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단 왕궁 마녀들이 어떻게 나올지 지켜보는 게 관건이겠군요.”
아니면 컨티뉴와 깜장 들개가 뭔가 물어올지도 모르지!”
컨티뉴와 검은 들개가 돌아온 건 바로 이틀 뒤였다. 늘 바쁘다고 외치면서 살던 전서구도 궁금했는지 잠시 우편물이 여유로울 때마다 들렸던 터라 같이 얘기를 들을 수 있었다.

공주님께 말을 전하고 왔어.”
검은 들개의 표정이 썩 좋지 않은 걸 보면 당연하겠지만 진실을 듣게 된 메르시는 충격을 많이 받았을 터였다. 그리고 평소 공주와 함께 어울리는 흑기사단들도 왕과 왕후와도 친분이 있는 건 당연했고 그들 또한 충격을 많이 받은 것 또한 당연했다. 당장 왕궁으로 들어가 뒤집어엎으려는 걸 간신히 막았다고 한다. 그리고 한 가지 알아낸 사실이 있다면 왕과 왕후의 행방을 궁금해 하는 왕궁 마녀들이 있다는 거였다. 컨티뉴에게 편지를 전해줬던 왕궁 마녀가 마침 메르시를 찾아왔다가 컨티뉴를 알아봤다는 거였다. 그 날 이후로 왕과 왕후가 다시 돌아오지 않고 있었고 명령 때문에 왕국 밖으로 나가지 못하고 있던 상황인데 마침 컨티뉴가 이곳으로 온 거였다.

그 여섯의 인상착의를 말해주니 누군지 바로 알아채더군.”

특수한 사례로 일행이 한꺼번에 왕궁 마녀가 된 일이 있었다고 한다. 총 여덟 명의 마녀였는데 그들의 주장으론 밸러니의 숲 근처에서 엄청난 기록종이들을 발견했고 그건 퍼블리가 알고 있다시피 모글리제의 산들바람 시가 포함되어있는 종이들이었다. 일단 미심쩍긴 하지만 판별한 결과 꽤 오래 전에 사용된 종이였고 로메루와 밸러니의 이야기가 적힌 종이들과 비슷한 시대 때 쓰인 거라는 게 확인되었다. 여러 말이 오가다 결국 이 일을 그들의 공적으로 인정했고 그들 각각의 능력 또한 좋아 왕궁 마녀가 된 일행들이었다고 한다. 그 중에서 사교성과 언변이 다들 뛰어나 금세 기존의 왕궁 마녀 몇몇과 가까워졌다는 게 지금까지의 정보였다.

엄청 수상하다냐!”
위험요소!”
일단 물질적인 증거가 없으니 대놓고 그들이 범인이라고 외칠 수도 없는 상황이었다. 애초에 왕과 왕후가 살해당할 줄 누가 알았겠는가. 그 숲 근처에 갔어도 이미 흔적은 철저하게 없앤 후였고 그 자리를 지키고 있었다고 했다. 그나마 숲 근처에서 발견한 건 GM이 사진으로 찍은 약새풀들이었다고 한다.

일단은 반응을 기다려볼 수밖에 없어.”

그리고 얼마 뒤 왕과 왕후의 죽음이 왕국에 퍼졌지만 퍼블리의 기억대로 저주가 아닌 모종의 이유로 죽었다는 소문이 퍼지고 있었다. 마녀들은 당연히 이유가 무엇인지 궁금해 하고 목소리를 모아 계속해서 물었지만 왕궁에서는 그 어떤 답도 주지 않았다. 즉 모든 왕궁 마녀들이 입을 다물고 있다는 건데 아무리 뛰어난 사교성과 언변이 있다고 하지만 단기간 내에 모든 왕궁 마녀들을 자기네들 편으로 넘어오게 하는 건 불가능했다.

예상치 못한 상황에 당황하고 있을 수만은 없으니 컨티뉴는 다시 흑기사단에 섞여 메르시에게 찾아갔다. 그리고 알아낸 왕궁 내부는 소문보다 더 예상치 못하게 돌아가고 있었다.

폭발?”

최대한 대피했지만 결국 사상자가 나타났는데 거기에 왕과 왕후가 사망자 무리에 있었다는 얘기야.”

