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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19.01.03 [치트패치] FLIP FLOP C0 -신탁.3-
  2. 2019.01.01 [치트패치] FLIP FLOP C0 -신탁.2-
  3. 2018.12.30 [치트패치] FLIP FLOP C0 -신탁.1-

그 때의 사건에 대해 조금이라도 관심을 기울인 사람들은 이번 신전에서 내세운 상금이 굉장히 꺼림칙하게 느껴졌고 진상을 그나마 자세히 알고 있는 사람들은 대놓고 표정을 구겼다. 얼굴에 철판을 깔은 사람들은 상금에 욕심을 부렸지만 그 중에서도 조금 양심의 가책이라는 걸 느낀 이들도 있었고 방금 나무에 매달아놓은 사람처럼 이름만 알고 자세히 모르는 사람들은 거리낌이 없었다. 그리고 마을 안에는 저런 사람들이 모두 있었다. 최소 한 명쯤은 납치 시도를 하거나 대놓고 끌고 가려고 하는 사람이 마을에 있다는 얘기였다. 그 쯤 되면 패치에겐 차라리 야영이 더 편했다.

홀로 밤을 보내고 불편한 곳 없이 일어난 패치는 마저 길을 걸었다. 당장의 목적지는 없었지만 움직이지 않고 한 군데 머무르면 아예 성기사단들이 몰려올 테니 움직일 수밖에 없었다. 나중에 마법서점을 발견하게 되면 변신마법이 있는 마법서를 살 거라는 목표를 세우고 야영흔적들을 지웠다. 가급적 낮에만 잠깐 마을을 들르고 해질녘에는 밖으로 나와 야영할 자리를 찾는 식으로 흔적을 최소한으로만 남기거나 아예 지우니 쉽게 못 찾아내는지 근 며칠간은 성기사를 포함한 신관들이 패치를 찾지 못했다. 신을 믿는 이들이 신탁이 내려온 이상 쉽게 포기할 리가 없지만 사람들은 언젠가 지치기 마련이었다. 거기다 단순히 신전으로 데려가면 상금을 준다고만 발표했으니

갑자기 할 일이 많아졌군.”

변신 마법서와 더불어 꼼꼼히 흔적을 지우며 종교 측에 내려온 신탁이 무엇인지 파고들기가 추가됐다. 하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패치는 변신 마법서를 살 이유가 없어졌다. 거기에다 신탁 내용에 대한 뒷조사를 하지 않아도 정확한 내용을 알게 됐다.

 

오랜만임다?”

알고 있는 공격 마법을 난사하지 않음으로써 패치는 최대한의 인내심을 발휘했다.

자넨 왜 여기있나?”

~ 그렇게 거리 두는 말투 너무 싫어요~? 예전처럼 친근하게 말해줘요.”

패치는 다시는 술에 입도 대지 않겠다고 결심했다.

신전엔 전부 눈도 없고 판단력도 없는 이들만 모였나? 마법사 하나 잡아 가둔 대사제를 최소한의 처벌도 없이 놔두다니.”

오우! 눈치가 빨라요~”

눈치 빠르다고 감탄하기 이전에 여전히 대사제들이 입는 옷을 입고 있는 자신을 보게.”

패치의 행적을 뒤쫓기 힘들어졌다는 걸 눈치 챈 종교 측은 이대로 추적이 완전히 끊기기 전에 강수를 뒀다.

패치가 신전으로 안 오니 저를 보내지 뭡니까.”

부족함을 고쳐나간다고 외치는 종교 측은 자잘한 엿을 꾸준히 보내다가 결국 이렇게 큰 엿을 보냈다. 패치는 주위를 돌아보며 다시 한 번 인내심을 발휘했다. 여긴 마을 안의 사람 많은 가게 안이었다.

패치는 짜증과 분노를 비롯한 기타 감정들이 들끓어도 주변에 사람이 많으면 말이 이렇게 차분하게 나갈 수 있구나 싶은 생각으로 머릿속을 환기시켰다. 하지만 패치의 생각에 틀린 부분이 있었다. 차분한 게 아니라 싸늘한 거였고 주위에 있던 사람들은 둘 사이에 흐르는 기세가 만만치 않은 걸 눈치 채고 얼른 자리를 피해 가게 내에서 끝과 끝인 자리로 간지 오래였다.

