컨티뉴는 거기까지만 말하고 더 말하진 않았다. 그리고 퍼블리는 저 말들이 무슨 뜻일까 머리를 굴려 해석해보려고 했지만 경계심을 벽에 비유한 거 밖에 제대로 이해할 수 있는 건 없었다. 확실한 건 용사가 지금 모습과 맨 처음 패치와 만났을 때의 모습이 다른 이유가 패치 때문이라는 거였고 컨티뉴는 그에 대해 계속 말하고 싶어 했다. 하지만 패치는 말하고 싶지 않은 게 떡하니 보였고 결국 대화는 이어가긴 했지만 빙빙 도는 느낌이었다. 보고 있는 입장에선 아무것도 몰라도 답답해보였다.

아빠는 원래부터 자기 얘기를 말하기 꺼렸구나.”
다만 주위 마법사들은 패치를 꿰뚫어보는 것 같았다. 그만큼 제 아빠가 퍼블리에게 많은 걸 숨겼던 건지 아니면 퍼블리가 아직 꿰뚫어보기 어려웠는지 퍼블리 스스로가 의문이 들어 여기저기 걸어 다니는 패치를 빤히 바라보면서 따라가기도 했다. 기억 속의 패치는 퍼블리의 아빠인 지금 보단 어떤 의미론 접근하기 어려워보이진 않았다. 아마 주변에 용사와 GM, 컨티뉴가 있기 때문에 상대적으로 지금보다 덜 딱딱해 보이는 것 같았다.

메루시다 메루시~!”

공주님이요?”
저 멀리 흑기사단과 함께 오는 메르시가 보였다. 그리고 퍼블리는 흑기사단을 보고 깜짝 놀랐다가 아직 밸러니의 숲으로 들어가기 전이니 저주에 걸리지 않았다는 사실을 생각해내곤 고개를 끄덕였다. 하지만 흑기사단은 저주에 걸리기 전이나 걸린 후나 다르지 않을 정도로 유쾌해보였다. 지금은 메르시가 함께 있어서 마지막으로 봤을 때에 비해선 행복해보였지만 왕과 왕후의 죽음이 알려진지 아직 한 해도 넘지 않아서 그런지 조금은 가라앉아있었다.

? 공주님과 아는 사이인가?”

메루시가 나한테 새 칭구 맡겨줬엉!”
새 친구라면 저번에 말했던?”

! 나랑 가치 갈 칭구!”
용사가 말하는 새 친구는 대체 누구일까. 컨티뉴는 용사의 말을 집중해서 들었지만 용사는 새 친구는 새 친구라는 말 외엔 더 꺼내지 않았다. 같이 간다는 건 무슨 얘기일까. 늘 그렇긴 하지만 용사가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는 패치도 몰라보였다. 하늘의 현자는 알고 있을까, 용사가 무슨 생각을 하고 있고 무슨 말을 하고 있는지.

모두 모여 주셔서 감사합니다.”
왕과 왕후 없이 이 왕국의 가장 높은 자리에 앉아있는 메르시는 처음 만났던 깨어났을 때, 축제에서 만나고 사라졌을 때와 크게 다르지 않았다. 패치의 기억 속에서도 작았고 퍼블리의 기억 속에서도 작았던 어린 마녀였다. 메르시는 옆에 흑기사를 두고 뒤에 왕궁 마녀들을 열 명 두면서 여기 모인 마녀와 마법사들에게 모여 주셔서 감사하다는 말을 시작으로 숲의 저주에 대해 이야기하며 지금이라도 두려우신 분은 떠나도 괜찮다는 말을 했다. 퍼블리는 패치의 곁으로 다가가 저 위에 서 있는 메르시와 흑기사를 눈에 담았다. 메르시는 퍼블리가 살아온 날보다 더 많은 날을 잠들어 있었고 흑기사는 그의 동료들과 함께 산채로 몸이 썩어갔다. 둘은 분명 지금 이렇게 각오를 하고 숲으로 가는 동안에도 숲 안에서도 계속 각오를 다졌겠지만 후회하진 않았을까.