그 자들은 생각보다 교묘하고 머리가 좋은 데다 대담하고 잔인했다. 왕궁에선 한창 폭발 마법에 대해 연구 중이었고 더 나아가 위력을 올리고 범위를 넓히고자 마법을 개발 하자고 많은 왕궁 마녀들이 주장했다고 한다. 당연히 위험성 때문에 왕은 반대했지만 결국 왕의 눈을 피해 몰래 마법을 개발하다가 사달이 났다는 거였다. 갑작스레 마법이 폭주하기 시작했고 몇몇 봉인마법이 뛰어난 마녀들이 폭발을 억누르고 다른 마녀들은 대피하기 시작했지만 결국 커다란 폭발이 일어났고 억누르던 마녀들은 전부 죽었으며 그들 사이에 왕과 왕후가 있었다는 게 모종의 이유의 전말이었다.

그 자리에 있던 왕궁 마녀들이 충격을 받은 사이에 몇몇의 마녀들이 왕과 왕후가 폭발을 억누르기 위해서 뛰어 들어가는 걸 봤다고 외쳤고 워낙 긴급하고 위험한 상황이었으니 대부분의 왕궁 마녀들이 그 말에 넘어갔다고 한다. 당연히 외친 마녀들은 바로 그 여덟 마녀들이었다.

녀석들이 강제적으로 폭발을 일으켰고 그 사이에 왕과 왕후의 시신을 그 폭발에 던져 넣었다는 거군요.”

그리고 폭발과 함께 모든 흔적이 날아갔지.”
일단 폭발자체가 왕의 눈을 피해 행하다가 벌어진 일이었으니 왕궁 마녀들은 급하게 시신을 수습하고 입을 다물었다고 한다. 책임을 묻고 일부를 대표 희생자로 올려도 직접적으로도 간접적으로도 개발에 가담한 마녀들이 많았다.

아니 대체 무슨 생각으로 그런 위험한 마법을 개발하려고 했대요?!”
일단 처음엔 많았어도 이렇게 모두가 입 다물 정도로 많았던 건 아니었겠지. 하지만 그들이 이용한 건 바로 약새풀 사진이었어.”
당연히 위험한 마법인 만큼 왕처럼 반대하는 이들 또한 많았다. 하지만 폭발보다 더 위험한 게 있다면 얘기는 또 달라진다. 밸러니의 숲에서만 자란다고 하는 약새풀, 저주가 저주다보니 깊숙이 들어가진 못했지만 다행히 약새풀은 숲의 가장자리에서도 자라났다. 그런데 약새풀이 자라는 영역이 사진으로 얼핏 봐도 눈에 띌 정도로 넓어졌다. 게다가 약새풀은 저주를 먹고 자란다.

저주가 흘러나온다는 불안감을 역으로 이용한 거야.”

누군가가 문 너머로 지나가며 속삭였다. 저주가 점점 더 빨리 흘러나올지도 몰라 아니 반드시 그렇게 될 거야, 그렇게 되면 여기 왕국에까지 닿는 건 시간문제지, 왕국뿐만 아니라 온 땅이 저주로 뒤덮이지 않을까, 그럼 빨리 저주의 원인을 알아내고 제거해야하지, 저주는 섣불리 건들 수 없어, 하지만 저주 자체를 완전히 없앨 수 있을지도 몰라, 어떻게?

폭발 마법으로 원거리에서 밸러니의 숲을 완전히 날려버린다.”
비록 폭발의 여파로 저주가 흩어질 순 있겠지만 영원히 저주를 만들어내는 밸러니의 숲은 폭발로 사라진다.

미친놈들.”
검은 들개가 못 참고 입을 열었고 낌새를 느낀 패치는 그 말이 나오기 전에 용사의 귀를 막았다. 용사는 순진무구한 눈으로 패치를 돌아봤고 패치는 눈을 감았다. 지금 용사에게 제 눈을 보여주기엔 어떤 감정이 제 눈을 일그러뜨리고 있을지 잘 알고 있었기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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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도 섣불리 말하지 못했다. 왕과 왕후가 죽은 것 자체가 엄청난 사건이고 충격적인데 정황상 그들은 살해당했고 시체를 숨기는 자들이 왕궁 마녀들이라고 한다. 다른 마법사나 마녀라면 몰라도 이 말을 꺼낸 건 다른 누구도 아니고 하늘의 현자라고 불리고 있는 컨티뉴가 꺼낸 말이었다. 뒤늦게라도 농담이라며 평소처럼 은근하게 놀리는 분위기로 돌아온다면 좋겠지만 그럴 일은 없었고 평소라면 분위기를 익살스럽게 웃으면서 분위기를 환기시킬 GM도 가만히 있었다. 무거운 침묵 끝에 패치가 먼저 입을 열었다.

