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흘하고도 반나절만에야 도착했고 패치의 예상과 퍼블리의 불안은 빗나갔다. 그렇다고 치트가 했던 말처럼 주인이 나무를 보게 허락한 상황도 아니었다.

“...여기 정말 사유지 맞아요?”

도착하자마자 보이는 게 바로 그토록 기대한 나무들이었다. 여기서 도착하자마자 보였다는 건 별다른 방해물이 없었다는 거였다. 집에서 설치하는 담이나 하다못해 낮은 울타리조차 없었다.

나뭇가지만 달려있는 채로 휑하니 널려있는 나무들은 얼핏보면 무덤에 흔히 있는 비석들처럼 보였고 실제로도 이곳 분위기자체가 스산해 무덤이라해도 이상하지 않아보였다.

은유적이 아니라 직접적이었나보네요~”

그래도 기본 관리는 되어있나보군.”

흙 상태를 살펴보니 땅 자체는 고르고 발에 채일만한 돌도 없었다. 흙을 갈거나 물을 준 흔적이 있는 걸 보면 완전히 방치하는 건 아니었다는 걸 알게 된 일행들은 그 외에 더 흔적이 있는지 살펴봤다.

더 이상 물질들이 열리지 않는다 해도 나무 자체만으로도 가치가 있을 텐데 이렇게 놔둔 걸 보면 차라리 누가 훔쳐가길 바라는 듯 싶어보이는군.”

자라나는 조건 자체도 까다로워서 아무데나 심는다 해도 금방 죽어버린다고 하니 그걸 믿고 방치해논 게 아닐까 싶슴다?”

조건이 까다로운 거지 불가능한 게 아니잖나.”

둘이서 왜 이렇게 방치를 해놨을까에 대한 의견과 추측을 하는 동안 용사는 이미 나무를 툭툭 두드리고 있었다.

나뭇잎도 네모낳게 각진 모양일까요?”

글쎄요~ 나뭇잎이 났다는 얘기는 들어본 적이 없어서 말임다.”
네모네모~!”

어이구 용사님 올라가면 위험함다~”

나무도 물질 못지않게 단단하고 튼튼한지 용사가 나무위로 올라타는 걸 넘어서 뛰고 있는데도 부러질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내심 감탄했지만 그래도 엄연히 주인 있는 나무 위에서 그러는 건 굉장한 실례였으니 일행들은 용사를 잡아 내려오게 했다.

나무 멀쩡행!”

멀쩡하다고 해서 거기 올라타도 되는 게 아닐세.”

우웅? 괜찮다는뎅?”

패치가 뭐라 더 말하려던 순간 조금 떨어진 곳에서 소리가 났다. 고개를 돌려보니 당황스러운 표정을 짓고 있는 누군가가 서 있었다. 눈이 마주치자 표정을 수습하더니 웃는 얼굴로 인사를 건넨다.

안녕하세요? 나무 구경하러 오셨나요?”

나무를 보러오는 구경꾼이 많았는지 그렇게 묻는 말에 일행들은 고개를 끄덕이며 그렇다고 대답했다. 부차적인 목적이었지만 그래도 맞는 말이었기 때문이었다.

예전엔 많이 보러왔는데 요즘엔 오는 사람들이 거의 없어서 오랜만에 오신 손님분들이네요.”

, 혹시 여기 주인이세요?”

정확히는 제가 아니라 제 남편이 주인이에요.”

오랜만의 손님이니 여기 이렇게 세워두긴 그렇다며 집으로 초대하겠다고 하는 말에 거절하려던 패치와 그런 패치의 입을 막고 감사하다며 눈짓하는 치트가 가장 먼저 뒤따라갔다. 못마땅한 표정을 짓는 패치에게 작게 들릴 정도로 말하길

여기만 마냥 보고 있기엔 우리는 아는 게 없잖습니까?”

아무리 맞는 말이어도 말하는 사람이 사람이다보니라는 의미가 가득 담긴 눈빛이 날아왔지만 언제나 그랬듯이 치트에겐 통하지 않았다. 이젠 둘의 반응이 익숙해진 퍼블리가 안내자에게 다가갔다.

정말 감사합니다. 제 이름은 퍼블리예요. 저 분들과 함께 여기저기 여행하기 시작했어요.”

! 저도 예전엔 여행해볼까 고민했었는데, 굉장하시네요. 제 이름은 신시어예요.”

