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방에는 수정구 말고도 옷과 작은 책, 씨앗이 들어있는 봉투, 뭔지 모를 게 들어있는 유리병들이 있었다. 우선 유리병들만 꺼내 살펴보니 물 같은 게 아닌, 색이 있는 연기가 구름처럼 흐르고 있었다. 온갖 색이 섞여있어 더 설명하기 난해한 이 연기의 정체를 어떻게 파악하고 어떻게 처리할까 고민했지만 정체는 비록 나중이지만 간단하게 알게 됐다. 같이 들어있던 작은 책에 적혀있었다.

 

가만히 있었어도 몇몇은 죽었겠네.”

 

마력 추출. 여러 어려운 말이 적혀있고 풀과 나무, 꽃 등 자연물을 상대로 한다고 했지만 내용을 보면 그냥 제 눈만 가린 꼴이었다. 함부로 처리하기도 힘들어서 창고에 넣어두고 더 자라 책의 내용을 이해하게 됐을 때 덩달아 그 때 사건의 범죄자의 정체와 수법을 알게 됐다. 짐 가방 주인이었던 그 마녀였다.

이유는 몰랐었고 얼마 전에야 알게 됐지만 목적은 단순하고 당연하게 마력이 필요했기 때문이었다. 다만 자연물에서 나오는 한 줌 정도의 마력이 아닌, 마녀나 마법사 하나는 될 정도로 많은 마력이 한 번에 필요했고 그 결과물이 유리병 속의 내용물이었다. 저 병 하나하나에 들어있던 연기는 바로 그 사건에서 죽은 마녀들과 마법사의 마력이었다. 원래 눈에 안 보이는 마력이 저 정도로 압축해놓으니 결국 보이게 된 결과였다.

유리병을 창고로 넣은 이후엔 크게 별 일은 없었다. 마을 마법사들과 마녀들은 의외로 서로에게 별 말이 없었고 가보니 마녀들이 이미 떠난 상태였다. 다만 마을 마법사들은 그 날 이후로 경계심이 심해져 여행 온 마녀는 물론, 다른 마을에서 온 마법사가 올 때에 분위기가 미묘하게 가라앉고 세운 날을 감췄다.

소식지에선 범죄자를 잡지 못했지만 더 이상 같은 일이 일어나지 않는다는 소식이 올라왔다. 그 이후로는 다시 전처럼 생활상식과 소소한 자연 이야기만 올라왔다.

 

시간이 흐를수록 이대로 자라지 않을 줄 알았던 내 키는 생각지도 못하게 쑥쑥 컸다. 맞는 옷들이 없어 곤란해진 때에 이제 내 키가 많이 큰 걸 보고 기특하다는 듯이 웃던 마을 마법사들은 자신들 혹은 다 자란 자식들의 예전 옷들을 꺼내 내게 안겨줬다. 어떤 어른들은 사흘밖에 안 지났는데도 갑작스레 커진 내가 어색했는지 힐끔거리며 보고 있었다.

자급자족에도 한계가 있었기 때문에 키가 큰 이후론 마을에서 잔심부름을 하며 본격적으로 돈을 벌어 모아놓을 수 있게 됐다. 마녀가 가지고 있던 돈이 꽤 많았어도 언젠간 한계를 드러낼 수밖에 없으니 당연한 선택이었다.

 

마을에서 사는 게 어떠니? 매번 이렇게 왔다 갔다 하기 번거롭잖아.”

 

지금 사는 데가 일터랑 더 가까워서 옮길 생각이 없다고 하시네요.”

 

벌써부터 돈 벌 생각을 하다니 기특하기도 하지, 자 이거 먹어라. 한창 클 때 많이 먹어둬야 하는 거야.”

 

나무 다듬이 마법사는 내가 종종 세던 마당 닭 중 하나를 잡아 구워 내게 건넸다. 이렇게나 호의를 보이는 그들에게 웃어주며 아직 그대로 있는 책가게로 눈을 돌렸다. 작은 마을엔 책도 귀하고 하물며 이런 책가게가 있는 건 꽤 운이 좋고 신기한 일이었다. 이 책가게도 책을 판매하기보단 책을 빌려주면서 돈을 받는 식으로 유지해왔다고 했다.

그래서 이 책가게는 철거하거나 책을 뿌리기엔 가치가 마을 내에서 높았고 가치와는 별개로 책을 많이 읽는 마법사는 그리 많지 않아 이대로 두고 일종의 도서관처럼 쓰기로 결정했다는 얘기를 들었다. 그에 난 괜히 무겁게 책들을 들고 왔다는 감상 외엔 든 게 없었다.

덕분에 마을에 올 때 돈벌이 외에 목적이 생겼다. 당연하게도 책가게의 책들을 읽는 거였고 사실상 내 지루함을 없애주는 공신이 되어가고 있었다. 책 읽는 아이가 그렇게 좋은지 찾아와 과자를 주지 못해 안달이 났다. 지금 생각하면 정말 어렸으니 그렇게 평화롭게 지냈구나 싶었다.

 

이제 얼마 안 있음 딸기철이네.”

 

그러고 보니 한 몇 년 전 이맘 때 쯤에 웬 정신 나간 마법사 하나 찾아오지 않았었나?”

 

애 앞에서 말 곱게 써라. 그리고 정신 나간 게 아니라 아파 보이는 거였어.”

 

아니 상처는 없었는데 얼굴은 초췌하고 이상한 말만 하던 마법사가 정신 나간 마법사 아니면 뭔데?”

 

그러, 니까, , , 곱게, , 라고!”

 

끊어지는 단어 사이사이의 등짝 때리는 소리 박자가 귀에 잘 들어왔지만 듣고 싶은 건 이상한 마법사에 대한 거였다. 그에 대해 더 자세히 물어보니 바로 얘기가 술술 나왔다.

 

어느 날 다짜고짜 나타나서 내 팔 붙잡고 흰 색 장미를 들고 간 마녀를 못 봤냐고 묻더라. 장미는 빨간색이라고 제대로 알려줬는데 막 화를 내더니 갑자기 이 집, 저 집 뛰어 들어가 부수고 난리 부려서 나무 다듬이랑 호박집, 늘풀이 이 셋이 그 놈 붙잡고 마을 밖으로 내쫓았지.”

