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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19.01.09 [치트패치] FLIP FLOP C0 -신탁.6-
  2. 2019.01.07 [치트패치] FLIP FLOP C0 -신탁.5-
  3. 2019.01.05 [치트패치] FLIP FLOP C0 -신탁.4-

패치는 한 번 더 확인 차 종이에다 써서 보여줬지만 퍼블리는 무슨 내용이 써져 있는지 전혀 모르겠다고 했다.

, 그럼 퍼블리님께도 신탁 내용을 알아야하니 다시 한 번 말해드리겠습니다.”

패치는 예언을 들으면서 그 내용을 다시 한 번 곱씹었고 예언을 처음 듣는 퍼블리는 가장 먼저 놀라움과 당혹감을 느꼈고 그 다음엔 상상을 기반 한 기대감이 차올랐다.

정말 제가 신탁에서 말하는 사람이에요?”

그렇습니다. 성수로 만든 거울로 모습이 떠올랐으니 확실하죠.”

...”

누구라도 당신은 특별하다는 얘기를 들으면 기분이 좋을 수밖에 없었다. 한 평생 마을 밖으로 나가지 않은 사람이나 동화책을 읽는 어린아이도 신탁에 대한 낭만이 있었다. 그러한 낭만은 퍼블리에게도 있었다. 다만 얼떨떨함이 가장 크게 자리를 잡았으니 가만히 감탄을 흘리기 바빴다.

그런데 패치께선 같이 여행할 생각이 없다고 하시네요.”

? 왜요?”

제가 예전에 한 일 때문에 미운털이 콕콕 박혔거든요~”

능청스레 말하는 모습에 패치의 표정이 절로 찌푸려졌다. 퍼블리는 그 미운털 박힌 일이 아까부터 패치가 전하려고 했지만 전혀 전해지지 않은 그 이야기라는 걸 어렴풋이 눈치 챘다. 대놓고 대사제를 못마땅해 하는 패치에게 그래도 같이 가면 안 되냐고 물을 게 못 된다는 건 퍼블리도 알고 있었다. 그런 퍼블리의 기색을 눈치 챈 패치 또한 머리가 복잡해졌다. 이대로 저 능구렁이 같은 녀석에게 간다면 말려드는 게 분명한데 그렇다고 내버려두기엔 퍼블리가 위험해질 게 훤했다.

“...자네에겐 빚이 있었지.”

빚이요?”

예전에 자네에게 실례를 한 이후에 부탁을 하나 들어준다고 하지 않았나.”

퍼블리는 기억을 더듬었다. 술로 인한 테러 사건 이후로 시간이 지나서 술 취한 상태가 아닌 멀쩡한 패치의 말투와 행동이 익숙해졌을 무렵에 패치가 나중에 다시 만날 때 부탁을 하나 들어주겠다고 한 후 떠난 일이 있었다.

, 혹시 제가 부탁하면 같이 가실 건가요?”

그래.”

하지만 싫어하는 일을 억지로 부탁하는 건 아닌 것 같아요.”

단호한 퍼블리의 말에 패치는 의외라는 표정을 지었고 대사제 또한 묘한 표정을 지었다. 신탁을 들은 퍼블리는 사실 패치와 대사제, 이름도 얼굴도 나중에 알게 될 사람 한 명과 여행하는 상상을 떠올렸지만 한 사람이라도 그 여행 자체가 불편하다면 의미가 없을 거라고 생각했다.

여행은 모두가 즐거워야 의미가 있어요. 그러니 싫어하는 사람이 한 명이라도 있다면 전 신탁이라도 이 여행을 떠나지 않을 거예요.”

이런 상냥함과는 거리가 먼 두 사람은 한동안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솔직히 말하자면 예상치 못한 반응입니다. 지도제작자라는 직업을 가진 사람 입장에선 이만큼 좋은 기회도 없을 거라 생각했는데.”

! 제가 지도제작자 지망생인 건 어떻게 아셨어요?”

저는 사제, 패치는 마법사니 나머지 두 개 중에 하나일 게 분명하고 가지고 계신 짐들을 보면 종이가 가득이니 지도제작자일 것 같았거든요.”

