패치가 설명한대로 지식의 탑보단 중간탑이라는 이름이 더 대중적이었는지 중간탑이라고 말하면 모두들 아 거기로 시작해서 제각기의 길을 알려줬다. 워낙 중간에 있다보니 길도 다양했기 때문에 그마나 빨리 도착할 길을 고르는 것만 남았다.

길이 엄청 트여있나봐요.”

아무래도 중간길목에 떡하니 자리잡은 만큼 지나쳐야할 일이 많을 테니 그렇겠죠~”

강이 있는데는 얼마 전에 비가 왔으니 물이 많이 불어났겠군. 그러니 빼게.”

강을 지나는 길이 꽤 되어 선택지는 금방 좁혀졌다. 도착하는 게 빨라도 길이 닦이지 않아 울퉁불퉁한 돌이 많은 길 또한 제외됐다. 혹시나 비가 한 번 더 내린다거나 부득이하게 잠시 멈춰야할 순간이 발생할지도 몰라 쉼터가 포함된 길을 고른 일행들은 바로 출발했다.

다른 마을이 있는데보단 가깝긴 가까운데 참 미묘하군요. 한 가운데를 가로지르면 정말 가까울텐데 말이죠~”

아까 물어봤는데 거긴 산이 끼어있어서 바위들이 굴러내려온대요.”

한마디로 위험한 길이라는 거였다. 굳이 위험을 감수할 생각이 없는 건 모두 동일했다. 헵토미노는 살던 곳에서 못 보던 것들을 볼 때마다 신기해했다. 조금 큰 마을마다 세워둔 동상이나 계속해서 움직이는 허수아비들에게서 눈을 떼지 못했다.

저 사람은 왜 저렇게 다르게 생겼어요? 그리고 왜 밭 주위만 빙빙 도는 거예요?”

저건 사람이 아니라 허수아비야. 그러니까 음...인형을 사람 크기만큼 크게 만들어서 움직이게 하는 거야. 그러면 새들이나 야생동물들이 사람인 줄 알아서 가까이 오지 않겠지?”

그럼 뭘로 움직이게 하는 거예요?”

아마 마법으로 움직이지 않을까?”

퍼블리는 그렇게 말하며 패치를 힐끔 쳐다봤다. 허수아비들을 유심히 살펴보던 패치는 고개를 저었다.

저 허수아비들은 마법으로 움직이는 종류는 아니네. 보아하니 기계로 만들어서 별다른 주문 없이 동력만 있으면 스스로 움직이게 만드는 것 같은데.”

마법으로 움직이는 거랑 기계로 움직이는 거랑 많이 달라요?”

근본적으로는 많이 다르지만 용도와 결과는 똑같으니 밭주인들이 신경쓰는 건 어떤 게 더 값이 싸느냐겠지.”

설명을 듣던 퍼블리는 기계 허수아비들을 힐끔 쳐다봤다. 기계로 이루어진 허수아비들만 있는 건 값 문제가 아니라 마법사들이 전부 사라졌기 때문이 아닐까.

그럼 저것도 허수아비에요?”

조그마한 손가락 끝에 어떤 사람이 있었다. 확실히 행색이 제법 눈에 띄는 모양새였다. 허수아비들처럼 밭을 돌아다니진 않았지만 입고 있는 옷을 제외하면 얼굴까지 무언가 딱딱한 것들로 덮여있었다. 그 사람을 본 패치는 이번에도 고개를 저었다.

기계 옷을 입고 있는 사람일세.”

왜 기계 옷을 입는 거예요?”

물리적인...그러니까 칼이나 굴러떨어지는 돌에 맞는 거에 대한 보호 목적일 수도 있고 몸 어딘가가 불편해서 움직이는데 힘들이지 않기 위해 입는 경우가 있지.”

사람이라는 말에 헵토미노는 조심스럽게 손가락을 내렸다. 다행히 기계 옷을 입은 사람은 제법 먼 거리에 있어 듣지 못했는지 별다른 반응이 없었다. 슬쩍 그 사람의 눈치를 살피던 헵토미노는 다시 허수아비들을 봤다.

기술의 도시에서는 춤추는 인형들이 있었다고 했죠?”

, 각자 따로따로 춤추기도 했고 한꺼번에 함께 춤추기도 했어.”

나중에 또 여행하게 되면 바둑이랑 꼭 같이 가볼 거예요!”

기대 가득한 그 말에 퍼블리의 표정이 살짝 굳었다. 이제 도시는 기술의 도시라는 이름이 무색하게 마법도 없고 기계또한 주인들이 기약없는 잠에 빠져 움직일 일이 없었다.

