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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20.07.11 [치트패치] 술
  2. 2019.12.06 [치트패치] FLIP FLOP C4 -하얀들판.3-
  3. 2019.11.20 [치트패치] FLIP FLOP C4 -하얀들판.2-

[치트패치] 술

단편 2020. 7. 11. 01:33

치트는 굉장히 억울하고 눈물 나고 화가 났다. 다짜고짜 무슨 일인가 따져본다면 시간은 조금 거슬러 올라간다.

 

4년이 지나면서 회식 한 번 안 열었던 걸로 유명한 패치는 그만큼 다른 사람들과 술을 마시는 일이 없었다. 특별히 술을 마시는 건 부하직원들이 꽤 큰 실수를 하거나 안 좋은 일이 터지는 날에 아주 가끔, 혼자서 구석진 골목의 구석진 자리에 앉아서였다.

 

그런 그의 말 상대가 되는 건 손님이 적어 한가한 술집 주인이거나 그 날 스트레스를 준 기억 속의 대상이었다. 그런데 오늘 만큼은 술집 주인도 상상도 아니었다.

 

이번 일은 꽤 스트레스가 컸는지 패치는 평소 조절하던 것보다 더 마시는 바람에 정신줄을 완전히 놓아버렸다. 마침 술집엔 마찬가지로 술이 약한 건지 아님 많이 마신 건지 패치와 술버릇이 비슷한 사람이 근처에 앉아있었다.

 

열심히 혼자 떠들다가 소리가 맞닿은 둘은 서로가 누군지도 모른 채 서로에게 자기 할 말만 나열하기 바빴다. 대체 왜 못 하나 제대로 못 박아서 주루룩 무너지게 만들었냐, 대체 어떤 놈이 자꾸 자기네 차고 앞에다 차를 대냐 등등 만취한 이들의 속풀이 시간이었다. 둘의 곁에 오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그렇게 시간은 조금 더 흘러 저녁에서 밤이 되고 둘은 그나마 걸어서 집에 도착할 수 있을 정도로 술이 깨어 서로가 누군지도 모른 채 그대로 헤어졌다. 사실 누구였는지는 중요치 않았다.

 

집에 도착하고 더 중요한 일이 생겼기 때문에.

 

“...이런 미친...”

 

정말 어떻게 찾은 건지는 모르겠지만 패치는 옷을 갈아입는 동안 우연히 도청기를 찾았다. 잘못 봤나 싶었지만 술 취한 눈으로 봐도 명백히 도청기였다. 술이 확 깨는 걸 느낀 패치는 손에 쥔 도청기를 노려봤다.

 

누구나 다 알 듯이 도청기를 설치한 범인은 치트였다. 하지만 패치는 알 리가 없었다. 대체 어떤 미친놈이 자기 집에 도청기를 설치했을까. 최근에 집에 도청기를 심고 개인정보를 얻어 보이스피싱으로 돈을 챙기는 녀석들이 있으니 대처법을 설명하는 뉴스가 스치는 듯 했다.

 

여기서 보통의 패치가 했을 일은 도청기를 끌 수 있다면 끄고 경찰에게 신고하는 거였다. 하지만 이건 다시 강조하자면 보통의 패치가 했을 일이었다.

 

불행이라 해야 할지 지금의 패치는 술 취한 패치였다. 아무리 술이 확 깼다한들 여전히 취기는 남아있었다. 쉽게 말하자면 제정신이 아니었다. 이 깜빵에 처넣어도 시원찮을 녀석을 어찌 골려줄까. 제정신이 아닌 머릿속에서 뉴스 뒤로 바로 스쳐지나가는 기억이 있었다.

 

아까 전의 같이 일방적으로 떠든 술상대의 말이었다. 정말 왜 나왔는지는 모르겠지만 그 사람이 이런 말을 했다.

 

아뉘이이~!! 열시미 콤퓨타 뚜드리는 뒈에에~!! 왜 옆집 쉐끼드른 떡을 쳐서~!!”

 

요컨대 컴퓨터로 작업 중에 옆집 사람들이 있을 벽 너머에서 신음소리가 크게 들려와 깜짝 놀라고 민망했다는 얘기였다. 그리고 제정신이 아닌 술 취한 패치는 도청기를 입에다 가져다대고는

 

아으..! 아앙..!!”

