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런데 이렇게 곤히 자는데 깨워도 될까요?”

저녁도 먹지 않은 상태니 중간에 깨우긴 깨워야하네. 어려서 체력도 약하니 굶으면 면역력도 떨어질 걸세.”

밥을 먹여야할 때 깨우고 묻는 걸로 정한 일행들은 각자 할 일을 했다. 용사는 침대에 눕자마자 잠들었고 한시름 덜은 패치는 오늘 모아본 정보를 살펴보며 옆에 달라붙는 치트를 밀어내기 바빴고 퍼블리는 그동안 스케치를 했던 지도들을 본격적으로 다듬기 시작했다.

그 모습들을 보던 마키나는 조금 떨어진데서 자리잡아 기계들을 손보기 시작했다. 조금만 고개를 들어도 한눈에 볼 수 있게 자리잡은 모양새였다.

저도 잠깐 나갔다 오겠슴다~”

달라붙다 포기한 건지 치트는 그리 말하며 방을 나갔다. 패치는 옆에서 귀찮게 달라붙는 녀석이 없어져서 그런지 찌푸리던 얼굴을 조금 풀었다.

너 정말 저 녀석 싫어하는 거 맞아?”

곧이어 날아온 물음에 조금 풀렸던 게 더 깊게 찌푸려졌다.

그럼 좋아하는 걸로 보이나?”

뭔가 예상만큼 싫어하는 것 같진 않아서 말이야.”

감정을 그대로 다 드러냈다면 사람 많은 이곳은 진즉에 무너지고 녀석은 별 대신 매달아놨겠지.”

안 싫어한다는 게 아니라 굉장히 가라앉아보여. 짜증나서 관심 안 주려고 외면한다기 보단 일부러 외면해야하는 것처럼 보인다고.”

이건 또 무슨 소리인가. 패치는 가라앉아보인다는 건 동감했지만 일부러 외면해야하는 것처럼 보인다는 부분에서 이해하지 못했다.

무슨 말을 하는지 전혀 이해가 안 되는군.”

네 감정인데도 왜 이해가 안 돼? 보이는 걸로도 그런데 본인이라면 더 잘 알 거 아냐?”

짜증나고 싫어서 외면하는 게 맞는 걸세. 시답잖은 이야기 그만하고 각자 할 일 하지.”

지금 너랑 방금 나간 대사제간의 관계 의심에 대한 이야긴데 시답잖은 이야기로 넘길만 한 거냐는 반박이 돌아왔지만 패치는 무시했다. 나가서 드디어 안 보이는 싫은 녀석 이야기를 굳이 더 하고 싶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혹시 하얀 들판이라는 지명도 비유적인 이름인가요?”

비유라니?”

이전에 들렸던 곳이 각진나무 무덤이었거든요.”

아하 무슨 소린가 했는데 그런 비유? 거긴 딱히 비유할만한 일화가 없어. 말 그대로 하얀 꽃과 풀들로 이루어진 들판이야. 놀라운 건 그 하얀 게 다 자연발생이라는 거고. 어떤 이들은 요정이 심었다고들 하는데 그닥 신용가는 얘기는 아니라.”

마키나 인식 속의 요정들은 꽃과 풀을 뽑거나 침대 삼아 자는 존재들이었다.

그보다 각진나무 무덤이라니, 거기 주인 성격이 장난 아니기로 유명하던데 용케 갔다왔네?”

여기 자고 있는 헵토미노가 그 성격 장난 아니기로 유명한 주인의 아들이란 걸 알게 되면 어떤 반응을 보일까? 그렇게 생각한 퍼블리는 어색하게 웃으며 말해야할지 말아야할지 고민을 했다.

거기 말고 또 어디 갔다왔어?”

기술의 도시에 가봤어요.”

! 어때? 거기 정말 멋지지? 내가 거기에서 꽤 인지도도 높고 기계측 부대표거든.”

...구경하기 바빴어서...”

