용사의 어법에 잠시 동안 해석 과부하가 걸린 퍼블리는 눈을 깜빡이면서 물었다.

, 호로록? 갔다고요? 잠들었다고...”

잠들었는데 호로록 갔엉!”

어디로요?”

위로!”

용사의 말에 혼란이 온 퍼블리는 나머지 둘을 향해 돌아봤다. 나머지 둘도 용사의 말뜻을 제대로 해석하지 못했는지 퍼블리와 눈이 마주쳤다. 이들의 속도 모르고 용사는 이들 주위를 신나게 빙빙 돌기 바빴다. 우선 신탁을 전해야할 의무가 있는 치트는 용사를 멈춰 세우고 입을 열었다.

안녕하세요, 용사님?”

우웅? 내 이름 용사야?”

이름이 아니라 역할을

용사!!”

치트는 더 말하지 않고 얌전히 물러났다. 저를 향해 돌아보는 그린 듯한 미소에 패치는 한숨을 쉬었다. 이제 패치의 차례였다. 신탁을 따라 용사가 되는 이에게 치트에 대한 경고를 하려고 했는데 경고고 뭐고 말이 통할지부터가 의문이었다.

자네 말대로 자넨 용사일세.”

빨간 칭구!”

신탁에 따르면 나를 포함한 이 셋과 함께 여행을 떠나야한다네.”

여행 조아!!”

다만 저 검은 머리는 이 여행을 정말 해야하나 진지하게 고민해야할 정도로 위험한 사람이지.”

칭구끼리는 사이좋게 지내야지~!”

여기까지 말한 패치는 더 말하기를 그만뒀다. 이 일행은 망했다. 가장 믿음이 가득해야할 대사제는 납치범에 속내를 모를 위험인물이고 가장 믿을 수 있어야할 용사는 요정이 키우기라도 했는지 순수하다 못해 텅 빈 종이를 보는 듯했다. 다만 패치가 예상치 못했던 게 있었다.

그럼 난 이제 돌아가겠...놓게.”

사이좋게 지내야징!”

사이좋게 지내긴 글렀네.”

싸웠으면 화해하는 거양!”

아니, 애초에 싸운 게 아니라

용사의 힘은 생각보다 엄청났다. 패치는 팔을 잡은 손을 떼어내려고 하거나 뿌리칠려고 애를 썼지만 꿈쩍도 하지 않았다. 실랑이라고 하기엔 용사의 힘이 너무 강해 일방적으로 잡혀있다고 할 수 있는 패치는 이대로라면 절대 안 놔줄 거라는 걸 깨달았는지 잡히지 않은 다른 손을 저었다. 환각에 영향 받지 않게 하는 건 물론이고 환각도 걸 수 있었다. 빛이 아른거리며 용사의 눈을 훑다가 터지면서 반짝였다

반짝반짝!”

용사가 눈을 빛내며 즐거워했지만 팔은 여전히 놓지 않았다. 뭔가 이상함을 느낀 패치는 손을 뻗어 용사의 눈앞에서 흔들었다. 그러자 용사가 새로 인사하는 거냐며 자유로운 팔을 들어 마주 손을 흔들었다. 그 반응에 패치는 질린 기색이 가득한 얼굴로 용사를 바라봤다.

내성도 아니고 저항이라니.”

이를 통해 용사가 왜 환각의 숲에 있는지는 모르지만 어떻게 사물을 분간하며 돌아다니는지 알 수 있었다. 환각 자체가 통하지 않는 사람에게 환각의 숲이란 그냥 평범한 숲이나 다름없었다.

화해 축포야?”

축포 아니니 얼른 놓...”

내 칭구들도 자주 쓰던 거야!”

그 말을 들은 패치는 더 이상 아무 말도 하지 않고 특유의 건조한 눈으로 용사를 바라본 후 한숨을 쉬며 용사에게 들릴 정도로만 작게 말했다.

애초에 저 녀석은 용서도 빌지 않고 사과도 하지 않았으니 화해 자체는 불가하네.”

사과하면 화해할끄야?”

화해를 강요하는 것 또한 좋은 일은 아니란 걸 알아두게. 다만 기회를 원한다면 이 여행이 그 기회가 될 거고 나와 저 녀석의 화해를 바라는 자네라면 이 기회를 그냥 떠나보내게 둘 생각은 없겠지, 그러니 조건이 있네.”