 

그 상황에 이 도청기를 설치한 범인이자 지금 이 순간에도 열심히 듣고 있던 치트는

 

대체 어떤 새낍니까!?!?!!!”

 

굉장히 억울하고 눈물 나고 화가 났다. 전혀 억울할 부분이 없지만 치트는 억울했다. 자기가 열심히 아끼고(?) 기대하던 딸기를 대체 누가 따먹는단 말인가!

 

참 신기하게도 바로 옆집이었지만 벽 너머로는 신음소리가 나지 않았다. 오직 도청기를 통해서만 들려왔다. 치트는 아주 자연스럽게 패치네 집 문을 따고 안으로 들이닥쳤다.

 

한창 열심히 신음을 흘리다가 갑자기 문이 벌컥 열리는 소리에 깜짝 놀라 패치는 빨간 얼굴로 돌아봤다가 직장 조수가 서 있는 걸 보고 한 번 더 놀라면서 딸꾹질을 했다.

 

얼굴은 빨갛지만 가득한 술기운과 술냄새, 멀쩡하게 다 입고 있는 옷, 손에 쥔 도청기, 혼자 있는 패치.

 

상황을 파악한 치트는 언제 그렇게 분노를 담았냐는 듯이 싱긋 웃더니

 

우리 선배님~ 많이 쌓이셨군요~?”

 

아주 자연스럽게 다가와 패치의 옷을 천천히 잡아당기며 벗기기 시작했다. 너무 갑작스런 상황을 연달아 겪은 패치는 슬슬 자신을 감싸는 치트의 팔을 잡고

 

우웨엑!!”

 

그 날의 기억은 그렇게 술냄새와 함께 사라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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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메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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막상 마을에 도착했어도 불타는 마을 안에 들어갈 수 있는 건 암비투스와 마키나의 탐사인형이었다. 그마저도 탐사인형은 안에 들어가서 연결이 끊긴 상태였다.

아까 내가 나오기 직전에도 안엔 아무도 없었다. 나온 후엔 너희를 만났으니 들어갔을 확률은 꽤 낮지.”

그래도 용사님은 방심할 수가 없어요.”

그보다 걘 왜 용사라고 불러? 어디 이름 모를 마왕이라도 때려잡았어?”

얘기하면 복잡하네. 우선 찾는 게 먼저지.”

자연스럽게 의문을 회피한 패치는 용사가 갔을 법한 곳을 세군데 짚었다. 첫 번째는 바로 앞의 불타는 마을이었고 두 번째는 이 근처였으며 세 번째는

우리가 이렇게 얘기하고 있는 새에 하얀 들판에 들어갔을지도 모르지.”

그것도 그것 나름대로 큰일인데요...”

하지만 아무리 얘기하고 있는 동안에 먼저 갔더라도 그렇게 빨리 갈 수가 있나?”

솔직히 용사님이라면 가능할 것 같슴다~”

암비투스만 빼고 모두 공감했다. 결국 마을 안에 들어갈 수 있는 건 암비투스 뿐이니 정하나 마나였고 하얀 들판 안에서 혹시 마주칠 수 있는 요정을 대비하기 위해 마키나와 안면있는 요정일지도 모른다는 의견으로 헵토미노가 함께 가기로 했다.

초기 여행 일행 셋은 각자 한 명씩 그 주변을 둘러보기로 했다. 따로 신호를 줄 능력이 없는 치트와 퍼블리에게 신호탄을 쥐여주는 걸로 모든 준비가 끝났다.

용사를 발견했으면 파란탄을 쓰고 위급한 상황이 발생하면 빨간탄을 쓰는 거야, 알겠지?”

!”

알겠슴다~”

그리고 넌 다시 들어가는 김에 내 탐사인형 좀 가져와라. 왜 봐놓고선 안 가지고 나온 거야?”

저 비정상적인 마을에서 갑자기 나타난 움직이는 걸 잘도 마음 편히 들고 나오겠다? 그것도 자기네들이 최고인 줄 착각하고 있는 고철덩어리를 말야.”

다시 한 번 다툴 기미가 보이자 시간을 더 지체할수록 용사가 어딘가에서 무슨 사고를 일으킬지 모른다는 걸 다시 상기시키곤 헵토미노를 살짝 눈짓했다. 애 앞에서 보이기 좋은 모습이 아닌 걸 둘 다 알고 있었는지 불만스러운 기색은 가득했으나 순순히 물러났다.

