용사?”
용사라는 이름을 듣자마자 바로 반응이 올라왔다. 이름을 먼저 꺼내며 반응한 자를 시작으로 모두 매우 반갑고 기쁜 얼굴로 용사라는 이름을 입에 담기 시작했다.

엄청 재밌었던 마법사였지!”
맞아! 우리랑 신나게 놀고 배도 신나게 돌리고!”

신나는 용사였어!”

맞아 신나는 용사!”

나오는 말들은 전부 호의적이었다. 주로 신나고 즐겁게 노는 마법사이자 친구였다는 말들이 대부분이었다. 그에 대해 집중해서 듣던 퍼블리가 곧이어 이어지는 말들에 눈을 크게 떴다.

용사 옆에 늘 같이 있던 마법사도 있잖아!”

맞아! 빨간 머리에 파란 눈! 엄청 딱딱하던 마법사!”

술도 엄청 약했지!”

술 마셨을 때가 신났던 마법사!”

빨간 머리에 파란 눈과 딱딱하다는 건 맞지만 그 뒤로 계속 나오는 말은 하나같이 다 술 마셨을 때를 얘기하고 있었다. 마법사가 술을 마신 모습을 한 번도 본 적 없는 퍼블리는 잇달아 나오는 그들의 얘기를 따라가기 힘들었지만 놓치지 않고 집중해서 들었다. 술에 취한 마법사가 바다가 저를 부른다며 배에서 뛰어내려 바다로 빠졌다는 대목에 상상하던 퍼블리가 웃음이 터지자 얘기하던 이들이 신나서 기억을 열심히 더듬기 시작했다. 흑기사는 아무 말 없이 웃음을 터뜨리며 집중해서 얘기를 듣는 퍼블리를 지켜보고 있었고 브레이니는 어디론가 발걸음을 옮겨 그들 사이에서 사라졌다. 그렇게 이야기꽃을 피우느라 별이 잔뜩 뜰 때까지 떠든 그들은 술기운에 잠겨 잠들 때까지 입을 멈추지 않았다.

 

마침 달도 안 뜬 날이라서 별이 잔뜩 보이는구만. 이리와 봐! 별이 잔뜩 뜬 날의 바다는 정말 장관이거든!”

코를 골며 잠든 흑기사단들에 비해 아직 졸리지 않은 퍼블리가 책을 붙들고 흐름을 읽어보기 위해 눈에 힘을 준 채 마치 책을 뚫어버릴 듯이 보고 있었고 그 옆에서 브레이니가 읽는 방법을 가르쳐주고 싶어보였지만 망설이며 열 발짝 떨어져 머뭇거리고 있는 모습을 지나가다가 보게 된 흑기사가 둘에게 그렇게 외치고는 갑판으로 갔다. 브레이니가 특유의 느린 말로 정말 예쁘다며 퍼블리가 같이 보러 가길 바라며 일어섰다. 그에 따라 일어선 퍼블리가 앞장서는 브레이니의 뒷모습을 보며 갑판으로 갔다.

우와아!”
바다를 내려다보자 파도도 이 순간을 위해 잠들었는지 잔잔한 바다는 매우 커다란 거울이 되어 별이 잔뜩 떠있는 밤하늘을 비추고 있었다. 바로 아래에서부터 수평선까지 바다를 바라보던 퍼블리는 하늘과 바다의 구분이 사라지고 새로운 세계를 바로 앞에 둔 것만 같은 기분에 눈을 떼지 못하는 건 물론 눈을 깜빡이는 시간조차 아까웠는지 최대한 느릿하게 눈을 감았다 뜨고 있었다.

어때? 엄청 멋있고 아름답지? 메르시도 이렇게 별이 잔뜩 뜬 날은 우리 배에서 자고 가겠다고 고집을 부렸었어.”

그 말에 퍼블리가 바다를 보던 것도 멈추고 흑기사를 바라봤다.

아까부터 생각했는데 공주님이랑 진짜 친하신가보네요.”

친해 마땅하지! 메르시는 가족이니까!”

생각보다 그들의 인연은 책에 적힌 글과 선생님들이 가르쳐주는 말들에 비해 더 깊고 단단했으며 따뜻했다. 가족이라는 말에 가슴이 따끔해진 퍼블리는 애써 바다로 눈을 돌렸다. 그러다가 술에 취해 바다로 뛰어들었다는 마법사의 모습이 다시 상상돼서 웃음이 터지자 통증이 조금은 사라졌는지 표정이 한결 편해졌다. 그런 퍼블리를 보고 있던 흑기사가 바다를 바라보며 입을 연다.

궁금해서 그러는데 왜 용사에 대해서 물어본 거야?”
어떤 분인지 궁금해서요.”

하지만 네가 물어보고 싶었던 건 패치였던 것 같은데.”

그 말에 소스라치게 놀란 퍼블리가 어깨를 크게 들썩였다.

..어떻게...?”
모르고 싶어도 우리 애들이 빨간 머리 마법사 얘기 할 때마다 그렇게 표정이 밝아지는데 모를 수가 없지.”

그에 퍼블리가 조금 민망하다는 듯이 웃음을 흘렸다.

혹시...잘 아는 사이세요?”
잘 아는 사이라기 보단 어쩌다 만나면 반가워서 인사했던 사이지. 엄청 딱딱했던 양반이었는데 용사 챙기는 걸 보니 매정한 마법사는 아니란 걸 알았지. 그만큼 용사가 엄청났었기도 했고.”

흑기사는 용사와 함께 뛰어다니며 놀고 마녀왕국 축제에도 찾아가본 얘기도 꺼내기 시작했다. 메르시도 용사와 함께 노는 건 즐거웠고 용사는 만나는 마법사들은 물론 마녀들에게도 굉장히 사랑받던 마법사라는 걸 이야기를 통해 느낀 퍼블리는 용사를 만나보고 싶었다.

그럼 혹시 용사가 어디 계신지 알고 계세요?”
아니. 정화에 성공한 그 날 이후로 우린 이런 모습으로 깨어났고 다른 녀석들은 어떻게 됐는지 알 수가 없어. 메르시 소식도 못 듣고 있지. 땅을 밟으려고 해도 홀리랑 프라이드가 우리가 땅 밟는 걸 질색하고 저기 죽치고 앉아있으니 말이야.”

퍼블리는 뭐라도 말해주고 싶었지만 그렇다고 공주에 대한 이야기를 잘 아는 것도 아니었다. 이야기는 물론 모습도 한 번 본 적이 없어서 어떤 마녀일까 궁금했지만 크게 관심을 가지진 않았다. 대부분의 마녀들이 공주라는 존재는 인식하고 있었지만 자세히 알지 못해도 딱히 사는데 영향을 미치지 못한 탓일까, 물론 그것만이 이유는 아니지만 그래도 공주에 대해 크게 관심이 없었던 퍼블리는 어쩐지 조금 부끄러운 기분이 들었다.

, 일단 다시 본론으로 돌아와서 둘 모두를 찾는 것 같은데 왜 용사에 대해서만 물었을까 궁금했어. 아무리 봐도 네가 알고 싶은 마음이 더 기울어 있는 쪽은 패치니까 말이지.”
다시 돌아온 주제에 둘 사이에는 침묵이 내려앉았다. 퍼블리의 시선은 완전히 흑기사에게서 떨어져 바다로 향했지만 정작 보고 있는 건 바다가 아니었는지 시선이 흐렸다. 그렇게 바다에서 들려오는 시원한 물소리가 세 번 정도 잔잔하게 흘러와 침묵을 채우고 있을 때 퍼블리가 입을 열었다.

저희 학교에서 마법사 선생님이 왔었어요.”
동글동글한 인상의 순하고 어쩐지 대화하면 편해지는 마법사 선생님.

저는 제 친구한테만 말한 비밀이 있었어요. 다른 마녀들한테 들키면 엄청 곤란해서 엄청 철저한 비밀이었고 저는 비밀이 제 곁에서 떠날까봐 두려웠는데 한편으론 너무 궁금했어요. 왜 그렇게 비밀로 하고 숨기는지, 무엇을 담고 있었는지.”

퍼블리에게 있어선 물어봐도 대답해주지 않는 비밀이었고 더 이상 물어보면 사라져버릴 비밀 같았다.

마법사 선생님이라면 혹시 알고 있지 않을까 싶어서 몰래 물어보러 갔어요. 이 책도 그 선생님이 알려준 책이에요. 그러다가 우연히 마주쳐서 그 선생님도 비밀에 대해 알게 됐고 무언가 더 많은 걸 알고 있는 눈치였어요. 그런데...”

집으로 돌아왔을 때 퍼블리는 혼자였다.

사라졌어요. 계속 기다리고 기다렸지만 제가 제일 무서워했던 일이 벌어졌나 싶었어요. 제가 몰래 알아보려고 해서 저를 두고 가버린 건가 싶어서 너무 슬프고 무서워서...”

목이 메이는지 잠시 말을 멈추고 난간에 올린 손에 힘을 준 퍼블리는 고개를 푹 숙였다. 가슴이 네 번 길게 오르락내리락 할 때 다시 말이 이어진다.

마법사 선생님은 약속했던 기간이 끝나서 원래 자기가 있던 곳으로 갔고 저는 그 선생님을 찾으러 이렇게 나왔어요. 그런데 찾아가보니까 그런 마법사는 없다고 했어요. 그 말을 들었을 때...눈앞이 깜깜했고 이제 어떻게 해야하나 어디로 가야하나 싶었지만 이런 생각도 들었어요.”

선생님이 아빠를 데려갔나.

그러다가 무작정 모르는 마법사를 믿으면 안 된다는 말을 듣고 정말 그 선생님이 비밀과 함께 모습을 감춘 건가 싶었어요.”

퍼블리는 다시 흑기사를 올려다보며 눈을 마주했다.

그래서 완전히 말할 순 없어요. 이렇게 대놓고 경계하고 자세히 말 안 하는 건 죄송해요.”
그런 것치곤 굉장히 투명한데! 그리고 남들한테 말 못할 비밀은 누구나 마땅하게 있으니까 죄송하다고 할 필욘 없지! 그리고 말이야

무언가 더 말하려던 흑기사는 어깨를 툭툭 두드리며 무언가 할 말이 있어 보이는 브레이니에 너무 멋지다고 바다에 뛰어들진 말라는 말을 남기며 브레이니와 함께 자리를 떴다. 그 둘이 들어가서 보이지 않게 됐을 때 퍼블리는 다시 바다를 내려다봤다. 사실 지금 퍼블리를 괴롭히고 있는 건 아난타가 아니었다. 꿈을 꾸는 동안 무의식 속에서 지금 아난타에 대해 많은 감정을 차지하는 충격과 슬픔 아래에 다른 무언가가 있다는 걸 눈치 챘고 물속의 공기방울처럼 단숨에 수면 위로 올라왔다. 이를 제대로 마주하고 느낀 퍼블리는 다시 꿈을 떠올리며 떨리는 손에 얼굴을 묻었다.