“...지금 도시는 혼란스러워졌어. 나중에 안정이 되면 그 때 한 번 가보는 게 좋아.”

그 때가 되기 전에 모두가 깨어나고 마법사들도 돌아오길 바라는 심정으로 그렇게 말해줬다.

중간탑으로 가는 길목 주변이 워낙 넓은 땅이라서 그런지 밭과 논, 허수아비들이 가득했다. 허수아비들을 계속해서 신기하게 보던 헵토미노도 이젠 꽤 눈에 익었는지 더 이상 신경쓰지 않았다. 바람도 시원하게 불고 날도 맑으니 분위기는 자연스럽게 잔잔해졌다.

?”

누가 먼저 낸 소리인지는 모르겠지만 일행들의 시선의 끝은 전부 똑같았다. 스무 걸음 앞 쪽에서 아까 본 기계 옷을 입은 사람이 걸어가고 있었다.

저 분 목적지도 중간탑이려나요?”

일단 웬만한 길은 거기를 거쳐가니 중간탑까지는 당연히 길이 겹치겠지.”

같이 가자고 할까요?”

패치는 굳이 그럴 필요는 없다고 딱 잘라냈다. 만약 목적지가 같다한들 목적이 다를 게 뻔하고 이 이상 임시로라도 일행을 늘리기 썩 달갑지 않다는 거였다. 거기에 낯선 사람을 경계하는 건 기본 중에 기본이라는 잔소리까지 추가되었다.

잔소리는 그쯤이면 충분함다~ 그래도 낯선 사람과 함께 길을 가보는 것도 여행의 묘미 중 하나 아님까~?”

굳이 위험을 감수하는 게 언제부터 여행의 묘미였나?”

위험이 아닐 수도 있잖슴까?”

뭐라 날카롭게 한 소리 더 하려던 패치는 저 아래 아이의 시선을 느꼈고 꾹 참아 삼켰다. 그런 패치의 반응에 묘한 웃음을 짓던 치트는 이 때다 싶었는지 옆에 딱 달라붙어서 여행의 묘미에 대해 뭐라 더 떠들었다. 문제는 그게 패치의 속을 긁는 효과를 발생시켰고 아이의 시선이 다시 앞으로 향했을 때 말보다 빠른 주먹과 발차기가 날아갔다. 요란하게 맞고 넘어지는 소리에 모두가 뒤돌아봤고

저 혼자 발을 헛디뎌 넘어지더군.”

쓰러진 치트에게 눈길조차 주지 않으며 태연하게 말한 패치는 알아서 일어날테니 어서 가자는 말을 끝으로 입을 꾹 다물었다.

..픔다.....”

제대로 맞았는지 옆구리를 부여잡으며 일어난 치트는 다시 패치에게 딱 달라붙어 징징대기 시작했고 패치는 발을 한 번 밟아주는 걸로 마지막 경고를 건넸다. 그 이후로 다시 조용함이 찾아왔고 기계 옷을 입은 사람은 어느새 작은 점이 될 정도로 멀어졌다.

비록 제일 짧은 길이 아니어도 그나마 가까운 길이었으니 일행들은 해가 완전히 지기 전에 도착했다. 기계 옷을 입은 사람도 목적지가 같았는지 그 앞에 서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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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날 날이 밝았을 때 일행들은 무덤 자리를 떠났다. 다만 여기 오기 전과 달라진 게 있었는데 그건 바로 일행의 수였다. 한 명이 더 추가되어있었다.

하늘을 날아다니는 물고기요?”

완전한 물고기라고 하긴 좀 그렇지만 진짜 물고기처럼 보였거든.”

나무 막대와 바둑이라는 이름의 강아지와 함께 걷고 있는 아이 헵토미노였다. 사실 아이를 일행으로 받아들일 생각은 아무도 하지 않았다. 퍼블리 또한 비밀을 알아냈을 때 어찌해야할지 곤혹스러워하기 바빴고 용사는 별 생각이 없었으며 나머지 둘은 표정만 서로 다르지 속은 냉정하기 그지없었기 때문이었다. 이런 상황에서 아이가 같이 떠나게 된 건 아이 아빠 헥소미노의 부탁아닌 부탁 때문이었다.

 

“...떠날 거면 애도 데려가.”

“...처음 봤을 때부터 생각했는데 당신 제정신인가?”

제정신 박혀서 하는 소리다 이 망할 것들아...! 애 키우기 귀찮아서 하는 말 같아!? 내가 왜 그 녀석들한테 맡기기까지 했는데!!”