새 칭구는 이름이 모야~?”

용사의 말에 퍼블리가 용사 쪽으로 고개를 돌린 순간 기억이 사라졌다. 용사가 말한 새 친구를 보나 싶었는데 기억은 여기까지였는지 보기도 전에 사라져버렸다. 퍼블리는 조금 아쉬움을 느꼈지만 그래도 메르시와 흑기사를 봤으니 괜찮다고 생각했다.

근데 옛날에도 숲이 이렇게 안개로 가득 찼었나?”
앞이 안 보일 정도로 안개가 가득했던 처음에 비해 바로 앞의 나무들이 보일 정도로 조금 사라지긴 했지만 고개를 올려보면 여전히 하늘은 안개에 가려져 보이지 않았다. 그러다가 퍼블리는 또 이상한 걸 느꼈다. 안개가 가득하다 해도 밤이 되면 어두워지는데 여긴 하얀 안개만이 가득했다. 퍼블리는 또 제 둔해진 감각에 놀라면서도 여기 들어온 이후로 계속 여러모로 둔해지지 않았냐며 바로 신경을 끄려 했다. 이젠 무신경한 스스로가 정말 놀라울 정도로 여기에 적응한 건가 싶기도 했다.

괜차나?”
용사의 목소리가 또 들려오는 걸 보면 기억이 다시 나타나려고 하는 건가 싶어 퍼블리는 기다렸다. 하지만 눈을 깜빡인 게 스무 번이 될 때까지 기다렸는데도 기억은 나타나지 않았다. 다섯 번 더 기다리던 퍼블리는 다시 앞으로 걸어갔다. 기억이 안 나타나면 이렇게 또 걸으면 된다.

“...그런데 왜 안 나오지?”
서른 걸음에서 세는 걸 멈추고 계속 걸었는데도 기억이 나타나지 않았다. 기억들이 한꺼번에 모여서 나타나는 게 늦는 건가 싶은 순간 퍼블리의 옆을 스쳐지나가는 빽빽한 나무들이 멈추고 안개가 완전히 사라졌다.

다시 기억이 나타났구나.”
퍼블리는 제 옆에 있는 나무에다 손을 대며 담담하게 앞을 바라봤다. 밤하늘에 별이 가득하고 그 아래 거울 같은 호수가 있었다. 어쩐지 익숙한 풍경이었다. 호수 가까이 가볼까 싶었던 퍼블리는 일단 가만히 지켜보기로 했다. 주변에 있는 빽빽한 나무들도 퍼블리처럼 밤하늘을 담은 호수를 구경하기 위해 에워싼 것처럼 호수에 비춰지지 않을 거리에 자라 있었다. 그리고 퍼블리의 맞은편, 호수 바로 앞에 누군가가 나타났다. 나타난 건 당연하게도 기억의 주인인 패치였다. 퍼블리는 얌전히 기억이 움직이길 기다렸다. 조금 멀리 있어서 패치가 무슨 표정을 짓는지는 몰라 퍼블리는 호수에 가까이 다가갔다. 호수를 가운데 두고 둘은 완전히 마주보게 됐고 퍼블리는 얌전히 그 자리에 서서 패치를 지켜봤다. 패치는 퍼블리처럼 아무런 행동도 하지 않고 얌전히 서 있었다. 퍼블리가 뭔가 이상하다는 걸 느낀 건 지금까지 뻐근하지 않던 제 다리가 조금씩 뻐근함을 느끼고 있을 때였다.

아빠?”
퍼블리가 조심스레 불러봤지만 패치는 움직이지 않았다. 아무런 미동 없이 그대로 서 있기만 했다. 퍼블리는 이 상황이 굉장히 익숙하게 느껴졌다. 하지만 현실에서 직접 겪어본 적은 없는 일이었다. 혹시나 싶었던 퍼블리가 제 손등을 꼬집어봤다. 아팠다.