 

흰 색 장미요?”

 

우리가 아무리 장미 본 적 없다 해도 장미가 빨간색이란 건 다 아는데 뻔히 그런 말한 거 보면 아직 회수 중인 야생 장미가 있었나 싶었지. 아마 그거 노린 녀석 같았는데...아무리 생각해도 그 때 제대로 붙잡아 놓고 마녀 왕국에다가 알려야 했던 거 아냐?”

 

그 셋이 겨우 달라붙어 내쫓은 녀석을 어떻게 붙잡아 두려고?”

 

장미와 호수에 대해선 기본 상식으로 알고 있었다. 당연히 장미가 빨갛다는 사실도 알고 있었지만 뭔가 이 내용은 꽤 흥미로웠다. 그냥 장미라고 해도 될 텐데 굳이 하얀 장미라고 한 데에는 이유가 있을 게 분명했다. 아니면 말 그대로 하얀 장미가 존재했거나.

 

완전히 쫓아낸 거예요?”

 

아니. 한 일주일에 한 번은 찾아와서 깽판을 부리다가 어느 순간 뜸하게 오더니 지금 아예 안 오고 있어.”

 

마지막으로 온 게 치트 네가 여기 맨 처음 온 때로부터 1년 전? 아마 그 때쯤이었던 걸로 기억해.”

 

이 마을에 이렇게 얼굴을 익히게 된지 4년은 넘었다. 그 수상한 마법사가 마지막으로 온 게 적어도 5년 전이라는 거였다. 내가 아무 말 없이 생각에 잠기자 또 올까 걱정하지 말라는 소리가 들려왔다. 오히려 내 입장에선 또 왔으면 좋겠다 싶었으니 정말 의미 없는 위로였다.

내가 이 마을에 처음 발을 들인 날로부터 대략 1년 전, 뭔가 묘하게 신경 쓰였다. 그러다 별 의미 없이 고개를 올려 천장을 보다가 퍼뜩 깨달았다.

그 마법사가 마지막으로 이 마을을 찾아오고 사라진 해는 나를 키우던 마녀가 자살한 해였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흥미만 잔뜩 돋았지 당장 뭘 할 수 있는 건 아니었다. 어른들이 설명하는 인상착의를 토대로 어디 있는지 모를 그 마법사를 찾으러 다닐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결국 책을 읽는 걸로 지루함을 없애보려고 했지만 얼마 안 가 한계가 왔다. 그래서 저번에 비해 작은 사건을 한 번 일으켜봤다.

 

저게 뭐야?!”

 

세상에...어떤 미친놈이야!!”

 

나무 다듬이 마법사의 닭들을 전부 마을 입구 바로 옆에 있는 담에다가 매달아 놔봤다. 피투성이의 닭들이 매달려 있는 모습은 썩 보기 좋지 않았고 정작 해놓은 나도 그리 유쾌하진 않았으나 마을 마법사들의 반응이 궁금했다. 누군가의 손을 타지 않는 이상 닭들이 스스로 피투성이가 되어 매달릴 일은 없었으니 이들이 누굴 의심하고 내가 저지른 걸 어떻게 알아낼지 궁금했다.

 

“...일단 진정하지.”

 

어떻게 진정해? 심지어 네 닭들이야!”

 

그래 저 꼴 난 닭들이 내 닭들이니 놀라고 화내는 건 내 몫이야. 그러니까 그만 화내고 진정해.”

 

나무 다듬이가 화난 걸 참으면서도 씁쓸한 표정으로 매달린 닭들을 보고 있었다. 옆에서 성질 급한 마법사 하나가 누가 저랬는지 짐작 가냐고 닦달하듯이 물었지만 고개를 저으며 닭들부터 내려놓기 시작했다. 다른 마법사들도 도우면서 닭들을 아깝다는 눈으로 쳐다봤다.

 

아주 계획적인 미친놈이야. 달걀까지 깨놨어.”

 

마을 마법사들의 분노가 한 차례 더 불타올랐지만 그들은 누가 그랬는지 짐작조차 하지 못했고 단서도 못 찾았다. 며칠간은 열심히 찾거나 새로 닭을 들여와 닭장 앞을 직접 지키더니 얼마 지나지 않아 알람 마법만 해놓고 다시 일상으로 돌아왔다. 이제 그 죽은 닭들은 웬 미친놈한테 발목 한 번 잡힌 거라고 치부하며 얘깃거리로 쓰이고 있었다. 이런 모습들에 나는 당연히 실망했다.

 

강도를 좀 올려볼까?”

 

저번에 마녀들이 찾아왔을 때처럼 근처 숲을 불태웠다. 닭들로 했으니 그렇게 안이했나 싶어 이번엔 과일 따러 간 마법사가 있을 때 일부러 태워봤다. 그제야 이런 일을 저지른 녀석을 잡아다가 찢어죽이겠다며 일어서는 꼴을 보니 우스우면서도 한심했다. 혹시 이대로 또 가라앉나 싶어 조금씩 자극을 해주니 점점 타올라서 내 발자국을 찾기 위해 열심히 돌아다녔다.

 

“...난 말이야. 솔직히 치트가 의심스러워.”

 

야 뭔 소리야? 왜 멀쩡한 애를 의심해?”

 

생각해보면 치트가 온 이후로 일이 벌어졌잖아? 그 마녀 감싸준 것도 치트였고.”

 

드디어 답을 맞힌 마법사가 나왔지만 외부에 가까운 자에 대한 방어적인 배척이 토대라 또 실망감이 가득 차올랐다. 이 짓을 두 번 더 하고 나서야 그만뒀다. 애초에 이런 평화로운 곳에 박혀 살아온 마법사들에게 합리적인 의심과 추리력을 기대하는 건 겨울에 봄꽃을 기르는 것만큼 의미 없는 짓이었다는 걸 깨달았기 때문이었다.

잠잠해진 이후에도 마을 마법사들 중 몇몇은 은근하게 혹은 대놓고 나를 꺼려했고 그런 분위기를 본 나무 다듬이 마법사가 결국 나섰다.

 

아무리 그래도 애를 그렇게 보는 건 스스로도 창피하다고 생각 못하나?”

 

하지만 의심스러운 건 사실이잖아! 우리가 쟤를 의심하기 시작하니까 바로 이런 일들이 사라졌잖아!”