그래? 하긴 이거 말고 다른 의뢰들 때문에 자리를 오래 비우긴 했지. 그래도 우리 대표는 봤지? 애들이 여행자들 지나갈 때마다 입이 닳도록 대신 소개하기도 하고 뭣보다 밤에도 기계를 만들어서 그 소음 때문에 모르는 사람이 없어.”

마법사가 없었던 기술의 도시는 마키나의 말과는 달리 자신들의 대표에 대해서 얘기하는 사람이 아무도 없었다. 기억나는 건 하늘을 날다가 떨어지던 사람들, 하얀 국화꽃, 그리고

혹시 대표 이름이 페르스토인가요?”

맞아. 직접 봤어?”

. 얘기도 나눠봤어요.”

그래? 한창 기계 만지는데 정신 없어서 밖으로 안 나올 줄 알았는데 햇빛도 쐬고 사람도 만나니 안심이네.”

마키나는 도시의 상황을 알지 못했다. 어찌보면 당연한 일이었다. 이에 대해선 자세히 얘기해야겠단 생각에 퍼블리는 먼저 확인을 했다.

마법사들과 함께 지내는데 사는데도 서로 사이가 안 좋다고 들었어요. 실제로도 그랬고요.”

기술적으로 서로 대립할 수밖에 없어서 그래. 솔직히 효율적이거나 효과가 강하지도 않은데 그걸 인정하질 않으니까 난 마법사들을 좋게 볼 수 없어.”

그럼 마법사들이 위험에 빠지거나 마법사들의 도움이 필요할 정도로 급박한 상황이어도 오로지 자신들끼리 해결할 건가요?”

그 상황이 얼마나 급박한 상황일까에 따라 다르지 않을까? 물론 사람 목숨 걸린 일이라면 당연히 도와야하고.”

그 말에 안심한 퍼블리가 현재 도시의 상황에 대해 얘기하려던 순간

그보다 우리 대표 머리카락은 안전해? 언제 한 번 크게 폭발한 적이 있어서 머리카락이 반 이상은 탄 적이 있거든. 세상에 그 레몬색이 그렇게 시꺼매질 수 있다는 걸 처음 알았어.”

“...레몬색이요?”

레몬 삐죽 머리! 그거 머리가 타가지고 잘라서 그렇게 삐죽삐죽하게 자르게 된 거야.”

퍼블리 기억 속의 페르스토는 보라색 곱슬 머리였다. 레몬이고 뭐고 밝은 색은커녕 흰머리도 하나 없이 제법 진한 보라색이었다. 한껏 당황을 머금고 눈을 굴려 쭉 둘의 이야기를 듣던 패치와 눈을 마주했다. 페르스토가 누구인지 마주친 적 있어서 눈치껏 알아챈 패치는 살짝 미간을 찌푸렸다.

레몬색에 직모가 확실한가?”

확실하고 뭐고간에 그게 맞는데 왜?”

혹시 보라색 곱슬머리인 기계공은 알고 있나?”

글쎄, 내 주변엔 그런 사람은 없었는데.”

미간에 주름이 하나 더 졌다. 이 상황 또한 이상현상으로 판정해야하는지 애매했기 때문이었다. 원래 레몬 직모였는데 마키나가 없는 동안 페르스토 개인이 보라 직모로 바꾼 거일 수도 있었다.

떠나기 전에 도시에 이상한 점이 없었나?”

이상한 점이라니?”

마법사들의 움직임이라던지.”

걔네야 뭐 늘 마법쓰고 우리랑 비교하고 그랬지. 딱히 이상한 건 없었어.”

패치는 다시 퍼블리를 보며 고개를 살짝 저었다. 말하지 말라는 의미였다. 그리고 이 일을 계기로 둘이서 마키나를 관찰하게 되었고 마키나는 묘한 느낌을 받았으나 패치가 주의를 끌고 퍼블리가 관심 가득한 어투로 물어보는 둥 둘의 연계에 의해 눈치채지 못하고 넘어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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잔소리라는 것도 잔소리라는 걸 인식해야 사람들이 알아먹는 거였다. 양심에 찔리면서 듣는 형태든, 듣기 싫어하면서 귀찮아하는 형태든 어찌됐든 그건 이해하고 인식한다는 뜻이었으니. 여기서 패치는 두 유형을 봐왔지만 두 유형 전부 결국엔 쩔쩔 맸다. 그만큼 패치의 기세가 만만치 않았기 때문이었고 자연스럽게 눈치를 보게 된 셈이었다.