설마...”
퍼블리는 제 손등을 문지르다가 조심스레 무릎을 굽혀 호수에 제 얼굴을 비춰보았다. 그림자가 져서 잘 보이진 않았지만 밤하늘 위로 제 얼굴이 비춰졌다. 가만히 보고 있던 퍼블리는 제 심장이 점점 빠르게 뛰기 시작하는 걸 느끼며 천천히 호수에 제 손을 담가봤다. 차가운 호수물이 퍼블리의 손을 적시고 있었다.

아빠!”
퍼블리는 벌떡 일어나 패치에게로 뛰어갔다. 이번엔 호수를 가로지르지 않고 빙 돌아서 달려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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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게 된 거구나...”
저주가 가득한 숲인 건 누구나 다 알고 있을 텐데도 모집 문구를 보고 온 마녀와 마법사들은 많았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모인 모두가 숲으로 갈 수는 없었다. 주의사항과 저주에 관해서 듣는 것은 물론, 비상사태에 대비해 훈련을 시작했다. 각각 저주에 반응하는 정도도 다르니 탐지계열로 저주에 민감한 게 아닌 말 그대로 저주 자체에 민감해 저주에 걸리기 쉬운 마녀와 마법사들은 모두 제외되기 시작했다. 그러던 중 컨티뉴가 방어마법을 손보기 시작했는데 목표는 저주를 막을 방어마법인 저주막이를 만들어내는 거였다. 예전부터 저주에 대해서 관심이 있었는지 정보를 모아놨던 컨티뉴는 패치는 물론이고 여기 모인 실력 좋은 마녀와 마법사들과 함께 만들어냈는데 완전히 막을 수는 없지만 그래도 지금 존재하는 저주막이 중에서 가장 효과적인 저주막이를 만들어냈다. 저주가 꽤 오래전부터 존재해오고 그만큼 시간을 많이 먹어온 저주이니 이렇게라도 어느 정도 막을 수 있는 저주막이가 생긴 건 대단하다고 할 수 있었다.

마법연구를 하시는 분이니 저주에 대해서도 관심이 있을 거라고는 생각했지만 이렇게 자세하고 방대한 정보를 모으셨을 줄은 몰랐습니다.”

비록 시작은 예상한 바가 아니었지만 이런 일이 언젠가 반드시 일어날 거라고 생각했거든.”
저주가 그대로 숲에만 있는 게 아니라 흘러나오기 시작한 이상 그 사실은 언젠가 밝혀질 수밖에 없었고 결국 저주를 막아내거나 없애야했다. 아니면 저주가 흘러나오지 않더라도 나중에 저주를 먹고 자라는 약새풀을 대신할 게 생기거나 필요 없어질 때, 혹은 저주 자체가 불안해 없애기 위해서 방법들을 만들어낼 마녀나 마법사들이 나타날지도 몰랐다. 컨티뉴는 전자와 후자 모두 생각하고 미리 저주에 대해서 정보를 모아왔던 거였다. 미리 대비해서 나쁠 건 전혀 없었다. 지금처럼.

모든 건 때가 있기 마련이고 전혀 나와 상관이 없었어도 결국 내가 있는 쪽으로 흐르게 돼. 특히 이렇게 큰일은 누구에게나 다 흐르게 되지.”

다른 것도 아니고 나타난 세월도 까마득한 저주가 흘러나오고 있으니 누구나 다 기겁을 할 수밖에 없었다. 패치는 그렇게 납득하면서 고개를 끄덕였다. 컨티뉴는 여전히 얼굴은 안 보였지만 고개를 패치에게서 돌리지 않는 걸 보면 패치를 계속 보고 있는 게 분명했다.

자네는 여기로 온 걸 후회하고 있나?”

아뇨.”

그럼 용사를 막지 못한 걸 후회하고 있나?”

그럴 겁니다.”