건조함으로 제 감정을 덮은 패치는 용사에게 마지막으로 무언가의 말을 속삭였고 용사는 한 치의 의심도 없이 알았다며 고개를 끄덕였다. 이에 대해선 비밀로 하는 것 또한 조건이라며 덧붙인 패치는 그대로 뒤돌아 멀뚱히 서 있는 둘에게 향했다.

여행을 하기로 했네.”

정말요?!”

기대감이 완전히 사그라든 건 아니었는지 퍼블리는 반사적으로 기쁨이 담긴 웃음을 지었다. 치트는 미소를 지은 채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퍼블리는 용사가 패치를 설득한 거라고 생각했는지 용사에게 달려가 감사인사와 어떻게 설득했는지에 대한 질문을 했다. 자연스럽게 둘만 남은 터라 패치는 슬핏 눈썹을 찌푸렸다.

무슨 거래를 했습니까?”

그 질문에 패치는 여전히 눈썹을 찌푸린 채로 노려봤다.

이 세상 그 누가 당신을 설득하겠습니까? 의무도 일도 없는 당신을 흔들 말은 없죠.”

능청스레 덧붙이는 말들은 꽤나 확신에 가득 찼고 패치에 대해 잘 파악한 내용들이었다. 패치의 입장에선 꽤 거슬렸는지 건조했던 눈에 다시 날이 서기 시작했다.

그렇담 용사님께서 당신이 원하는 걸 갖고 있단 건데 그게 뭔지 참 궁금합니다~”

아주 잘 알고 있군. 그렇담 이것도 알겠지, 내가 그걸 말할 것 같나?”

물론 아니죠, 그러니 패치에게 직접 물을 생각은 없슴다~”

그렇담 용사에게 묻겠다는 말이었다. 패치는 혀를 차며 뒤돌아 용사와 퍼블리에게 걸어갔고 치트는 그 뒤를 따랐다. 용사에게 궁금한 걸 묻다가 오히려 용사의 이야기에 말려든 퍼블리는 다가오는 그 둘을 반갑게 돌아봤다.

자네 여기서 챙길 게 있나?”

없엉!”

그럼 이제 이 숲에서 나가지.”

와앙!”

용사는 앞장 서는 패치의 뒤를 졸졸 따라갔다. 원래부터 따라오던 치트도 그 옆에 나란히 걸었다. 그들을 보고 있던 퍼블리는 땅에 떨어져있는 물건들을 한 번 내려다보다가 빠른 걸음으로 뒤따라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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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네 용사 있는데로 제대로 안내하는 게 맞나?”

맞습니다만?”

왜 길이 신전으로 가는 길인가? 설마 용사는 진즉에 신전으로 데려갔나?”

아뇨 그건 아님다. 마침 용사가 신전 근처에 있기도 해서 이렇게 나중에 보러 간 것도 있지만 다른 이유가 더 큽니다.”

신전방향으로 가는 건 맞았지만 가기 직전에 길을 꺾었다. 신전 가까이에 있는 숲이 목적지였다. 그 숲이 어떤 숲인지 아는 패치는 이유가 뭔지 깨달았다.

환각의 숲이군. 나를 먼저 데려오지 못하면 여기도 못 들어가지.”

환각마법에 관해선 가장 뛰어난 게 패치죠.”

대체 왜 환각의 숲 근처에다 신전을 지은 건가? 실수로 깊숙이 들어가서 실종되는 신관들이 매년 있다고 들었는데.”

글쎄요. 왜 여기에 지었는지는 맨 처음 설계한 사람만이 알겠죠?”

패치는 혀를 차면서 손을 휘저었다. 손끝을 따라 빛이 흩뿌려지며 치트와 퍼블리를 감쌌다. 퍼블리는 신기함에 빛을 잡아보려 손을 뻗었지만 잡히지 않고 빙글빙글 주위를 돌다가 사라졌다.

! 이런 마법들은 처음 봐요! 역시 마법 도구와 마법사가 직접 쓰는 마법은 다르구나.”

대부분의 마법사들이 도시로 떠났다고 들었죠. 도구만 나오는 상황이라 어찌된 거냐며 사람들이 궁금해 하던데 같은 마법사로서 아시는 바 있슴까?”

그 대부분에 속하지 않아서 모르네만.”

, 어차피 이유는 얼마 안 있어 알게 되겠죠.”