단 둘이 얘기할만한 자리로 옮길까요?”

패치는 눈을 가늘게 뜨면서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 자리에 무언가를 준비해둔 사람이나 그 자리로 가고 싶어 하는 사람은 아무 말도 하지 않으면 허락한 걸로 알겠다며 팔을 잡아 끌 테지만 상대도 패치처럼 그렇게 물은 이후론 아무 말도 안 하고 빙긋 웃고 있기만 했다. 반응을 보려던 패치는 답을 내놓지 않으면 정말 움직이지 않을 것 같은 모습에 고민에 빠졌다.

단 둘이 얘기할만한 자리가 어디지?”

허락임까?”

두 번 말하게 만들지 말게.”

뭐가 그리 좋은지 계속해서 웃는 대사제는 창문 너머 맞은편의 식당을 가리켰다. 얼핏 보니 사람이 별로 없고 각각의 탁자들이 제법 띄엄띄엄 떨어져있어 조금 작은 목소리로 얘기하면 옆에 들리지 않을 법 해 보였다.

그럼 가실까요?”

덤덤하게 속으로 평가하고 있는 패치의 반응이 긍정적으로 보였는지 바로 그렇게 물어보자 패치는 아무 대답도 없이 먼저 밖으로 나갔다. 그런 반응을 예상하기라도 한 건지 대사제 또한 아무 말 없이 뒤따라 나갔다.

~ 전망 좋은 창가자리군요.”

창가자리를 고른 이유는 두 가지였다. 옆이 창문이니 옆자리에 탁자가 하나 없는 셈이었고 문보다 더 확실한 도주로였기 때문이었다.

신탁 내용이 뭐지?”

여전히 돌직구를 쏘시네요.”

신전에서 그토록 싸고도는 자네까지 왔다면 그만큼 신탁이 중요하단 거겠지.”

신을 믿는 이들에게 신탁만큼 중요한 건 없잖슴까?”

자네한텐 아니지.”

패치는 어느새 제 옆에 놓인 찻잔을 들어 손잡이를 톡톡 두드렸다.

자네가 대체 뭘 가지고 있기에 날 감금시켜도 신전에서 싸고도는지는 모르겠지만 그것만으로도 자네는 신전에 비해 우위에 있는 입장이라는 거지. 그런 자네가 신전에서 중요시 여기는 신탁 때문에 나왔다는 건 자네에게도 그 신탁이 중요하다는 거고.”

흔들리는 차를 한 모금 넘긴 패치는 눈을 동그랗게 뜬 대사제를 지켜봤다. 분노와 짜증은 식당 안으로 들어오면서 자연스럽게 가라앉았고 신탁에 대한 궁금함이 떠오른 덕분에 싸늘함도 가셨다. 패치는 이렇게까지 자신을 괴롭히는 신탁 내용을 굳이 뒷조사하지 않고 대놓고 들을 수 있는 기회가 왔는데 찻물처럼 흘려보내고 싶진 않았다.

역시 패치는 눈치가 빨라요. 안 그래도 빨리 알려드리고 싶긴 했습니다. 하지만 그 전에.”

볼이 살짝 눌리게 손 위로 얼굴을 괴어본 대사제는 예쁜 웃음을 머금으며 말을 이었다.

제 이름 불러주실래요?”

그리고 곧바로 날아오는 얼음 가시를 피하기 위해 바로 고개를 숙여야했다.

웃기지도 않은 헛소리 그만하고 빨리 신탁 내용이나 말해.”

가라앉았던 짜증이 바로 올라와 다시 싸늘함도 돌아왔다. 패치는 눈가를 찌푸리며 대사제를 째려봤지만 까만색만 보이는 머리는 고개를 숙이고 있어 그 아래에 있는 표정을 볼 수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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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니 왜 그렇게 시큰둥해? 원래 마법사들은 이런 얘기 좋아하지 않아? 전에 만났던 마법사는 눈에 불을 켜고 어떻게 요정을 찾는지 막 물어보던데.”