나머지 하나는 용사라는 걸 눈치 챈 패치는 의문이 들었다.

용사는 어디에 있나?”

여행에 관심이 생기셨슴까?”

틈만 나면 끌어들이려 하지 말고 묻는 말에나 대답하게. 이 마을에 두 명이나 올 줄 아는 것처럼 보였고 나한테 끈질기게 사제는 물론이고 성기사들까지 보낸 걸 보면 용사 위치는 진즉에 파악해둔 모양이던데 보통 용사를 가장 먼저 영입하려 하지 않나.”

잘 아시는군요. 하지만 저희 입장에선 갈등의 골이 깊이 박힌 분부터 어떻게 설득해야한다고 생각하더군요.”

설득의 방식이 영 글러먹었지만 따지는 걸 포기한 패치는 고민했다. 퍼블리는 누구 한 명이라도 원치 않는 여행이라면 자신도 함께하지 않을 거라고 했지만 나머지 한 명은 어떨지 몰랐다. 보통 동화에서도, 여태까지의 역사에서도 여행이나 모험을 할 때 가장 중요한 역할에 위치한 게 용사였다. 한 번도 본 적 없는 용사가 어떤 선택을 할지 몰랐다. 하지만 높은 확률로 받아들일 게 훤했다. 누가 용사가 된다는 데 마다하겠는가. 거기까지 생각한 패치는 한숨을 쉬었다.

“...일단 용사라는 사람을 만날 때까진 동행하겠네.”

대사제는 의외라는 표정을 지었고 퍼블리는 놀란 표정을 지었다. 패치는 우선 용사를 만나고 판단하겠다는 생각으로 꺼낸 말이었다. 용사에게 설명할 수 있는 대로 설명하고 충고할 생각이었다. 충고를 듣고도 여행을 하겠다고 한다면 그 이후부턴 패치가 더 이상 관여할 영역이 아니었다. 상대가 납치범에 죗값도 제대로 안 치른 종교인이지만 충고를 듣고도 굳이 그러겠다는 사람의 뒷목잡고 끌고 나오는 것만큼 기력낭비가 없었다.

자네는 어쩔 텐가. 사실 이대로 떠나는 게 제일 좋을 거네만.”

저도 갈래요!”

옳은 말과는 별개로 사실 퍼블리는 여행 자체에 대한 기대가 매우 컸다. 그러니 비록 임시여도 이런 패치의 말이 굉장히 반가울 수밖에 없었다. 그런 퍼블리의 기쁨을 느낀 패치는 씁쓸한 감정을 내리눌렀다. 패치가 보기에는 이 여행 자체가 껍질만 예쁘고 속은 썩어문드러진 열매 같았기 때문이었다.

이쯤에서 사람의 진심과 수많은 말은 통한다며 놀릴 법한 대사제는 뜻 모를 눈으로 패치를 뚫어져라 보고 있었다. 마치 관찰하는 것 같은 눈빛에 패치의 표정이 당연한 수순으로 좋지 않아졌다. 기쁜 마음이 가득한 퍼블리는 이런 둘 사이의 어두운 낌새를 눈치 채지 못하고 짐을 챙겨들며 대사제에 물었다.

그러고 보니 대사제님의 이름은 뭐예요?”

대사제는 그 질문에 눈을 깜빡이며 집요한 시선을 거뒀다. 그리고는 아까처럼 눈을 곱게 접어보이더니

제 이름은 치트입니다. 역할이 아닌, 이름으로 불러주십쇼.”

Posted by 메멤
,

? 신탁? 동료?”

헛소리일세. 귀담아 듣지 않는 게 좋네.”

신탁을 헛소리로 치부하다니 역시 대단하심다.”

자네 입에 나오는 모든 말은 헛소리지.”

매정하다며 징징대는 대사제에 패치는 인상을 찌푸리며 쳐다보지도 않았다. 다만 옆에서 둘의 말과 행동을 보고 있던 사람은 당황한 표정을 지은 채 엉거주춤 서 있었다.