선생님이 아빠를 데려간 거예요?”

그럼 아빠는 저를 버리고 떠난 게 아니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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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랜만이네요, 퍼블리 학생.”

오랜만이에요, 선생님.”

언제나 동글동글한 인상으로 인사를 건넨 아난타에게 마저 인사를 건넸지만 퍼블리의 표정이 영 좋진 않았는지 인사를 받은 아난타가 조금 난감한 웃음을 짓는다. 그에 마주보다가 고개를 푹 숙인다.

제가 신성지대 마법사가 아니라서 충격적인 건가요?”
.”

퍼블리 학생은 물론 다른 학생들도 속이고 학교랑 왕국도 속여서요?”
.”
익숙한 찻잎 통에서 찻잎을 꺼내고 뜨거운 물에 넣던 아난타는 무릎에 올린 손이 옷자락을 꽉 쥐며 부들부들 떨리고 있자 쓴웃음을 지으며 묻는다.

정말로요?”
아무런 대답 없이 고요함이 계속 됐다. 손의 떨림을 멈추자 열린 입에서 이번엔 목소리가 불안정한 숨과 함께 떨리며 나온다.

선생님...전 저희 아빠에 대해서 말한 건 아니카를 제외하면 선생님밖에 없어요. 게다가 선생님은 아빠 이름은 모르지만 아빠 얼굴은 아는 것 같았어요. 축제 때...아빠가 축제에 나왔을 때 그 때 마주쳤잖아요...그리고 아빠는 축제 마지막 날에 사라졌고 선생님은 좀 더 계시다가 가셨지만..그래도..근데......”

끝으로 갈수록 말들이 뭉그러지고 이리저리 흔들리며 나오지만 아난타는 아무런 말없이 그저 서있었다.

선생님...혹시 아빠랑 사라진 게 선생님이랑 상관있어요?”
고개를 든 퍼블리의 얼굴은 눈물에 잠겨있었고 동시에 알 수 없는 기대가 담겨있어 더욱 무너질 것만 같았다.

선생님이 아빠를 데려간 거예요?”

아난타의 얼굴은 마지막으로 봤을 때처럼 안타까움을 담고 있었다.

 

일어났다, 일어났어!”
형님! 일어났어요!”
눈을 뜬 퍼블리가 제대로 정신을 차리기도 전에 요란스럽게 외쳐대는 소리에 묵직하게 쿵쿵거리는 소리가 다가왔다.

이봐 정신이 들었어?”

검은 갑옷을 입고 철퇴를 들고 쫓아오던 기사단장 만큼 덩치가 큰 마법사였다. 얼떨떨한 눈으로 급하게 몸을 일으켜 앉은 퍼블리는 그의 뒤에 서있는 자들을 보고 흠칫 놀라 어깨를 떨었지만 최대한 뒤에 따라 붙는 감정들을 눌렀다. 그들의 살은 비유적인 의미가 아니라 말 그대로 썩어있었다. 거멓고 퍼런 살점 사이로 하얀 뼈도 보일 정도였다. 애써 고개를 돌리지 않고 그들을 바라본 퍼블리는 감옥에 있었을 때 저를 감시하러 왔던 기사가 한 말이 자연스럽게 떠올랐다.

...혹시 여러분이 흑기사단이세요?”
? 우리를 알고 있나본데?”
요기 브레이니가 썼던 책도 그 때 같이 건졌지요!”
다 젖어부렀네!!”
아마 기사단장이 철퇴로 짐들을 날려버렸을 때 우연히 퍼블리와 함께 바닷가로 빠졌는지 뒤에 있던 자들 중 팔이 한쪽이 없는 자가 물이 뚝뚝 떨어지는 책을 들고 외친다. 다시 시선이 집중되자 머쓱한 얼굴로 손을 들던 퍼블리는 아직까지 제 손에 쥐어진 유리병을 깨달았다. 얼마나 꽉 쥐고 있었는지 정신을 잃은 동안에도 놓치지 않고 쥐느라 손에 자국이 남지 않았을까 싶을 정도로 손이 뻐근해진 느낌에 퍼블리는 잽싸게 유리병을 제 주머니로 넣었다.

그보다 마녀가 저 책을 들고 여기까진 어떻게 온 거야?”

에이 형님 맨 처음에 바다에 둥둥 떠 있는 거 봤을 때 웬 마법사가 바다에 빠졌다고 했으면서!”
건졌을 때 겨우 마녀인 거 알았으면서!”
이놈들아 너희는 처음에 물건이 둥둥 떠다니고 있다고 했잖냐!”
소란스러우면서도 활기차게 소리치는 그들을 바라보고 있다가 차가운 느낌에 부르르 떨던 퍼블리는 제 옷과 머리카락을 살펴봤는데 물기가 조금 남아있어서 그렇구나 생각하고 밑 부분이 살짝 축축해 목덜미에 달라붙는 머리카락들을 한데 모아 넘기고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일단 구해주셔서 감사합니다! 그리고 전 여러분을 찾으러 온 거예요!”
? 우리를 찾으러?”

그럼 일단 손님이지?”
일단은 무슨! 우리 배에 오른 순간부터 손님이다!”
퍼블리가 뭐라 말하기도 전에 달려가 문을 열고는

손님이 일어났다! 파티 시간이다!”
그렇게 퍼블리는 어색하게 웃으면서 그들 사이에 앉아있었다. 학교 식당보다 더 요란하게 생선을 먹고 술을 마시는 그들은 모두 저주 때문에 겉모습은 시체나 다름없었지만 오히려 신성 측의 기사들보다 더 편안하고 친근감이 느껴졌다. 애초에 신성 측은 친근감을 느끼기도 전에 감옥에 던져 넣었으니 이들의 자유롭게 대하는 반응이 반가울 수밖에 없었다. 그러다가 누군가가 퍼블리의 어깨를 조심스럽게 툭툭 쳤다.

와아...”

......”
지금까지 봤던 마녀와 마법사들 중에서 눈앞의 마법사만큼 덩치가 큰 자는 단 한명도 없었다. 그 압도적인 크기에 인사도 건넬 생각 않고 신기하게 올려다보는 퍼블리를 보던 그는 마르긴 말랐지만 물이 묻어 쭈글쭈글해진 책을 가리키며 입을 연다.

내가.........”
?”
우리.....이름..........”

바로 책을 쓴 장본인이었다. 그보다 책에 적혀있었던 게 이름이었다는 사실에 퍼블리는 조금 허탈해진 기분이었다. 그리고 아난타가 왜 그 책을 추천해줬는지 알게 됐지만 이번엔 그걸 어떻게 알아본 건지 궁금해졌다. 책을 다시 펼쳐본 퍼블리가 젖었던 부분을 넘기고 멀쩡한 부분을 읽어보려고 했지만 어떻게 읽어야하는지 도통 알 수가 없었다.

브레이니는 눈이 안 보여. 그래서 느낄 수 있는 마력의 흐름을 이용해서 이름을 적었는데 흐름이다보니까 그냥 읽으려고 하면 읽을 수 없어.”

어느새 다가와 그냥 읽을 수는 없다는 걸 알려주는 건 이곳의 대표이자 검은 갑옷을 입은 마법사였다. 본인이 소개하기로는 이름이 흑기사라서 이들의 단체 이름을 흑기사단으로 결정했다고 한다.

그보다 아까 우리를 찾으러 왔다고 했지? 우리 모습을 보고 처음 빼고는 놀라지 않으려는 걸 보니 저주에 대해서도 알고 있는 것 같은데.”

왕궁 마녀? 왕궁 마녀야?”
왕궁 마녀라면 안 왔지! 우리가 메르시에 대해 물어보는 걸 엄청 경계하니까 바다 근처는 얼씬도 안하잖아!”

메르시라면 마녀왕국 공주님의 이름이었다. 퍼블리는 이들이 왕국의 공주님과 교류했다는 건 알고 있었지만 교류를 뛰어넘어 이름까지 서슴없이 부를 정도로 친한 사이 같은데 어째서 교류라는 말로 남았을까 의아한 마음이 들었다. 하지만 지금 급한 건 그게 아니었다.

“...마법사를 찾고 있어요.”
퍼블리가 말을 꺼내기 시작하자 시끌벅적한 소리들이 한순간에 가라앉아 사라졌다. 흑기사를 바라보며 무언가 말하려고 입을 달싹이던 퍼블리가 숨을 크게 쉰 후 이름을 꺼낸다.

용사라는 분에 대해 아시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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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식적으로 유리보다 돌이 더 단단했고 유리와 돌이 부딪힌다면 깨지는 건 유리였다. 돌을 없애기 위한 수단이라면 유리병 안에 돌을 녹일 독이나 깨질 때의 충격을 이용해 터지는 액체를 넣어놓겠지만 순수한 유리로 돌을 부수긴 힘들었다. 강화 마법을 걸어놔도 돌이랑 부딪혔을 때 유리가 멀쩡한 수준으로 남으면 매우 수준이 높은 강화 마법이었다. 하지만 마법사가 마법을 걸어놓은 이 유리병은 달랐다. 퍼블리가 던지는 힘을 달고 굉장히 빠르게 날아간 유리병이 과 부딪히자 굉음과 함께 벽이었던 돌 파편들이 이리저리 흩날렸다. 단순히 돌 위에 떨어뜨렸는데도 멀쩡하다 못해 돌까지 깨놓은 유리병은 이번엔 돌과 그 외의 물질들로 만든 단단한 감옥 벽을 부쉈는데도 멀쩡했다. 그렇게 유리병을 다시 주워 골고루 던지기를 몇 번 반복하자 퍼블리가 엎드리고 웅크리면 들어갈 수 있을만한 구멍이 뚫렸다. 유리병을 다시 품속에 넣은 퍼블리는 잽싸게 구멍으로 들어가 감옥을 빠져나왔다. 동시에 퍼블리는 헛웃음을 흘렸다. 본인이 생각하기에도 유리병으로 감옥 벽을 부순 게 어이가 없는데다가 유리병을 이런 식으로 쓸 줄은 몰랐기 때문이다. 나중에 마법사한테 이런 얘기를 하게 되면 어떻게 반응할까 내심 궁금하기도 했고 그와 동시에 다시 유리병 속의 장미꽃잎의 존재를 의식하게 됐다. 다시 저를 둘러싸는 분위기가 고요하게 가라앉는 느낌을 받으며 넘실거리는 푸른색을 떠올리다가 고개를 저은 퍼블리는 재빨리 지금의 목적지를 찾아 달렸다.

 

대체 어떻게 부순 거지?”
한편 퍼블리가 떠난 감옥엔 기사들을 이끌고 내려온 기사단장이 놀라움과 감탄을 섞어 부서진 벽을 살피고 있었다.

