 맞추며 묻기 시작한다.

이름이 아난타가 확실한가요?”
.”

흐음...하지만 그런 이름의 마법사는 없는데...”
검은 머리에 크고 동그란 안경을 쓰신 분이세요.”

딱딱 지팡이가 바닥에 부딪히는 소리가 울려퍼진다.

...우선 저희 신성에 그런 분은 없어요. 아난타라는 이름을 가진 분이 있지만 그 분은 다른 소속이거든요.”
다른 소속이라면...?”
전장과 분노 소속이죠.”
분명 그 아난타가 맞다. 하지만 신성에 속하진 않았다고 한다. 점점 혼란이 고개를 들기 시작하자 차분히 생각을 하려고 했지만 혼란은 사라지지 않고 머릿속을 꼬아놓기 시작했다.

제가 아는 아난타 분도 검은 머리지만 안경은 쓴 적이 없어요. 전체적으로 인상이 동글동글했던 분인데...”

칠판 앞과 교탁 뒤에서 수업의 일환으로 옛날의 제 얘기를 꺼내는 아난타가 떠오른다. 동그란 안경 너머의 눈도 동그랬던 동글동글한 마법사이자 격투가라고 소개했던 선생. 전장과 분노 소속이었다가 정화의 날 이후 함께했던 팀원들을 찾기 위해 신성지대로 들어갔다는 말. 문득 다가온 이상한 느낌에 더 질문하기 위해 입술을 달싹이던 퍼블리가 그대로 멈췄다. 그와 동시에 어제 쉼터에서 만난 기사의 말이 아침에 꿈에서 깨자마자 들이닥치던 햇빛처럼 생각의 밑에서 튀어올라온다.

우리? 당연히 신성 소속이지. 그보다 우리를 신성지대라고 부르다니 마녀들만 그렇게 부르는 줄 알았더니 먼 마을에서도 그렇게 부르는구나? 우리 단체 이름은 신성이고 이 도시는 신성이 다스리는 땅이라서 신성지대라고 이름이 붙여진 거야.”

그걸로 이미 답은 나와있었다. 공손히 무릎 위에 올려놓은 손이 벌벌 떨고 있다가 옷자락을 긁어모으듯이 꽉 쥐기 시작했다. 상냥한 목소리가 귓가를 맴돌다가 사라진다. 그 뒤로 곤란하다는 표정과 안타깝다는 듯이 바라보는 얼굴이 어른거리다가 사라진다. 그대로 시간이 멈춘 듯이 가만히 아래만 보고 있던 퍼블리가 고개를 들어 다급하게 입을 연다.

저 그럼 혹시 마녀왕국에...!”

똑똑똑 문을 세 번 두드리는 소리에 가위로 소리를 자르듯이 고요함이 내려앉자 문 밖에서 목소리가 문을 두드린 이유를 말한다.

마녀왕국에서 이번 학술 교류에 대해 요청하는 마녀가 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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