다만 여기서 기세고 뭐고 잔소리 자체를 이해하지 못하고 인식하지 못하게 되면 어떻게 되는지는 패치가 아직까진 겪어보지 못한 경험이었기 때문에 생각해본 적이 없었다.

방금 전까진.

그러다 책장이 쓰러지면 어떡할 건가?!”

도미노~!”

치우는 사람 입장을 생각해보게!”

같이 치우장~”

애초에 쓰러뜨리지 않으면 되잖나!!”

전혀 들어먹지 않는 용사에 패치만 속이 터지고 있었다. 마법으로 제압하려고 해도 요정과 오래 지내면 저항력이 생기는지 듣지 않아 힘으로 제압하려고 했지만 슬프게도 물리적인 면에선 용사가 더 강했다.

처음엔 이렇게까지 소리를 지르진 않았다. 낮게 깐 목소리로 경고를 줬지만 용사를 알아먹지 못했고 결국 이렇게 소리까지 지를 지경에 왔는데도 용사는 여전히 알아먹지 못했다. 치트가 빡치게 하는 걸 대비해서 가져온 혈압약이 용사로 인해 사용되고 있었다.

화내고 소리지르는데 지친 패치는 천천히 머리를 굴렸다. 애초에 상식이 통하지 않는 용사였다. 마키나가 설명해준 요정들과 같게 인간들 사이의 상식이 없다고 생각한다면 아주 잘 들어맞았다. 그동안 목적지도 들르고 이상현상에 집중하고 노숙도 하며 바쁘게 움직이느라 넘겨버린 게 이렇게 큰 눈덩이로 돌아왔다.

“...자네가 이제껏 행동했던 대로 한다면 곤란해지는 사람이 계속 나타날 걸세.”

왜 곤란행~?”

사람들 사이에 서로 곤란해지지 않기 위해 세워놓은 규칙이 있네. 그에 대해 자세히 설명할테니 거기서 내려오게.”

여기서 하장!”

겨우겨우 가라앉힌 짜증이 다시 올라오려고 했지만 제 목과 머리만 아플 거라는 걸 깨달은 패치는 한껏 낮춘 목소리로 설득을 했다. 물론 올라오려는 감정을 내리누르느라 무의식적으로 나온 기세들이 있었고 근처를 지나가다가 그 기세를 목격한 이들은 잽싸게 다른 곳으로 뛰어서 피했다.

여기서 하기엔 자네는 다른 것들에 정신이 팔리겠지. 그러니 제대로 들을 거라면 당장 내려오게.”

그르믄 나중에 들을랭!”

물리적인 힘은 약했지만 도구를 활용하는 능력은 그 누구보다 뛰어난 패치였다. 짐가방을 두고 와서 사용할 만한 게 조금 챙겨온 손수건들이었지만 이걸 묶고 강화 마법을 사용하니 밧줄 못지 않게 튼튼해졌다. 손목이 묶여 연행되다시피 내려온 용사는 이잉 하고 아쉬운 소리를 내었지만 눈 하나 깜짝할 리 없는 패치였다.

여기는 공공시설 그러니까 누구나 다 쓰는 시설이지. 공공시설인 이유는 그만큼 필요한 곳이고 누구나가 언제든 쓸 수 있어야하는데 무너지고 어지럽혀져서 치우는 중이라고 생각해보게. 치우는 중에 급하게 사용해야할 사람이 오게 되면 어떻겠나?”

같이 치운당!”

당장 사용해야할 정도로 급한 사람일세. 그렇담 정답은 애초에 치울 상황을 만들지 않는 거지.”