어리다고 방심한 게 실책이군! 짐에선 딱히 위협적인 물품이 없었는데 정작 본인이 그렇게 강한 힘을 가지고 있었을 줄이야!”
당연히 엄청난 마법이 걸려있는 유리병의 존재를 모르는 그들은 퍼블리 혼자서 벽을 부술 정도의 힘을 지녔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설령 진실을 안다고 해도 누가 유리병으로 감옥 벽을 부쉈다고 생각할 수 있을까. 게다가 그들의 실책은 감옥 벽이 튼튼하다고 생각해 바로 밖으로 이어지는 위치에 감옥을 만들어 둔 것도 포함이었다.

당장 찾아서 끌고 와라! 그들의 첩자 답게 쉽지 않은 상대이니 어리다고 봐줄 생각하지 말고 있는 힘껏 상대해라! 그렇지 않으면 당하는 건 우리가 될 거다!”
!!”
기사단장은 들고 있던 철퇴를 휘둘러 벽을 더 크게 부수고 퍼블리가 도망친 흔적을 찾아 뒤를 쫓기 시작했다. 그 뒤를 따르는 기사들과 신성지대에서 나갈 길을 봉쇄하기 위해 흩어진 기사들을 그림자 속에서 지켜보고 있던 마녀는 주머니에서 통화용 수정구를 꺼냈다. 반짝 빛이 나고 얼마 지나지 않아 수정구에서 목소리가 들려온다.

~ 모드양? 제 말 들리심까?”
.”
저도 모드양 목소리 들리네요. 신성지대에 갔다는 것도 예상치 못했는데 거기다가 감옥까지 들어갔다는 소식 듣고 얼마나 깜짝 놀랐는지 먹고 있던 딸기마저 펄쩍 뛰어올랐지 뭡니까? 그쪽 동네가 큰데다가 여행객들도 받고 있는데 비해 타 지역 타 집단을 굉장히 경계하니 마법사도 심어놓기 힘들고 해서 어떻게 됐는지 정말 궁금했는데...이렇게 아까 연락한지 얼마 되지 않아 연락 오는 걸 보니 제가 원하는 소식이 준비되어있나 싶어 기대가 됩니다~”

수다스러운 말에 모드라고 불린 마녀는 딱 한마디 꺼냈다.

탈출했습니다.”

~ 역시나 모드양입니다! 성공적으로 마녀왕국으로 모셔다놨죠? 아무래도 밖에 있으면 살펴보기 힘들고 우리 패치도 불안해할 테니 당분간 왕국 안에 얌전히 있게 되면 좋으련만...일단 돌아갔으니 안심임다.”
그에 모드는 뒤에 한마디 덧붙였다.

벽을 부수고 탈출했습니다.”

“...?”
제가 준 이동 마법 물품을 사용하지 않고 감옥 벽을 부숴서 탈출했습니다. 지금 이곳 기사들이 그 뒤를 쫓아가고 있습니다.”
반문하던 목소리는 뒤에 이어진 상세한 설명에 완전히 침묵에 잠겼다. 다음 말을 기다리고 있던 모드는 연락이 끊어진 건가 살펴봤지만 아직까지 빛나고 있는 걸 보면 끊어진 건 아니었다. 다시 기다리자 이미 기사들이 지나간 감옥 벽이 푸스스 소리를 내며 조금씩 파편을 떨어뜨리고 있을 때 수정구에서 목소리가 들려왔다.

우선 쫓아가세요. 그리고 잡히지 않게 도와주고 바로 이동마법을 써서 왕국으로 보내시고 모드양은 신성지대에서 잠시 대기하십쇼.”

 

마법사들 사이를 헤집으며 퍼블리를 찾아다니던 기사들은 지나가는 자들의 어깨를 붙잡고 얼굴을 이리저리 살펴보다가 혀를 차며 손을 놓고 다시 옆에서 지나가는 자를 붙잡는 걸 반복했다. 순찰 도중 죄수가 탈출했다는 연락을 받은 기사들은 도시 출입구를 봉쇄하기 시작했다. 이곳에 들어오거나 나가려던 여행객들은 이게 웬 봉변인가 싶어서 항의했지만 기사들이 하는 대답은 죄수가 탈출했으니 협조해 달라는 말 뿐이었다. 온 도시가 소란스러운 와중에도 퍼블리는 용케 잡히지 않고 열심히 도망치고 있었다. 머리에 쓴 천을 풀고 길게 내려오는 머리카락으로 얼굴을 가리고 다니던 퍼블리는 여행객들 틈새에 몸을 숨기다가 지나가는 마법사들을 붙잡아 바다가 있는 곳의 위치를 물었다. 세 번째 같은 질문을 반복했을 때 이곳에 살던 마법사였는지 바다가 있는 방향을 가리킨 자에게 감사인사를 한 후 지나가는 자들 사이를 헤집는 기사들을 보고 골목길로 들어가 뛰어다니며 기사들을 따돌렸다. 그렇게 해가 거의 저물어 점점 어둠이 내려오고 숨이 턱 밑까지 차올랐을 때 쯤 잔잔하면서도 커다란 소리가 퍼블리의 귓가에 날아와 발걸음을 붙잡아 이끌기 시작했다. 소리가 들린 곳에 도착한 퍼블리는 크게 눈을 뜨고 그대로 멈춰섰다.

“...이게..바다구나...”
물이 잔뜩 고여 있는 거라고 보던 게 마실 물이 솟아오르던 샘뿐이었고 들어본 건 호수였다. 바다에 대해 알려준 건 단순히 땅처럼 넓다는 책에 적힌 묘사 한 줄과 그림뿐이었다. 하지만 책에 적힌 대로 넓다는 것 외엔 할 수 있는 말이 없었다. 멍하니 바다를 바라보던 퍼블리는 뒤에서 들려오는 묵직한 소리에 정신을 차리고 뒤를 돌아봤다.

그들의 첩자가 갈 데는 그들이 있는 곳밖에 없지.”
묵직한 철퇴를 들고 오는 기사단장의 기세는 상당히 위압적이었다. 기세보다 퍼블리는 손에 들린 철퇴를 보고 질렸는데 저 하나 잡자고 저렇게 커다란 철퇴를 들고 오니 내심 기가 차기도 했다.

네놈이 강하다는 건 알겠지만 이번엔 절대 방심하지 않을 것이니 각오 단단히 하는 게 좋을 거다!”

철퇴를 퍼블리에게 겨누고 당당하게 외치는 기사단장이었지만 애초에 퍼블리는 무기도 없었고 무기가 있다고 해서 상대가 된다고 할 순 없었다. 제 아무리 신체능력이 좋아도 상대는 정화 때의 마법사이자 이곳의 기사단장이고 퍼블리는 전투는커녕 정식적인 대련도 해본 적 없는 학생이었다. 물론 마법사한테서 공격용 마법을 배우긴 배웠지만 다른 마녀나 마법사들한테 써본 적도 없었다. 힐끗 바다를 보다가 다시 앞을 본 퍼블리는 기사단장 뒤에서 기사들이 일렬로 서있다가 점점 둥글게 자신을 에워싸려고 다가오는 걸 보고 있었다. 눈을 꽉 감고 있다가 무언가 결심한 건지 눈을 뜨고 기사단장을 보고 있던 퍼블리는 제 등에 있던 짐을 기사단장에게 던졌다. 제법 묵직하게 날아오는 짐들에 기사단장이 철퇴를 휘둘러 저 멀리 날려 보내는 데 신경을 빼앗기자 퍼블리는 그 틈을 타 뒤돌아 품속의 유리병을 꼭 쥐고 바다로 뛰어들었다.

하지만 퍼블리는 바다가 얼마나 깊었는지 전혀 예상치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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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루 만에 너무나도 많이 충격적인 일들이 닥쳐왔다. 게다가 방금 들은 건 대체 무슨 말일까, 퍼블리는 그대로 생각하는 걸 멈추고 싶었지만 아무도 들어오지 않는 조용한 감옥 안은 매우 지루했고 지루함은 모든 걸 짓누르고 밀어내는데 효과적이었다. 지루함에 못 이긴 퍼블리는 다시 머리를 굴려봤지만 아무리 생각해도 지금 이 상황은 정말 자기가 생각해도 이상하고 한 번도 상상해본 적 없는 상황이었다. 마녀왕국 내의 서점에서 떡하니 판매하는 책을 가지고 다짜고짜 금서라고 하고 감옥에 잡아넣는 것도 이상하지만 애초에 퍼블리의 짐을 허락 없이 뒤졌다는 말이니 이곳 신성의 마법사들이 상식적이라고 할 순 없었다. 만약 아니카가 이에 대해 알게 되면 과연 어떤 말들을 할까 싶었지만 우선 여기서 나가는 게 먼저였다. 바닥을 더듬어 일어나려던 퍼블리의 손에 무언가 닿자 바로 들어올린다. 아까 퍼블리와 함께 감옥으로 던져진 금서라고 불렸던 책이었다.

이게 금서라니...”
나오는 말에 담겨있는 건 당황이 대부분이었지만 그 중엔 황당함도 섞여있었다. 책 표지에 적혀있는 건 우리들이라는 단순한 제목이고 책을 펼쳐보면 서점에 팔기 위해 복사본으로 만들어진 책이지만 원본의 상태가 엉망이었는지 글이 아닌 손이 가는 대로 낙서를 한 것만 같았다. 쓸 때마다 잉크가 뒤죽박죽이었는지 선의 굵기도 제각각인 이 책은 바로 아난타가 몰래 알려준 도서번호 책이었는데 왜 이 책을 알려준 건지 이해가 가지 않았다. 물론 당사자한테 물어보기 위해 도서실의 책을 가져올 순 없으니 새로 하나 사서 챙겨왔는데 이게 금서라고 불리고 감옥으로 들어가게 만들 책인 줄 누가 알았겠는가. 한숨을 내쉬며 감옥 안에서 여기저기 흩어져 있는 제 짐들을 모아오기 시작했다. 먼지가 묻긴 했지만 크게 망가지거나 찢어진 건 없어서 다행이었다. 한숨을 쉬며 짐들을 끌어안은 퍼블리는 창살 툭툭 쳐봤지만 단단했고 지금 너머엔 아무도 없었다. 등을 기댄 벽도 더듬어보자 차갑고 딱딱한 돌의 감촉이 느껴졌다. 여기엔 흔한 촛불도 없었지만 그나마 감옥 안에서 창살의 바로 반대편에 있는 벽은 네모낳게 뚫려있어 햇빛이 쏟아져 들어왔다. 물론 거기에도 창살이 빽빽하게 서 있어 거길 통해 나가는 건 무리였다. 밤이 되면 어두워질 테니 살펴보기 힘들어 아직 해가 저물지 않았을 때 전부 살펴보려 하던 퍼블리는 뒤에서 들려오는 발소리에 그대로 살펴보던 걸 멈추고 몸을 뒤로 돌렸다.