다행이라고 해야할지 헵토미노는 요정에 대해 생각하느라 주변을 신경쓰지 못하고 있었다. 동시에 중간탑에서 요정에 대해 격렬한 반응을 보였던 마키나가 떠올라 긴장한 얼굴로 마키나를 올려다봤다. 다만 마키나는 말싸움 때문에 겁을 먹은 거라 생각했는지 안 싸운다며 안심하게하려는 말을 꺼내고 조심히 손을 잡았다.
해가 지면 오히려 우리가 길을 잃을테니 못 찾아도 돌아오게.”

그 말을 끝으로 모두 각자 정한 곳과 방향으로 흩어졌다.

 

바로 앞에 마을이 있었으니 가장 먼저 도착한 거나 다름없는 암비투스는 시선을 아래로 두며 무언가를 찾고 있었다. 발에 무언가 가볍게 툭 채이는 감각이 나자 조금 더 시선을 아래로 내리니 마키나가 말한 탐사인형이 발 앞에 있었다. 인형을 들어올린 암비투스는 그대로 뒤돌아 마을 밖으로 나갔다.

. 들리냐? 보이고?”

탐사인형은 여느 인형처럼 축 늘어진채로 아무런 반응이 없었다. 암비투스는 아랑곳 않고 흔들어대다가 툭툭 두드려보기도 했다. 8번쯤 두드렸을 때 인형의 손이 암비투스의 손을 탁 쳐냈다.

[, ...불덩...! ...얼마...비싼...!!]

얼마나 비싸고 자시고간에 벌써부터 맛이 갔구만.”

[...두드...대니...!!]

시끄럽고 네 쪽에서 알아듣는 건 문제 없네. 일단 어디까지 작동 가능한데?”

[내려...]

탐사인형을 내려놓으니 다리를 절뚝거리기 시작했다. 얼마 안 가 주저앉았고 손으로 땅을 짚었지만 암비투스의 손을 쳐낸 오른쪽만 멀쩡하고 왼쪽마저도 삐걱거리며 제대로 지탱하지 못했다.

대단한 듯 떠벌리더니 순 고물이구만?”

[죽을...이 뇌도...워버...]

시끄럽고 옆에 애 듣는 거 아니냐?”

인형은 잠시동안 아무 말이 없었다. 지금 연결 중인 인형 주인 마키나는 기계를 때려서 고친다는 희대의 망발을 몸소 실천하고 있던 암비투스에 옆에 있던 헵토미노도 깜빡 잊고 화를 내고 있었던 거였다.

잠시동안 조용했던 인형이 다시 움직이기 시작했다. 이번엔 아까보다 전해져오는 음성이 또렷했다.

[내 목소리가 새어...않게 조절했...근데 네가 두드려대느...전히 고치지 못했...]

, 그만 투덜거려! 이러다 날 새겠네.”

[누구 때문인...!!]

그 놈들 뭐야?”

인형이 곧바로 조용해졌다.

“5년 전 그 사건 터지고 나서 나도 생판 아무것도 없는 일반인이랑 사제놈들 구별하는 눈은 길렀다. 성기사 놈들이야 말할 것도 없이 티 나니 사제 놈들이 짜증났지. 그 기분나쁜 검은 머리 사제잖아?”

몰랐다는 말은 하지 말라며 덧붙였다. 마키나도 똑같이 눈치 챈 부분이었다.

그 빨간머리 마법사가 진짜 그 5년 전의 마법사라면 왜 사제 놈을 데리고 다니는 거야? 사제는 물론이고 종교 관련된 녀석들이라면 질색을 할텐데.”

[사제 녀석들을 날려...그러다가 성기사도 날리...끝도 없이 와서 결국 한 놈만 붙잡아 역감시로...나중에 아예 신전을 날릴...는데.]

미리 맞춰둔 말을 꺼낸 마키나였다. 사실 어느 정도의 사실 또한 포함되어있었다. 마지막의 나중에 아예 신전을 날릴 거라는 대목이 패치의 진심이자 이 여행이 끝났을 때의 목표였다.

신전을 날릴 거라니 아주 크고 정확한 목표구만. 일단 그쪽은 됐고 왜 종교 쪽에서 사제 놈들도 보내고 성기사 놈들도 보낸 거야? 지들이 저지른 짓 생각해보면 날리는 걸로 모자라다는 걸 알 텐데 말야.”
[그건 나도 몰라 계속...을 날려보고 털어보려 했다...데 끝까지 입을 안 열었다고 하...그리고 그 녀석들은 항상 뻔뻔....]