 

게다가 네 닭들을 자주 보던 것도 치트였어!”

 

말은 바로 해야지. 치트를 의심하자마자 사라진 것처럼 말하지 마, 너희가 의심한 후에도 이런 일들이 몇 번 일어났잖아?”

 

너무 재미가 없어서 하품이 나올 지경이었다. 의심하는 이들은 나에게 와서 대놓고 뭐라 하기엔 심증인데다가 증거가 없으니 나를 피하고 의심하지 않는 이들은 다른 이들을 대신해 미안해하며 나에게 더 다가와 갖은 칭찬과 간식을 주기 시작했다.

지루함을 없애기 위해 그래도 뭔가 더 해볼까 하던 순간 흥미로운 손님이 나를 찾아왔다.

 

, 안녕? 혼자 사니?”

 

두드려질 일이 없는 문이었는데 똑똑 소리가 울리자 바로 밖으로 나가보니 본 적은 없었지만 뭔가 모습이 익숙한 마법사가 나를 보고는 조심스럽게 물었다.

 

아빠는 바다에 나가서 일해요.”

 

정말?”

 

. 그러니까 아빠 보러온 거면...”

 

아니 그게 아니라 네 보호자가 정말 마법사니?”

 

그 말에 나는 그 마법사를 빤히 쳐다봤다. 왜 익숙했는지 깨달았다. 본적은 없어도 저 인상은 잘 들어둬서 생생하게 기억했다. 상세하게 설명해준 그 어른들에게 짧게 감사를 속삭였다.

 

일단 들어오실래요?”

 

어느 날 마을에 갑자기 나타나 흰 장미에 대해 묻고 행패를 부려서 쫓겨났다는 미친놈이자 나를 키우던 마녀가 자살한 해에 사라졌다던 마법사.

 

집에 하나뿐인 의자를 양보하고 물을 한 잔 떠와 놓아줬다. 나는 그 사이에 탁자를 두고 의자 높이만큼 쌓아놓은 책 위에 걸터앉았다.

 

고맙구나.”

 

아니에요. 그런데 여기까지 들어오는 마법사는 드문데 무슨 일이세요?”

 

마녀를 하나 찾고 있다.”

 

제 보호자에 대해 물은 것과 같나요?”

 

불과 한 달 전까지만 해도 올려다봤어야 했겠지만 단숨에 커진 키 덕분에 눈을 마주할 수 있었다. 그래도 내 얼굴에서 어린 티는 아직 가시지 않았던 건지 그렇다며 혹시 보호자를 불러주지 않겠냐고 했다.

 

제 보호자는 없어요.”

 

얘야, 농담은 그만하고

 

농담이 아니라 말 그대로예요. 제 보호자는 없어요.”

 

그렇게 대답해주고 이젠 밧줄도 없는 천장에 시선을 돌리니 그제야 내 말뜻을 알아챈 건지 표정이 꽤 복잡해졌다. 뭔가 짜증과 분노, 허망함은 알겠는데 하나는 많이 본 표정이 아니라 알아차리기 힘들었다. 그는 내가 가져다 준 물을 들이키고는 말을 이어 뱉었다.

 

“...그래 결국 배신자도 끝은 다 똑같아, 다 죄책감 아니면 저주에 짓눌려 죽는 거지.”

 

죄책감이랑 저주요?”

 

이번에도 모른 척 하지마라. 그 마녀 아래서 자랐으면 모를 리가 없을 텐데?”

 

죄책감은 학대를 저지른 것 말고도 뭔가 더 있어보였지만 저주는 전혀 생각지도 못한 거였다. 내 반응이 꽤나 솔직하게 다가왔는지 마법사는 도리어 저가 의아하다는 눈빛이 됐다.

 

아무 말 안 해줬어? 그럴 리가 없는데? 죄책감은 물론이고 자기 연민도 강한 녀석이라 그동안 키운 너한테 자기 사정 떠벌리면서 일방적으로 이해해달라며 강요하고도 남았을 텐데 아무 말도 안 했다고?”

 

마녀와 아는 사이가 맞았는지 아주 잘 알고 있었다. 하지만 마녀는 뭔가를 실수로라도 말할까 숨기기 바빴고 말로는 미안하다 했지만 행동은 저 설명대로였다. 실제로도 내가 말을 막 배우기 시작했을 때 뜻 모를 위로만 가르쳤으니.

 

진짜 애 하나 주워가지고 자기위로 속죄라도 하려한 건가? 무슨 생각으로 널 주워서 키운 건지 알고 있니?”

 

항상 목 조르고 동화책만 읽어줘서 잘 모르겠네요. 그보다 궁금한 게 있는데 그 마녀는 왜 찾으러 온 거고 저주는 뭡니까?”

 

혼란에 빠져 뭐라 더 중얼거리던 마법사는 내 말에 정신 차리고 나를 빤히 보더니 미묘한 웃음을 짓고는

 

혼자 사니까 힘들지 않아? 나랑 같이 안 갈래?”

 

그다지 힘들진 않네요. 그보다 저주가 뭔지 말해주시겠어요?”

 

나랑 같이 가면 말해줄게.”

 

뭐가 그리 급한지 웃는 얼굴에 초조함을 가득 담고 대답했다. 저렇게 다짜고짜 말한다면 내가 아니어도 수상쩍어하면서 안 가겠다는 생각을 저 뒤로 밀어 넣고 내 얼굴을 빤히 보는 그를 마주 봐줬다.

 

게다가 혼자 살고 있는 것 같은데 힘들지 않니? ?”

 

고민하는 걸로 보였어요?”

 

?”

 

제가 먹었을 때에 비해서 두 배는 넣었는데 역시 어른이라서 그런가? 멀쩡하네요?”

 

...”

 

내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쓰러지는 마법사와 그 여파로 깨지는 물잔이 참 아까웠다. 그래도 유용한 상대와 흥미로운 정보를 얻었으니 기분 좋게 파편들을 치웠다.

 

토끼들은 금방 죽던데 당신은 마법사니 좀 버티겠죠?”

 

Posted by 메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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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를 끌어안던 손에 힘이 들어갔다. 딱딱하게 굳은 어깨를 보니 얼굴은 굳이 안 봐도 어떤 표정을 짓고 있을지 상상이 갔다.