괜찮으신가요오~?”

보라색 머리카락이 구불구불 내려와 목에 닿을 듯 말듯하게 짧았다. 둥근 호선으로 감고 있는 눈이 어쩐지 긴장을 풀어주는 것과 동시에 눈매를 가리는 것 같았다. 갑자기 나타난 상대는 감시하러 온 기사도 범죄자의 얼굴을 보러온 사제도 아니었다. 입고 있는 옷과 모자는 매우 익숙했고 무엇보다 척 보면 마법사가 아니라...

...여긴 어떻게 오신 거예요?”
몰래 왔어요오.”
“.....학술적 교류 요청하러 오신 마녀 분 아니세요?”
네 맞아요오.”

그럼 왕궁 마녀 맞죠...?”
네에.”
끝으로 갈수록 늘어지는 말투가 긴장을 풀게 하는 걸 뛰어넘어 힘이 빠지는 듯한 느낌이 들기까지 했다. 퍼블리 외에 이곳에 있을만한 마녀는 학술적 교류를 요청하러 온 왕궁 마녀밖에 없었다. 처음 보는 왕궁 마녀에 신기함과 반가움 보다는 당황스러움이 먼저 올라왔다. 애초에 어떻게 알고 여기로 몰래 온 건지 알 수가 없었으니 말이다. 하지만 그런 퍼블리의 생각을 읽기라도 했는지 왕궁 마녀가 말하는 게 더 빨랐다.

아직 어른도 안 된 어린 마녀가 밧줄로 꽁꽁 묶여 험악해 보이는 기사들한테 끌려가는 게 걱정됐어요오. 여기 감옥들을 둘러봤는데 보호자도 안 보이고 혼자밖에 없네요오. 그리고 지금은 분명 학기 중일 텐데...어쩌다가 여기 와서 갇힌 건가요오?”

마녀의 말에 상대방이 자신을 봤을 때 마법사들은 마법사로 마녀들은 마녀로 본다는 걸 확신한 퍼블리는 곧이어 이어진 질문에 식은땀을 흘리기 시작했다. 보호자도 없이 왕국 밖, 그것도 신성지대까지 와서 감옥에 갇혀있는 것과 학교를 다니던 학생이라는 것까지 들킨 마당인데다 상대는 무려 왕궁 마녀였다. 눈앞의 마녀가 찾아오기 전까진 일이 꼬여도 이렇게 꼬일 수가 없어 더 이상 꼬일 것도 없다고 생각했는데 아직 꼬일 게 남아있던 제 상황이 매우 감탄스러운 동시에 여기서 더 최악의 경우는 대체 어떤 경우일까 궁금하면서도 참담한 심정이었다. 마녀의 질문에 아난타와 마법사에 대한 얘기는 쏙 빼고 여행 나오다가 왕국 내에서 샀던 책이 금서 취급을 받고 있다는 얘기를 꺼내자 가만히 듣고 있던 마녀는 무언가 고민과 곤란한 기색이 섞인 신음을 흘리고 있었다.

일이 상당히 복잡해요오...안 그래도 여긴 큰 집단인 데에 비해 다른 집단에 대한 폐쇄성을 많이 보이는 데라 좀 곤란하네요오...게다가 마녀왕국 내에서 이곳에서 금서로 취급되는 책을 자유롭게 판다는 걸 여기 마법사들이 알게 되면 굉장히 난리가 나요오.”

확실히 기사단장이 보인 반응을 보면 지금 당장이라도 눈앞의 왕궁 마녀까지 잡아넣고 금서를 자유롭게 사고팔고 본다며 왕국으로 기사들을 이끌고 들이닥칠 것만 같았다. 어찌해야할지 상당히 곤란해 보이는 모습에 퍼블리가 조심스럽게 입을 연다.

저기, 저는 괜찮아요. 계속 여기 계시면 곤란해질 테니까 얼른 돌아가시는 게 좋을 것 같아요.”

전혀 괜찮지 않아요오. 아직 어리신 분이 감옥에 갇혀야할 이유는 없어요오. 설령 그게 진짜 금서라고 해도 그게 이유가 될 수는 없는데다가 멋대로 짐을 뒤졌다는 얘기니 더더욱 곱게 넘어갈 수 없어요오.”

팔짱을 낀 채 고민하고 있던 마녀는 주머니에 손을 넣더니 무언가를 꺼내 건넸다. 퍼블리가 머뭇거리며 손을 내밀자 그 위에 작은 네모 판이었는데 그 위에 숫자와 문자가 복잡하게 써져있었다.

왕궁 내의 제 개인 사무실로 이동하는 마법 물품이에요오. 사용하는 방법은 거기에다가 마력을 불어넣고 빛이 날 때 지정된 암호 주문을 외우면 되는 거예요오. 암호는일터예요오.”
최대한 기사들이 여기 내려오지 않게 붙잡고 있겠다는 말을 끝으로 마녀는 빠르게 퍼블리의 시야에서 사라졌다. 이름이 뭐냐고 물어보려던 퍼블리는 그저 얼떨떨한 눈으로 손에 들린 판과 마녀가 있었던 자리를 번갈아보고 있을 뿐이었다. 뒷목을 긁다가 뒤를 돌아본 퍼블리는 무언가 결심한 눈으로 일어섰다.

죄송해요. 아직 여기에 볼일이 있어요.”
판을 주머니에 넣은 퍼블리는 제 짐들과 책을 챙겨들고 바지에 묻은 먼지들을 툭툭 털었다. 해가 점점 땅 아래로 가는지 들어오는 빛이 가늘어졌다. 퍼블리는 그 빛이 들어오는 구멍 아래의 벽으로 가 몇 번 심호흡을 한 후 품속에서 고이 간직한 유리병을 꺼내 벽을 향해 있는 힘껏 던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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확인사살과 같은 문 너머에서 들려왔던 말에 퍼블리에게 잠시 다른 방에서 기다려달라고 양해를 구한 대사제는 기사단장에게 안내를 부탁했고 퍼블리는 반쯤 정신이 나간채로 따라가 안내된 방에서 기다리기 시작한지 한 시간이 지났지만 여전히 충격은 쉽사리 가시지 않았는지 멍하니 앉아있기만 했다. 기사단장은 그 모습을 보고 있다가 밖에서 부르는 소리에 나가고 방 안엔 퍼블리 혼자만 있었다. 그러기를 몇 분 더 있다가 자세를 바로 하더니 다시 머리를 굴리기 시작했지만 결론은 아난타가 신성 측의 마법사였다는 거짓말을 했다는 거였고 어디까지가 진실인지 알 수 없다는 점에서 벗어날 수 없었다. 애초에 그에 대해 잘 아는 것도 아니었지만 누구에게나 친절했던 자가 알 고보니 엄청난 거짓말로 그 자리에 있었다는 건 큰 충격인 건 여전했다. 게다가 퍼블리는 마법사에 대해 얘기도 해 본 자였기에 혹시나 싶은 불안감이 밀려올라오다가 고개를 젓는 걸 반복했다.

“...그런데 이 거짓이 단순히 책에다 낙서로 몇 줄 뻥으로 쓴 수준이 아니란 말이지...”
학술적 교류를 위해 왔다는 거였는데 이건 단순히 학생들을 속인 걸 떠나 왕궁까지 속였다는 거였다. 그렇게 생각하다가 아까 전 학술적 교류를 요청하는 마녀가 왔다는 말이 다시 떠올랐고 퍼블리가 다녔던 학교만 속인건가 싶었지만 애초에 왕궁에서 선별하고 학교 측에 연락하는 방식이었기에 왕궁을 속였다는 건 변함이 없었다. 그렇게 생각하다보니 말을 전부 다하기 전에 왕궁 마녀가 찾아온 게 다행이구나 싶었던 퍼블리는 이제 어찌해야할지 눈앞이 깜깜해졌다. 학교까지 뒤로하고 왔는데 정작 찾으러 온 목표는 거짓인데다 애초에 속하지 않은 자였고 그가 원래 속했던 곳의 마법사들은 어디 있는지 알 수도 없었다. GM은 전서구가 여행 중이라면 못 찾는다고 못을 박았고 지금 다시 돌아가면 학교에서 무슨 일이 있었냐고 물어보는 건 당연한 일이고 제 아빠의 실종사실을 알리면 왕궁 마녀가 나서긴 나서겠지만 마법사인 걸 들키면 곤란하니 전단을 뿌린 건 의미가 없어진다. 그 전에 퍼블리가 왕궁 안으로 잡혀 들어갈 판이었다. 마법사를 보호자로 둔 데다가 미성년자 보호 마법도 안 걸린 퍼블리를 왕궁 측에서 가만히 둘리가 없었다.

하지만 퍼블리가 예상치 못한 건 곧바로 닥쳐올 일이었다.

 

당장 포박해라!!”

...?!”
아까 나갔던 기사단장의 외침과 함께 무장한 기사들이 방 안으로 와르르 쏟아 들어왔다. 당황한 퍼블리가 벌떡 일어나 주춤거리며 물러났지만 어느새 나갈 구멍 없이 빙 둘러싼 기사들이 다가와 퍼블리를 밧줄로 묶기 시작했다. 오늘따라 충격적인 일이 너무 많이 튀어와 아프게 치고 가기 바빴다.

..잠깐만요!! 갑자기 왜 이래요?!”
그들의 첩자인 주제에 뻔뻔스럽기까지 하구나!”

그들이라뇨?! 대체 누구...”

네 짐에서 증거까지 나왔는데 끝까지 발뺌할 셈이냐?!”
그렇게 말하고 퍼블리 앞에 무언가를 툭 던져 놓았다. 그건 바로 학교 수업들이 끝나갔을 무렵 왕국 내의 서점에서 샀던 책이었다. 게다가 그 책은...

이건 이곳에서 금지된 책! 저주 받은 그들이 저주를 담은 책이다! 뻔뻔스럽게 신전까지 이 책을 들고 오다니, 그 배짱은 높이 사지만 우리 신성은 신의 은총과 대사제님의 말씀의 보호 아래 있으니 소용없다!”
아니, 그 책은...”
당장 이 녀석을 저주물품들과 함께 감옥에 집어넣어라!!”

그렇게 퍼블리는 제 짐들과 함께 감옥 안으로 들어가게 됐다. 끌려가는 내내 대체 무슨 소리냐며 목 아프게 소리쳤지만 저를 끌고 가는 기사들은 들은 척도 안하고 감옥 안으로 밀어 넣었다. 감옥에 들어가면서 몸을 묶은 밧줄은 풀어줬지만 빽빽하게 서있는 쇠창살 때문에 나갈 순 없었다. 이게 대체 무슨 일인가 싶어 아까와는 다른 심정으로 멍하니 앉아있는 퍼블리를 때마침 감시역으로 들어온 기사가 혀를 차며 안타깝다는 눈으로 바라보고 있었다.