모든 왕궁 마녀들이었습니까?”
그 자리에 있었던 건 여섯 명 정도였어.”

왕궁 마녀들이 고작 여섯 명으로 끝은 아닐 거였다. 하지만 딱 그 여섯이 범인이자 일행의 끝인지 아니면 그들이 대표적으로 오고 그 뒤에 숨어있는 자들이 더 있는지는 알 수 없었다. 만약 후자라면 숨어있는 자들이 얼마나 더 있을지 왕궁 마녀들 중 또 누구인지 알아내기 힘들 터였다.

순간 퍼블리의 머릿속이 빠르게 돌아가기 시작했다. 눈앞에 있는 패치의 기억이 아닌 퍼블리의 기억이 머릿속에 빠르게 스쳐지나가고 숲으로 들어오기 전의 정신없는 기억들이 휙휙 넘어가던 중 멀지 않은 기억이 하나 떠올랐다. 쨍한 머리색의 아난타로 변신한 채 엄청난 비밀들을 말해준 아빠, 도둑맞은 하얀 장미와 수첩, 분열, 왕궁 마녀가 된 몇 명의 마녀들. 사실 퍼블리는 이미 답을 알고 있는 거나 마찬가지였다. 다만 기억 속의 저들은 아직 알지 못했다.

왕과 왕후께서 승하하신지 얼마나 지났습니까?”
우리가 거기서 여기까지 바로 왔으니 나흘이 지났지.”
그 말로 듣고 있던 마법사와 동물들은 분명 뒤에 누가 더 있다고 거의 확신했다. 시간이 더 지나고도 둘의 죽음이 알려지지 않는다면 분명해진다. 애초에 왕궁 마녀라고 해도 고작 여섯이서 오랫동안 숨기는 건 불가능했다. 다만 가기 전에 컨티뉴에게 왕의 편지를 건네준 왕궁 마녀가 있었고 편지를 받은 컨티뉴와 GM이 아직까진 직간접적인 위협이 없는 걸로 보아 모든 왕궁 마녀가 한패는 아니라는 걸 기대할 수 있었다.

그렇담 그 녀석들이 뭘 태웠고 그걸 찾는 게 우선이겠지, 그래서 우리를 부른 건가 영감들?”

비록 탄내가 가득하고 가봤자 이미 사라져 아무것도 없을지도 모르겠지만 부탁한다.”

검은 들개는 한숨을 쉬고는 고개를 끄덕였다. 거절하기엔 들은 이야기가 무척 큰데다가 이대로 묻어두기엔 그도 당연히 찝찝했기 때문이다. 얘기 끝에 두 가지 목적과 두 조가 생겼다. 다시 그곳으로 돌아가 왕과 왕후의 죽음에 대한 것과 왕궁 마녀가 태운 게 무엇인지 알아보기 위해 컨티뉴와 검은 들개가 조가 되어 조사하기로 했고 그 근처에 혹시라도 숨어있을 왕궁 마녀들과 왕과 왕후가 저주가 흘러나온다는 의심을 가지게 된 원인을 찾기 위해 GM과 연한 갈색 들개가 조가 되어 살펴보기로 했다.

워낙 분위기가 심각해 미처 용사를 신경 쓰지 못하고 있었는데 용사는 어느새 자고 있었다. 그래서 지금까지 조용했구나 싶어 신기하게 바라보고 있던 퍼블리는 무언가 생각에 빠져있는 패치에게로 시선을 돌렸다. 패치는 늘 그랬듯이 용사 곁에 있을 거고 남은 갈색 들개도 다른 들개들을 기다리면서 용사와 함께 지낼 예정이었다. 전서구는 늘 그랬듯이 다시 우체부 일로 돌아가야 하겠지만 마음의 편치는 않아보였다.

두 조는 다음날 바로 준비하고 떠났는데 만약 이주가 넘도록 오지 않으면 자신들을 찾지 말고 잠시 몸을 숨기고 있으라는 말을 남기며 떠났다.