그래서 요정 찾는 방법을 알고들 있나?”

아니! 모르니까 우리도 이렇게 여행하고 있는 거지!”

마법사의 눈이 즉시 가늘어졌다. 여행자들은 그 눈초리를 못 본 척하며 계속 말을 이어갔다.

아무튼 혹시라도 요정을 만나게 되면 정중하게 부탁해야해. 요정들은 예의를 차리면 웬만한 부탁은 다 들어주니까. 특히! 절대 날붙이 같은 걸 요정에게 들이대면 안 돼!”

그건 요정뿐만 아니라 사람한테도 들이대면 안 되는 거네만.”

물론 사람한테도 위험하지만 요정들은 날붙이가 매우 치명적이야. 닿기만 해도 큰일 나지!”

그들은 그 외의 요정을 만났을 때를 대비한 주의사항과 혹시라도 만나게 된다면 중간탑의 32번 쪽지에다 적어달라는 말을 끝으로 길을 떠났다. 여행자들의 뒷모습을 지켜보던 마법사는 그들이 말해준 요정 이야기를 되짚어봤다. 이야기를 들어보니 흥미는 조금 생겼다. 그렇다고 그들처럼 무작정 요정을 찾아다닐 생각은 없었다. 진짜로 만나게 되면 중간탑이나 들려야겠다는 생각을 끝으로 마법사 또한 제 갈 길을 갔다.

그렇게 그 날로부터 채 한 달도 지나지 않았을 무렵, 마법사는 그 여행자들처럼 요정이라도 찾아야하나 고민했다.

숲의 마법사 패치는 들으시오! 신께서는 우리를 보살피고자 말씀을 내렸고 모든 인간들은 신의 말씀을 따라야하오! 그러니 신탁이 가리키는 마법사 패치는 지금 당장 우리와 함께 신전으로

큰소리로 외치던 8번째 성기사는 말도 다 끝나기 전에 앞선 성기사들과 처음 찾아온 대사제 홀리처럼 날개 없이 하늘을 날았다. 종교측은 본격적으로 붉은 머리 마법사 패치를 추적했는지 대사제 이후론 성기사들을 보내고 있었다. 순순히 따라갈 패치가 아니었지만 종교측이 이대로 포기하지 않을 거라는 걸 제대로 느낀 터라 급격한 귀찮음이 몰려와 요정을 찾아서 가루를 받아야하나 고민이 들 정도였다.

대사제도 집요한 놈으로 뽑더니 녀석만 집요한 게 아니라 전부 집요한 녀석들 모임이군 그래.”

여기서 말한 대사제는 홀리가 아니었다. 패치에게 마력구속구를 채워 모든 일의 시작을 터뜨린 그 젊은 대사제였다. 잠깐 그 때를 떠올린 패치는 상상만 해도 머리가 아픈지 이마를 짚고 근처에 있는 평평한 바위 위에 걸터앉았다.

 

눈을 떠보니 한 번도 본 적 없는 구조와 장식들이 가득한 방이었다. 당황스러운 마음에 급하게 일어났더니 발에 뭐가 걸려 불편했다. 뭔가 싶어서 내려다봤더니 마력구속구가 발목에 채워져 있었고 그걸 보고 또 한 번 당황한 패치는 사태파악에 들어가기 시작했다.

일어나셨습니까?”

혼자 있는 줄 알았는데 옆에서 목소리가 들려오자 깜짝 놀란 패치는 바로 고개를 돌렸다. 꽤나 높은 신관들이 입을 법한 하얀 옷을 입고 있던 남자가 있었다. 옷과는 정 반대로 머리는 까맣고 눈 한쪽도 흰 자대신 검은색이 가득했다. 신관 옷이 저렇게 어울리지 않아 보이는 사람은 처음 본다는 말을 간신히 삼킨 패치는 그 남자를 향해 조심스럽게 물었다.

여긴 어딘가?”

여긴 제 방임다.”

내가 왜 여기 있지?”