패치가 눈썹을 치켜세우며 치트를 돌아봤지만 더 이어지는 말은 없었다. 환각의 숲에 한 발짝 내딛은 이들은 약속이라도 한 듯이 모두 조용히 걷기 시작했다. 숲의 초입 부분은 환각이 약한 편이라 사람들이 열매나 풀을 캐기 위해 오는 경우가 많아 길이 나 있었다. 조금 더 걸으니 이제는 흙보단 빽빽하게 자란 풀들이 자주 밟히기 시작했다. 발에 무언가 단단히 채일 때마다 내려다보면 짐 가방이나 휴대전등 같은 사람들이 숲으로 들어올 때 가져오는 물건들이 있었다.

겉보기엔 다른 숲들이랑 다를 게 없는데 대규모 환각마법 말고도 다른 뭔가가 있나?”

다른 뭔가요?”

여기 들어와서 실종된 사람들은 가득한데 사람은 없고 물건만 남아있군.”

시체가 없다 이 말이군요?”

심상치 않은 말에 퍼블리의 안색이 좋지 않아졌다. 환각의 숲에서 실종되고 못 찾은 이들은 전부 죽은 사람이나 마찬가지로 취급한다는 얘기가 한창 돌았었다. 땅을 짚으면서 사람들의 흔적을 찾는 둘을 보던 퍼블리는 종이를 한 장 꺼냈다.

대체 용사는 무슨 생각으로...자네 뭐하나?”

환각의 숲의 지도를 만들면 사람들이 더 안전해지지 않을까 싶어서요.”

그 전에 환각대비부터 해야 지도도 볼 수 있네만.”

그래도 없는 것보단 나을 거라는 말을 덧붙이면서 흔적을 찾던 패치는 몸을 일으켰다. 물건들은 새 것같이 멀쩡했는데 사람의 발자국이 전혀 없었다.

용사가 이 숲에 있는 게 맞나? 아주 예전이라면 모를까 최근에 들어왔다면 발자국이라도 남아있어야 정상이네. 근래 들어서 비도 내리지 않았으니 지워질 일이 없을 텐데.”

글쎄요, 최근에 들어왔는지 좀 더 오래 전에 들어왔는지는 저도 모릅니다. 거울에 비춰진 건 이 숲이었으니까요.”

혀를 찬 패치는 이러다 환각의 숲을 전부 돌아다니게 되겠구나 싶어 한숨을 쉬었다. 들어와도 초입에 있어서 잠깐 들어왔다가 나갈 줄 알고 아무 말 없이 따랐는데 준비도 마땅치 않은 상태에서 숲을 돌아다니기란 여간 위험한 일이 아니었다.

“...할 말이 아주 많지만 그냥 따라온 내 책임도 있으니 이에 대해선 나중에 말하겠

우오와아아아아앙!!!!!”

갑작스러운 큰 소리에 흠칫 놀란 패치는 일행들을 돌아봤다. 그 둘도 마찬가지로 놀란 걸 보니 여기서 큰 소리를 낸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무엇보다 목소리가 다른 목소리였다.

죠오오오기 서 있는 애들 있다아아앙!!!!”

저 멀리서 달려오는 형체가 있었다. 목소리가 매우 커서 사람인 건 확실히 알 수 있었다. 엄청난 속도로 달려오고 있는 사람은 얼굴 자체에서 빛이 나는 것처럼 환하게 웃고 있었다. 갑작스러운 이 상황이 당황스럽기는 패치와 퍼블리는 물론 치트도 마찬가지였다. 용사의 얼굴은 알아도 용사가 어떤 사람인지는 몰랐기 때문이었다.

칭구들!!!”

달려와서 부딪히기 직전에 멈춘 용사는 고개를 숙여 패치와 눈을 마주했다. 바로 코앞에서 바짝 붙는 얼굴에 당황한 패치는 반사적으로 뒷걸음질 쳤다.

오랜만에 보는 칭구들이다!!”

친구라니 처음 보는...”

새 칭구!!”

패치의 눈가가 살짝 찌푸려졌다. 정체도 모르는데 막무가내로 친구라 외치는 상대에 호감이 갈 리가 없었다. 옆에서 지켜보던 치트는 언짢은 패치의 기색을 느꼈는지 항상 짓는 미소를 지으며 패치에게 말했다.

그 분이 용사님입니다.”

“...?”