격앙되어 끝은 거의 비명같이 내지르던 헥소미노가 일행들을 돌아보며 다시 한 번 말했다.

묻어버리고 싶은 것들아 부탁이다...데려가!!”

알았어요.”

대답한 건 퍼블리였다. 일행들의 시선은 헥소미노에게서 퍼블리로 돌아갔다. 그걸 느꼈는지 미안한 표정을 지은 퍼블리가 다시 한 번 이어 대답했다.

저희가 헵토미노를 데려갈게요.”

저 표정을 아이가 못 본 게 다행이라고 생각하며.

 

당연하게도 직후 패치의 표정은 좋지 못했다. 퍼블리가 어떤 심정으로 헵토미노를 데려가겠다고 했는지는 알고 있었다. 척 보기에도 굉장히 불안정해보이는 애 아빠한테 애를 그냥 두고 가기 마음에 걸렸던 거였다. 하는 말을 들어보면 이유가 있다 한들, 이미 한 번 다른 이들에게 맡기기까지 했다는 걸 봤을 때 자신들이 아니어도 다른 누군가에게 맡길 게 뻔하고 그럴 바엔 잠깐이라도 안면 있고 그 곳의 비밀도 알게 된 자신들이 데려가는 게 더 나을 거라는 생각 또한 천천히 들어왔을 게 훤했다.

다만 그런 사정과는 별개로 일행들이 하는 여행은 엄연히 목적이 있는 여행이었다. 심지어 그 목적의 결과가 연달아서 찜찜함을 남기는 중이었으니 애한테 좋은 영향을 끼칠 리가 없다는 점이 부가적인 이유였고 여행 자체가 어른들도 상당한 피로를 느끼게 하는데 애가 얼마나 버틸 수 있겠느냐가 가장 큰 이유였다. 하지만 어린아이치곤 체력이 꽤 되는 건지 아니면 꾹 참는 건지 같이 걷는 내내 한 번도 힘들다는 말이 나오질 않았다.

그럼 다른 데는요?”

아직 많이 가본 데가 없어서...”

둘은 열심히 얘기를 나누고 있었다. 자기가 먼저 데려가겠다고 한 말에 대한 책임감인지 아니면 드디어 정상적인 말동무가 생겨서인지 퍼블리는 헵토미노에게 이것저것 얘기를 건넸고 헵토미노는 굉장히 신기해하면서 다음 이야기를 재촉했다. 주로 일행 내의 대화 담당은 퍼블리와 치트 간혹가다가 궁금해하는 용사였는데 한 명이 더 늘어서 그런지 대화가 끊임없이 이어졌다.

헵토미노는 열심히 퍼블리와 대화하고 간혹가다가 덧붙여 설명해주는 치트와 대화를 하다가도 무덤에서 떠난 이후로 쭉 아무 말이 없는 패치를 힐끔 쳐다보곤 했다. 아이의 불안함을 눈치 챈 퍼블리가 원래 말이 가장 없는 분이라며 아주 작게 속삭였다.

얼마나 지났을까 내내 말이 없던 패치가 드디어 입을 열었다.

다음은 하얀 들판인가? 이번은 앞선 두 곳보다 거리가 꽤 되는군.”

꽤 멀긴 하지만 사막보다 더 가까운 곳이죠.”

하지만 이대로 계속 쭉 가기엔 체력 소모가 심하네.”

그렇게 말한 패치는 잠깐 생각에 잠긴 건지 덧붙이는 말이 없었다. 치트는 그나마 마을이 연달아 있는 곳을 안다며 많이 힘들어지면 거기서 쉬자고 했다. 그러다 문득 패치가 툭 한 단어를 꺼냈다.

중간탑.”

?”

들판으로 가는 길목 가운데에 중간탑이 있었던 걸로 아는데 맞나?”

맞슴다. 혹시 중간에 중간탑을 들르자는 검까?”

패치는 고개를 끄덕였고 치트는 나쁘지 않다고 말하며 다음 목표 장소는 중간탑이라고 저 멀리서 토끼를 쫓아가는 용사에게 외쳤다. 퍼블리는 일행이 된 이후 처음으로 무난하게 대화를 이어나가는 둘을 내내 신기하다는 눈빛으로 쳐다보고 있었다. 아무리 싫은 녀석이라고 해도 애 앞에서 평소처럼 말에 날을 세우는 건 아니라는 걸 패치는 잘 알았고 치트 또한 잘 알아서 자제하고 있었다.

중간탑은 어떤 데예요?”

헵토미노가 퍼블리를 올려다보며 물었고 퍼블리는 어색하게 웃으면서 패치에게로 고개를 돌렸다. 아예 모르는 건 아니지만 정확히 어떻게 정의를 해야할지 몰랐기 때문이었다.

