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론 퍼블리는 그 말을 대놓고 꺼낼 정도로 눈치가 없는 건 아니었기 때문에 웃음으로 말을 삼켰다. 다시 만나게 된 마법사는 흐릿해도 이렇게 직접 보면 바로 기억날 정도로 얼굴도 행동도 인상적인 마법사였다. 퍼블리도 반가운 마음이 들었지만 그보다 먼저 앞서나온 건 당황스러움과 어색함이었다. 원래 이런 마법사였나 싶어 흐릿한 기억을 열심히 더듬어 봐도 서로 투닥거리거나 아빠한테 엉기던 일들 밖에 없었다. 상대방은 이런 퍼블리의 생각을 아는지 모르는지 비유가 아닌 느낌으로 따뜻하게 느껴질 정도로 호의적인 눈빛을 보내고 있었다.
“저...음...그러니까....”
“편하게 말씀하십쇼~”
“...이름이?”
그렇게 말한 퍼블리는 민망함이 가득한 얼굴을 푹 숙였다. 마법사는 여전히 웃는 낯을 지우지 않은 채 제 이름을 말했다.
“치트임다~”
막상 이름을 들어도 어찌 불러야하나 고민하던 퍼블리는 치트씨라고 불렀다. 그에 좀 더 편하게 대해도 된다는 말이 돌아오지만 아직 퍼블리에겐 거리감이 있었다. 물어보고 싶은 게 많았지만 너무 많아 입 안에서 꼬이고 있었다. 여긴 어디인지 왜 자신을 여기로 데려오라고 왕궁 마녀에게 시켰는지를 우선으로 물어보려고 했지만 정말 예상 못한 상대를 만나 퍼블리의 머릿속은 가면 갈수록 혼란스러웠다. 결국 튀어나온 말은
“저희 아빠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세요?”
예전에 이런 비슷한 일이 있었다. 정말 우습게도 이번엔 상대방이 반대가 되었다. 예전엔 아빠한테 구애했던 아저씨에 대해 묻고 지금은 구애했던 아저씨한테서 아빠에 대해 묻고 있었다. 질문 이후로 여기가 물속이 아닌데도 가라앉은 것만 같은 분위기에 퍼블리는 조용히 눈물을 삼키며 이 방에 없는 창문을 만들어내서 창문 밖으로 뛰어내리고 싶다는 생각을 하고 있고 상상 속의 퍼블리가 다섯 번쯤 뛰어내렸을 때 대답이 들려왔다.
“사랑합니다.”
퍼블리가 천천히 고개를 들었다.
“여전히, 아니 그 때보다 훨씬 더 사랑하고 있습니다.”
분명 창문이 없는데도 햇살이 그의 얼굴을 쓰다듬는 것처럼 환해보였다.
“끝냈어.”
그 위로 약새풀의 냉기를 몽땅 머금은 것 같이 냉랭하고 딱딱한 얼굴이 겹쳐졌다.
“그 집을 떠난 그 날. 내가 끝냈지.”
뭐라 설명하기 힘든 복잡한 마음이 퍼블리의 속을 울리고 있었다. 안타깝다기엔 둘이 이어지는 건 상상해본 적 없고 바란 적도 없었다. 그렇다고 마법사가 받아들이지 않고 떠난 게 다행이라고 생각한 적도 없었다. 전자는 말 그대로 상상해본 적도 들은 적도 없었고 후자는 남겨졌을 때가 상상되는 두려움이었고 지금 퍼블리도 애써 부정하고 있었지만 조금씩 느끼고 있는 두려움이었다. 조금 머리를 들이민 우울함과 함께 머리가 차분해지는 걸 느낀 퍼블리는 천천히 궁금한 것들을 꺼내기 시작한다.
“여긴 어디예요?”
“구체적인 장소를 묻는 거라면 여긴 신성지대와 마녀 왕국 중간에 있는 숲임다. 나무들이 험하게 자라 이동 마법으로만 들어올 수 있는 곳이죠.”
“왜 저를 여기로 데려온 거예요?”
“저번에 모드양에게 왕국을 나온 어린 마녀에 대해 들었는데 인상착의 듣고 혹시나 했거든요~ 퍼블리님 머리색이 흔한 머리색은 아니잖슴까?”