특정하진 않았지만 예상했던 용사의 이미지가 전부 무너져 내렸다. 퍼블리 또한 크게 뜬 눈으로 용사를 바라봤다. 파랗게 뻗친 머리를 지닌 용사는 순진무구한 표정으로 이들을 둘러보기 바빴다.

나보다 큰 칭구도 있다!”

용사는 환각에 자체적으로 저항이 있는지 기본 말투를 제외하면 멀쩡해보였다. 다만 어떻게 대화를 끌어가야하는지 감을 못 잡아 패치는 입을 꾹 다물었다. 그 때 퍼블리가 앞으로 나섰다.

혹시 여기 다른 사람, 그러니까 친구들도 있나요?”

우웅~? 칭구들 다 코~ !”

그 중에서 노란머리를 반쯤 묶어 올린 분이 있나요?”

노랑 칭구는 못 봐써!”

살짝 실망한 기색을 보인 퍼블리는 잠들었다는 사람들이 어디 있는지 물으려고 했지만 용사가 먼저 말을 이었다.

그른데 칭구들이 호로록! 가버렸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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퍼블리는 어색한 웃음을 머금으며 노력해보겠다고 했고 패치는 아예 눈길도 주지 않았다. 그들은 자리에서 일어나며 짐을 챙겨들었고 패치의 빠른 걸음을 선두로 마을을 나섰다. 밖으로 가는 내내 패치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고 치트는 그저 웃고만 있었으며 퍼블리는 기쁨을 잠시 깊숙이 넣어두고 둘을 살펴봤다.

퍼블리의 입장에선 둘 사이에 무슨 일이 있었는지 모르기 때문에 우선 먼저 서로의 태도를 보는 걸로 둘의 선, 정확히는 패치의 선을 체감하기로 결심했다. 그리고 얼마 안 가 퍼블리는 넣어둔 기대감이 천천히 사그라드는 걸 느꼈고 패치는 후회가 안쪽부터 서서히 쌓이는 걸 느꼈다.

예전에 볼 때보다 더 살이 쪽 빠지셨네요. 그러니까 그 때 가만히 있었으면 이렇게 살도 빠질 일 없었을 텐데 정말 슬프네요~”

말 같지도 않은 소리를 꺼내는 걸 봐줄 패치가 아니었다. 마을에 나오자마자 온갖 마법들이 눈 아프게 쏟아졌다. 사제들이 기본적으로 쓸 수 있는 방어막이 위태롭게 막아내고 있었다. 하지만 패치는 마법만 쓰는 게 아니었다. 그대로 뛰어가 방어막을 뚫으며 물리 공격까지 감행했다. 이 난장판에 낄 수 없고 끼어들 이유가 없는 퍼블리는 엉거주춤 선 채로 이 사태가 끝날 때까지 기다렸다.

긴 다리를 열심히 움직인 덕분에 공격을 피한 치트는 그대로 날아오는 패치의 주먹을 가볍게 감싸 잡아 오히려 자신에게로 끌어당겼다. 끌어당겨진 패치는 그 반동을 이용해 명치에 주먹을 꽂아 넣었고 쿨럭 기침을 터뜨린 치트는 그대로 나머지 손도 잡아채고 체중을 실어 패치 위로 쓰러지면서 쓰러뜨렸다.

패치가 이렇게 작으니 쉽게 쓰러지는군요.”

안 비켜?!”

비키면 공격할 거잖슴까~”

천천히 고개를 숙이는 치트에 패치의 눈에 불이 더 크게 튀었다. 그대로 머리를 들어 박치기를 시도하려 했지만 치트의 입이 움직이는 게 더 빨랐다.

기억을 잘 더듬어보세요.”

?”

전해지지 않는 데에는 다 이유가 있습니다. 눈을 감고 앞에 있는 걸 묘사해봐야 의미가 없잖습니까?”

뜻 모를 눈빛과 미소가 패치의 눈 바로 앞에 있었다. 치트가 꺼낸 말은 굉장히 의미심장했지만 우선 자신을 깔고 있는 상황 자체가 마음에 들지 않았던 패치는 다리를 휘둘러 치트를 제 위에서 치웠다.

쓸데없는 입 그만 놀리고 안내나 제대로 하게.”

차인 옆구리를 부여잡으며 우는 시늉을 해봤자 날아오는 건 반대쪽 다리였다. 다시 일어난 치트는 패치의 말을 충실히 들으며 옆에 바짝 섰다. 말만 충실히 들었다.