, 이런. 그러고 보니 새 동료님의 성함을 모르네요.”

, 퍼블리 셔예요.”

그럼 퍼블리님, 자세한 얘기가 필요하실 테니 우선 앉을 자리가 있는 곳으로 가지 않겠습니까?”

이로써 패치 또한 마을에 묶이게 되었다. 저보다 나이 더 많은 성인 마법사를 납치하는 대사제 앞에다 아직 성인도 안 되거나 이제 막 성인 됐을 법한 사람을 두고 떠날 순 없었기 때문이었고 그 대상인 퍼블리는 앞서 회상했듯이 본인이 큰 실례를 저질렀으니 더더욱 두고 갈 수가 없었다.

결국 다시 아까의 식당으로 들어오게 된 패치는 퍼블리의 옆에 앉았다. 마주보는 게 짜증나고 혹시 무슨 일을 저지르지 않을까 싶어 바로 옆에 앉아 이상한 낌새가 보이는 즉시 공격할 생각이었지만 멀쩡한 사람 앞에서 피 튀기는 상황을 보이는 건 좋지 않을 거란 생각도 들었기 때문이었다. 여차하면 위급 상황일 때 바로 퍼블리만 데리고 도망갈 경우도 생각해 놨다.

우선 자네가 얘기하기 전에 자넨 그렇다쳐도 우리 둘이 신탁에서 가리키는 사람인 게 확실한가? 마을 입구에서 우연히 만난데다가 이름도 듣기 전엔 몰랐잖나.”

신탁이 내려올 때 모습 또한 성수로 만든 거울을 통해 나타났슴다. 패치가 나올 때 한바탕 난리가 났었죠.”

묘하게 상상이 가는 당시 신관들의 상황과 성수가 따로 남아있었다는 거에 대한 언짢음에 눈을 좁힌 패치는 툭 쏘아붙였다.

그것만으론 부족하네. 증거를 대게.”

성수로 만든 거울임다? 엄청 대단한 거라고요?”

그건 종교계에서나 통할 물건이지, 난 마법사고 옆은 민간인일세.”

이 의심 많은 마법사님을 어떻게 만족시켜야 할까~”

이런 의심을 예상했는지 대사제는 그리 난감해 보이는 얼굴이 아니었다. 오히려 뭔가를 기대하고 즐거워하는 얼굴이었다. 패치를 보고 있던 노랗고 검은 눈이 그대로 구슬처럼 굴러 퍼블리를 향했다. 멀뚱히 둘의 대화를 듣고 있던 퍼블리는 시선이 제게 오자 반사적으로 긴장했다.

퍼블리님, 혹시 5년 전의 사건에 대해 아십니까?”

? 5년 전에요?”

종교와 마법에서 꽤나 떠들썩했고 워낙 큰 사건이라 두 분야에 속하지 않은 사람들은 물론이고 소수민족들에게도 유명했던 사건인데 모르십니까?”

그 땐 워낙 바쁜 일이 있어서...죄송해요.”

아뇨, 아뇨 죄송할 거 없슴다, 바쁘셨다면 당연히 모를 수도 있죠~”

둘의 짧은 대화가 끝나고 노란 눈이 다시 굴러 패치에게로 향했다. 패치는 왜 대사제가 그 때의 얘기를 꺼냈는지 반응을 더 살펴보기 위해 잠자코 있었다.

하셔도 됩니다.”

?”

뭐긴요? 방금 제가 말한 사건 말임다. 제 입으로 말하는 것보단 스스로 말하시는 게 더 정확하지 않나요?”

자신에게 전혀 좋을 것 없는 얘기를 꺼내는 의중이 의심스러웠지만 한편으론 퍼블리가 그에 대해 모른다는 거에 난감함을 느끼던 패치는 일단 말해두는 게 퍼블리의 입장에서도 눈앞의 대사제와 신탁에 대한 제대로 된 판단을 내릴 수 있는 기회라는 생각이 들었다. 심상치 않은 분위기를 느낀 퍼블리는 불안함에 눈을 깜빡였다.