거 아직 새파랗게 어린 풀인데 금서를 갖고 여기 들어오다니...”

금서요?”
다시 정신을 차린 퍼블리가 묻자 기사가 창살 옆에 털썩 주저앉으며 말하기 시작한다.

그래 금서. 보아하니 넌 아무것도 모르고 녀석들한테 이용당한 것 같은데 어린 녀석이 무작정 모르는 마법사를 믿으면 안 되지.”

무작정 모르는 마법사를 믿으면 안 된다는 말에 아난타의 곤란한 말투가 따끔히 가슴을 찌르고 지나갔다.

녀석들이 누군데요?”
누구긴 저주받은 녀석들이지. 본인의 죄로 인해 살이 썩어가는 끔찍한 저주를 받은 그 녀석들은 다른 마법사들한테 저주를 옮기려고 마법사들이 많이 모여 있는 이곳 근처를 기웃거리고 있고 그걸 넘어서 여기로 여행 오는 자들을 이용하려고 해. 지금 너처럼.”
말을 들은 퍼블리가 그대로 멈춰서 아무 말도 안 하자 겁을 먹은 거라 생각한 기사가 안타까운 표정을 지으며 멸시가 담긴 어투로 술술 말하기 시작한다.

사실 그 녀석들도 나쁜 녀석들은 아니었는데 정화 때의 죄가 무거웠던 거지. 얼마나 큰 죄를 지었으면 그런 끔찍한 저주를 받게 됐는지 원, 대사제님과 기사단장님은 정화 당시에 직접 뛰어든 분들이니 알고 계시는데 저렇게 입 다물고 있는 걸 보면 얼마나 심각한 수준이길래 입에 담아도 끔찍한 죄였는지 짐작이 안 가. 이래서 밸러니의 숲이 문제야 문제. 대사제님이랑 기사단장님이 하루가 멀다 하고 녀석들을 견제하고 있어서 여기가 이렇게 안전한 거야. 여기가 잘 보면 바다 바로 옆이지만 건물들이 등지고 있어서 여기 사는 마법사들만 알고 여행 오는 마법사들은 대부분 모르고 떠나. 녀석들을 바다로 몰아냈으니까 호기심에 바다 쪽으로 가까이 가게 하면 녀석들한테 당하는 거지. 너 혹시 바다 쪽으로 간 거니?”
아뇨. 바다가 있는 줄도 몰랐어요.”

? 그럼 아직 땅에 남아있는 녀석들이 있단 말이야? 이거 큰일인 걸 얼른 보고하러 가야겠어!”

..잠깐만요! 정화 때라니 그럼 녀석들이 대체 누구였는데요?!”
그에 기사가 완전히 사라지기 전에 짧게 내뱉고 가버렸다.

누구긴! 흑기사단 녀석들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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짐을 잠깐 맡아두겠습니까?”
그 말에 퍼블리는 잠깐 머뭇거리다가 등에 메고 있던 짐을 넘겼다. 어차피 제일 중요한 장미꽃잎은 제 품에 있다. 짐을 받아든 기사단장은 물품을 관리하는 마법사에게 넘기고 앞장서기 시작했다.

따라오십쇼.”

기사들이 입고 있던 갑옷처럼 흰 건물 안의 마법사들은 전부 흰 바탕천에 금색 자수와 장식들로 이루어진 옷을 입고 있었다. 복도를 지나가다가 종종 열려있는 문틈 사이론 일제히 두 손을 모으고 고개를 숙인 마법사들이 모여있었다. 신과 신앙에 대해서 얼핏 들어본 적 있었지만 이렇게 직접 보는 건 처음인 퍼블리는 그저 신기한 눈으로 둘러볼 뿐이었다. 앞장서서 길을 안내하던 기사단장이 잠깐 몸을 틀어 시선을 줬다.

혹시 신앙에 관심 있습니까?”
말로는 들어봤는데 직접 보는 건 처음이라...”
저희가 하는 건 그저 신을 믿고 신의 말씀을 따라 행할 뿐,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닙니다.”

신의 말씀이요?”
대사제님께서 신이 내려주시는 말씀을 받고 저희에게 내려주시는 겁니다. 지금 신의 목소리를 들을 수 있는 건 대사제님뿐이죠.”

신은 어디 계시는데요?”
신은 언제나 저희 곁에 있습니다.”
철저한 논리주의 마법사한테서 자라온 퍼블리에게 신이란 존재는 크게 와닿지도, 자세히 들어본 적도 없는 존재였다. 이는 마법사가 딱히 신과 신앙에 대해 가르칠 필요성을 못 느낀데 생긴 일이었다. 지금 퍼블리는 신을 그저 신성 측의 마법사중 한명으로 이해하고 있었고 언제나 우리 곁에 있다는 기사단장의 말에 이해하기 힘들다는 얼굴을 하게 된 건 당연한 수순이었다.

아무래도 신을 믿는 분은 아니신가보군요.”

...아니..그러니까...신이라는 분은 어떻게 늘, 그것도 모든 마법사들의 곁에 있다는 건지...”
신은 절대적인 존재이니 늘 저희의 마음을 헤아리기 위해 저희의 믿음을 바탕으로 곁에 계십니다.”
퍼블리는 그쯤에서 더 묻는 걸 포기했다. 애초에 신은 논리적으로 설명해야하는 존재가 아니었다. 둘은 더 이상 아무런 대화도 나누지 않고 마저 걸음을 옮기기 시작했다. 가는 도중에 문틈 너머로 들려오는 찬송가와 기도문을 읊는 소리를 들으며 완전히 낯선 세상에 떨어진 느낌을 받으며 뒤를 따라가자 곧이어 도착한 곳은 지금까지 봤던 나무로 된 문들과는 달리 돌로 이루어진 새하얀 문 앞이었다.

이곳이 바로 대사제님께서 기도를 올리시는 방이자 신의 말씀을 내리고 곤경에 처한 분들의 이야기를 들어주시는 방입니다.”
그렇게 말하고 문을 세 번 두드리자 안에서 들어오라는 말이 나왔다. 문을 열자 군데군데 이가 빠져있는 원탁이 먼저 눈에 들어왔고 그 너머에 수염이 풍성하고 꽤 긴 지팡이와 다른 사제들의 옷과 비슷하지만 조금 다른 옷을 입고 있는 마법사가 앉아있었다.

만나서 반가워요. 전 이곳 신성의 대사제 홀리라고 해요. 미숙하게나마 신의 말씀을 전달하는 일을 하고 있죠.”

그가 바로 대사제이며 신성의 대표자였다. 생각보다 온화하게 말하고 움직이는 모습 또한 위엄이 있다기보단 가만히 뒤에서 머무르며 이야기를 듣고 전달한다는 느낌에 신기하다는 생각이 든 퍼블리였다. 가까이에 있는 의자에 앉으라는 부드러운 권유가 다가왔고 조심스레 앉은 퍼블리는 원탁에 시선을 두다가 숨을 들이쉬며 고개를 들어 대사제에게로 돌렸다.

대사제님의 도움이 필요하신 분입니다.”

프라이드가 직접 데려오신 분이라니...뭔가 일반 사제들과 기사들로도 해결이 힘든 일을 겪고 계신 분이군요.”

그저 마법사 선생님을 찾으러 온 게 뭔가 굉장히 해결 불가능한 힘든 일이 된 거에 약간 어색한 웃음을 지은 퍼블리는 그에 대해 얘기하려고 했지만 기사단장이 한 발 더 빨랐다.

저희 쪽에서 아난타라는 분을 찾고 있다고 합니다.”
아난타라...”

지팡이를 툭툭 땅에 두드리며 생각에 잠겨있던 대사제는 퍼블리와 눈을 맞추며 묻기 시작한다.

이름이 아난타가 확실한가요?”
.”

흐음...하지만 그런 이름의 마법사는 없는데...”
검은 머리에 크고 동그란 안경을 쓰신 분이세요.”

딱딱 지팡이가 바닥에 부딪히는 소리가 울려퍼진다.

...우선 저희 신성에 그런 분은 없어요. 아난타라는 이름을 가진 분이 있지만 그 분은 다른 소속이거든요.”
다른 소속이라면...?”
전장과 분노 소속이죠.”
분명 그 아난타가 맞다. 하지만 신성에 속하진 않았다고 한다. 점점 혼란이 고개를 들기 시작하자 차분히 생각을 하려고 했지만 혼란은 사라지지 않고 머릿속을 꼬아놓기 시작했다.

제가 아는 아난타 분도 검은 머리지만 안경은 쓴 적이 없어요. 전체적으로 인상이 동글동글했던 분인데...”

칠판 앞과 교탁 뒤에서 수업의 일환으로 옛날의 제 얘기를 꺼내는 아난타가 떠오른다. 동그란 안경 너머의 눈도 동그랬던 동글동글한 마법사이자 격투가라고 소개했던 선생. 전장과 분노 소속이었다가 정화의 날 이후 함께했던 팀원들을 찾기 위해 신성지대로 들어갔다는 말. 문득 다가온 이상한 느낌에 더 질문하기 위해 입술을 달싹이던 퍼블리가 그대로 멈췄다. 그와 동시에 어제 쉼터에서 만난 기사의 말이 아침에 꿈에서 깨자마자 들이닥치던 햇빛처럼 생각의 밑에서 튀어올라온다.

우리? 당연히 신성 소속이지. 그보다 우리를 신성지대라고 부르다니 마녀들만 그렇게 부르는 줄 알았더니 먼 마을에서도 그렇게 부르는구나? 우리 단체 이름은 신성이고 이 도시는 신성이 다스리는 땅이라서 신성지대라고 이름이 붙여진 거야.”

그걸로 이미 답은 나와있었다. 공손히 무릎 위에 올려놓은 손이 벌벌 떨고 있다가 옷자락을 긁어모으듯이 꽉 쥐기 시작했다. 상냥한 목소리가 귓가를 맴돌다가 사라진다. 그 뒤로 곤란하다는 표정과 안타깝다는 듯이 바라보는 얼굴이 어른거리다가 사라진다. 그대로 시간이 멈춘 듯이 가만히 아래만 보고 있던 퍼블리가 고개를 들어 다급하게 입을 연다.

저 그럼 혹시 마녀왕국에...!”

똑똑똑 문을 세 번 두드리는 소리에 가위로 소리를 자르듯이 고요함이 내려앉자 문 밖에서 목소리가 문을 두드린 이유를 말한다.