알려진 땅을 기준으로 땅의 중간에 세워진 탑일세. 사막과 환각의 숲 사이를 기준으로 중간이지.”

그 말을 들으니 퍼블리는 새삼 자신들이 끝에서부터 출발해서 끝까지 여행하는구나 깨달은 표정이 됐다.

그리고 어느 순간부턴 학자들이 모이기 시작해서 중간탑은 지식의 탑이라고 공식적으로 이름을 정했다고들 하지만 중간탑이라고 오랫동안 불려왔으니 다들 중간탑이라고 부르니 위치를 물어볼 땐 중간탑이라고 말해야 알아들을 테니 그렇게 알아두게.”

사실 패치에게 있어서 여행하는 장소들 중 가장 마음에 드는 장소였다. 학자들이 모이고 지식의 탑이라고 스스로들 붙일 정도로 책들이 가득한 탑이었다. 그래서 세 번째 이름은 도서관이었고 땅의 중간에 위치해서 그런지 소식을 전달하는 이들이 거쳐가는 장소이기도 해 네 번째 이름이 거대한 우체통이다.

평소라면 두 번재와 세 번째 이름이 목적이어서 갔겠지만 이번의 목적은 네 번째 이름이었다. 힐끔 뒤돌아보니 마침 이쪽으로 시선을 돌리고 있었는지 아님 처음부터 보고 있었는지 패치와 눈이 마주친 치트가 언제나처럼 미소를 지어보였다.

혹시 지도들도 있을까요?”

마을들에 없는 게 거기 전부 있는 격이니 있을 거라 예상되네만.”

퍼블리의 눈빛에 바로 기대가 서렸다. 이쯤되면 반대의 목소리를 낼 사람은 없었다. 이름만 들어봤지 제대로 가본 적이 없었기에 더더욱 기대감이 가득해보였다.

그럼 가지.”

반대는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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할머니...?”

이제 날이 거의 저물어가니 진짜 가야겠다는 생각에 헵토미노를 바래다주고 돌아가려고 했지만 분명 아까까지만 해도 멀쩡했던 집이 관리를 안 한지 꽤 오래 된 낡은 집처럼 변하자 심상찮음을 느끼고 들어가보니 집 안에 온기는커녕 사람 사는 흔적이 아예 사라졌다.

의자와 탁자가 있던 자리는 물론이고 자잘한 선반들도 전부 사라져 휑한 모습이 폐가와 다를 바가 없었다. 불안함을 느낀 헵토미노가 덜덜 떨기 시작했고 용사는 다른 집에 들어왔다고 생각했는지 고개를 한 번 갸웃하더니 그대로 나가려했다.

“...용사님 여기 맞아요.”

우웅? 다른 데?”

장소가 같아요.”

방 안까지 다 살펴봤지만 가구 하나 없이 휑했다. 갑작스러운 상황이 당황스러운 건 퍼블리도 마찬가지였지만 불안을 넘어서 겁에 질린 헵토미노의 표정을 보니 애써 동요를 누르고 물었다.

일단 오늘은 우리랑 같이 갈래? 어떻게 된 건지는 모르겠지만 지금은 해가 지려고 하고 있고......여기 있기엔 좀 그러니까...”

애 혼자 여기 둘 순 없는 노릇이라 최대한 조심스럽게 말한 효과가 있는지 헵토미노는 조용히 고개를 끄덕였다. 바둑이가 끙끙 울면서 주위를 빙빙 돌더니 위로하듯이 앞발을 턱! 올렸다.

퍼블리와 용사, 헵토미노가 나무 무덤으로 도착했을 땐 해는 이미 진 상태였지만 먼저 도착한 둘이 불빛을 만들어놨는지 환한 상태였다. 다만 상황이 좋지 않아보였다. 서 있는 사람은 세 명이었고 둘은 당연히 일행인 패치와 치트였지만 다른 하나는 헥소미노였다. 굉장히 분노한 모습을 보아하니 만약 사람이 한 명이거나 손에 무기가 될 만한 걸 들고 있었으면 진즉에 휘둘렀을 기세였다. 치트는 난감한 표정을 짓고 있었고 패치의 표정은 싸늘했다. 굉장히 흉흉한 기세에 섣불리 다가가지 못한 퍼블리였고 용사는 그 기세를 눈치채진 못했지만 퍼블리가 멈춰서니 덩달아 같이 멈춰섰다.

아빠?”