“...5년 전 나는 저 녀석에게 마력구속구가 채워진 채로 납치당했었네.”

?”

어쩌다가 그렇게 된 건지는 자세히 기억나지 않지만 아마도 전 날 자네를 만났을 때처럼 술을

, 잠깐만요, 마법사님! 다시 한 번 얘기해주세요!”

패치는 꽤나 충격적인 내용이니 이런 반응을 보일 법하다고 생각하며 다시 한 번 말해줬지만 퍼블리는 여전히 당황스러워하며 연신 네? ? 하면서 반문하기 바빴다. 왜 이러나 싶었던 패치도 뭔가 이상함을 느꼈다.

자네 제대로 듣고 있나?”

입만 뻐끔거리셔서 모르겠는데요...”

?”

이게 무슨 소린가. 입만 뻐끔거렸다니 패치 본인은 그런 적이 없었다. 뭐라 더 말하려던 순간 묘한 웃음을 짓고 있는 대사제가 눈에 들어온 패치는 눈가를 찌푸렸다.

자네 내가 지금 하는 말을 따라 해보게. 혹시 소리가 안 들리면 입 모양을 따라하게.”

당황스러워하던 퍼블리는 고개를 끄덕이며 눈에 잔뜩 힘을 주고 패치의 입을 쳐다봤다.

나는

나는!”

저 대사제에게

저 대사제에게!”

납치당했다.”

도아? , 돌아?”

입모양을 보면서 따라 해도 납치 부분에서 전혀 다른 단어가 나왔다. 뭐가 이상한지 제대로 눈치 챈 패치는 대사제를 노려보며 이 현상에 대해 당장 털어놓으라는 눈빛을 보냈다.

제가 말한 신탁 기억납니까?”

사람 넷을 말하는 대목 말인가, 아니면 여행에 관한 내용 말인가.”

여행에 관한 내용입니다. 정확히는 세계의 정상화와 함께 자신이 어디에서 왔는지 그리고 무엇인지 깨닫기 위한 여행을 떠날 것이라는 부분이죠.”

그게 이 현상과 무슨 연관이 있느냐고 묻기 전에 먼저 말이 이어졌다.

특정한 과거는 당사자들끼리가 아니면 다른 동료들에게 전해지지 않습니다. 저와 패치가 관련된 그 과거는 우리 둘이 당사자이니 당사자끼리는 알지만 그 때의 당사자가 아닌 퍼블리님께 아무리 말해도 방금처럼 전해지지 않는다는 뜻입니다. 그리고 그 특정함의 기준은 신탁의 여행과 관련되어있죠.”

대사제는 여전히 뜻 모를 묘한 미소를 지으며 즐겁다는 어투로 말을 꺼낸다.

, 그 과거는 세계의 정상화, 자신이 어디에서 왔는가, 자신이 무엇인가 이 세 가지 중 하나 혹은 둘 아니면 전부와 연관이 있다는 뜻입니다.”

그 말에 패치의 표정은 순식간에 굳어졌다. 전해지지 않는다면 퍼블리는 저 대사제가 무슨 짓을 저질렀는지 전혀 알 수 없었다. 아무것도 모르는 사람 입장에서는 적의를 보이는 마법사와 능글맞게 웃으면서 다가가는 대사제만 눈에 남는다. 저 녀석을 믿으면 안 된다고 백 번 말해봤자 이유를 모른다. 아무리 말해봤자 이유가 없으면 납득하지 못하는 게 사람의 당연한 심리였다.

패치에게는 두 가지 선택지가 주어졌다.

이대로 떠나 아무것도 모르는 퍼블리를 포함한 다른 한 명도 저 녀석과 다니게 하느냐, 신탁대로 같이 다니면서 끝없이 경계하느냐.

Posted by 메멤
,

시답잖게 말을 빙빙 돌릴 속셈이라면 관두는 게 좋을 걸세.”