마녀왕국에서 이번 학술 교류에 대해 요청하는 마녀가 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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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라이드라는 기사단장을 찾아가기엔 이미 해가 져버려서 시간이 애매해졌다. 지금 퍼블리가 할 수 있는 일이라곤 밥을 먹거나 제 방으로 돌아가서 창밖을 구경하는 일이었다. 퍼블리가 이곳까지 오는 동안 완전히 쉬고 있을 때 할 만한 건 왕국에서 샀던 책을 읽거나 마을구경 뿐이었다. 전에는 운동이라는 선택지가 있었지만 방 안에서 운동하다가 균형을 잃어 실수로 벽을 부술 뻔 한 이후론 운동은 최대한 밖에서 하는 편이었다. 그나마 날이 밝을 땐 할 수 있던 마을구경도 날이 어두워지면 아직 성인이 되지 않은 마녀, 비록 지나온 곳에선 마법사로 보고 있지만 성인이 채 안되어 보이는 건 어른들 눈에도 보였기 때문에 쉼터의 주인들이 꽤 말린 적이 많았다. 마을 마법사들도 어두워지면 되도록 돌아다니지 않는 주의였다. 하지만 이곳은 해가 졌어도 돌아다니는 마법사가 꽤 되는 게 마녀왕국이랑 비슷한 것 같다는 생각을 하며 창문 너머로 돌아다니는 마법사들의 모습을 눈에 담던 퍼블리는 그 사이의 기사들의 모습을 눈에 담으며 커튼을 내렸다. 조금 이르지만 빨리 날이 밝아졌으면 하는 마음에 침대에 누운 퍼블리는 그대로 눈을 감고 집에 있는 흔들의자에 앉아 책을 읽다가 제가 들어오면 고개를 돌려 인사를 받아주고 건네는 마법사를 상상하며 잠들었다.

 

누군가가 저를 들고 해맑게 웃고 있었다. 그 옆에서 여럿이 있었는지 외치는 소리가 꽤나 소란스러웠다. 따뜻하게 저를 꼭 쥔 누군가는 친구라며 그들에게 자랑했다. 그에 더 시끄러워졌고 소리로만 그들을 인식하던 저는 한숨소리와 함께 매우 익숙한 목소리를 듣게 됐다.

또 사고 쳤나보군.”
그 익숙한 목소리에 그리움이 가득 차오르며 목소리의 주인을 보려고 했지만 자신에겐 볼 수 있고 눈물을 흘릴 눈이 없었다. 하지만 이상하리만치 점점 더 선명하게 느낄 수 있었다.

“...이건 대체 어디서...!”
저를 쥐고 있던 자가 자랑스레 손을 내밀어 저를 보여주며 친구라고 외치자 당황스러운 기색이 역력한 목소리가 들려온다. 그런데 점점 주변의 모든 게 희미해지기 시작했다. 그 목소리마저도.

...!”

그에 급한 나머지 부르려고 했지만 빛이 모든 걸 채우기 시작했다. 지금까지 없었던 눈은 창문 틈새로 들어오고 있던 햇빛이 지나가는 길 아래에 놓여있었다. 뜨던 눈을 다시 감고 햇빛을 피해 일어난 퍼블리는 멍한 얼굴로 앉아서 눈을 깜빡였다. 보통 꿈이란 건 무언가 그림 같은 상황이 펼쳐지고 깨어날 땐 그 잔재가 남아서 꿈 내용이 어땠는지 더듬을 수 있는데 방금 꾼 꿈은 아무런 모습도 나오지 않고 그저 처음 듣는 목소리와 소란스러운 외침들, 그리고...

분명 아빠 목소리였는데?”
틀림없었다. 목소리뿐만 아니라 느낌이 분명 마법사라고 울리고 있었다. 하지만 퍼블리가 기억하기로는 마법사가 그렇게 많은 자들 곁에 있었던 적은 없었고 저를 곁에 둔 적은 더더욱 없었다. 아니 곁에 있었기 보단 누군가의 손에 들려있는 기분이었기에 꿈을 떠올릴수록 혼란에 빠지던 퍼블리는 꿈에 대해 떠올리던 걸 그만두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지금은 프라이드라는 자를 찾는 게 우선이었다. 모든 건 마법사를 찾아 그에게 묻는다면 해결될 일이었다. 대답을 듣지 못한다면 용사라는 자를 찾아 물어볼 생각이었다.

짐을 챙겨들고 쉼터를 나온 퍼블리는 순찰을 도는 기사들을 살펴보기 시작했다. 이마까지 감싸는 투구는 그나마 잘 보이는 게 눈이었는데 살펴보다가 주황색 눈인 기사를 발견하자 어제 쉼터에서 만났던 기사들과 나눴던 대화가 떠올라 살짝 웃음이 터지다가 눈이 마주치고 머쓱하게 고개를 숙여 자리를 피하는 일도 있었다. 계속 지켜보다가 기사들의 체격이 비슷하긴 하지만 조금씩 차이는 있었기에 어쩌면 봤을지도 모르는데 놓친 게 아닌가 싶어 지나가는 기사들을 붙잡아 그들의 단장이 어딨는지에 대해 묻자 모른다는 말과 해가 지금보다 더 낮게 떠있을 때쯤에 손으로 가리키는 방향 쪽에서 봤다는 말이 돌아왔다. 그렇게 돌아다니다보니 해는 어느새 가장 높게 오를 수 있는 자리에 올라갔다가 슬슬 내려오기 시작했다. 더워서 땀이 조금씩 맺히기 시작할 때 쯤 그토록 찾아다니던 자를 발견했다.

확실히...크다.”
다른 기사들은 물론 여느 마법사들과도 확연히 차이가 날 정도로 꽤나 큰 덩치를 자랑하는 기사가 눈에 들어왔다. 신기하다는 눈으로 바라보던 퍼블리는 재빨리 뛰어가서 그를 붙잡았다. 툭툭 저의 등을 두드리는 손길에 돌아보는 얼굴은 다른 기사들보다 투구에 더 가려져 눈밖에 보이지 않았다.

보아하니 바깥에서 오신 여행자분이로군요. 무슨 일입니까?”
, ...그 신성 측의 마법사분을 찾고 있는 중이었어요. 순찰 돌던 기사분들한테 여쭤봤는데 단장님이신 분이 알지도 모른다고 했어요.”

기사단장에 대해 가르쳐준 기사들의 바람과 정보를 받은 퍼블리의 양해 덕분의 그들의 쉼터에서의 농땡이는 순찰로 변했다.

그렇습니까? 찾는 분 이름이...”
아난타예요.”

이름을 말했지만 이상하게 돌아오는 대답은 없었다. 이름을 들은 그는 그저 속을 알 수 없는 눈으로 퍼블리를 빤히 내려다보고 있었다. 그에 퍼블리가 조금 당황하며 제대로 못 들었나싶어 다시 한 번 말해야하나 고민하던 순간

“...일단 기사들 중에서도 그런 이름은 없습니다. 사제들 중에서도 아난타라는 이름은 없는 걸로 알고 있는데...이름이 정말 아난타 맞습니까?”

“..., 맞아요.”
당황함에 한 박자 늦게 대답한 퍼블리는 재빨리 눈앞의 기사단장의 반응을 살폈다. 이대로 그런 마법사는 없다고 딱 잡아떼며 떠나면 곤란해지는 건 퍼블리였다. 다행히 퍼블리가 걱정하는 일은 일어나지 않았다.

대사제님께서 알고 계실지도 모르겠군요.”
대사제님이요...?”
왕국의 공주님처럼 이곳 신성의 대표자이신분입니다.”

원래 이렇게 각각의 대표자를 만나는 게 간단한 거였나. 퍼블리의 얼굴에 그런 의문이 그대로 떠올랐는지 기사단장이 뒤에 말을 덧붙였다.

같은 마법사로서 공평하게 대화할 기회를 주시는 분입니다. 다만 그 많은 분들을 일일이 만날 순 없으니 그들이 하고자 하는 말들을 듣고 기사들과 사제들 선에서 해결할 수 있으면 해결하고 아니면 대사제님께 말씀 드리는 게 절차입니다. 저는 웬만한 기사들과 사제들의 이름을 다 외우고 다니고 있지만 제가 모른다면 알고계실 분은 대사제님밖에 없습니다.”

그렇게 퍼블리는 얼떨결에 길 안내를 시작하는 기사단장을 따라 처음 이곳에 왔을 때 바로 눈에 들어온 그 흰 건물로 들어가게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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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지막 마을에서 나오자 이제까지와는 다르게 풀이나 나무는커녕 녹색이라곤 가시를 달고 있는 신기한 식물만 가지고 있는 모래땅이 퍼블리를 반겨줬다. 퍼블리는 이곳이 말과 영상구로만 보던 사막이라는 걸 알고는 신기한 눈으로 여기저기 둘러봤다. 종종 눈에 보이는 가시가 달린 식물 이름은 선인장이었고 물이 부족한 사막에서도 자라는 식물이란 걸 기억해낸 퍼블리는 나중에 아니카한테 편지가 오면 선인장을 실물로 봤다며 답장으로 자랑할 생각으로 선인장의 모습을 세세하게 눈에 담았다. 지도를 보며 걷던 도중 먹이를 찾고 있던 중인지 모래색 털의 여우와 꽤 크다고 할 수 있는 구렁이와 눈이 마주쳤지만 서로 한 번 보고는 다시 고개를 돌리고 제각기 할 일을 하러 자리를 떴다. 해가 지고 하늘이 어두워질 때 노숙을 준비하던 퍼블리는 햇빛이 쨍쨍하던 밝을 때와는 다르게 어두울 땐 생각보다 춥다는 생각에 조금 굳었지만 생각보다 밤과 추위는 무사히 지나갔다. 그렇게 또 걷고 또 걷는 걸 반복하다가 어제보다 더 더워진 것 같은 느낌에 주위를 둘러보자 마침 다른 선인장들보다 유독 키가 큰 선인장이 그림자를 길게 내리고 있는 게 보였다. 그늘로 가서 물을 꺼내 마시던 퍼블리는 제 목과 어깨를 덮는 머리카락이 더 덥게 느껴지게 만드는 건가 싶었다. 머리끈을 꺼내 묶어보자 한결 시원해진 느낌이 들었지만 머리카락 길이 자체가 꽤 길었던 터라 목에 머리카락이 닿는 건 여전했다. 그렇다고 머리카락을 자르자니 자를만한 물건도 없었고 거울도 없는데다 스스로 잘라본 적도 없으니 엉망이 될 게 눈에 뻔했다. 그래도 혹시나 싶은 마음에 짐을 살펴보자 가장 아래쪽에 다 팔았다고 생각한 천 하나가 나왔다. 꺼내서 펼쳐보니 팔기에도 애매한 크기였다. 천을 보고 있다가 머리위에 올려놓고 머리카락들을 모아 뭉치며 올려놨던 천으로 감싼 후 끝자락으로 묶은 후 혹시라도 삐져나온 데가 있나 싶어 더듬어 보던 퍼블리는 그냥 묶었을 때보다 더 시원해진 목덜미에 만족스럽게 웃었다.

