컨티뉴는 거기까지만 말하고 더 말하진 않았다. 그리고 퍼블리는 저 말들이 무슨 뜻일까 머리를 굴려 해석해보려고 했지만 경계심을 벽에 비유한 거 밖에 제대로 이해할 수 있는 건 없었다. 확실한 건 용사가 지금 모습과 맨 처음 패치와 만났을 때의 모습이 다른 이유가 패치 때문이라는 거였고 컨티뉴는 그에 대해 계속 말하고 싶어 했다. 하지만 패치는 말하고 싶지 않은 게 떡하니 보였고 결국 대화는 이어가긴 했지만 빙빙 도는 느낌이었다. 보고 있는 입장에선 아무것도 몰라도 답답해보였다.
“아빠는 원래부터 자기 얘기를 말하기 꺼렸구나.”
다만 주위 마법사들은 패치를 꿰뚫어보는 것 같았다. 그만큼 제 아빠가 퍼블리에게 많은 걸 숨겼던 건지 아니면 퍼블리가 아직 꿰뚫어보기 어려웠는지 퍼블리 스스로가 의문이 들어 여기저기 걸어 다니는 패치를 빤히 바라보면서 따라가기도 했다. 기억 속의 패치는 퍼블리의 아빠인 지금 보단 어떤 의미론 접근하기 어려워보이진 않았다. 아마 주변에 용사와 GM, 컨티뉴가 있기 때문에 상대적으로 지금보다 덜 딱딱해 보이는 것 같았다.
“메루시다 메루시~!”
“공주님이요?”
저 멀리 흑기사단과 함께 오는 메르시가 보였다. 그리고 퍼블리는 흑기사단을 보고 깜짝 놀랐다가 아직 밸러니의 숲으로 들어가기 전이니 저주에 걸리지 않았다는 사실을 생각해내곤 고개를 끄덕였다. 하지만 흑기사단은 저주에 걸리기 전이나 걸린 후나 다르지 않을 정도로 유쾌해보였다. 지금은 메르시가 함께 있어서 마지막으로 봤을 때에 비해선 행복해보였지만 왕과 왕후의 죽음이 알려진지 아직 한 해도 넘지 않아서 그런지 조금은 가라앉아있었다.
“흠? 공주님과 아는 사이인가?”
“메루시가 나한테 새 칭구 맡겨줬엉!”
“새 친구라면 저번에 말했던?”
“웅! 나랑 가치 갈 칭구!”
용사가 말하는 새 친구는 대체 누구일까. 컨티뉴는 용사의 말을 집중해서 들었지만 용사는 새 친구는 새 친구라는 말 외엔 더 꺼내지 않았다. 같이 간다는 건 무슨 얘기일까. 늘 그렇긴 하지만 용사가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는 패치도 몰라보였다. 하늘의 현자는 알고 있을까, 용사가 무슨 생각을 하고 있고 무슨 말을 하고 있는지.
“모두 모여 주셔서 감사합니다.”
왕과 왕후 없이 이 왕국의 가장 높은 자리에 앉아있는 메르시는 처음 만났던 깨어났을 때, 축제에서 만나고 사라졌을 때와 크게 다르지 않았다. 패치의 기억 속에서도 작았고 퍼블리의 기억 속에서도 작았던 어린 마녀였다. 메르시는 옆에 흑기사를 두고 뒤에 왕궁 마녀들을 열 명 두면서 여기 모인 마녀와 마법사들에게 모여 주셔서 감사하다는 말을 시작으로 숲의 저주에 대해 이야기하며 지금이라도 두려우신 분은 떠나도 괜찮다는 말을 했다. 퍼블리는 패치의 곁으로 다가가 저 위에 서 있는 메르시와 흑기사를 눈에 담았다. 메르시는 퍼블리가 살아온 날보다 더 많은 날을 잠들어 있었고 흑기사는 그의 동료들과 함께 산채로 몸이 썩어갔다. 둘은 분명 지금 이렇게 각오를 하고 숲으로 가는 동안에도 숲 안에서도 계속 각오를 다졌겠지만 후회하진 않았을까.
“새 칭구는 이름이 모야~?”