수갑처럼 손목을 묶어놓고 끌고 다니며 관광도 하고 기초상식을 가르치는 기묘한 모습에 지나가던 사람들과 자리를 지키던 직원들도 하던 걸 멈추고 구경하는 상황이 벌어졌다.

그렇게 3층 정도 올라갔을 때 용사는 공공시설물을 함부로 다루지 않고 무너뜨리고 망가뜨리지도 않는다는 걸 새기다시피 배웠다. 한시름 놓게 되었지만 그렇다고 손목을 묶어놓은 걸 풀 정도는 아니었기에 관광하는 동안은 지금 상태를 유지했다.

꼭대기 보구 싶당!”

옥상은 비구름도 없고 달도 안 뜨는 밤에 개방한다네. 별을 조사하기 위한 장치들이 있어 별이 잘 뜨는 때에 관광차 개방한다지.”

마침 오늘은 달도 뜨지 않고 비도 내리지 않는 날이었다. 타이밍이 좋아도 너무 좋다는 생각과 더불어 아까 요정에 관한 정보를 적으려 할 때 한 귀퉁이로 보였던 국화그림을 떠올린 패치는 미간을 살짝 찌푸렸다.

자네 혹시 돌아다니는 동안 눈에 띄는 이상현상이 있었나?”

몰랑!”

퍼블리와 헵토미노에게 묻기로 결심한 패치는 용사에게 언제까지 돌아다닐 생각인지 물었다.

꼭대기 볼랭!”

지금은 밤이 아니니 못 보네만.”

그르믄~ 밤까지 돌아다닐랭!”

차라리 돌아가서 밤이 될 때까지 쉬면서 기다리는 게 더 나을 걸세.”

다같이 보는 거양~?”

볼 생각이 없는 사람은 빠지겠지.”

그 뒤로 두 층은 더 돌고 난 후에야 용사는 진정했는지 더 이상 뛰어다니려고 하지 않았다. 겨우 진정한 용사에게 일행들에게 돌아가 별을 볼지 안 볼지에 대해 얘기를 나누자했고 용사는 알았다고 고개를 끄덕이며 여전히 묶인 손에 의해 따라갔다.

구경은 다 했어?”

자네는 다 정리됐나?”

그럭저럭. 어차피 같이 가면서 둘 다 감시할 거니까.”

이미 요정에 관해서라기보단 둘을 감시하기 위해서가 되어버렸다. 마키나는 머리가 아파오는지 관자놀이 부분을 꾹꾹 누르며 함께 들어갔고 들어가보니 헵토미노는 잠들어있었다.

오셨어요?”

오셨슴까?”

별 보러 가장~!!”

다짜고짜 외친 용사의 말에 퍼블리는 당황하며 아직 밤이 아니라고 했고 패치는 묶어둔 용사를 앉히면서 다시 진정시켰다. 화를 내기엔 이미 시달릴 대로 시달려 지쳐버렸으니 더 이상 나지도 않는 상태였다. 손을 묶어놓은 걸 보고 대충 상황을 짐작한 퍼블리 또한 안쓰러운 눈빛으로 패치를 바라봤다.

밤이 되면 별 관광차 옥상을 개방할 걸세. 가겠나?”

!”

~ 낭만적일 것 같슴다. 마침 오늘 달도 안 뜨고 구름도 없는 날이죠?”

잠들어있는 헵토미노는 어떡할까 했지만 밤이 될 때 살짝 깨워서 물어보기로 결정했다. 둘을 감시하겠다던 마키나는 당연히 따라가겠다는 입장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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치트는 난감한 웃음을 지었고 패치는 어차피 벌어질 일이었기에 별다른 표정변화가 없었다. 자연스럽게 흐르는 냉막한 기운에 퍼블리는 헵토미노 앞에 서서 그 모습을 가렸다.

한적하다해도 엄연히 사람들이 지나다니는 곳이니 적당히 사람 안 올 만한데로 옮기는 게 어떻겠습니까?”

다른 사람들이 들으면 안 되는 이야기인가보지?”

마법사가 사제와 함께 여행할만큼 중요한 얘기죠.”