아무 일 없었으면 좋겠는데...”
기억은 아직 끝나지 않고 있었다. 꽤 길어지는 기억에 퍼블리는 그대로 앉아 무릎을 모았다가 결국 다리를 펴서 편하게 앉았다. 기억은 여느 때처럼 들개와 노는 용사와 뒷정리를 하는 패치의 모습이었다. 그러다가 하루가 지나고 다시 또 비슷하게 반복되고 또 하루가 지나는 식이었다.

그러다 문득 퍼블리는 이 숲으로 오게 된 이후로 단 한 번도 뭘 먹은 적도 잠든 적도 없었다는 걸 떠올렸다. 기억이 현실의 시간과 다를 게 없이 흘러가고 있는데도 배도 고프지 않았고 졸리지 않았다. 이제야 자각한 게 좀 놀랍긴 하지만 마법사가 말한 네 몸이 지치진 않는다는 말이 무슨 의미인지는 깨달았다. 퍼블리는 제가 이렇게 둔했나 의아해하는 한편 정신이 지친다는 말은 무슨 의미일까 궁금했다. 말 그대로 몸은 멀쩡한데 계속해서 보다가 지루해서 지친다는 걸까. 아직 퍼블리는 지루함을 느끼지 못했다. 여기와서 대부분 봤던 게 이런 반복되는 일상이었는데도.

아니 이게 뭔 일이래요?!”
일주일이 넘었을 무렵 갑자기 전서구가 들이닥쳤다. 만약 무슨 일이 없다면 컨티뉴와 GM, 들개들이 먼저 오고 전서구는 얘기 들으러 그 뒤에 오지 지금 이렇게 갑자기 찾아올 일은 없었다. 무언가에 엄청 놀라서 연신 오매 이게 무슨 일이야, 설마 그게 그거였나라는 의미모를 말만 하고 진정 못하는 전서구에 패치가 다가가 말했다.

우선 진정부터 하게. 자네가 말하는 무슨 일이 뭔지는 우리가 모르네.”
그 말에 전서구는 급하게 제 다리에 묶여있는 종이를 부리로 쪼아 풀어 패치에게 건넸다. 펼쳐보니 비둘기들이 여기저기 날아다니면서 보거나 제보를 받아 소식을 담은 소식지였는데 이번 소식지엔 딱 하나의 실물 사진과 소식만 적혀있었다. 그것도 아주 큰 제목으로.

자라는 영역이 넓어지고 있는 약새풀.

소식지를 읽은 패치와 들개는 심각한 얼굴로 내용을 읽기 시작했고 퍼블리는 저주가 흘러나오는 일이 알려진 게 저렇게 알려졌기 때문에 왕과 왕후의 이야기는 없었다는 걸 알아챘지만 아직은 뭔가가 미심쩍었다. 패치와 들개는 이게 정말 사실인지 전서구에게 물으려던 순간 뒤에서 익살스럽고 익숙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여어~ 사진은 잘 나왔는감?”

엄청난 일이다냐!!”
GM과 그 옆에 같이 갔던 들개가 돌아왔다.

할배가 찍었어요?!”
전서구의 말에 의하면 익명제보로 사진이 들어왔고 깜짝 놀란 전서구가 사진을 받아온 비둘기에게 누군지 물어봤지만 그 비둘기는 이상하게 인상착의가 기억나지 않았다고 대답했다고 한다. 보아하니 혼동 마법에 걸려 기억을 못하는 건가 싶어 일단 소식지부터 만들어 뿌리고 바로 여기로 날아왔다는 게 아까 전의 일이었다. 그리고 제보자의 정체는 방금 여기 온 GM이라고 한다.