용사의 말에 퍼블리가 용사 쪽으로 고개를 돌린 순간 기억이 사라졌다. 용사가 말한 새 친구를 보나 싶었는데 기억은 여기까지였는지 보기도 전에 사라져버렸다. 퍼블리는 조금 아쉬움을 느꼈지만 그래도 메르시와 흑기사를 봤으니 괜찮다고 생각했다.
“근데 옛날에도 숲이 이렇게 안개로 가득 찼었나?”
앞이 안 보일 정도로 안개가 가득했던 처음에 비해 바로 앞의 나무들이 보일 정도로 조금 사라지긴 했지만 고개를 올려보면 여전히 하늘은 안개에 가려져 보이지 않았다. 그러다가 퍼블리는 또 이상한 걸 느꼈다. 안개가 가득하다 해도 밤이 되면 어두워지는데 여긴 하얀 안개만이 가득했다. 퍼블리는 또 제 둔해진 감각에 놀라면서도 여기 들어온 이후로 계속 여러모로 둔해지지 않았냐며 바로 신경을 끄려 했다. 이젠 무신경한 스스로가 정말 놀라울 정도로 여기에 적응한 건가 싶기도 했다.
“괜차나?”
용사의 목소리가 또 들려오는 걸 보면 기억이 다시 나타나려고 하는 건가 싶어 퍼블리는 기다렸다. 하지만 눈을 깜빡인 게 스무 번이 될 때까지 기다렸는데도 기억은 나타나지 않았다. 다섯 번 더 기다리던 퍼블리는 다시 앞으로 걸어갔다. 기억이 안 나타나면 이렇게 또 걸으면 된다.
“...그런데 왜 안 나오지?”
서른 걸음에서 세는 걸 멈추고 계속 걸었는데도 기억이 나타나지 않았다. 기억들이 한꺼번에 모여서 나타나는 게 늦는 건가 싶은 순간 퍼블리의 옆을 스쳐지나가는 빽빽한 나무들이 멈추고 안개가 완전히 사라졌다.
“다시 기억이 나타났구나.”
퍼블리는 제 옆에 있는 나무에다 손을 대며 담담하게 앞을 바라봤다. 밤하늘에 별이 가득하고 그 아래 거울 같은 호수가 있었다. 어쩐지 익숙한 풍경이었다. 호수 가까이 가볼까 싶었던 퍼블리는 일단 가만히 지켜보기로 했다. 주변에 있는 빽빽한 나무들도 퍼블리처럼 밤하늘을 담은 호수를 구경하기 위해 에워싼 것처럼 호수에 비춰지지 않을 거리에 자라 있었다. 그리고 퍼블리의 맞은편, 호수 바로 앞에 누군가가 나타났다. 나타난 건 당연하게도 기억의 주인인 패치였다. 퍼블리는 얌전히 기억이 움직이길 기다렸다. 조금 멀리 있어서 패치가 무슨 표정을 짓는지는 몰라 퍼블리는 호수에 가까이 다가갔다. 호수를 가운데 두고 둘은 완전히 마주보게 됐고 퍼블리는 얌전히 그 자리에 서서 패치를 지켜봤다. 패치는 퍼블리처럼 아무런 행동도 하지 않고 얌전히 서 있었다. 퍼블리가 뭔가 이상하다는 걸 느낀 건 지금까지 뻐근하지 않던 제 다리가 조금씩 뻐근함을 느끼고 있을 때였다.
“아빠?”
퍼블리가 조심스레 불러봤지만 패치는 움직이지 않았다. 아무런 미동 없이 그대로 서 있기만 했다. 퍼블리는 이 상황이 굉장히 익숙하게 느껴졌다. 하지만 현실에서 직접 겪어본 적은 없는 일이었다. 혹시나 싶었던 퍼블리가 제 손등을 꼬집어봤다. 아팠다.
“설마...”
퍼블리는 제 손등을 문지르다가 조심스레 무릎을 굽혀 호수에 제 얼굴을 비춰보았다. 그림자가 져서 잘 보이진 않았지만 밤하늘 위로 제 얼굴이 비춰졌다. 가만히 보고 있던 퍼블리는 제 심장이 점점 빠르게 뛰기 시작하는 걸 느끼며 천천히 호수에 제 손을 담가봤다. 차가운 호수물이 퍼블리의 손을 적시고 있었다.
“아빠!”
퍼블리는 벌떡 일어나 패치에게로 뛰어갔다. 이번엔 호수를 가로지르지 않고 빙 돌아서 달려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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