사제들이 입담으로 먹고 산다는 게 마냥 농담은 아니었나보네.”

그리 말한 마키나는 먼저 움직였다. 무슨 얘기든 간에 이렇게 셋이서 모여있는 것 자체가 상당한 시선을 끄니 사람이 없는 데로 가는 건 당연했다. 탑을 방문한 손님들이 일행들끼리 함께 조용히 쉬기 위한 방이 있었다. 숙소용으로도 쓰이는 방이어서 침대도 있었기에 의자 대신으로 앉으니 바닥에 앉거나 서 있을 사람은 없었다.

모두가 앉자마자 치트가 말하길

참고로 제가 5년 전의 그 대사제임다~”

대놓고 터뜨렸다. 마키나는 이게 당황해야할지 황당해야할지 헷갈리며 어처구니 없다는 기색을 거리낌없이 풍겼다. 엄청난 폭탄을 터뜨려놓고도 싱글생글 웃는 얼굴에 질렸는지 마키나는 그대로 고개를 돌려 패치를 바라봤다. 더 상세한 뒷내용을 원하는 무언의 표현이었다. 당연하게도 패치의 표정은 좋지 않았다.

제대로 설명해.”

이 정도면 제대로 아님까? 보통 같았으면 그냥 사제라고 얼버무렸을 테니 진실된 이의 귀감이라고 칭찬 좀 해주십쇼~”

칭찬대신 날아오는 건 그 어느때보다 날카롭게 깎인 얼음 가시였다. 결국 치트는 신탁에 관해 설명했고 거기에 더불어 패치가 그동안 날려보낸 신관과 성기사의 수도 말했다.

어차피 저도 신탁의 주인공들 중 하나니 제가 나서서 설득해야한다 무릎꿇고 빌어야한다 말이 아주 많았죠.”

들은 말치곤 하나도 실천한 게 없군 그래.”

그야 패치가 결국 절 받아들였...죄송함다! 그러니 그 위험한 거 날리지 말아주십쇼!”

얘기를 다 들은 마키나는 떨떠름한 기색이 그대로 묻어나오는 어투로 이렇게 말했다.

전말이 어떻고 뒷내용이 있고 신탁이 내려졌든 간에 썩 좋게 보이진 않아. 어찌됐든 너흰 5년 전 세상을 떠들썩하게 만든 일의 당사자들이고 잘 모르는 사람이나 의심 많은 녀석들은 과연 네가 한 말들이 진짜일지 계속 의심할 걸고 심하면 너희가 서로 짜고치고 일을 벌였다고 생각할 걸.”

아주 합당한 의견이었다. 오히려 방금 말한 것처럼 둘이 짜고 친 거 아니냐고 캐묻지 않은 게 다행이었다. 이는 당연히 예상한 의견이었기에 패치는 이렇게 말했다.

신탁 뒤에 뭐가 있을지 직접 뒤집어봐야 알겠지.”

그렇게 말하며 패치의 시선은 퍼블리와 용사를 향했다. 신탁이 가짜면 어째서 저 둘이 말려들어야 했는지, 만약 진짜라도 저 둘의 연관성은 영 알기 힘들었다. 신탁 뒤에 무엇이 있는지 알아내려면 저 둘에 대해서도 파악을 해놔야했다. 그게 과거든, 비밀이든.

일단 더더욱 당신네들을 지켜봐야겠어. 요정에 관련된 건 둘째치고 이 일은 쉽게 넘어갈 수 없는 일이야, 아무리 종교쪽의 신탁을 존중한다해도 이런 구성원은 지금도 솔직히 납득이 힘들어.”

그럼에도 마키나가 둘이 짜고 친 게 아니라는 걸 확신하는 이유는 대화하면서 보였던 패치의 성격이 한 몫했다. 저게 연기라면 저 마법사는 삶을 연기를 하며 살아가는 인형이리라.