그건 자네가 후회할 게 아니야. 용사의 선택이었지.”
패치는 뭐라 복잡한 표정을 지었다. 지켜보고 있던 퍼블리가 생각해도 용사는 확실히 눈을 떼면 어찌될지 굉장히 불안했다. 거기다가 가고 싶다는 데가 밸러니의 숲이니 불안한 건 당연했다. 하지만 불안과는 별개로 패치가 어째서 용사를 그렇게나 신경 쓰는지는 아직 모르니 완전히 이해할 순 없었다.

자네 혹시 운명이라는 걸 믿는...절대 안 믿겠군.”
운명이라는 단어를 꺼내자마자 갑자기 무슨 소리냐는 듯이 저를 쳐다보는 패치에 컨티뉴는 바로 알았다는 듯이 그렇게 말하고 고개를 끄덕였다.

마법과는 다른 식으로 보이지 않는 엄청난 힘이 마녀와 마법사의 목숨이나 제 주변을 감싸고 있는 상황이 정해져 있다고 하는 걸 운명이라고들 말하지, 다른 뜻도 있지만 내가 지금 말하고 있는 운명은 바로 이 뜻이고 이에 대해 자네와 얘기를 나눠보고 싶어.”

갑자기 왜 얘기를 나눠보고 싶었던 걸까. 패치는 의아한 눈으로 뒤에 더 나올 말을 기다렸다.

나는 운명이라는 걸 반쯤은 믿는데 보이지 않는 엄청난 힘은 바로 살면서 이루는 관계고 그걸로 주변상황이 정해진다기 보단 변하고 만들어진다고 생각하고 있어.”

그 얘기를 듣고 패치는 갑자기 이런 얘기를 꺼낸 게 아니라는 걸 눈치 챘다. 어쩌면 예전부터 자신과 이 얘기를 나누려고 기회와 상황을 기다리고 있었던 게 분명했다.

무슨 말이 하고 싶습니까?”
그냥 자네의 얘기가 듣고 싶을 뿐이야.”

저 같은 경우엔 우연이라고 생각합니다.”
패치는 그렇게 딱 잘라 말했고 컨티뉴는 예상했는지 정말 그렇게 생각하냐고 묻진 않았다. 패치는 이 얘기에 대해 더 말하고 싶어 하지 않는 것 같았고 얼굴이 다 가려져 있는 컨티뉴는 도통 무슨 표정을 짓고 있고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 알 수가 없었다.

자네의 경계심은 흔히 보이는 가시처럼 튀어나와서 다가오려는 자들을 물러나게 하는 모양이 아니야, 마치 마법사의 형상으로 쌓아올린 벽 모양이지. 손을 뻗어도 만질 수는 있지만 그 속을 만질 순 없고 틈새 없는 경계심만 만져보다가 결국 물러가게 하는 식이라 어쩌면 가시보다 더 효과적이라고 볼 수 있어. 자네 같은 경우가 흔한 건 아니지만 그렇다고 아예 없는 건 아니야.”

패치는 자기 스스로도 알고 있는지 컨티뉴가 꿰뚫어보고 그대로 말하고 있는 거에 대해 크게 놀라진 않았다. 애초에 스스로 만들고 대놓고 내보이는 경계심이었으니 이렇게 알아보는 자가 있는 건 당연했다. 그리고 패치는 컨티뉴가 하고 싶은 말이 무엇인지 이미 알고 있었다.

자네가 편하다면 상관은 없어. 내가 예전의 자네의 모습을 본 적이 없지만 그렇게까지 경계심이 많고 단단한 건 무언가 아주 큰일을 겪었기 때문이겠지, 원래부터 있었고 단단했을 벽이었겠지만 자네는 그 정도가 너무 커.”

나쁠 건 없습니다.”

이미 나쁘게 작용했지, 죄책감이 섞여버렸으니.”
패치는 아무런 표정도 짓지 않았다. 동요도 하지 않았고 불쾌함도 담지 않았고 늘 찌푸렸던 눈썹도 찌푸리지 않았다. 이미 알고 있고 외우고 있는 책 내용을 듣고 있는 것처럼 아무런 느낌이 없어보였다.