이거 생각보다 편한데?”
당분간 이렇게 다닐까 생각하며 자리에서 일어나 모래가 묻은 데를 툭툭 털고는 발걸음을 옮기자 해가 가장 높은 데 떴다가 다시 땅과 가까워질 때 쯤 목적지에 도착했다. 여태까지 들렀던 마을들과는 다르게 높은 건물들이 눈에 들어온다. 그 중에서 단연 눈에 띄는 건 동전에 새겨진 것과 같은 모양의 금색 조형물을 우뚝 세운 커다란 흰 건물이었다.

거기 앞에 잠깐 비켜줘!”

뒤에서 들려오는 말에 비켜서자 꽤나 많은 물건들을 담은 수레가 지나갔다. 길에 서서 대화를 나누던 마법사들도 수레가 가까이 오자 비켜서서 다시 대화를 나누거나 바로 옆에 있는 가게 안으로 들어갔다. 이곳에서 사는 마법사들은 마을에 살던 마법사들과 옷이 조금 달랐다. 좀 더 장식과 무늬가 많다고 할 수 있었다. 살고 있는 데가 클수록 좀 더 화려해진다는 마법사의 말이 귓가를 스쳐지나갔다. 단서를 쥐고 있는 자가 이곳에 있으니 다시 목소리를 들을 수 있을 터였다. 묘하게 솟아오르는 기대감이 쓸쓸함을 누르고 벅차게 가슴을 두드리고 있었다. 하지만 이런 기대감은 쉼터에 들어간 후 바로 가라앉았는데

어떻게 만나지...?”
지나가는 마법사들을 붙잡고 아난타를 아냐고 묻는 건 상당히 비효율적인 일이었다. 게다가 아난타는 신성지대측에서 대표로 교류를 위해서 온 마법사였다. 그러니 신성지대 단체를 찾아가면 되겠지만 큰 단체를 이루는 자들을 찾아가는 건 힘들었다. 하물며 제가 살고 있던 곳의 왕국 마녀도 무작정 찾아간다고 볼 수 있는 마녀가 아니었다. 전서구가 들었으면 자기는 왜 그렇게 무작정 찾아왔냐 물었겠지만 지금은 곁에 없는데다가 아난타를 어떻게 만나는지에 신경을 쓰는 터라 전서구에 대해 떠올릴 생각도 들지 않는 상태였다. 그런데 이런 건 의외의 부분에서 해결됐다.

우리? 당연히 신성 소속이지. 그보다 우리를 신성지대라고 부르다니 마녀들만 그렇게 부르는 줄 알았더니 먼 마을에서도 그렇게 부르는구나? 우리 단체 이름은 신성이고 이 도시는 신성이 다스리는 땅이라서 신성지대라고 이름이 붙여진 거야.”

마녀들은 앞에 왕궁이라고 붙이니까 우리도 뒤에 붙인 줄 알아서 우리 단체를 신성지대라고 부른다고 하더라.”
방에서 나오자 똑같은 갑옷과 투구를 쓴 마법사들이 잠시 쉬러 들어온 건지 의자에 앉아서 떠들고 있었다. 퍼블리가 조심스럽게 다가가 혹시 신성지대 마법사분들이냐고 묻자 그에 나온 대답이다. 이들도 퍼블리를 마법사로 보고 있는지 의아해하는 모습을 보인다.

그럼 혹시 아난타라는 분을 아시나요?”
글쎄? 처음 듣는 이름인데? 너 아냐?”
나도 몰라. 애초에 우리 조 애들 이름 외우기도 바쁜데 어떻게 다 아냐? 다른 조에 소속된 녀석 같은데.”
새끼...같은 조 애들 이름 외우기 바쁘다는 녀석이 다른 조에 있는 짝사랑 이름이랑 걔 연인들 이름이나 달달 외우다 못해 적어놓고 다니면서.”
그거랑은 상관없지! 애초에 그 얘기가 왜 여기서 나와?!”

뭔가 한 마법사의 지극히 사적인 비밀을 듣게 된 퍼블리는 다시 본론으로 들어가기 위해 이야기에 끼어들어야하나 아니면 이대로 비밀을 묻어둔 채 물러나야하나 고민했지만 둘의 투닥거림은 생각보다 빨리 끝났다.

일단 그 아나? 아나타? 아무튼 그런 이름은 이 녀석의 원수 수첩에 없는 것 같다 새파란 풀아.”

거 아직 어린 애 앞에서 왜 그런 얘기를 왜 꺼내?!”
나중에 이 녀석 원수 수첩에 안 적히게 조심하려면 우리랑 같은 옷을 입은 녀석 중에서 눈이 주황색인 녀석 옆에 안 있으면 된다.”
!!!”
다시 투닥거림이 시작됐다. 어색하게 하하 웃은 퍼블리는 슬금슬금 뒤로 물러났지만 곧바로 나온 말에 바로 멈췄다.

그러고 보니 단장님이라면 알지 않을까?”
아무리 단장님이라도......이름 다 외울 것 같긴 한데...그래도 단장님 만나는 건 좀...”
단장님이요?”
기대감에 가득 찬 퍼블리의 눈에 둘이 얼굴을 마주하다가 어색하게 웃었다. 괜히 말 꺼냈다는 생각이 그대로 얼굴에서 묻어나왔다.

...일단 우린 마을 치안을 유지하는 기사단이니 당연히 단장님이 있지. 근데...”
단장님이 좀 빡빡하셔. 긍지도 높은 분이라서 본인한테도 빡센 분이시지. 그나마 순찰 돌고 계실 때 말 걸면 괜찮을 거야.”

이름은 프라이드인데, 찾다보면 확실히 눈에 띌 거야. 덩치가 우리 같은 일반 기사들과는 확연히 다를 정도로 크거든.”

식은땀을 뻘뻘 흘리던 그들은 한마디 덧붙였다.

그러니까 만나면 우리 여기 쉼터에서 만난 건 비밀이다?”

아마 그들이 걱정한 건 순찰 중 농땡이에 대한 벌인 것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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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까지가 내 추측일세.”

하하...추측이 아니라 확신 아닌가요?”
확실하지 않은 확신은 추측보다 못하니 아직은 추측으로 하겠네.”
축하합니다~ 확실한 사실임다. 퍼블리를 데려와서 인질로 삼으면 처음 깼을 때보다 더하셨겠죠.”

어쩌면 저는 물론이고 당신마저 죽을 생각으로....

목이 마르다며 은근슬쩍 마법사가 마시던 컵으로 손을 뻗지만 컵에 가장 가까이 있었던 건 역시 마시고 있던 마법사였다. 찰싹하는 소리와 함께 따끔한 손등을 쥐고선 아야하고 아픈 건 싫다며 징징거리는 소리를 내보지만 바로 옆을 스쳐지나가 벽에 부딪혀 산산조각 난 컵이 피처럼 물을 주르륵 내뱉으며 여기저기 파편을 튀기자 더 이상 했다간 단순히 아야하는 수준으로 아프지 않을 거란 걸 깨달았는지 조용해졌다. 물론 그마저도 오래가진 않았다. 무언가 나른하고 만족스러운 미소를 지으며 마법사를 바라보던 치트는 의자 등받이에 몸을 기대고선 눈을 느리게 깜빡이며 마법사를 눈에 담았다. 평소라면 자꾸 보면 제 얼굴이 닳으니 먼저 네 눈을 닳게 해주겠다며 눈을 향해 공격을 날렸을 마법사는 이번엔 아무 말도 하지 않고 가만히 그를 응시하고 있었다. 그에 더 짙게 웃음을 머금은 치트가 입을 열었다.

아아 그렇게 바라보니 뭐라도 주고 싶잖슴까~ , 어차피 오늘은 목소리도 많이 들었으니 소식 하나라도 드릴까 생각했으니 앞으로도 많이 목소리 좀 들려주십쇼~ 하지만 너무 많이 주면 탈날 테니 지금 간절하실 소식 하나만 드리겠슴다?”

이번엔 조금 더 오래 눈을 감다가 뜬 그가 밝은 어투로 말한다.

퍼블리는 지금 신성지대로 가고 있답니다~”
물론 그 말을 들은 마법사의 얼굴은 밝음이랑 거리가 멀어졌다.

그게 무슨...!!”
워워 진정하십쇼. 이제 막 학기가 시작된 와중이지만 걱정할 일은 없슴다. 제가 다 조치를 취해놨으니 이제 앞서 말씀한 것들은 다 일어나지 않을 일이 됐으니 당신은 계속 여기에 머무르게 될겁니다. 기쁘지 않은가요? 전 매우 기쁜데.”

“...퍼블리가, 대체, , 신성지대로, 가는, 거지?”

뿌득 이가는 소리와 함께 살벌함을 가득 담은 목소리가 둘이 있는 공간을 차갑게 내리누르기 시작했다. 정작 집중적으로 그 냉기를 받게 된 당사자는 어깨를 으쓱이며 태연하게 대답한다.

글쎄 저야 우리 패치 마음도 쉽게 알 수 없는데 퍼블리 마음을 어떻게 알겠슴까? 이렇게 제게 묻는 당신도 몰라서 물어보는 거 아닙니까? 그러니 지금도 아니고 애기 때 봤을 뿐인 저는 당연히 아무것도 모름다.”
그런 대답에도 분위기를 잡아 내리는 냉기는 전혀 사라지지 않았다. 오히려 더 무거워졌지만 우습게도 여기서 신경 쓰는 자는 아무도 없었다. 냉기를 넘어서 살기까지 내뿜는 마법사를 사랑스럽게 보던 그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아쉽게도 정말 바쁜 와중에 잠깐 보러 온 거라 가봐야 함다. 물론 곁에 있어달라고 하시면 일이고 다 때려치고 곁에 꼭 붙어있을 생각임다~”
그에 마법사는 아무 말 없이 일어섰다. 설마 진짜 제 말대로 할 건가 싶어서 놀람 조금과 기대 대부분인 눈빛으로 마법사를 바라봤지만 곧이어 의자를 쥐는 모습에 잽싸게 움직여 떠났다. 그렇게 도망치는 모습을 눈만 굴려 보고 있던 마법사는 의자에 다시 앉고는 눈을 감았다. 톡톡 검지로 책상을 두드리다가 다시 눈을 뜬 마법사는 한숨을 한 번 쉬고 입을 열었다.

조치라던지, 왕국 내에서 넓게 행사할 수 있다라는 말을 봤을 때 왕궁 마녀 중에 녀석이 심어놓은 첩자가 있다는 건 확실하군.”
아무런 표정 없이 생각을 고르고 건져 올리는 모습이 방금 전까지 살기를 내뿜던 자라고는 상상도 할 수 없을 정도로 차분했다. 마법사는 거기서 그치지 않고 계속해서 말을 이어간다.