패치의 시선을 본 건지 안 본 건지 얼굴을 덮고 있는 가면은 고개를 돌리지 않는 이상 시선마저 가려서 알 수 없었다. 마키나는 생각할 시간이 필요하다며 그 뒤론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미동도 없이 가만히 벽에 기대 앉아있는 걸 보면 저대로 잠든 게 아닌가 싶을 정도였다.

코야해~?”

거기에 대놓고 묻는 용사가 있었다. 마키나는 조금 황당한 어투로 안 잔다고 말하며 방 밖으로 나갔다. 아예 완전히 혼자 있고 싶은 듯 했다. 패치는 놀러가냐며 같이 놀러가자는 용사를 붙잡아 앉혔다.

그나저나 의외임다? 전 패치가 처음부터 같이 하얀 들판에 가자는 제안을 거절했을 거라 생각했는데 말임다.”

지금이라도 거절할 명분을 자네가 만들어보게.”

그 말에 치트는 잠시 아무 말이 없었다. 평소 같았으면 울상지으며 이미 여기 상황 다 알려진 상황에서 그걸 어떻게 만드냐 너무한다 징징대거나 역시 냉정하고 가차없다며 히죽 웃었겠지만 이번은 달랐다.

굳이 명분을 만들어야할까요?”

언제나처럼 짓는 미소였지만 어딘가 담백했다. 아니 담백하다는 표현은 너무 순화된 표현이었다. 과장이 없는 미소와 달리 눈빛을 본 패치는 가늘게 뜬 눈으로 마주봤다. 무슨 생각으로 껍데기를 살짝 벗었는지는 모르겠지만 일단 보게 된 패치는 당연하게도 기분이 좋지 않았다. 귀퉁이만 아주 살짝 뗀 주제에 아주 극적인 반응을 기대하는 눈빛에 패치는 손가락을 두 개만 펼치고 저를 보는 노란 눈과 번갈아가며 봤다. 의도를 이해한 치트는 얌전히 눈을 가렸다.

일단 우리는 여기 휴식차 들린 거니 며칠은 머무를 거고 저 쪽도 일주일 여유는 있다고 했으니 이 부분은 문제가 없네. 본격적으로 같이 가게 되면 그동안 서로 돌아다닌 방식이 다를테니 조율이 필요하겠지. 그러니 좀 더 탑을 구경하고 싶은 사람들은 지금 구경하고 오게.”

왠지 중요한 일들은 패치와 치트에게 전부 맡기는 것 같아 퍼블리는 거절했다. 용사를 막느라 쌓인 피로도 한 몫 했다. 헵토미노도 피곤했는지 침대에 앉은 이후론 꾸벅꾸벅 졸고 있었다.

조오오오기까지 올라가볼 거야!”

혼자만 쌩쌩한 용사는 혼자서라도 갈 의지가 가득했다. 이미 혼자 다닐 때 여러번 난리가 났었으니 또 난리가 난다면 그 땐 쫓겨나겠다 싶어 패치는 용사를 따라가서 통제하기로 했다.

수고가 많았네.”

아하하...”

빈말로라도 괜찮다고 하기엔 꽤나 진땀 빼는 뒷수습이었다. 퍼블리는 대신에 힘내시라며 앞으로 겪을 고생에 대한 위로 섞인 응원을 건넸다. 치트는 조금 고민하는 듯 싶더니

나중에 저희 둘이 오붓한 데이...잘 갔다오십쇼~”

얼음 가시를 소환해 던질 자세를 취한 패치에게 인사말만 전했다. 또 한 번 되도않는 헛소리를 한다면 다음엔 위협으로 넘어가지 않겠다는 패치의 으름장에 그저 웃기만 했다. 문 밖으로 나가니 다섯 걸음 떨어진 데서 벽에 기대 팔짱 끼고 있는 마키나가 있었다.

잠시 산책이나 하고 오겠네.”

마키나는 고개를 끄덕이는 걸로 대답을 대신했다. 기운 넘치는 용사는 어느샌가 저만치 뛰어가고 있었다. 앞으로 벌어질 뒷수습에 패치는 여기 온 김에 각 잡고 상식을 꽉꽉 담은 잔소리를 날릴 예정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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