컨티뉴랑 깜장 들개는 일단 공주 만나러 갔지.”
메르시와 친분이 있는 흑기사단으로 변장해 몰래 찾아가서 진실을 들려주러 갔다고 했다. 퍼블리는 이미 지나갔고 벌어진 과거였지만 충격 받을 메르시가 걱정 됐다. 그리고 이상한 걸 깨달았다. 마침 시기도 이러니 왕과 왕후의 시체를 감춘 왕궁 마녀들 측에서 최선의 선택지는 먼저 저주가 흘러나오는 낌새를 눈치 챈 왕과 왕후가 비밀리에 조사하러 그들 혹은 다른 왕궁 마녀들과 함께 숲 근처로 갔다가 그만 저주에 영향을 받아버리는 바람에 승하하셨다는 식으로 소문을 퍼뜨리는 거였다. 하지만 퍼블리도 알다시피 흘러나오는 저주에 대해서 왕과 왕후의 이야기는 전혀 적히지 않았고 모종의 이유로 죽었다고만 알려져 있었다. 지금까지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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컨티뉴는 바로 편지를 받았고 마녀는 고개를 숙인 후 비둘기와 함께 사라졌다. 메르시가 아직 공주였고 깨어날 때까지도 공주였으니 에키테는 메르시의 어머니이자 마녀왕국의 마지막 왕이었다. 모종의 이유로 반려인 아케이와 함께 서거했다는데 그 이유는 아직 밝혀지지 않았고 왕국에 살던 마녀들은 당연히 궁금해 했지만 어느 순간 관심이 사라졌다. 퍼블리는 아마 메르시가 마지막에 깨고 간, 왕국 전체를 감쌌던 결계의 힘일 거라고 예상했다. 그 결계 때문에 왕국 내에서 살아왔던 마녀들은 메르시가 아직까지 공주인 거에 대해서 의아해하지 않았으니까. 물론 왕국에서 살았었지만 그 결계에 영향을 받지 않은 퍼블리와 그의 아빠는 따져보면 밀입국자였다.

비둘기를 이용해서 간단한 안부인사 편지는 서로 보내본 적 있었지만 저렇게 휘하의 마녀까지 동반한 긴급편지는 처음이군. 자네도 함께 보지 않겠어?”
그런 엄청난 편지를 함부로 다른 마법사와 읽는 건 당사자인 저에게도, 편지를 보낸 왕께서도 곤란한 일입니다.”
저번에 안부인사 편지 보낼 때 자네 얘기 써서 보냈으니 괜찮아.”
패치는 어처구니없다는 표정을 지었고 컨티뉴는 태연하게 편지봉투를 뜯고 있었다. 패치는 아예 눈을 감아 고개를 돌렸고 그에 컨티뉴는 웃으면서 친절히 편지를 읽어주려고 했었다.

...같이 읽고 싶어도 내용이 내용이군.”

그게 정상입니다.”
일단 이만 가봐야겠어. 만약 사실이라면 당분간 여기 오지 못할 거야.”

컨티뉴는 벌떡 일어나 바로 짐을 챙기고는 문으로 갔다. 늘 돌아갈 때마다 장난 식으로 그리워도 얌전히 기다리라고 하는 말도 안 꺼내고 급하게 나갔다. 패치는 내심 편지의 내용이 궁금했지만 이런 큰일에 대해선 알려고 하지 않는 게 좋다는 걸 잘 알고 있었다. 그리고 그 잠깐의 관심은 잠에서 깬 용사덕분에 아침에 청소하기 전에 창가에 남아있던 먼지처럼 쓸려 사라져버렸다.

뽀글이 어디가썽?”
급한 일이 있어서 나갔네.”
이잉~ 가치 놀구 싶었는데...”
용사는 아쉬운 얼굴로 문을 한 번 보다가 패치의 손을 잡고 같이 놀자고 했다. 패치는 곤란한 얼굴로 아직 다 정리를 못 한 탁자를 바라봤는데 때마침 문 밖에서 소란스러운 목소리들이 들려왔다.

우리왔다냐!!”
방문!”
용사는 바로 문으로 달려가 열었고 문이 열리자마자 갈색 들개 둘이 용사에게 뛰어들었다. 검은 들개는 아직 들어오진 않고 패치를 잠깐 보더니 함께 바닥에 뒹굴고 있는 용사와 들개들에게로 시선을 돌렸다. 이번 기억은 그렇게 끝났다.

아직 왕께서 살아계셨을 때의 기억이구나.”
퍼블리는 조금 신기한 느낌이 들었다. 공주인 메르시는 물론이고 왕에 대한 건 역사책을 읽었는데도 기억이 안 나기 이전에 자세히 적혀있지 않았다. 왕과 그의 왕후는 상냥하면서도 공정했으며 다른 마녀와 마법사들을 끌어 모으는 능력이 있었다는 이야기 밖에 아는 게 없었다. 혹시나 퍼블리는 아빠가 왕도 만난 적이 있지 않을까 내심 기대하면서 다음 기억을 보기 위해 발을 뻗었다. 그러자 편지를 받고 곧바로 나갔던 컨티뉴가 다시 나타났다. 둥그런 탁자에 용사를 가운데 두고 패치와 들개들이 앉아있었고 그 옆에는 전서구가, 맞은편에는 컨티뉴와 GM이 앉아있었다. 가장 먼저 컨티뉴가 입을 열었다.