부디 그 벽으로 스스로를 짓누르지 않길 바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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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게 길었던 이번 기억은 끝났고 가만히 모든 걸 보고 있던 퍼블리는 이미 결과와 범인들은 알고 있었지만 이렇게 자세한 내용은 몰랐던 터라 받은 충격이 이만저만이 아니었다. 그대로 멍하니 앉아 있다가 손을 들어 얼굴을 쓸어내리다가 뒤로 벌렁 드러누웠다. 흐려졌다고는 하나 안개는 아직 하늘을 가릴 정도로 남아있었다. 몸은 피곤하지 않았지만 정신이 피곤해졌다. 메르시가 말한 비밀은 과연 이 비밀이었을까? 아니 어쩌면 메르시는 이렇게 패치의 기억이 흩어져 있는 건 예상치 못했을 거다. 다만 어떤 형태로든 과거에 벌어졌던 일의 흔적이 남아있을 거라고 생각했을 게 분명했다.

기억은 가만히 있어도 나타났었는데 이번엔 배려라도 하듯이 퍼블리가 한참을 누워있는데도 나타나지 않았다. 어쩌면 이 모든 상황이 다 꿈이 아닐까 싶었지만 현실도피를 하기엔 감각이 매우 선명했다.

힘들엉?”
다시 기억이 나타났는지 용사의 천진난만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아직 지쳐있던 퍼블리는 눈을 뜨지 않았다.

패치랑 또 만날 수 있어서 기뻤엉! 하지만 약속했구! 패치는 같이 갈 칭구가 있는데에~”
이건 무슨 말일까. 기억은 워낙 비슷한 일상이 많았어도 그 날 했던 대화가 완전히 똑같은 건 아니었고 기억은 상당히 띄엄띄엄했다. 아마 또 기억이 이어진 게 아니라 다른 기억이 나타난 건가 싶어 눈을 뜰까 고민했다. 하지만 지친 정신은 망설임을 만들어냈다.

그러니까~ 나도 새 칭구처럼 빨리 나올께! 꼭 가치 가자!”

대체 새 친구는 누구를 말하는 걸까. 눈을 뜨고 일어나보니 기억은 이미 사라졌는지 안개 낀 숲이 퍼블리를 반기고 있었다. 여기 계속 누워있으면 아빠를 찾을 수 없다는 걸 잘 알고 있는 퍼블리는 그대로 일어나 다시 걷기 시작했다. 지쳤다고 해서 퍼블리는 포기할 생각은 없었고 이미 몇 번이고 계속 지쳐왔고 충격을 많이 받아왔으니 이젠 익숙할 지경이었다.

제 발 따가운 왕궁 마녀들은 이제 공주님을 몰아세우기 시작했어.”

아무리 자신들 때문이라고 사고가 터졌어도, 죄책감에 사로잡혀도 어렵게 잡은 제 위치와 저주에 대한 불안감은 생각이 평범했던 마녀들의 시야를 좁히고 날카롭게 몰아가기엔 충분했다. 아마 일을 벌인 여덟 마녀들도 이렇게 일이 순조로우면서도 아슬아슬하게 극단적인 상황은 예상치 못했을 거다.

흘러나오는 저주를 그대로 내버려둘 순 없으니 결국 더 심각해지기 전에 직접 그 숲으로 가서 저주의 원인을 없애야한다는 의견이 나왔지.”
물론 메르시 혼자서 그 숲으로 가는 건 당연히 무리가 있었다. 다행히 메르시의 뒤를 따르는 왕궁 마녀들은 있었고 흑기사단 또한 이 땅에서 사는 건 마법사도 마찬가지니 마법사인 자신들도 메르시를 따라 숲으로 갈 거라고 외쳤다. 그에 감명을 받았는지 마을 단위로 몇몇 무리의 마법사들이 왕국으로 오기 시작했고 그 중 가장 큰 무리가 바로 홀리와 프라이드가 이끄는 무리였는데 이들은 나중에 누구나 다 알고 있는 신성이라는 이름을 스스로 붙였다.