사람어깨 팔걸이로 쓰지 말고 얼른 꺼지게.”

“....”

팔이 거추장스러우니 잘라달라는 의미였나?”

“....”

침묵은 긍정으로 알겠네.”

말만 안 했지 행동으로 패치의 속을 긁어내리고 있었다. 옆에서 보는 퍼블리도 아슬아슬한 심정으로 걷고 있었다. 분명 온 사방이 멀쩡한 흙바닥인데 옆에 절벽을 둔 기분이었다. 입을 다문채로 패치의 어깨에 팔을 두르던 치트는 명치를 맞고서야 물러났다. 패치는 마음 같아선 자신이 말한 대로 하고 싶었지만 퍼블리의 눈을 존중하기로 했다.

이번에 명치를 때린 게 효과가 좋았는지 그 이후로 치트는 얌전히 있었다. 입도 열지 않았다는 뜻이었다. 패치 또한 먼저 말을 거는 성격이 아니었다. 침묵이 무겁게 깔리자 이런 분위기에 익숙치 않은 퍼블리는 식은땀을 흘렸다. 퍼블리는 이제 이 둘에 대한 기대보단 앞으로 만날 용사에게 기대를 걸었다. 용사라는 역할을 부여받을 정도면 이 분위기를 꽤 환기시키지 않을까 싶었다. 그리고 아직 겪지 않은 일이지만 이런 퍼블리의 기대는 과하게 충족되었다.

저기! 두 분은 어쩌다가 만나게 되셨어요?”

아까 전해지지 않았던 내용이 그 내용일세.”

, 그럼 어쩌다가 사이가 안 좋아지신 거예요?”

그 내용도 마찬가지지.”

어색함을 없애기 위해 이야기라도 하려고 했지만 꺼낸 주제마다 막히자 퍼블리는 어색하게 웃을 수밖에 없었다. 그냥 묵묵히 따라가야 하나 고민하던 순간 패치가 돌연 물었다.

그러고 보니 지도제작자 지망생이라고 했나?”

? !”

마법과 기계가 충돌이 멈추지 않은 상태고 종교까지 나선 시기엔 힘겨운 직업이군. 굳이 지망하는 이유가 있나?”

예전에 지도를 보고 땅 위에 있는 모든 길을 한 눈에 볼 수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갈 수 있는 모든 땅의 지도를 만들어서 합치면 멋질 것 같아서 직접 지도를 만들어보고 싶었어요.”

둘은 순조롭게 이야기를 하며 가라앉은 분위기를 없앴다. 지도에 관한 이야기에서 자연스럽게 지냈던 마을의 이야기와 식당 딸린 여관에서의 일화까지 나왔다. 패치만큼 술버릇이 장난 아닌 사람들도 있었다는 대목에서 패치는 침묵했고 퍼블리는 침묵을 눈치 채지 못했는지 신나게 얘기했다. 한결 편안하고 웃는 얼굴로 열심히 말하던 퍼블리는 앞쪽에서 느껴지는 시선에 잠깐 말을 멈추고 고개를 바로 했다. 그러자 묘한 웃음을 머금고 있는 치트와 눈이 마주쳤고 너무 둘끼리만 대화했나 싶어 민망함을 담아 마주 웃었다.

퍼블리님이 있어서 정말 다행임다. 만약 둘만 있었다면 난리도 아니었을 겁니다.”

이미 난리가 났지 않았나 싶었지만 퍼블리는 애써 그 말을 담아두었다. 이 순간을 시작으로 대화의 흐름이 패치와 퍼블리에서 퍼블리와 치트로 넘어갔다. 소소하게 신전에선 무슨 일을 하는지와 성수로 만든 거울의 기능과 효과의 이야기에 퍼블리는 신기했는지 집중에서 들으며 궁금한 걸 물었고 치트는 성실히 대답했다. 패치는 그런 둘을 보고 있다가 그다지 끼어들고 싶은 주제가 아니었는지 말없이 걷기만 했다. 신탁이 여행을 할 생각이 없는 것과 별개로 어찌됐든 여행을 시작하면 아무리 맞지 않는 사람이 있어도 다른 자리에 서로의 관계가 잘 굴러가게 만들 사람들을 뽑아놓아 여행이 이어지게 한 걸까 생각하며 신탁의 내용을 다시 한 번 곱씹었다. 패치는 반발 가득했던 처음과 달리 나머지 용사에 대해서 꽤 궁금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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