신시어가 안내한 곳은 나무들이 있는 곳에서 그리 멀리 떨어지지 않은 데에 지어져 있는 오두막이었다. 똑똑 문을 두드리더니

자기야! 오랜만에 손님들 왔어!”

하지만 돌아오는 대답이 없었다. 문을 여니 안엔 아무도 없었고 탁자와 난로만 덩그러니 보였다.

아무래도 아들이랑 산책나갔나 봐요. 의자 꺼내올테니 기다려주실래요?”

, 괜찮은...”

오랜만에 사람들이 찾아온 게 그렇게나 반가웠는지 괜찮다고 말하며 창고에서 나무 의자들을 들고 오기 시작했다. 용사는 웃으면서, 퍼블리는 미안한 얼굴로, 치트는 여전히 웃는 얼굴이었고 패치는 무언가 미심쩍어 보이는 얼굴로 신시어를 보고 있었다.

, 모두 앉으셔요.”

고맙다는 인사를 하며 일행들 모두 앉았다. 사람이 많다보니까 자연스럽게 둘씩 한 줄로 짝지어 앉게 되었고 치트와 같이 앉게 된 패치의 표정은 당연히 좋지 않았다.

이젠 우드에 대한 관심도 완전히 식었는 줄 알았는데 아직 찾아오는 사람들이 있으니 반가워요.”

우드요?”

옛날에 나무에 열렸던 것들의 이름이 우드예요.”

정식 명칭은 처음 들었기에 모두 다음 얘기도 자세히 경청했다. 무엇으로도 자르거나 부술 수 없는 우드는 일렬로 일정한 줄을 맞추면 터지면서 소멸된다는 특성을 발견해 선대이자 남편의 어머니인 분께서 우드를 독점할 수 있게 됐다는 얘기도 들었을 때 패치가 잠시 말을 막았다.

그런 정보를 함부로 말해도 되는 건가?”

? 이건 잘 알려져 있는 얘기 아닌가요? 누구나 다 알고 있는데...”

들어본 적 없네. 관련 책자도 본 적이 없고.”

그 말에 신시어는 당황과 혼란 가득한 표정을 지었다. 패치는 여기서 그치지 않고 또 다른 의문을 꺼냈다.

그리고 방금 한 말대로 누구나 다 알고 있을 정도로 잘 알려진 얘기라면 왜 굳이 설명한 건가?”

스스로의 모순을 깨달은 신시어의 표정이 멍해졌다. 그대로 아무 말도 꺼내지 않고 눈도 깜빡이지 않은 채 멍하니 있기만 하는 모습에 패치가 다시 말을 꺼내려던 순간

여보!!”

한 남자가 거칠게 문을 열어젖히며 들어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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패치가 했던 말대로 자고 일어나니 감기는 깔끔하게 나아있었다. 평소와 같은 안색으로 목을 가다듬던 패치는 계속 자신에게 향하는 시선을 무시하며 이번 마을에서 구매해야할 목록들을 쭉 훑어보고 있었다.

“패치.”

“왜.”

“할 말 없슴까?”

“없네.”

항상 짓고 있던 치트의 미소가 진해졌다.

“정말 없슴까?”

“없네.”

“그럴 리가 없을 텐데~”

패치는 그제야 짜증가득한 눈으로 치트를 돌아봤다. 담긴 감정이 어쨌든 드디어 제대로 봐주니 마냥 좋은지 미소가 가실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하고 싶은 말이 뭔가?”

“저만 쏙 빼놓고 중요한 얘기를 한 것에 대한 서러움임다~”

표정과 행동을 보면 서러움은커녕 오히려 지금 상황을 즐기고 있음이 분명했다. 표정과 행동에 서러움을 담았다해도 통하지 않았을 패치는 찬물 가득 삼킨 말을 꺼냈다.

“용사에게 들었을 게 아닌가.”

“무엇을 말임까?”

빨간 눈썹 끝이 다시 한 번 위로 치솟으니 치트는 장난이라며 뒤에 말을 덧붙였다.

“제가 묻기 전까지 말하지 않은 건 꽤나 불공정한 처사라고 생각함다? 여행엔 가장 중요한 게 바로 협동과 공정인데 그게 깨지면 여행길이 상당히 위험해지죠.”

“그렇담 역으로 묻지. 왜 그 때 바로 무언가 더 발견한 건 없냐고 묻지 않았나? 바로가 아니어도 여기까지 오는 나흘간 물어볼 기회는 얼마든지 있었네.”