그리고 나도 갈 거니 한동안 못 볼 거고 그동안 말 안 했지만 난 제자가 있었어, 이름은 흑룡이지. 내가 숲으로 가있는 동안 GM이 맡아준다고 했으니 혹시 나에게 물어보고 싶었던 게 생긴다면 내 제자에게 찾아가 물어보면 웬만한 건 다 알려줄 거야.”

하늘의 현자에게 제자가 있었다는 건 또 처음 듣는 말이었다. 애초에 이룬 마법연구 업적만 가득하지 사적인 부분은 일절 알려지지 않았으니 이건 당연한 얘기였다. 패치 또한 제자가 있었다는 얘기는 처음 들었는지 살짝 눈을 크게 떴지만

호의에 감사합니다.”
더 묻진 않고 넘어갔다. 다만 여기서 컨티뉴의 말을 듣고 있었던 게 패치와 용사만 있었던 게 아니었다. 소식지를 발에 달고 온 전서구가 깜짝 놀라 부리를 떡 벌리고 있었다.

뭐요?! 제자!? 제자가 있었어요?!!”

비둘기들은 소식을 전하는 데 굉장히 탁월했다. 이게 다른 말로 본다면 소식을 알아내는데 엄청난 관심과 힘을 들인다는 얘기였다.

아니 이런 엄청난 얘기를 그동안 마법연구보다 더 꽁꽁 숨겨왔단 거예요?!”

하하 숨긴 적은 없지, 말하지 않았을 뿐.”
전서구는 이 얘기를 들은 틈을 타 제자에 대한 건 물론이고 지금 전서구도 알고 있는 일행을 제외하고 엄청난 일행이 있는지 물어보기 시작했다. 물론 컨티뉴는 하하 웃으면서 대답하지 않았다. 패치는 전서구의 집요함과 컨티뉴의 단단한 웃음을 구경하고 있었고 용사는 전서구의 발에 묶여있는 소식지가 궁금했는지 다가가 풀었다. 전서구는 정보를 알아내기 위해 계속 묻고 있느라 용사가 소식지를 풀어내는 걸 못 느꼈고 어차피 보여주려고 가져온 소식지였으니 별 신경을 쓰지 않았다.

, !! 쬐매만 알려주쇼!!”
패치는 소식지를 펼쳐 보고 있는 용사를 힐끗 보고 부엌에 들어가서 물통을 가지러 갔다. 저렇게 물어봐도 컨티뉴는 절대 말하지 않을 거고 전서구의 입만 아플 거라는 걸 아주 잘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직업의식이 투철하고 입담도 뛰어난 전서구지만 상대가 상대였다. 패치가 아무 말 없이 물통을 옆에 툭 놓자 묻다 지친 전서구가 자연스럽게 물통을 들어 마시기 시작했다.

나 여기 갈래!”
용사가 환하게 웃으며 소식지를 모두에게 보여주려는 듯이 흔들어댔다. 물을 마시던 전서구는 그대로 마시던 걸 뿜으면서 기침을 해대기 시작했다. 패치와 전서구가 뿜은 물을 피한 컨티뉴가 용사가 흔들어대는 소식지를 잡아 읽기 시작했고 그대로 굳어버렸다.

“...혹시 왕국에 가보고 싶었나?”
왕국도 가보고 싶구~ 거기 적힌 숲도 가구 싶어!”
패치는 내심 아니길 바라면서 물었지만 용사가 아주 단단하게 못을 박아버렸다. 소식지에는 왕궁 마녀들과 흑기사단과 밸러니의 숲을 조사할 마녀와 마법사들을 모집한다는 내용이 적혀있었고 용사는 여기 적힌 밸러니의 숲을 가고 싶다고 말했다. 누구나 다 알다시피 이 소식지에 같이 조사할 자들을 모집한다는 건 말 그대로 저주 가득한 밸러니의 숲을 조사하러 간다는 내용이었다. 다만 용사가 그 심각성을 아는지 모르는지 가고 싶다 아니 갈 거라고 외치고 있었다. 당연히 패치의 속은 까맣게 타들어가고 있었다.