천천히 고개를 든 대사제는 이번엔 웃고 있지 않았다. 크게 뜬 눈 가운데 동공이 크게 확장되어 있어 조금 섬뜩하게 느껴질 법했지만 패치는 신경도 쓰지 않았다. 이번엔 얼음 가시 두 개가 찻잔을 들고 있지 않은 손 위로 떠올랐다. 그에 대사제는 크게 뜬 두 눈을 다시 곱게 휘어접었다.

그런 위험한 거 날리면 못 씁니다.”

내 앞에 있는 납치범만 할까.”

까칠한 반응에도 웃음을 짓는 대사제는 눈동자만 굴려 주위를 훑었다. 옆 탁자는 비어있고 계산대를 보고 있던 사람도 돈 계산을 하느라 바빠 보였다.

부정할 자격이 있는 하늘.”

굴리던 눈을 감은 대사제는 창문 너머로 들어오는 햇살을 느끼며 천천히 이어간다.

요정처럼 순수하지만 본질을 잃지 않은 인간.”

천천히 나오는 신탁에 패치도 조용히 찻잔을 내려놓는다.

모든 것을 뒤집고 기다리는 그림자.”

노란빛과 파란빛이 마주쳤을 때 패치는 묘한 느낌을 받았다.

믿음과 확신으로 본질을 덮은 숲.”

순간 패치는 이 세상에 대사제와 단 둘만 남은 느낌이 들어 느리게 눈을 깜빡였다.

이 넷에서 비롯된 이들은 각자 용사, 사제, 마법사, 지도제작자의 역할을 부여받고 세계의 정상화와 함께 자신이 어디에서 왔는지 그리고 무엇인지 깨닫기 위한 여행을 떠날 것이다.”

신전에서 내려온 이후로 단 한 번도 발표되지 않았을 신탁이 어느 이름 모를 작은 마을, 작은 식당, 창가 자리의 작은 탁자 자리에 앉은, 키가 큰 대사제를 통해 세상 밖으로 나왔다.

신탁을 전부 듣고 눈을 반쯤 감으며 내용을 곱씹던 패치는 곧이어 표정을 와락 구겼다.

그래서 거기 신탁에 있는 마법사가 난가?”

역시 눈치가 빠르심다~”

사제는 너고?”

오우! 그것까지 바로 맞추시다니, 놀라워요~”

패치는 그 자리에서 비속어만 안 꺼냈지 듣는 사람이 울고 나갈 법한 350자의 험한 말들을 뱉었다. 물론 듣는 상대가 상대다보니 우는 사람은 없었다.

너무 그렇게 질색하면 저 정말 상처받슴다!”

왜 자네가 대사제가 됐는지 이제야 알겠네. 거기는 이미 자네만큼 제정신이 아닌 녀석들 천지였어!”

험한 말들을 뱉고 나서야 겨우 진정한 패치는 남은 차를 단숨에 넘겼다. 식은 차로 속을 진정시키기엔 들끓는 짜증과 분노는 너무 거대했다. 빈 찻잔을 내려놓은 패치는 그대로 자리에서 일어나 계산대로 가 돈 계산을 하고 바로 밖으로 나갔다.

벌써 여행할 생각이 가득하심까? 역시 행동력은 빨라요~”

안 꺼져!?”

독실한 신자는 신의 말씀을 따라야함다~”

난 신 따위 안 믿는 마법사니 따를 생각 없네!!”

졸졸 따라오는 대사제는 웃는 낯으로 패치의 속을 긁어댔다. 예전처럼 신전 안이었다면 모를까 차마 마을 안에서 마법을 난사해대며 깽판을 칠 순 없는 패치는 빠른 걸음으로 마을 출입구에 다다랐다.

그럼 다른 동료들을 찾으러 갈까요?”

마을을 나서면서 대사제가 그리 물었지만 날아오는 건 얼음 가시 수십 개였다. 이럴 줄 알았는지 대사제는 뒤로 한 발 물러나 마을 안으로 들어갔고 마을 안에다 마법을 냅다 난사하는 꼴이 될 걸 아는 패치는 바로 멈췄다.

한 발짝이라도 나오면 바로 자네 머리로 날아갈 줄 알게.”