“...님은 빼주세요.”
그 말에 치트는 그저 웃기만 했다. 어색함에 더더욱 거리감이 느껴진 퍼블리는 마주 웃으면서 눈을 꾹 감았다. 정말 이런 마법사였나?라는 생각이 아까부터 계속해서 들고 있었다. 예전에는 아무리 싫어했어도 붙어있는 게 어색한 느낌은 안 들었는데 어째선지 지금은 얘기를 나누기만 했는데 어색해도 너무 어색하게 느껴졌다. 그의 행동이나 말투가 어색한 건 아니었다. 오히려 이게 진짜 모습이라는 듯이 자연스러웠다. 다만 기억 속의 모습과 다른 건 무척 낯설게 다가왔다.
“궁금한 게 많으신 것 같지만 안타깝게도 저도 시간이 그리 많지 않은 편이라 먼저 제 얘기를 들어보시겠습니까?”
퍼블리가 어색함을 누르고 있을 때 방금까지와는 다르게 익살스러움을 뺀 목소리가 잔잔하게 퍼블리에게 다가가고 있었다. 순간 어색함이 가신 퍼블리가 반사적으로 고개를 끄덕이자 어디서부터 얘기하면 좋을까 톡톡 손가락으로 책상을 두드리며 운을 떼던 치트는 눈을 한 번 깜빡이고 손가락 끝으로 시선을 돌리며 입을 열었다.
“어느 날 밤에 있었던 일이었습니다. 갑자기 사라진 패치를 찾으려고 밖으로 나왔는데 다행히 발자국이 남아있어 쫓아가보니 호수 앞에 멍하니 서있던 패치가 기억납니다. 전 그 때 첫눈에 반했죠.”
갑자기 사랑에 빠진 일화를 꺼내기 시작했다. 하지만 그것보다 더 퍼블리의 관심을 끈 단어가 있었으니
“호수가 있었어요?”
“조금만 걸으면 바로 나오는 호수가 있었죠. 물이 굉장히 맑아서 거울처럼 하늘을 비출 정도였는데 그만큼 깊어서 어렸던 퍼블리님은 안 데려갔을 검다. 낮에도 아름다운 장소였는데 밤에는 빛까지 비춰서 정말...말로 표현하기 어려울 정도였죠. 정보를 모으고 정보를 파는 제가 모르는 아름다운 장소는 참 찾기 힘든데 남아있었다니...”
치트는 그 날 느꼈던 전율을 설명하고 싶었지만 설명으로 표현될 게 아니었기에 바로 다음 이야기를 꺼냈다. 다음 이야기라고 해봤자 퍼블리도 알고 있는 내용이었다. 마법사들에겐 색이 예쁜 천을 선물하면서 구애하는 문화가 알음알음 퍼져있다는 말에 퍼블리의 머릿속에서 곧바로 기억 하나가 떠올랐다. 알록달록 선명하고 예쁜 색을 담은 천들이 문을 열자마자 바람을 탄 나뭇잎처럼 흩날리고 까르륵 웃으며 손을 뻗었던 기억이.
“파란 천을 둘러썼을 땐 제 고백을 받아주신 줄 알고 정말 행복했습니다. 그래서 모든 준비를 다 마치고 가보니 집은 다 타서 재만 남아있었고 호수로 달려가니 천만 곱게 개어져 호수 앞에 놓여있었지요.”
퍼블리는 새삼 제 아빠가 정말 단호하다는 걸 깨달았다. 그리고 눈앞의 치트도 보통이 아니라는 걸 느꼈다.
“저는 포기하지 않고 패치의 흔적을 찾고 정보를 얻기 위해 돌아다녔습니다. 그런데 그렇게 오래 찾아다녔는데도 단서가 나오지 않아 좌절하고 있을 무렵 퍼블리님에 대해 듣게 됐죠. 정말...”
보름달을 띄운 밤 같은 눈이 일렁이더니 이내 툭 눈물이 떨어졌다.
“기뻤습니다.”
뒤에서 덜컹거리는 소리에 깜짝 놀란 퍼블리가 뒤를 돌아봤다. 언제 들어왔는지 아까 복도에서 봤던 마법사가 뭐라 형용하기 어려운 표정을 지은 채 눈살을 찌푸리며 치트를 쏘아보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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