앞의 둘만 보고 있던 헥소미노가 돌아봤다. 헵토미노와 제대로 눈이 마주치자 분노 가득했던 표정이 한순간에 사라졌다. 새로 바뀐 표정은 공포와 혼란, 죄책감이 가득해보이는 게 꼭 죄를 들킨 사람처럼 보였다. 퍼블리는 헵토미노를 잡고 있는 손을 놔줘야하나 아니면 이대로 계속 잡고 있어야하나 고민했다.

아빠?”

, 제 아빠예요.”

우웅~ 그르믄 할무니 어디 갔는지 물어보믄 되겠당!”

이어진 용사의 말에 헥소미노의 표정이 굉장히 창백해졌다. 덜덜 떨면서 천천히 다가오더니 열 걸음 떨어진 거리에 멈춰서서 묻기를

할머니라니...?”

저 그동안 할머니랑 같이 살았는데요...?”

...디서?”

아이가 불안한 표정을 지으면서 손가락으로 지나온 길을 가리키며

, 저기 숲 쪽의 큰 집에서요.”

비록 뒷모습 밖에 보이지 않지만 보이는 기색만으로도 시체보다 더 창백한 얼굴을 하고 있겠다고 생각한 패치는 저 앞에서 어찌할 줄 모르는 퍼블리와 용사에게 눈짓했다. 퍼블리는 알아들었고 용사는 알아듣지 못했다. 헵토미노의 손 대신 용사의 손을 잡은 퍼블리는 천천히 일행들이 있는 쪽으로 다가왔다.

헵토미노는 잡고 있던 손이 힘을 풀며 사라지자 흠칫 놀랐지만 바둑이를 안고 있는 데에 더 보탰고 헥소미노는 바로 눈 앞에서 그러는데도 보이지 않는 건지 신경쓰지 않았다.

...? 왜 할..머니랑 살고 있었던 거야...? , 너를 돌봐주던 사...람들은?!”

다그치듯이 외치는 말에 겁을 먹었는지 아이가 울먹이면서 말하길

..갑자기 사라졌는데...”

결국 헵토미노는 울음을 터뜨렸고 헥소미노는 그런 아들을 채 달랠 정신도 없는지 멍하니 서 있기만 했다. 가까이 다가오던 퍼블리는 패치의 옆에 파인 땅을 발견했고 그 속을 들여다보자 씁쓸한 표정을 지었다.

알고 있었나?”

“...헵토미노가 말해줬어요.”

용사가 엄마에 대해 묻자 헵토미노는 자기가 아주 어렸던 아기 때, 기어다니지도 못하고 요람 속에 누워있을 때 돌아가셨다고 대답했다. 그 대답에 헵토미노의 집에 들르기 전까지 신시어와 대화했던 퍼블리는 소름이 돋았고 누구의 말이 진실일까 오기 전까지 고민했다. 이제는 무엇이 진실인지 알 수 있었다.

, 그렇다면 설마...”

문득 떠오른 게 있는 퍼블리는 비석처럼 세워진 나무들을 둘러보고 굉장히 조심스러운 얼굴로 뒤돌아봤다. 헵토미노는 울고 있었고 헥소미노는 울고 싶어하는 얼굴이었다.

우리가 할 수 있는 건 없네.”

퍼블리의 심정을 눈치챘는지 냉정하게 잘라내는 말이 날아왔다.

이미 지나버린 일들이고 지금까지는 말 그대로 이상현상이었고 저 자는 현실도피를 했을 뿐이네.”

현실도피라는 단어가 걸렸는지 움찔 돌아본 퍼블리의 표정은 울컥 올라온 화가 슬픈 표정에 아주 약간 섞였다. 하지만 어째서 그렇게 과한 말을 하냐고 따질만한 상황이 아니라는 걸 잘 알았기에 뭐라 말하는 대신 다시 헵토미노를 돌아봤다. 울고 있는 아이를 달래는 건 강아지뿐이었다.

결국 헥소미노가 지친 얼굴로 울다 지친 제 아이를 데려가는 걸로 당장의 상황이 마무리 됐다. 갑작스럽게 들이닥친 현실이 버거웠던 건지 아니면 마주하기가 두려웠던 건지 무덤이 있는 바로 뒤쪽을 돌아보지 않고 그대로 가버렸다.

“...끝난 거예요?”

황망한 물음이 빈자리를 채웠다. 침묵이 긍정이라는 듯 그 물음에 아무런 대답도 돌아오지 않았다. 용사는 관 안에 누워있는 신시어를 보며 고개를 기울였다. 패치는 그런 용사를 비키게 한 후 삽을 들었다. 파헤쳐진 진실은 다시 무덤으로 돌아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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