에이~ 그런 말을 들으면 누가 나갑니까~”

패치는 대사제를 노려보면서 행동을 살폈다. 저대로 마을에 묶어두고 최대한 멀리 도망칠 생각이었다.

신의 말씀을 따른다 해도 실제로는 저처럼, 아니면 저보다 더 신의 존재를 믿지 않는 이들도 신탁에 목을 매는 이유를 아십니까?”

대사제의 경우에는 신탁의 내용이 패치와 함께 여행한다는 내용이기에 별 말이 없는 경우였지만 그 말대로 높은 자리를 원했기에 본심을 숨긴 이들도 신탁에 목을 매고 있었다. 멀리 볼 것 없이 맨 처음 찾아왔던 홀리가 그랬다.

신탁이란 건 반드시 이루어질 내용이라 그렇습니다.”

믿음 없는 확신이라며 따지기 전에 뒤에서 느껴지는 인기척에 패치가 뒤를 돌아보니 사람이 한 명 있었다. 마을로 들어오려던 사람이었는지 당황한 표정으로 서 있었고 길을 막은 셈이 된 건가 싶어 비키려던 패치는 어딘가 낯이 익는 얼굴에 상대를 빤히 쳐다봤다.

! 역시 옛날에 술집에서 봤던 마법사님이네요!”

그러자 패치의 머릿속에서 바로 떠오르는 기억이 있었다. 꽤 오래전, 술에 취해 신전에 납치당했던 때보다 더 전의 일이었다. 지금은 기억이 안 나지만 그 당시에 무언가 속상한 일 때문에 술을 많이 마셨고 주량이 약한 패치는 당연히 만취상태가 됐다. 취한 상태의 기억은 없었지만 다음 날 다른 이의 입을 통해 그 때 무슨 일을 저질렀는지 알게 됐다.

늦은 밤, 잠들기 위해선 미리 잡아놓은 방으로 가야했지만 앞에 손가락이 몇 개 있는지 구분 못할 정도로 취한 사람이 제 발로 갈 수 있을 리가 없었다. 다행히 뒷정리를 해야 하는 주인 대신 만취한 취객을 선뜻 업어서 방까지 데려다 주려고 하는 사람이 있었다. 자신의 꿈을 위해 밑천을 마련하려고 식당 딸린 이 여관에서 열심히 일을 하던 사람이었다. 마을 내에서 사람들이 착하고 순박하다며 입을 모아 말하던 사람이기도 했다. 여기까지였다면 그랬구나 내지 다행이다로 끝났을 얘기였다.

우부욻!”

안 그래도 취한 상태인데 업혀서 흔들렸기 때문이었을까, 술 많이 마신 손님이 있을 때 화장실에서 들릴 법한 소리가 업히자마자 패치의 입에서 튀어나왔다. 다시 내려놓기엔 이미 늦었으며 뒤집힌 속이 더 빨랐다.

뿌웨에에에엙!!”

그 날의 일을 어찌 잊을 수 있을까. 적어도 기억하지 못하는 패치 대신에 기억하는 사람들이 있었고 말해줄 사람도 있었다. 그리고 그 때 사건의 피해자가 바로

, 안녕하세요.”

얼굴 낯익고 패치를 기억하는 이 사람이었다.

잠깐 당황한 패치는 숨을 조금 가다듬고 인사말을 꺼내려고 했지만 그보다 먼저 둘 사이로 끼어드는 사람이 있었다.

마침 타이밍 좋게 이렇게 딱 만나네요, 기다리고 있었슴다~”

, ?”

갑자기 반가워하며 다가오는 대사제에 상대는 당연히 당황했고 패치 또한 눈썹을 치켜 올렸다.

아는 사인가?”

아뇨, 처음 보는 사이임다.”

그런데 기다리고 있었다니?”

그에 대사제는 기다렸다는 듯이 팔을 과장되게 움직여 정중한 손짓으로 당황하는 상대를 가리켰다.

이 분 또한 신탁의 주인공이자 우리의 동료입니다.”

당연한 수순으로 패치의 표정이 굳어졌다.

Posted by 메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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