제가 데려왔으니까요.”

그 남자는 샐쭉 웃으며 패치에게 손을 뻗었다. 해를 끼치려는 낌새는 느껴지지 않아 패치는 가만히 있었다. 그게 마음에 들었는지 남자의 웃음은 더욱 짙어졌고 뻗은 손은 구속구가 채워진 발을 조심스럽게 살피듯 쓰다듬었다. 이게 뭐하는 짓인가 싶어 패치의 눈이 가늘어진 순간

선물은 마음에 드십니까?”

마치 결혼반지라도 끼워준 것 같은 말투에 패치는 순간 굳었고 남자는 조심스럽게 패치의 발을 들어 올려 구속구를 쓰다듬었다. 이 상황을 벌인 게 누구인지 깨달은 패치는 즉시 그 발로 남자의 얼굴을 찼다. 어쩌다가 구속구가 채워졌는지도 기억나지 않는 걸 보면 잠들기 전에 술을 마셨던 게 분명했다. 자신이 무방비해지는 때는 술을 마셨을 때뿐이라는 걸 패치는 아주 잘 알고 있었다. 문제는 왜 술을 마셨는지도 기억나지 않는다는 거였다.

대체 어떻게 하면 하룻밤만에 하얀 들판에서 신전까지 갈 수 있는 거지?”

술 마시기 전의 마지막 기억은 하얀 들판에서 검은 돌을 찾는 거였다.

 

거기 빨간머리 마법사! 이름이 패치 맞지?”

저를 부르는 소리에 패치는 기억을 더듬던 걸 멈추고 한숨을 쉬었다. 자신의 이름까지 아는 사람이 부른다면 이유는 이제 두 개였다. 하나는 대사제 때문에 신전에 끌려간 게 진짜냐고 물어보려는 거였고 다른 하나는 최근에 추가됐다.

중무장한 성기사가 인상착의 말하면서 찾아다니던데 당신 맞지?”

마법, 기계, 종교. 대표적으로 사회를 이루고 있지만 어디까지나 생활을 이어나가게 받쳐주는 역할이었다. 누구나 마법도구를 이용해 무거운 물건을 가볍게 들어도 그 안에 들어간 마법식을 누구나 이해하는 것도 아니었고 누구나 말 없이 기계로만 움직이는 기계차를 이용해 빨리 갈 수 있다 해도 그 안에 들어간 회로를 전부 알고 있는 게 아니었다.

당신을 신전으로 데려가면 엄청난 상금을 준다고 들었거든? 그러니까 반항할 생각 않고 얌전히 따라오는 게 좋아.”

누구나 다 알 정도로 사건이 터져도 자세히 알려고 하지 않는 사람이 종종 있었다. 거기다 시간이 지나면 어디선가 들어본 이름이다 외엔 기억하지 못하는 게 자기 살기 바쁜 민간인이었다. 그리고 그런 사람은 생각보다 꽤 많았다.

자네 5년 전에 일어난 대사제 사건 알고 있나?”

자세히는 모르지만 당신이랑 관련된 사건인 건 워낙 유명해서 드문드문 들려오더라. 그보다 딴소리 말고 얼른 따라오기나 해. 이거 호신용을 개조한 거라 맞으면 보기보다 아플 걸?”

호신용 전기충격기를 들이대며 협박하는 모습을 보고 있자니 패치는 어이가 없으면서도 머리가 아팠다. 이게 벌써 몇 번째인지 세는 것도 포기했다.

다음엔 겉모습이라도 좀 그럴 듯하게 개조해서 오게.”

말을 걸기 전에 뒤에서 기습하면 될 걸 저렇게 협박하는 걸 보면 분명 허세였다. 하늘을 나는 건 민간인이라 다칠 우려가 있어 나무에 매달아놓는 걸로 봐준 패치는 마을에 들리려던 걸 포기하고 야영하는 걸 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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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어이없다는 눈으로 쏘아보는 상대에 전달역할을 맡게 된 홀리는 식은땀을 흘리며 속으로 왜 자신이 이 역할을 맡아야하는지와 더불어 이대로 죽는 게 아닌가하는 불안을 애써 가라앉히고 있었다.