 

조금 이따가 그 방으로 올래?”

 

울고 흐느끼던 목소리는 사라지고 가라앉은 말만 남기며 마녀는 물러났다. 사태가 일단락이 되었으니 마녀들은 범죄자의 흔적을 찾기 위해 마을 근처를 조사하겠다며 그 자리에서 말한 후 둘로 일행들을 나눴다. 하나는 마을 밖으로 다른 하나는 쉼터로 돌아갔다. 쉼터로 돌아간 이들은 일종의 대기조였다. 나와 대화를 나눈 마녀는 대기조였다.

쉼터로 들어가 둘러보니 다행히 마녀들은 각자의 방 안으로 들어간 것 같았다. 계단을 올라가 가장 끝 구석진 방문 앞으로 다가가 문을 두드렸다. 내가 엿들었든 그 창문의 방이었다. 문이 열리고 눈물 자국이 사라진 마녀가 나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들어오렴.”

 

실례하겠습니다!”

 

역시 혼자만의 비밀이었는지 방 안엔 마녀 외엔 아무도 없었다. 다른 마녀들이 들으면 곤란할 테니 일부러 갇혔던 이 방으로 나를 불러낸 게 분명했다.

 

저 창문너머로 들었던 거니?”

 

.”

 

어디까지?”

 

이번엔 내가 아니라는 것만.”

 

누군가와 대화하는 건 알고 있었지만 제대로 들은 건 그것뿐이었다.

 

왜 그랬니?”

 

이건 좀 예상치 못한 반응이었다. 경계하는 건 물론이고 어쩌면 내 입을 막기 위해 나를 죽이는 상황까지 상상했었는데 지금 반응은 사고를 치거나 무례한 잘못을 저지른 아이를 달래고 타이르려는 어른의 반응이었다. 황당함에 순간 바로 대답이 안 나왔다. 솔직하게 말해달라며 채근하는 말에 머릿속을 정리하고 무난한 반응을 던져봤다.

 

어른들이 책가게랑 쉼터를 못 가게 해서 몰래 와봤는데 꽁꽁 닫힌 창문이 있어서요.”

 

위험하니까 다음부턴 그러면 안 돼.”

 

그 반응에 나 또한 깨달은 게 있었다. 마녀에게 있어서 나는 경계대상은 물론, 죽이면서까지 입을 막을 위험한 존재가 아니었다. 그냥 어린아이였다. 제대로 엿들은 게 없는 버릇 나쁜 어린아이였다. 그걸 깨닫자 문득 떠오른 게 있었다.

 

저를 기르는 보호자와 닮으셨어요.”

 

충동적으로 꺼낸 말이었지만 그만큼 앞의 마녀는 나를 기르던 마녀와 닮았다. 얼굴조차 닮지 않은데다 내 목을 조르고 소리치면서 물건을 던져대지도 않았고 오히려 최대한 부드럽고 조심스럽게 말하고 있는데도 닮았다는 생각이 떠나지 않았다.

 

너희 아빠도 그런 걸 보면 걱정을 많이 끼쳤었나 보구나. 그러면 안 되지.”

 

상대가 어려서 위협거리조차 안 된다고 생각하는 게 너무나도 닮았다. 거기에서 차이점을 짚자면 나를 기른 마녀는 위협이 안 돼서 마음껏 폭력을 가했고 내 앞에 있는 마녀는 위협이 안 돼서 이렇게 타일렀다.

 

그리고 기른다고 하는 게 아니라 키운다고 하는 거야. 의미는 같지만 기른다고 하는 건 보통 가축한테 쓰는 거니 느낌이 좀 그러니 이젠 주의하렴.”

 

신기하면서도 웃겼다. 내가 아직 어른이 되어본 적이 없어서 그런지 그런 그들이 너무 웃기기만 했다. 키가 커진 만큼 아래를 못 보게 되는 걸까 아니면 고개를 숙여볼 생각을 못하는 걸까. 경계할 가치조차 들지 않는 어린애가 책가게의 주인을 죽이고 저를 궁지로 몰아붙였다가 건져준 걸 저 마녀는 영원히 모를 거고 실제로도 그러했다. 너무나도 웃긴 동시에 즐거웠다.

한순간에 지루함이 가시고 기분이 좋아졌다. 환하게 웃어주며 알겠다고 고개를 끄덕이니 한결 더 부드러운 미소를 짓는다. 사실 준비해놓고 아까 던져본 말로 포기한 게 있었다. 하지만 마녀가 생각보다 훨씬 더 마음을 놓아버려 매우 유용하게 됐다.

 

친절하고 좋은 어른한테 주는 선물이에요!”

 

얇고 긴 끈을 달아놓은 작고 동그란 가죽 공이었다. 흔들면 찰랑찰랑 안쪽에서 물이 흔들리는 소리가 난다. 가죽에는 꽃잎 물을 들여 색도 향도 꽃이었다. 마녀는 그 공처럼 눈을 동그랗게 뜨더니 웃으면서 받아 목에 걸었다.

 

예쁜 선물 고맙구나.”

 

마녀와 몇 마디 더 대화를 나누곤 작별인사를 하며 나왔다. 시간을 보아하니 이제 마녀들끼리 교대를 할 때가 됐다. 내가 나온 지 얼마 지나지 않아 방금까지 대화했던 마녀를 포함해 남아있던 마녀들이 밖으로 나갔다.

집에 있었던 책들은 마녀왕국에 있을 법한 책들이 꽤 많아 무작정 외우기만 했지 이해는 안 된 마법들이 많았고 그만큼 굉장한 마법들이 많았다. 구성을 이해하면 훨씬 더 편하고 마법 자체도 변형할 수 있었다. 실제로도 좀 더 자라고 머리도 더 돌아갔을 때 기본부터 다시 익혀 구성을 이해하려고 노력했으니 말이다.

다만 이 땐 말 그대로 전부 다 외웠다. 종이에 적힌 그대로 다른 데에다 똑같이 옮겨 적을 수 있을 정도로 외웠고 마법자체는 마법진 혹은 주문식에 마력만 불어넣으면 발동이 되는 거였다. 그 마법들의 마법진과 주문식을 전부 다 외운 나는 그 모든 마법들을 쓸 수 있었고 주문식보다는 마법진이 더 잘 맞았다. 마침 내가 본 책에는 원격으로 마법을 일으키는 마법진이 있었고 당연히 그 마법 또한 외웠다.