에키테 폐하께서 승하하셨다.”

쿨럭 마른기침이 터져 나오는 바람에 퍼블리는 진정하기 바빴다. 다행히 그 얘기를 들은 패치와 다른 이들도 충격이 컸는지 말이 없었고 컨티뉴도 아직 더 말을 하지 않았다. 한동안 정적이 가득했다. 그 때문에 퍼블리는 기침소리가 괜히 더 요란하게 울리는 것 같아 얼른 멈추고 싶었지만 진정되기에는 조금 더 시간이 걸렸다.

믿기지는 않겠지만 이건 극비사항이고 아직 왕국엔 소식도 전해지지 않았어.”

아니 그..그런 그.........극비를!! 왜 이런 가정집 탁자에서 터뜨리는 거예요?!!! 비둘기 날지도 않았는데 쓰러지는 꼴 보고 싶어요!?!!”
깜짝 놀란 전서구가 가장 먼저 외치기 시작했다. 아이고 이러다 갈매기도 반딧불이도 모르는 새에 죽는 거 아니냐는 곡소리가 요란스레 터져 나오고 있었지만 아무도 말리지 않았다. GM은 평소와는 다르게 웃지도 않고 가만히 앉아있는 걸 보니 컨티뉴와 함께 미리 알고 있었던 것 같았다. 그리고 패치는 직감했다. 저번에 컨티뉴가 받은 편지와 관련이 있다고.

저번에 에키테 폐하께서 내게 편지를 보냈지. 편지의 내용은 밸러니의 숲에서 저주가 흘러나오는 걸로 의심된다는 내용이었고 왕후와 함께 조사 및 저주 억제를 할 방법을 찾고 있지만 역부족이라 우리의 손도 빌리고 싶다는 편지였어. 마침 GM도 같은 편지를 받아서 같이 갔었지. 그런데 갔을 땐 이미...”

경청하고 있던 퍼블리는 이상함을 느꼈다. 분명 약새풀이 자라는 지역이 넓어지는 게 저주의 영역이 넓어진다는 증거, 즉 저주가 흘러나온다는 증거가 되어서 정화 작전을 짜고 성공한 게 정화의 날이자 순백의 날이 아닌가. 그런데 왕과 왕후가 이미 저주가 흘러나온다는 걸 알아냈다고? 왕과 왕후는 모종의 사건으로 죽게 되었다고 얘기만 나왔고 약새풀이 자라는 지역이 넓어진 거에 대해서 둘의 이야기는 아예 얘기가 없었다. 그저 정화작전에 가담한 공주에 대한 이야기만 있었을 뿐.

저기...저 잘못들은 겁니까? 머리가 갑자기 멈춰 버렸는 데요...? 왕과 왕후가 죽었고...저주가 흘러나오는데 그걸 발견하신 분들이 그분들이고...?”
제대로 들었군.”

전서구의 현실부정은 통하지 않았다. 단호하게 사실을 박아 넣자 전서구는 날개를 들어 제 얼굴을 쓸었다.

저주에 당한 것처럼 보이지만 우리가 생각하기엔 살해당했다고 생각하고 있어.”

살해요...? 살해 저주요...? 저주에 당한 것과 같은 거잖아요?”
우리가 편지에 써져있는 곳으로 가자마자 보게 된 건 무언가를 불로 태우고 그들의 시체를 봉인 마법을 써서 숨기던 이들이었어.”

순간 퍼블리는 숨을 멈췄다. 아련하게 중얼거리던 전서구마저도 입을 다물었고 들개들은 이를 뿌득 갈았고 패치는 팔짱낀 손에 힘을 더 줬다. 신기하게도 용사는 가만히 듣고 있었다.

다행이라고 해야 할지...재빨리 숨기느라 바빠 숨는 우리를 발견 못했지.”

날카로운 긴장 위로 위태로운 진실이 터졌다.

그 자들은 왕궁 마녀들이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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