짙은 미소가 옅어졌다. 살짝 가라앉듯이 그어진 호선에서 나온 말은

“말해줄 때까지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동시에 살짝 내려간 눈매와 눈썹 덕분에 장난스럽던 표정이 한순간에 처연해졌다. 마침 내려오려다가 둘의 대화에 어정쩡하게 다시 올라가려던 퍼블리의 마음 속에 당황과 미안함이 깃들었고 표정에도 떠올랐다. 반면에 정면으로 보고 있던 패치의 표정은 변화가 없었다.

“그래, 이번은 불공정했네. 사과하지.”

다만 나온 말이 꽤나 의외였다. 퍼블리는 물론이고 치트 또한 놀라서 눈을 크게 떴지만 패치는 다음엔 내용 누락을 하지 않고 공정히 말해주겠다고 하며 다시 목록으로 시선을 돌렸다. 분위기가 풀어지자 퍼블리는 다시 아래로 내려왔고 치트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속내를 탐색하려고 훑어보는 시선은 여전히 짜증났는지 패치는 자리를 떴고 치트의 시선은 끈질기게 그 뒤를 따라갔다.

“어제 수프 가져가면서 무슨 일 있었습니까?”

마침 가까이 온 퍼블리에게 질문이 갔지만 짐작가는 게 없는 퍼블리는 그저 고개를 저을 뿐이었다. 그러고보니 어제도 유하게 넘어간 게 있었지만 이 또한 말하기 애매했으니 꺼내지 않았다.

“저희가 이번에 가는 데가...”

“음? 아, 각진나무 무덤 말입니까?”

“네, 좀 생소한 지명이라서요.”

“그럴만 합니다. 사실 지명 자체가 은유적인 표현이지요.”

잠깐 목을 가다듬으며 고를 말을 나눈 치트는 쉽게 설명했다.

“예전에 그 어떤 걸로도 부숴지지 않는 물질이 열리는 나무가 있었습니다. 물질들은 하나같이 전부 네모지게 각이진 모습이었습니다. 그런데 물질들은 어느순간 어디론가 사라져버렸고 앙상한 나무만 남았지요. 나무 자체도 그 물질처럼 꽤 각이져서 그런지 사람들은 그곳을 각진나무 무덤이라고 부릅니다. 무덤이라는 단어가 참 은유적이죠?”

사라져버린 물질들이 대상일지 그 자리에 남아버린 나무들이 대상일지는 개개인의 해석에 따라 달랐다. 신기하단 표정으로 듣고 있던 퍼블리는 네모낳게 각져있는 나무의 모습을 상상하는 듯 싶었다.

“그 물질 자체도 매우 귀한 거라 사라진 이유는 누군가가 작정하고 훔쳐갔기 때문이라는 의견이 압도적이지.”

아까 전 자리를 떴던 패치가 다시 돌아와 있었다. 옆에 눈을 빛내는 용사가 있는 걸 보면 용사를 데리러 간 듯 싶었고 데려오던 도중 얘기를 듣게 된 셈이었다.

“네모네모오~?”

나무가 네모낳게 각졌다는 부분이 용사의 마음을 사로잡았는지 지금 당장이라도 그곳으로 달려갈 기세라 모두가 합심해서 용사를 진정시켰다.

“아직 저흰 준비가 덜 됐습니다. 게다가 지금 온 만큼 더 가야 나올 장소라 하루종일 뛰어가도 오늘 안엔 도착 못합니다.”

“날아가자~!”

“나는 것도 한계가 있고 사람이 많아 지속시간이 얼마 안 가니 나는 것도 불가능하네.”

퍼블리는 반사적으로 전서구를 떠올렸지만 고개를 저었다. 소리치며 소란을 일으킬 전서구가 눈에 훤했다.

“이잉~”

“장소는 움직이지 않으니 지금처럼 가요 용사님, 네?”

여러 가지 힘든 이유와 설득 끝에 용사는 고개를 끄덕였지만 대신 오늘 바로 출발하게 됐다. 치트는 어제까지만해도 감기로 고생했던 패치가 걱정된다며 끌어안았고 그에 당연하게도 응징이 가해져 옆구리를 붙잡고 일행들 제일 뒤쪽에서 뒤따라가게 됐다.

“사실 가도 나무들은 못 볼 확률이 높네. 왜냐면 거긴 엄연히 사유지니 말일세.”