마녀에게 준 가죽 공 안쪽엔 원격 마법진이 새겨져 있었다. 하지만 그 누가 어린애가 원격 마법진을 새겨 넣을 거라 생각하겠는가. 거기에 더해 마녀는 나와 대화하느라 목에 걸어둔 걸 잊었고 그대로 교대 탐색하러 밖으로 나갔다. 탐색이어서 뿔뿔이 흩어져도 기본적으론 두 명이서 함께 다니는 듯 했지만 그래봤자 소수라는 건 변하지 않았다.

다시 나무 다듬이 마법사의 마당으로 돌아와 거기 있는 닭들을 열 번 정도 셌고 이정도면 됐겠지 싶어 어제도 썼던 작은 불을 일으키는 마법을 썼다. 원격 마법 또한 발동 됐다. 덧붙여서 밝히자면 그 가죽 공 안에 든 건 기름이었다.

 

 

 

아니 어제도 그렇고 누가 이렇게 불을 지르는 거야?!”

살해범이 날뛴다더니 여긴 방화범이 날뛰고 있네!”

 

불이 붙자마자 나무로 넘어졌던 건지 저 멀리서 연기와 함께 주황빛이 아직 새파란 하늘을 물들이고 있었다. 마을 마법사들이 기겁을 하며 어제 물마법을 가장 잘 다뤘던 마법사를 앞세워 물통을 들고 달려 나가기 시작했다.

이 틈에 나는 바로 책가게로 달려갔다. 어제처럼 그림자에 숨어 뒷문 쪽으로 가보니 불을 끈 후에 시신만 수습하고 전부 내버려둔 건지 문이 그대로 열려있었다. 겨우 의심 가는 마녀를 잡아뒀다고 이렇게 허술하게 뒤처리도 안 하다니 내 입장에선 참 고마웠다.

그을음이 가득한 바닥을 밟으며 안으로 들어갔다. 어른들이 다시 돌아와서 내가 여기 들어온 걸 발견해도 딱히 걱정은 안 됐다. 호기심 때문에 들어왔다고 울먹이며 시무룩해하면 잔소리 몇 마디 외엔 의심조차 안 할 테니 걱정이 들래야 들 수가 없었다. 이렇게 생각하니 어린애로 있는 건 이런 면에서 참 편하구나 싶었다.

 

.”

 

그을음이 안쪽까지 번져있었지만 책들은 전부 멀쩡했다. 대신 물에 젖어 구겨진 책들이 꽤 있었다. 흥미 안 가는 책들이 대부분이라 정말 이거 밖에 없나 싶어서 좀 더 안쪽으로 들어가니 겹쳐진 책장이 보여 밀어보았다. 그러자 안에 가려져 있던 새로운 책들이 나타났다. 역시 귀한 건 한 번 정도는 다른 걸로 덮는구나 생각하며 물 젖은 흔적도 없이 귀하게 보관된 그 책들의 제목들을 쓸어보았다.

대부분이 유용한 생활상식 보단 더 전문적이고 귀한 마법이론 책들이었다. 그중에서 그나마 흥미로운 책들 네다섯 권 챙겨들은 나는 밖으로 나와 다시 그림자 아래로 숨어들어가 마을 분위기를 살폈다. 바깥으로 전부 나갔는지 매우 조용했다. 혹시 누구 하나라도 아직 집에 있을까 싶어 마을 한 가운데로 나가진 않았다. 바깥은 숲에 번진 불 때문에 소란스럽지만 마을은 조용하다. 이 대비되는 고요가 참 마음에 들어 아주 예전에 동화책에서 읽었던 구절을 흥얼거렸다.

 

요정들은 작지만 욕심이 커 짚담에 큰 구멍을 만들어 아이들도 따라 구멍으로 드나들고

 

마을을 벗어나 불이 꺼져 탄 자국이 가득한 숲으로 발을 들였다. 저 멀리서 아직까지 불을 끄고 있는지 소란스러움이 가득했지만 상관없었다.

 

요정의 뒤를 따른 아이들은 온갖 신비로운 환상들을 보게 되고

 

안으로 들어갈수록 소리들은 옅어지고 탄내가 짙어졌다. 그림자가 필요 없을 정도로 까맣고 조용해 검은 글자 가득한 책 속에 들어온 느낌이었다.

 

신이 나서 이리저리 돌아다니다가 정신을 차려보니.”

 

저 앞에 나무가 아닌 뭔가가 있었다.

 

길을 잃었답니다.”

 

가장 먼저 보인 발이 주위의 나무처럼 까맸다.

 

하지만 전 밖에서 살아서 길을 잃지 않아요.”

 

검은 발이 점점 바스러지더니 탄 자국이 가득한 짐 가방을 제외하면 모든 게 사라지고 있었다. 검은 재들이 전부 사라지고 남은 건 처음보고 이름 모를 꽃 한 송이였다.

 

거기에다가 전 오늘 운이 너무 좋네요.”

 

단 둘이 방에서 얘기할 때 얼핏 본 그 짐 가방을 들어올렸다. 그을음이 묻었지 가방 자체가 탄 게 아니었다. 안쪽에서 뭔가 시끄럽게 웅웅거렸다.

 

[무슨 일...!! 이거 왜....!!!]

 

두 손으로 꺼내 들어야할 정도로 커다란 수정구에서 소리가 들렸다. 하지만 고장이 났는지 안쪽이 희뿌옇고 소리가 끊겼다. 쓸모없겠구나 싶어 꽃 있는 데로 던져줬다. 쨍강 깨지는 소리와 함께 조용해졌다. 수정구를 꺼내니 자리가 넉넉하게 비어져 그 안에 들고 있던 책을 넣고 맸다.

 

재미없네.”

 

오늘은 운이 너무 좋은 날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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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은 불을 일으키는 마법을 쓰면서 책가게의 책들을 떠올렸다. 보는 순간 저 정도면 얼마나 지루하지 않을까 싶을 정도로 많았지만 책등에 써져있던 기본생활 상식이나 누구나 먹을 수 있는 열매 찾기 같은 문구 때문에 금방 흥미가 식어버렸다. 열매는 이미 토끼들을 통해 알아냈고 생활 상식은 소식지에 어떤 풀을 같이 넣으면 빨래 얼룩이 금방 빠진다는 식으로 항상 제보됐다.