 

인간들의 사회를 이루는 데 대표적인 세 가지는 마법, 기계, 종교였다. 마법과 기계는 생활에 밀접한 데다 각각의 능력 원리에 마찰을 빚는 경우가 많아 갈등의 골이 꽤 깊은 편이었다. 하지만 두 세력 간의 갈등의 골도 잠시 덮어둘 일이 생겼다.

종교 내부에서 지도자가 바뀌었는지 신의 은총 아래서 모든 이들을 포용한다는 뜻을 세운 채 갈등에 관여를 하지 않고 관조적인 입장을 취하던 종교계가 어느 날 갑자기 자신의 세력 외엔 전부 배척하는 성향을 띠기 시작한 걸 계기로 종교계는 나머지 두 세력의 공공의 적이 되어버렸다. 내세우는 뜻은 표면적으로는 같았지만신의 은총 아래서이 부분을 해석하는 게 바뀌었다.

, 신의 은총 아래는 자신들 종교계를 뜻한다는 거였고 종교계 내부에선 모든 이들을 포용하지만 종교에 속하지 않은 외부 세력들은 이에 포함되지 않는다는 태도였다. 물론 대놓고 이런 주장을 외친 게 아니었다. 다만 눈에 띌 정도로 그 태도가 보였을 뿐이었다.

여기까지였으면 누구나 다 알지만 굳이 입 밖으로 내지 않고 쉬쉬하는 행동을 취했을 분위기였다. 종교계가 공공의 적, 특히 마법 세력과 대놓고 서로 경계할 정도의 사이가 된 사건이 하나 있었다. 최근에 들어서도 여전히 사람들의 입에 오르내릴 정도로 유명하면서도 파격적인 사건이었다.

사건의 시작은 이제 막 성인이 된 신관이 대사제의 직위에 오른 것으로 이는 종교계 내부에서 파격적인 사건이었다. 성인이 되어서도 꽤 많은 덕을 쌓고 오랜 수행을 거쳐야 앉을 수 있는 게 대사제의 자리였는데 수습기간도 거치지 않고 성인이 되자마자 그 자리에 앉으니 내부에서 말이 많을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바로 그 다음 이 젊은 대사제가 벌인 일로 인해 종교계뿐만 아니라 그 외의 모든 사람, 특히 마법 세력이 큰 충격에 휩싸였다.

바로 어떤 마법사에게 마력구속구를 채워놓고 소유하려했다는 사실이 밝혀졌다. 마법 세력은 즉시 항의를 넣어 이 대사제를 비난하고 이런 사람을 대사제로 뽑은 종교계를 비판했다. 그 대사제가 누구인지 밝히라는 목소리들도 많았지만 종교계는 오히려 이 대사제의 정체를 숨기는 건 물론, 사건 자체를 덮으려고 들었다. 이에 마법 세력뿐만 아니라 기계 세력과 더불어 자급자족 하는 소수민족들 또한 크게 분노하며 종교계에 등을 돌렸다.

그 마법사는 어떻게든 탈출했는지 신전에서 굉장히 멀리 떨어진 곳에서 얼굴을 드러냈고 동시에 신원이 밝혀졌지만 여전히 이번 사건을 일으킨 대사제의 정체는 밝혀지지 않았다.

그리고

“...신탁이 내려왔습니다.”

그 마법사가 바로 홀리를 어이없다는 눈빛으로 쏘아보고 있는 상대였다. 같은 대사제지만 홀리는 그 사건의 대사제가 아니었다. 그렇다고 연관이 아예 없다고는 할 수 없는 게 종교계 전부가 공범이나 마찬가지였다. 몇 년이 지난 일이라 해도 사과조차 하지 않았는데 다짜고짜 찾아와 신탁이 내려왔으니 신전으로 와달라고 요청한다면 그에 대한 대답으로 제 목이 잘려 돌아가도 할 말이 없는 상황에 처한 홀리는 이미 죽은 게 아닌가 싶을 정도로 얼굴색이 창백했다.