“네? 그럼...”

“주인이 있다 이 말이지. 다만 희귀한 물질을 개인이 독점하고 있는 건 여러 가지로 문제가 많아 찾아오는 누구나 가져가지 않는 대신 물질을 볼 수 있게 했지만 나무는 그렇지 않네.”

“걱정 마십쇼~ 요즘엔 사라진 물질 대신 물질이 열리지 않는 나무를 보여주는 듯 합니다. 그래서 사람들이 각진나무 무덤이라고들 부르지 않습니까?”

“어디까지나 소문이니 직접 가서 봐야 알겠지.”

“출입금지라고 해도 신탁에 관해 얘기하면 들여보내주지 않겠슴까?”

“거기 주인이 종교인이란 얘기는 한 번도 들어본 적 없네만.”

“여기서도 종교인은 저뿐이잖슴까?”

네모난 나무에 대해 기대하고 있던 퍼블리는 둘의 대화에 점점 불안함과 아쉬움이 올라오고 있었지만 가장 앞서 걷고 있는 용사는 기대가 매우 가득해 온통 머릿속에 나무 생각만 있어 둘의 대화를 못 듣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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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고나서 둘러봤을 때 초록색 인형 친구를 봤다 이 말이군요?”

!”

그 초록 친구는 어떻게 했나요?”

묻어줬어!”

...어줬군요. 누가 묻자고 했습니까?”

빨간 칭구!”

그 대답에 치트의 미소가 진해졌다. 때마침 대답이 끝난 순간 주문한 요리가 나왔고 자연스럽게 대화는 끊겼다. 중요한 정보를 빼낸 치트는 만족스러운 얼굴이었고 용사는 배가 꽤 고팠는지 나온 음식을 빠르게 먹기 시작했다.

그른데~ 까만 칭구는 빨간 칭구랑 왜 싸웠어~?”

?”

용사가 이에 대해 물어볼 줄은 생각하지 않았는지 치트는 크게 뜬 눈으로 용사를 보고 있었다.

~ 얘기하긴 꽤 복잡해서 말임다~ 서로가 서로에게 잘못했는데 제가 좀 더 크게 잘못했죠?”

~ 그렇구나아~ 둘이 언제 화해할 거양?”

글쎄요, 저도 모르겠네요.”

패치 입장에서는 이렇게 같이 다니는 것 자체가 기회를 주는 거나 다름 없었지만 용사는 완전한 화해를 바라는 듯 싶었다.

패치의 마음이 풀려야 말이죠~”

서로 사과하고 화해하면 되는뎅!”

그게 그렇게 쉽지는 않습니다, 우선 패치 마음이 풀려야지요?”

그럼 얼른 풀러가장!”

치트는 용사의 어깨를 잡아 다시 자리에 앉혔다. 지금 들이닥쳤다간 아무리 패치에게 조금 유한 태도를 받는 용사라 해도 서늘한 눈빛을 받을 게 분명했다.

아직은 안 됨다~”

화해는 빠를수록 조아!”

싸우고 감정이 상한 상태라면 누구나 시간이 필요한 법임다. 그리고 이건 저와 패치의 일이니 저희 둘이 잘 해결해볼 테니 용사님은 마음만으로도 괜찮슴다~”

얼마나~?”

글쎄요~”

둘의 대화도 빙빙 돌기 시작했다. 빠른 화해를 원하는 용사와 시간이 필요하다는 치트의 말이 끝도 없이 반복되기 시작했다. 빠른 화해가 좋다, 시간이 필요하다, 얼마나 필요한가, 자신도 잘 모르겠다, 다시 빠른 화해가 좋다 식으로 빠져 나갈 굴레 없이 빙빙 돌고 있었다.

 

사실 지도제작자가 되고 싶었던 이유는 땅들을 하늘에서 내려다보는 것처럼 한 눈에 보고 싶었기 때문이에요.”

하늘을 나는 도구들을 구매하기엔 작은 마을 동네는 생필품 들어오기도 바빴고 기껏해야 비눗방울을 연속으로 나오게 하는 장난감이 최대였다. 높은 건물이라고 해봐야 2층집이 대부분인 곳엔 그리 대단한 경치를 기대할 순 없었다.

이렇게 보면 신탁과는 별개로 이번 여행에 가장 목적성이 뚜렷하고 가장 의미가 있는 건 퍼블리였다. 절호의 기회이기도 하지만 패치의 입장에서는 퍼블리가 지금 여행을 그만뒀으면 했다. 하지만 이유가 전해지지 않는다.