지루함이 목 끝까지 차오르는 느낌에 그대로 숨을 멈추면 지루함이 사라질까 호기심이 일기까지 했다. 이때까지는 단순히 아픈 게 싫었으니 당연하게도 아픔을 감수할 생각이 없었다.

그렇게 지루함에 잠겨 말라죽어가고 있을 때 계기는 의외의 곳에서 충동적으로 다가왔다. 소식지가 오랜만에 다른 소식을 담아왔다. 자연의 경이나 소소한 생활지식들 대신 어떤 사건이 꽤나 심각하고 진중한 단어들과 함께 적혀있었다.

내용은 마녀왕국에서 연쇄적으로 살인이 일어난다는 거였고 시신의 상태가 상당히 이상하다는 내용이었다. 어딘가 찔린 데도 없고 맞아서 멍든 데도 없는데다 마법을 쓴 흔적도 없다는 얘기였다. 얼핏 보면 단순히 잠든 걸로 보일 정도로 상태가 멀쩡해 흔들어 깨우려고 하기 전까진 자고 있는 줄 알았다는 얘기들도 상세하게 적혀있었다.

이상한 상태는 바로 시신이 그대로 남아있다는 거였다. 바람이나 물, , 꽃으로 변하지 않고 그대로 남아있다는 게 문제였다. 왕궁 마녀들이 조사한 결과 시신에게서 자연으로 돌아갈 만큼의 마력이 남아있지 않다는 사실을 알아냈다. 즉 빈껍데기나 마찬가지라는 얘기였다. 왕궁 마녀들은 범죄자가 누군지 알아내기 위해 열심히 뛰어다니고 있으니 안심하라는 말을 남겼지만 그 누가 안심할 수 있을까. 지금 마녀왕국은 난리가 났다는 소식이 마지막으로 이 사건의 내용은 끝이 났다.

확실히 심각한 사건이라는 건 알겠지만 실감이 안 가 감흥이 없었다. 이런 건 이렇게 글로 읽는 것보단 천장에 걸린 밧줄을 보는 게 더 실감이 나는 것 같아 천장을 올려다보며 생각에 잠겼다. 상처도 마법 흔적도 없이 잠든 것처럼 마력이 전부 사라진 채 죽은 마녀들. 그러다 문득 든 생각은 이랬다.

과연 마녀들만 당한 걸까?

마녀들이 왕국에 뭉쳐있는데다 따로 조사하는 마녀까지 있어서 빠르게 얘기가 퍼진 게 아닐까?

그렇다면 마법사들은?

마법사들이, 그리고 내가 당할까봐 걱정되는 게 아니었다. 어떻게 아무런 흔적도 없이, 마력을 전부 없애면서 연쇄적으로 일을 저지를 수 있는지 궁금했고 만약 마법사들도 당했다면 이 소문을 이용할 수 있지 않을까 싶었다. 쉽게 구할 수 있는 소식지인 만큼 마을 마법사들이 이 사건을 모를 리는 없을 테고 한동안 마녀들이, 넓게 잡으면 외부 마법사들이 마을에 들린다면 자연스럽게 그들을 경계할 테고 무슨 일이라도 벌어진다면 가장 먼저 의심받는 건 그들일 게 분명했다.

 

마법사 하나만이라도 같은 수법으로 죽어줬음 좋겠는데.”

 

주변에 어른이라도 있었다면 바로 끌려가 정신머리를 고친답시고 도덕교육을 가르쳤겠지만 이 집엔 나 혼자뿐이었다. 마녀가 일찍 사라져서 정말 편하고 다행이었다.

직접 말하면서까지 바랐던 상황은 정말 이루어졌다. 사건이 터진지 얼마 지나지 않아 같은 사건이 일어났다. 이번엔 마녀왕국에서 살고 있던 마녀가 아닌, 왕국 근처의 마을 마법사가 피해자였다. 즉 범죄자는 마녀왕국을 탈출한데다 이제 잡히기가 더 어려워졌고 이제 피해 대상이 마법사들도 본격적으로 경계하기 시작했다는 얘기였다. 동화에서 흔히 나오는 착한 아이의 소원을 이루어주는 요정은 절대 없다는 걸 확신하며 신난 기분으로 그 때 잡힌 토끼의 숨을 단번에 끊어주었다.

여행 온 마녀나 다른 마을에서 온 마법사가 언제 마을에 잠시 들릴지 모르니 소식지를 읽은 이후로 하루에 한 번씩은 마을에 갔다. 근처에 호수도 없어 어른 밖에 없는 작은 마을에 어디서 왔는지 모를 아이가 빨빨거리며 돌아다니는 모습이 제법 귀여웠는지 상냥한 어투로 말을 걸거나 설탕 뿌린 빵을 주곤 했다.

그들이 준만큼의 기대에 맞게 웃어주니 단 것들 말고도 장난감까지 받게 됐었다. 어디에 쓰는지 모를 방울달린 막대를 이리저리 흔들며 마을을 한 바퀴 돌아다니니 어른들 표정이 저렇게 좋을까 싶을 정도로 풀어진 웃음을 띠고 있었다. 어쩐지 인형극의 재롱부리는 인형이 된 것 같아 기분이 썩 좋진 않았지만 꾸준히 마을로 온 결실이 맺어졌다. 대 여섯 명의 마녀들이 그 마을을 방문했다.

가장 힘이 좋아 마을 대표를 맡고 있는 나무 다듬이 마법사의 집 앞에 모두 모여서 그와 얘기를 나누고 있었다. 마당 닭들을 구경하는 척 하며 그들 근처에 서서 하는 말들을 들어보니 그들은 범죄자를 찾으러 나온 왕궁 마녀였고 왕궁에 멀리 떨어져있는 마을들 중 하나를 무작위로 골라서 왔다고 했다.

 

꼬마야 여기 사니?”

 

마녀들 중 한 명이 내가 신경 쓰였는지 말을 걸었다.

 

아니요, 전 다른 데서 살아요!”

 

혹시 수상한 마녀나 마법사 못 봤니? 딱 봐도 뭔가 이상하다 싶은 느낌이라도 좋아.”