딱히 흠 잡을 데 없는 설명이었다. 자신의 성질 같았으면 여전히 날려버리다못해 아예 묻어버렸겠지만 그래도 납득 가능한 상황과 이유였다. 그런데도 암비투스는 무언가가 석연치 않았다. 자신의 마법처럼 성질이 불같고 자기주장이 심하게 강하다해도 그 또한 사람들을 보고, 파헤치고, 겪어온 경험이 있는 사람이었다. 그 경험으로 이루어진 감이 영 만족을 못하고 있었지만 짚어낼 수 없어 눈만 찡그리고 있었다.

뭐라 더 말을 하려던 순간, 마키나는 헵토미노가 아무 말을 안 해서 여전히 화난 줄 알고 있다며 연결을 끊었다. 더 캐물으려던 암비투스는 불만스러운 얼굴로 인형을 내려다보다가 다시 마을 안으로 들어갔다.

Posted by 메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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둘의 사이는 썩 좋은 편이 아니었는지 서로를 보는 표정은 그닥 좋지 않았다. 하지만 둘의 표정을 볼 겨를 없이 일행들은 전부 암비투스라는 사람을 보느라 바빴다. 가장 먼저 정신을 차린 건 패치였다.

화염계열 전문 마법사로군.”

...화염 마법사라면 다 온 몸이 불처럼 되나요?”

그럴 리가 있나. 저건 마력을 실시간으로 방출하고 있는 상태일세.”

뭐야, ? 너도 마법사 아니야? 날 몰라?”

마키나에게 신경 쓸 줄 알았던 암비투스가 패치를 보며 그렇게 말했다. 그리 말하는 걸 보면 기술의 도시 마법사이고 꽤나 유명인사인 듯 했다.

너보다 더 유명한 마법사야. 일단 넌 왜 여기 와 있는 거야?”

왜 오긴? 마을이 위험하다는 구조문이 날아왔다. 와보니까 이 꼴이 되어있지만. 그러는 넌 왜 왔는데?”

난 요정 때문에 요청서가 날아왔지. 일단 네 구조문 줘봐.”

요정은 또 뭐야? 그리고 내 구조문 보기 전에 네 요청서나 내놔봐.”

둘이 옥신각신 싸우는 동안 얘기를 들어보니 둘의 구조문과 요청서 내용은 다른 듯 했다. 결국 동시에 보여지게 된 구조문과 요청서를 보니 요정이 언제 어디에서 나타났다는 상세한 내용의 요청서와 단순히 마을이 위기상황이라는 것만 쓰여있는 구조문이 눈에 띄게 대조됐다. 하지만 찍혀있는 증명 인장을 보면 동일한 마을 내에서 나온 게 확실했다.

이게 뭐야? 요청서 보낸 후에 요정이 이 마을에 불이라도 지른 건가?”

요정이 간혹 장난으로 요술을 쓴다는 건 들어봤지만 이런 경우는 처음인데.”

저건 장난 수준이 아닌 것 같은데요...”

마을에 불을 지르는 게 장난인 수준이라면 요정들은 요정이 아니라 악마라고 불렸어도 이상할 게 없었다. 어쩌면 최초의 악마나 다름없는 요정이 나타난 게 아니냐 이런 얘기까지 나오던 와중에 구조문과 요청서를 번갈아 보던 패치가 문득 말했다.

여기 써진 시간과 날짜는 보낸 때를 의미하는 건가, 아님 받은 때를 의미하는 건가?”

보낸 시간과 날짜야. 만약 나중에 잃어버리다 발견하면 시간이 얼마나 경과했는지 알아놔야 하니까.”

시간과 날짜가 똑같네.”

그 말에 둘의 표정이 변했다.

자세히 보니 필적도 똑같은 것 같습니다만?”

똑같은 필적과 똑같은 시간. 물론 보낸 때를 의미하는 시간이니 한 사람이 두 개를 썼을 순 있지만 왜 다른 내용의 요청서와 구조문을 쓴 건가.
“...문제는 어떤 녀석이 쓴 건지도 모르겠고, 이것들이 날아온 마을은 지금 불타고 있고.”

너 저기 안에서 나왔잖아. 뭐 본 거 없어?”