“...내가 누군지 알고서도 그런 말을 하는 건가?”

, 신탁은 절대적입니다!”

그건 자네들에게 절대적이지 나에겐 해당사항이 아니네만.”

저희와 신은 별개입니다! 신께선 저희의 부족함을 일깨워주시고 저흰 그것을 고쳐나가는 사람입니다!”

안 고치고 덮어두려는 사건의 산증인이 바로 나일세.”

부디 저희가 아닌 신의 말씀을 들어주시길 간청합니다!”

다시 한 번 어이없는 눈빛이 쏘아져왔지만 홀리는 차마 눈도 못 마주치고 식은땀을 뚝뚝 흘리며 고개를 숙였다.

사실 홀리는 그 사건에 대한 이야기만 알지 그 안의 자세한 상황은 물론이고 뒷이야기도 잘 모르는 축에 속했다. 마력구속구에 당한 채 신전으로 끌려온 마법사는 절대 얌전히 있지 않았다. 마법을 못 쓰게 하려고 채운 마력구속구이건만 대체 어떻게 마법을 쓸 수 있던 건지 마법으로 신전에 제대로 된 깽판을 쳤다. 건물 벽체를 무너뜨리는 건 기본이요 중요 예물 또한 한 줌의 파편으로 만들어 놓는 걸 시작으로 신전 내부를 난장판으로 만들어 놨다. 거기에 한 술 더 떠 단순히 부수는 것만으로 그만두지 않고 어디서 찾아냈는지 성배에다 성수를 담아 선반처럼 층이 나눠져 있는 투명상자를 허공에다 만들어내 그 안에 애매하게 걸쳐 넣어 놨다.

상자를 완전히 열면 안의 투명한 층들이 무작위로 움직여 성배가 튕겨나가게 설계해놓아 열 수가 없었다. 그렇다고 반만 열거나 아주 조금 열면 성배가 기울어져 성수가 그대로 쏟아지게 걸쳐놔 성배를 제외하면 다른 모든 그릇에 담으면 즉시 사라지는 성수의 특성 때문에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상태가 되었다. 다시 만들기 까다로운 데다 귀한 성수고 예배에 반드시 필요해 신관들은 발만 동동 굴렀다. 물론 이런 일을 벌인 마법사는 알 바가 아니었다.

신탁 또한 내 알 바가 아니지.”

이런 무례한 녀석을 봤나! 그래봤자 한낱 인간, 그것도 마법사 주제에 그딴 말을 지껄이다니! 그 누구도 신의 말씀을 거역할 수 없다!”

속을 긁는 말을 일부러 꺼내자마자 존대도 때려 치고 고함치는 홀리는 곧이어 비명조차 지르지 못하고 조용히 하늘을 날았다. 신관들이 모두 입는 하얀 옷이 날아가면서 펄럭이자 지나가다가 그 모습을 본 여행자들이 우스갯소리로 천사 날개는 천으로 되어있다며 더 멀어져 안 보일 때까지 농을 주고받았다.

거기 청년! 자네가 방금 천사 만든 마법사 맞지?”

천사는 모르겠고 사람 하나 날려 보낸 마법사라면 날세.”

젊은 청년에 왜 늙은이 말투를 쓰고 있어? 아무튼 재밌는 광경 보여준 답례로 좋은 정보 하나 주지. 우리 여행 목적이라고도 할 수 있어.”

대사제 하나를 날려 보낸 붉은 머리 마법사는 흥미 없는 표정으로 돌아봤다.

혹시 요정에 대해 들어본 적 있나?”

요술을 부리는 난쟁이들을 말하는 건가.”

난쟁이는 모르겠고 적당히 사람처럼 생겨서 잠자리 날개나 투명한 나비 날개 달린 게 바로 요정이지. 우린 요정을 찾고 있어.”

요정들은 가루를 뿌려서 자기네들 사는 데랑 모습도 감춰서 살고 있다고들 하지. 우리의 목적은 바로 그 가루고. 어때, 흥미 돌지 않나?”

마법사는 전혀 흥미 돌지 않는다는 얼굴로 대답을 대신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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