 

나는 고개를 저으며 모른다고 했다. 누굴 찾느냐고 물으니 위험한 마녀 혹은 마법사를 찾는 중이고 조금이라도 수상한 모습을 보이면 바로 주변 어른들에게 도움을 요청하거나 자신들에게 달려오라 주의를 주며 내게서 관심을 껐다. 나 또한 흥미를 잃었다는 얼굴을 한 채 다시 닭들에게 시선을 돌렸다.

범죄자를 목격한 이들이 있는 것 같았지만 모두들 설명하는 인상착의가 제각각이고 공통점이라곤 딱 봐도 수상하게 생겼다, 느낌이 이상하다 같이 누구나 그렇게 느낄 법하고 별 도움이 안 되는 정보 외엔 없어서 이렇게 돌아다니면서 피해사례가 또 있나 확인하고 있는 게 그들의 일이라고 했다.

나무 다듬이 마법사는 마을 마법사들에게 말해두겠다며 마녀들을 쉼터로 안내했다. 닭 보는 걸 그만두고 그들을 보니 마법사와 마녀는 확연히 다르다는 걸 느끼게 됐다. 생김새는 비슷해도 옷을 입는 모양새나 어투, 사소한 행동과 느낌 자체가 완전히 달랐다. 같이 살았던 마녀가 살아있었을 때는 생각해본 적도 없었지만 이렇게 직접 비교할 수 있는 상황이 되니 하얀 종이 위에 검은 점처럼 자연스럽게 눈이 갔다. 마을 마법사들도 이번에 온 마녀들을 경계하면서도 호기심이 드는지 쉼터로 향하는 마녀들을 힐끗 눈을 굴려 보고 마녀들은 눈길도 주지 않는 걸 보면 그런 시선들이 꽤 익숙해보였다. 쉼터로 들어가 모습들이 보이지 않게 되자 마법사들은 그들에 대해 떠들기 시작했다.

 

마녀 보는 건 처음이야. 마법사랑 다르면 얼마나 다를까 했는데 엄청 다르네?”

 

옷 모양새가 신기하더라. 색도 진하고 다양해.”

 

그런데 이 먼 데까지 그 범죄자가 올까?”

 

머니까 더더욱 오겠지.”

 

대부분 이런 얘기들이었다. 이번엔 호기심 가득한 아이처럼 다가가 이것저것 물어볼까 고민하며 쉼터 가까이로 갔다. 문을 열려던 도중 옆쪽에 기척이 느껴졌다. 마법사 하나가 쉼터 벽에 기대 앉아있겠거니 하고 넘기기엔 느낌이 굉장히 묘했다. 고개만 내밀어 벽 옆을 보니 아까 들어갔다고 생각했던 마녀 중 하나가 창백한 안색으로 주저앉아있었다.

 

누구야?”

 

날선 표정으로 돌아봤지만 나와 눈이 마주치고 곧바로 표정이 풀어졌다.

 

미안하다 얘, 여기까지 오느라 제대로 못 쉬었거든.”

 

왜 쉼터에 안 들어가고 여기서 쉬어요?”

 

난 시선 많은 건 힘들어하는데 쉼터에도 시선이 있으니 좀 괜찮아지면 들어갈 거야.”

 

내가 어린아이라서 그런지 경계도 누그러졌다. 전부가 익숙한 건 아니었던 거구나라고 넘기기엔 지치거나 힘들어서 안 좋은 안색이 아니었다. 독 든 열매 먹은 토끼의 안색이 저랬었다. 왕궁 마녀라고 해도 아픈 마녀가 왕국 밖으로, 그것도 마녀들과 마법사들 죽인 범죄자를 잡으러 나왔다는 게 참 이상했다. 물론 이걸 직접 말하진 않고 아파 보이는데 괜찮은 건지 묻는 걸로 한 번 찔러보았다.

 

이제 좀 괜찮아졌어. 그보다 위험하고 나쁜 마녀가 돌아다니니 너도 얼른 집에 가야지?”

 

그리 대답하고는 쉼터로 들어갔다. 방금 마녀의 말 덕분에 오늘 굳이 들어가서 이것저것 물을 필요가 없어졌다. 마녀들은 범죄자를 마녀로 확정하고 있었다. 그리고 어째선지 인상착의도 모른다고 했다. 저들은, 혹은 적어도 방금 대화를 나눴던 마녀는 숨기고 있는 게 있다는 건 확실했다.

나무 다듬이 마법사도 집으로 돌아가는 걸 확인한 나는 아직 밖에 있는 마을 마법사들에게 인사한 후 마을 밖으로 나가는 척 하면서 담 그림자에 몸을 숨겼다. 주머니에서 기름과 다 쓴 종이를 넣은 병들을 꺼내 살펴봤다. 이상은 없었다. 이 순간 내 머리가 검다는 게 다행이라고 여기며 병들을 들고 저번에 찾아갔던 책가게의 뒷문으로 갔다. 뒷문 바로 앞에 병들을 두고 물러났다. 같이 준비해둔 마른 풀들 한 줌을 책가게 앞문에다가 던져놓고 불을 일으키는 마법을 사용했다. 비록 작은 불이지만 풀에 붙으니 연기를 일으켰다. 안쪽에서 우당탕 넘어지는 소리와 함께 뒷문이 열렸다.

 

왜 가게 앞에 연기가

 

뒷문이 열림과 동시에 병들에도 같은 마법을 일으켰다. 뒷문으로 나온 책가게 주인이 바로 아래 병을 밟자 바로 깨지면서 불꽃이 바로 터져 나왔다. 비명소리와 함께 불길이 책가게 안으로 흘러들어갔다. 마녀들도 쉼터로 돌아갔고 슬슬 해가 질 때라 집으로 들어가려고 했던 마법사들과 이미 들어간 이들 모두 비명소리에 놀라 뛰쳐나왔다.

어디서 난 소리인가 궁금해 하는 이들 가운데 연기가 일어나고 있는 책가게를 발견한 이들이 깜짝 놀라 불이 났다며 큰 소리로 외쳤다. 네 번 정도 소리쳤을 때 저 멀리서 물 양동이를 들고 달려오는 마법사들이 보였다. 그 외에 물 마법에 능숙한 편인지 바로 달려가서 물을 뿌리는 마법사도 있었고 어떡하냐며 발만 동동 굴리는 이도, 멍하니 연기를 보는 이들도 있었다.