이건 절대 놀러 가는 게 아니야!”
!”
저주를 조사하러 가는 거라고!!”
!”
평소 용사에게 언성 한 번 높이지 않았던 패치가 소리쳤다. 심각한 그 분위기에 전서구는 부리를 닫고 슬금슬금 컨티뉴 옆으로 물러났다. 용사는 대놓고 제게 심각하게 소리치고 있는 패치를 마주하고도 여전히 순수하게 웃는 얼굴로 고개를 끄덕이며 긍정하고 있었다.

안 돼.”
갈랭!”
절대 안 돼.”
갈래앵~!”

패치는 소리치던 걸 멈추고 용사의 어깨를 잡으며 절대 안 된다고 하지만 용사는 계속 웃으면서 간다고 했다. 상대방은 심각성을 전혀 느끼지 않을뿐더러 받지도 않은 채 마치 평소처럼 어디 놀러간다는 어투로 웃고 있으니 여기서 저 혼자 심각하게 외치는 패치는 어쩐지 힘이 쭉 빠져서 더 외칠 기력이 나지 않았고 때마침 놀러온 들개들은 용사를 제외하고 심각해 보이는 상황에 무슨 일인가 전서구의 옆구리를 툭툭 치며 자초지종을 묻고 들은 후 패치와 함께 말리기 시작했다.

거기가 무슨 소풍이라도 처 가는 덴 줄 알아?!”

저주가 가득하다냐!!”
목숨위험!”

들개들이 격렬히 말려도 용사의 고집은 전혀 꺾이지 않았다. 한숨을 쉰 패치는 손을 들어 얼굴을 쓸어내렸고 들개들도 뭐라 더 말을 하고 싶어 했지만 계속 소리를 질러대서 목이 쉬어버렸다. 전서구는 어찌할 줄 몰라 눈만 도륵도륵 굴리고 있었고 컨티뉴는 용사가 소식지를 흔들며 가고 싶다고 했을 때부터 아무 말 않고 지켜만 보고 있었다. 그러던 중 돌연 용사가 갑자기 말했다.

들개 칭구들은 흑룡이랑 가치 먼저 가서 기다려!”
?”
새 칭구 만나고 오고~ 또 새 칭구랑 가치 갈겡!”
그 때 컨티뉴가 용사의 말에 반응했다. 여태까지 가만히 있기만 했던 그는 다른 이들처럼 반대하기는커녕 자신과 같이 왕국으로 가면 되겠다고 했고 그 말을 들은 패치와 들개들은 당연히 환장했다. 말릴 판국에 이게 무슨 일인가. 그렇게 따지니 돌아온 대답은

용사도 엄연히 마법사이고 어른이지.”

용사도 말릴 수 없었는데 컨티뉴까지 가세해버렸다. 이미 얘기는 끝난 거나 다름없었다. 심각하고 살벌한 분위기에서 마치 자기 자신을 지키듯이 날개로 제 몸을 감싸고 있던 전서구는 얘기가 거의 마무리가 된 이 틈을 타 집에서 나와 다시 제 둥지이자 일터로 돌아가기 위해 열심히 날갯짓을 했다. 일단 용사가 가기로 했다면 패치가 따라가는 건 당연했고 어두운 얼굴로 한숨을 쉬며 컨티뉴를 따라 왕국으로 갈 준비를 하기 시작했다. 들개들도 따라가려고 했지만 결국 용사와 컨티뉴의 말에 따라 GM과 함께 있을 흑룡을 찾아갔다. 그리고 훗날 이들은 비둘기 소식지에 이렇게 적혔다. 하늘의 현자 컨티뉴가 속한 소수정예 다섯 명중 세 명의 조.

Posted by 메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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