사람이 있었단 흔적 외엔 아무것도 없었다. 너야말로 고철덩어리를 보냈던데 발견한 거 없나?”

고철덩어리가 아니라 탐사인형이야 온 몸을 불로 떡칠해서 구분도 못하게 됐어?”

마법과 기계가 사이는 여전히 좋지 않다는 걸 증명하듯 조금씩 대화에 마찰이 생기기 시작했다. 여기서 괜한 감정싸움으로 시간을 낭비할 생각이 없는 패치는 우선 이 불타는 마을에서 조금 떨어진 곳에서 정보를 자세히 교환하자고 했다. 마을에서 집을 비롯한 물건들이 태워져 재로 흩날리진 않았지만 사람에겐 어찌 적용될지 모른다는 얘기였다.

하얀 들판으로 가기 위한 가장 가까운 입구와 마을 사이 중간 공터에 자리를 잡은 일행들은 암비투스에게 정식으로 자기소개를 했다.

, 네가 그 놈이냐? 웬 미친 사제한테 납치당해서 기술의 도시 탄생계기 제공한 마법사.”

그 미친 사제가 바로 옆에서 웃고 있었지만 현명하게도 자기가 그 사제라고 얘기하진 않았다. 마키나도 마찬가지였다. 마법 뿐만이 아니라 성격과 성질도 불처럼 이루어진 것같은 이 마법사에게 얘기했다간 사정 설명이고 뭐고 마을에서 떨어진 보람 없이 이 공터가 불바다가 될 게 훤했다.

길이 겹쳐 동행했고 마침 입구 근처에 마을이 있다길래 준비를 하려고 했더니 마을이 저꼴이군. 자넨 언제부터 마을에 들어가 있었나?”

오늘 아침에 와봤더니 저 꼴이던데. 다짜고짜 날아온 구조문이라 불난리 난 거와 관련있나 싶어 생존자라도 찾으려고 들어가보니 사람만 없는 상황이지.”

그렇게 말하고는 요청서에 눈짓을 했다. 내용은 읽어봤지만 좀 더 상세한 설명을 원하는 듯 싶었다.

내용 그대로 여기 근처 입구 안 쪽에서 요정이 나타났으니 와달래서 왔어. 요정이 무슨 짓을 저지르고 나면 수습하기 힘드니까. 자세한 이야기와 나타난 요정의 인상착의를 들으려고 마을에 왔더니 저 꼴이고 탐사 인형 보냈더니 네가 나온 거지.”

이번엔 시선이 일행들로 돌려졌다. 길이 겹쳐서 같이 온 것과는 별개로 왜 여기로 온 거냐는 뜻이 담겨있었다.

여행길에 하얀 들판을 가보기로 결정했었으니 큰 이유는 없네.”

사실 이유는 이상현상 때문이었다. 얼떨결에 떠맡겨져서 여행 목적에 대해 자세히 들은 적이 없던 헵토미노와 늘 머릿속이 꽃밭보다 화려한 용사를 제외한 세 명은 저 불타는 마을이 이상현상이구나 확신하고 있었다.

그러던 도중 위화감을 느꼈다. 왜 용사가 이렇게 얌전하지?

용사님...?”

정신을 차리고 둘러보니 용사가 없었다. 언제부터 없어졌는지 모를 정도로 이제야 눈치챈 일행들은 모두 당황했다.

용사라니 그건 또 누구야?”

저희 일행 중 한 명이에요! 혹시 아까 저희와 처음 만났을 때 파란 머리를 지니고 키는 이정도 였던 남자 못 봤었나요?”

전혀 못 봤는데.”

어쩐지 불타는 마을과 불타는 사람을 보고도 조용하더라니!”

그렇담 연기를 보고 달려왔을 때 일행들과 떨어졌다는 얘기였다. 왜 용사가 바로 따라오지 않고 떨어졌는지는 알 수 없었지만 한 가지 확실한건

호기심 많은 그 녀석이 불타는 마을을 그냥 둘 리가 없어.”

특유의 감탄 가득한 외침과 함께 마을이 불탄다며 반짝이는 눈으로 뛰어들어가는 용사가 저절로 상상됐다. 재앙이었다.

용사에 대해 모르는 암비투스를 제외하고 모두가 파랗게 질린 얼굴로 다시 마을을 향해 뛰어갔다.

Posted by 메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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