이렇게 소란스러운 상황은 처음 봤지만 시끄러워서 그다지 달갑진 않았다. 상황이 어떻게 끝날지 보고 갔다간 집에 도착하는 건 한밤중이 될 것 같아 내일 아침 일찍 와서 상황을 살펴보자 생각하며 조심스레 마을 밖으로 나갔다. 모두들 책가게로 달려가느라 그림자 밖에 나온 나를 아무도 발견하지 못했다.

 

다음 날 마을로 가보니 내가 어느 정도 예상한 상황 둘과 예상 못한 상황 하나를 맞닥뜨렸다. 예상한 상황들은 책가게 주인이 죽는 것과 때마침 마을에 방문한 마녀들이 더욱 경계 섞인 시선을 받게 된다는 상황이었고 예상 못한 상황은 경계와 의심을 넘어서 거의 확정 취급을 받고 있는 마녀가 하나 있다는 거였다. 그 마녀는 어제 쉼터 벽에 기대서 나와 얘기를 나눈 마녀였는데 같이 쉼터에 들어가지 않았던 그 짧은 순간이 의심스럽다는 얘기였다.

 

그래, 왕궁 마녀들이 이런 먼 데까지 올 리가 없지!”

 

아무리 도망치는 범죄자라고 해도 여기까지 왔겠어?”

 

책가게 주인은 불에 타 죽었고 가게 내부가 일부 타긴 했지만 가게 안에서부터 일어난 화재가 아닌데다 정확한 증거도 없는 상황이었지만 마을 마법사들의 경계와 불안함은 그런 불완전한 것들을 전부 짓누르고 있었다. 마을 대표자의 입장에 있는 나무 다듬이 마법사는 다른 이들에 비해 증거가 없고 화재상황이 이상하다는 점에서 무작정 따지진 않았지만 은근한 눈치를 줬고 그 결과 의심 받는 마녀는 지금 쉼터의 방 밖으로 나가지 못하고 갇혀있었다. 감옥이라는 게 없는 작은 마을에선 그 정도 감금이 최선이었다.

 

애기야, 위험한 마녀들이 있으니까 얼른 집으로 돌아가렴.”

 

몇몇 마을 마법사들이 나를 걱정스러운 눈으로 바라보며 책가게와 쉼터를 등지고 섰지만 소용없는 일이었다. 마당 닭들 구경하러 왔다는 얘기면 충분했다. 나무 다듬이 집으로 달려가는 나를 걱정하는 눈빛들도 얼마 안 가 바로 사라졌다. 닭 구경하러 온 아이를 걱정하는 것보단 저들끼리 떠드는 게 더 급했기 때문이었다.

닭들을 구경하며 주위 마법사들의 시선이 돌아가는 때를 노리고 시선이 전부 사라졌을 때 천천히 일어나 나무 그늘 아래로 갔다. 내가 움직이는 걸 발견해도 햇빛 때문에 그늘로 갔구나 생각할 게 훤했다. 모이 쪼던 닭들이 하나 둘 줄어들고 닭장 안의 달걀들을 품으러 가는 걸 마지막으로 보고 나무 그늘들 아래로 움직이면서 쉼터 가까이로 다가갔다.

쉼터의 창문들을 살펴보니 2층 가장 구석진 창문이 커튼까지 쳐져 꽁꽁 닫혀있는 게 보였다. 마침 가까이에 굵은 나뭇가지들이 창문 가까이 뻗어있어 만약 뭣 모르고 열었다간 유리가 긁힐 테니 저기에 감금해둔 게 분명했다. 나무를 타는 건 열매 따느라 익숙했다. 물론 처음에만 그랬고 아래에서 돌 날려서 떨어뜨리는 게 훨씬 안전하다는 걸 깨달은 터라 나무를 탄지는 꽤 되어 오랜만이었지만 별 어려움 없이 올라갔다. 나뭇가지들이 굵은 덕분도 있었다.

 

“.............”

 

울음 섞인 목소리가 들려왔다. 누군가 한 명 더 있었는지 좀 더 차분한 목소리가 들려왔지만 너무 작은데다가 울리는 느낌이라 이상했다. 자세히 듣기위해 창문 가까이 붙었다.

 

어떡하......?..끊지마!”

 

내용이 제대로 들릴 때쯤에 차분한 목소리는 더 이상 들리지 않았다. 대신 우는 소리가 더 커졌다. 듣기 싫었던 나는 중요한 얘기가 나올 것 같지도 않은데 그냥 내려가버릴까 고민했지만 곧이어 들린 말에 미소 지었다.

 

이번엔 정말 내가 아니란 말이야!”

 

 

마녀의 상황은 순식간에, 단순하게 해결됐다. 쉼터 앞에서 떠드는 마법사 무리 하나 붙잡고 그 마녀의 인상착의를 말하며 어디 있는지 물어봤다. 마법사들은 얼굴이 굳어지며 그 마녀는 왜 찾냐며 역으로 물었지만 나는 아무것도 모른다는 얼굴로 태연하게 말했다.

 

어제 집 가기 전에 쉼터 벽에 기대어 있는 거 봤어요! 저랑 얘기 나누고 바로 안으로 들어갔는데 그 때 너무 아파보여서 아직도 걱정 돼요!”

 

순진하고 아무것도 모르는 어린아이의 말 한마디가 증거불충분과 이상한 상황보다 효과적이었다. 감금은 풀렸고 험담하던 마법사들은 입을 다물었으며 나무 다듬이 마법사는 사과를 했다. 마녀들은 사과를 받아들이며 속모를 눈빛으로 나를 힐끔 쳐다보고 있었다.

 

고마워, 정말 고마워! 네 덕분에 오해가 풀렸어!”

감금에서 풀려난 마녀는 엉엉 울며 나를 끌어안았다. 고마운 건 진심이었겠지만 이렇게까지 안는 건 주변 시선에 보여주기 용이었는지 힘 자체는 약했다. 그에 맞춰 나도 끌어안은 팔 아래로 손을 뻗어 위로하는 척 등을 토닥였고 마녀의 귀에만 들리게 속삭였다.

 

이번엔 내가 아니라는 건 무슨 뜻이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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