“...말을 할 수 있는데도 전해지지 않는다는 건 참 답답하군.”

아예 말도 안 꺼내고 혼자서 삭히는 분도 있었는 걸요.”

패치는 입을 다물었다. 만약에 퍼블리가 신탁 및 여행과 관계가 없었다면 패치는 진즉에 그 때 있었던 일을 속으로만 삭히고 절대 말하지 않았을 터였다.

그런데 누구였더라? 몇 년전에 있었던 일이라 그런지 가물가물하네요. 자주 못 본 분도 많았으니까요.”

가져온 수프는 이미 다 먹은지 오래였다. 퍼블리는 얘기를 들어주는 게 좋은지 아직은 밖으로 나갈 생각이 없어보였고 패치도 듣는 게 그리 나쁘진 않았는지 적당히 반응하면서 조금씩 말도 꺼냈다. 따뜻한 수프 덕분인지 기침도 꽤 멎은 패치는 얘기를 듣는 한 편 갑작스럽게 면역력이 떨어진 상황에 의문이 들었다.

주량이나 멀미 같은 부가적인 면에서 체질이 좋은 편은 아니었지만 별개로 체력과 면역력은 평균적인 수준보다 훨씬 더 좋은 편이었고 감기에 걸려도 실제론 하루, 길어봤자 이틀을 넘긴 적이 없었다. 스트레스 때문일수도 있지만 그렇게 넘기기엔 굉장히 찝찝한 느낌에 패치의 눈매가 자연스럽게 가늘어졌다.

그러고보니 나머지 둘은 뭐하고 있나?”

, 저한테 수프를 가져다주라고 했으니까 두 분이서 밥 먹고 계......”

말하지 않는 게 좋겠다고 스스로 다짐했건만 무의식의 위력은 무서웠다. 마침 패치의 눈매도 가늘어져 있었으니 퍼블리는 하하 웃으며 고개를 돌렸다. 퍼블리를 보던 패치는 아예 눈을 감고 침대에 누웠다.

자네도 가서 식사하게.”

, 아뇨 괜찮...”

수프 덕분에 목도 안정 됐으니 잠을 자면 완전히 나을 걸세.”

치트가 시켰냐고 따지지도 않았다. 온건하게 넘어가려는 패치의 태도에 머뭇거리던 퍼블리는 푹 주무시고 나으라는 말을 남기며 방을 나갔다. 문이 닫히고 계단 쪽으로 향하는 발소리가 들리지 않을 때까지 눈을 감고 있던 패치가 짜증 가득한 얼굴로 짐가방을 돌아봤다.

“...일부러 함구하고 있었던 걸 알아챘겠고

폭탄 챙긴 것도 눈치챘겠군.

누군가는 적과 머리 싸움하는 게 즐겁다고 하지만 적어도 지금의 패치는 그렇지 않았다.

 

마법사님 상태가 많이 좋아졌어요.”

정말 다행임다~ 역시 따뜻하고 제대로 된 걸 먹이는 게 최고죠.”

한숨 푹 주무시면 완전히 나을 것 같대요.”

저도 함께 아프긴 했지만 오는 내내 아팠던 건 패치가 유일했으니 마음이 아팠는데 한숨 돌렸네요~”

퍼블리가 내려왔을 땐 식사는 거의 끝나가고 있었다. 열심히 먹던 용사는 배가 부르자 노곤해졌는지 의자에 기대 꾸벅꾸벅 고개를 흔들며 졸고 있었다.

꽤 오래 있으셨던데 패치도 오랜만에 길게 이어지는 대화가 즐거웠나봄다?”

대화라기 보단...저 혼자 실컷 얘기하고 들어주셨어요. 도시에서의 일은 당황스러웠지만 여기 오는 나흘간 여행이 이런 거구나 싶어서 여행 떠나기 전이 떠올랐거든요.”

그랬군요. 어이구 용사님? 그러다 머리 부딪히면 큰일남다?”

용사를 흔들어 깨운 퍼블리는 비몽사몽한 상태의 용사의 팔을 잡아 지탱하며 먼저 올라가겠다고 말하고 2층으로 올라갔다. 포크로 빈 그릇을 깡깡 두드리던 치트는 만족스러운 미소를 지으며 식사값을 치르고 뒤따라 올라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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