오히려 퍼블리가 왕국 밖을 나온 건 다행이라고 할 수 있지. 물론 퍼블리의 뒤를 밟을 자를 붙여놨겠지만 왕국 내에서 직접적으로 권력을 행사할 수 마녀가 더 위험한 법이니까. 뒤를 밟고 있을 자도 신성지대에 들어가면 행동에 제약이 걸리니 더 안전하겠지만...신성지대 자체가 문제군.”
말을 끝내는 것과 동시에 창 밖의 그림자가 사라졌다. 마법사의 눈이 차갑게 가라앉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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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질 다 끝났습니다.”

문을 열자 쉼터의 주인이 주머니를 건넸다. 주머니 안엔 퍼블리가 잡아왔던 토끼가 육포로 손질되어 담겨 있었다. 감사하다며 받아든 퍼블리는 아직 저를 보고 있는 주인과 눈이 마주쳤다. 이내 실례했다며 다시 손님을 마주하는 자리로 물러나는 모습에 퍼블리는 그저 약간 곤란한 웃음을 지으며 문을 닫았다. 지금까지 마을들을 거치면서 비슷한 반응을 많이 받아왔는데 저 정도는 매우 괜찮은 축에 속한 편이었다. 가끔가다 지나가던 마법사들이 퍼블리를 유심히 쳐다보다가 가는 경우가 있었는데 당연히 그런 반응들을 접하게 된 퍼블리는 제 얼굴에 뭐가 묻었나라는 생각을 하며 쉼터의 방마다 있는 거울이나 꽝꽝 언 물웅덩이 위로 얼굴을 비추고 더듬어보기도 했다. 그러다가 이유를 알게 됐는데 어느 날은 지나가던 마법사 하나가 대놓고 퍼블리를 쳐다보는 걸 넘어서 가까이 다가와 신기하네라며 중얼거리기 시작했고 그에 퍼블리가 왜 그러냐고 묻기 전에 다가온 마법사가 먼저 물었다.

당신은 마법사예요, 마녀예요?”
마녀라고 대답하자 물어봤으면서도 놀라면서 당황스러워서 굳어있던 퍼블리도 실례라고 생각할 정도로 이리저리 훑어보고 간 이상한 마법사 이후로 지나가던 마법사들이나 쉼터의 주인들이 마법사인지 마녀인지 물었고 퍼블리는 계속 마녀라고 대답하다가 어느 순간 마법사라고 대답하면 어떤 반응일까 궁금해 마법사라고 대답한 적이 몇 번 있었다. 그러면 그제야 궁금증이 풀린 얼굴로 실례했다며 물러가는 마법사들이 대부분이었다. 하지만 쉼터의 주인들은 미심쩍은 눈빛을 보냈지만 한차례 이미 실례를 저질렀고 남에 대해 캐묻는 건 무례하다는 걸 알고 있었기에 그대로 물러났다. 그 반응들은 퍼블리가 천으로 계산하는 방식이 주로 여행하는 마녀들이 계산하는 방식이었기에 나온 반응이었지만 마법사 중에서도 그렇게 계산하는 자들이 있으니 사실은 마녀가 아닌가라고 의문을 품는 건 본인들이 생각해도 어처구니가 없을 이상한 생각이었다. 설령 사실은 마녀라고 해도 그게 무슨 상관인가.

어쨌든 몇몇을 제외하고 대부분의 마법사들은 나를 마법사로 보고 있다는 건데...”

사실 마녀와 마법사는 딱 봐도 구분이 가능했다. 비유를 하자면 눈앞에 있는 게 흰 고양이냐 검은 강아지냐 구분하는 정도였다. 그렇게 쉽게 구분할 수 있는 게 마녀와 마법사인데 만나서 얼굴을 마주하는 마법사들이 저를 마녀인지 마법사인지 구분을 못하니 당연히 당사자인 퍼블리는 의아해할 수밖에 없었다. 그러다가 떠오른 게 마법사인 제 아빠와 마녀왕국 밖에서 살았던 기억이었으니 그것 때문이라고 생각하며 넘어가버렸다. 일단 지금 퍼블리의 목표는 신성지대로 돌아간 아난타를 찾아가는 거였기 때문에 다시 고개를 들어 올라오는 궁금한 것들은 아빠인 마법사를 찾았을 때의 몫이었다. 거기까지 생각을 잘라낸 퍼블리는 육포가 담긴 주머니를 제 짐 속에 넣어놓고 침대에 누워 잠시 눈을 감았다.

 

혼자 남아버렸어.

나를 두고 어디로 가버린 거니?

나는 계속 여기에서 기다렸어.

너를 기다렸어.

하지만 너는 여전히 오지 않았고,

나는 지금까지 남아있었지.

 

마법사가 눈을 뜬 건 이틀하고도 여섯 시간이 지나서였다. 오래 누워있던 터라 멍한 기분이 한동안 머리를 부여잡고 놔주지 않았다. 고개만 돌려 주위를 돌아보자 방 안엔 누워있는 저를 제외하고 아무도 없었다. 조심스럽게 몸을 일으킨 마법사는 발을 조심스럽게 방바닥으로 내려놨지만 힘을 주기엔 또 시간이 걸렸다. 그렇게 일어서자 몸이 휘청거리며 몇 번 침대 위로 풀썩 주저앉았지만 계속해서 일어서려고 시도한 덕분에 위태롭게 균형을 잡으며 다리를 움직이기 시작했다. 벽을 짚은 손이 점점 벽에서 물러나자 그에 맞춰 마법사가 제대로 움직일 수 있게 됐다. 방문을 여는 순간 얄미운 얼굴과 말투가 눈앞에서 잠깐 반짝이듯 떠오르며 사라졌다. 지금은 다행스럽게도 곁에 없는 그는 마법사도 익히 잘 아는 자였다. 밤이었을지 달이었을지 아님 호수였을지 모를 것에 취해 달이 환하게 뜬 밤, 호수 앞에서 제 이름과 그의 이름을 서로에게 건넸던 상대. 치트. 그게 바로 저를 납치해온 그의 정체였다. 물론 납치당할 때 가만히 있었던 마법사가 아니었다. 다만 정말 운이 나쁘다고 할 수밖에 없는 순간이었다. 그도 그럴게 마법사는 비록 본인 의지로 행한 상황이었지만 마력이 상당히 줄어 있는 상태였고 바로 그 때 치트가 납치하러 들이닥치는 바람에 엎친 데 덮친 격이었다. 최대한의 저항 결과 집에 들이닥친 납치범의 오른팔을 부러뜨리고 왼팔을 탈골상태로 만들어놨지만 결국 정신을 잃은 건 본인이었다. 하지만 양 팔을 쉽게 쓸 수 없게 된 터라 기절시키는 데는 성공했지만 데려갈 순 없었던 치트는 곧바로 지원을 불렀고 안경을 벗고 검은 머리카락이 다시 빨갛게 변하면서 욕을 머금게 된 아난타가 한동안 치트를 놀려댔었다. 물론 이건 마법사가 모르는 뒷이야기였다.

겨우겨우 방에서 나온 마법사는 부엌으로 들어가 의자에 앉았다. 등받이에 몸을 기대고는 기분 나쁘다는 게 여실한 눈빛으로 쭉 주변을 훑어봤지만 머리만 아파왔는지 꾹꾹 눈썹 위를 문질렀다. 이 집은 비슷하다는 수준을 뛰어넘어서 아예 태우기 전 그대로 남겨둔 건가 생각할 정도로 마녀왕국으로 떠나기 전에 지냈던 집과 똑같았다. 단순히 집 구조가 아닌 물건들도 소름끼칠 정도로 똑같았는데 등받이에 자주 기대느라 조금 휘어진, 지금 앉은 의자가 바로 그 예다. 그렇게 쓰러지고 처음 이 꺼림칙하고 싫은 집에서 눈을 떴을 때 마법사가 깨어나길 기다리고 있었는지 곁에 앉아서 지켜보고 있던 그 얼굴은 울면서도 웃고 있었고 슬프면서도 환희에 가득 차 있었다. 부들부들 떨며 뺨을 쓰다듬던 손은 마치 손끝에 있는 게 환상인지 현실인지 구분하려고 더듬는 눈먼 자의 손짓 같았다. 곧이어 잠겨있으면서도 희열에 차 들뜬 목소리가 생생하게 들려왔었다.

왜 저를 떠난 겁니까? 아니, 이젠 이유 따윈 상관없습니다. 저는 당신을 찾아냈고 이렇게 제 눈에 보이고 제 손에 닿는 곳으로 당신을 데려왔으니까 물을 필요도 없겠죠. 당신은 이제 절대 여기를, 나를 떠날 수 없을 테니까.”

그렇게 말하며 제 얼굴 위로 고개를 숙이는 치트를 향해 박치기를 한 마법사는 그대로 목을 눌러 제압하려고 했지만 팔을 붙잡아 그대로 침대 위로 내리 누르는 그의 힘은 강한 걸 넘어서 절대 놓지 않겠다는 엄청난 집착이 느껴져 저도 모르게 힘이 빠질 정도였다. 눈을 마주했을 때도 뚝뚝 떨어진다고 생각할 정도로 넘쳐흐르는 그 감정은 마법사가 질려서 순간 움직인다는 걸 잊어버릴 만큼 농도 짙고 쉽게 외면할 수 없었다. 그에 마법사는 안 보이면 마음도 식어버릴 거라고 생각한 제가 안일한 건지, 저렇게까지 마음을 붙들다 못해 집착을 덕지덕지 붙인 그가 비정상인 건지 의문이 들었지만 결론은 둘 다였다. 기억속의 시간을 거슬러 어디서부터 잘못됐는지 더듬던 마법사는 고개를 저었다. 지금에서야 이런 생각을 해봤자 이 상황을 해결하는데 아무런 도움도 되지 않았고 지금 혼자 남아있을 퍼블리가 걱정이었다. 이렇게 저 혼자 있을 때 탈출시도를 한 때가 꽤 있었지만 문고리를 잡자마자 정신을 잃는 상황이라 아예 마법을 날려보려 했지만 몸에서 나온 마력이 일그러지며 흩어지기 일쑤였고 이곳이 과연 어떤 곳인지 주위의 마력과 제가 마녀왕국에서 걸어놓은 마법들을 탐지해봤지만 탐지만 가능했지 느껴지는 방향은 매번 탐지할 때마다 뒤죽박죽이었다. 마치 모든 탈출시도를 막아놓은 것처럼 철저하게 지어진 이 집은 마녀왕국이나 신성지대의 감옥보다 더 견고하고 철저할 거라며 혀를 내둘렀다. 더 이상 시간을 지체할 수도 없는 것이 정신을 잃었다가 눈을 뜰 때마다 찌뿌둥한 수준이 아니라 한동안 힘이 들어가지 않는 다는 점에서 자고 있을 때 시간이 흐르는 건 단순히 하루 수준이 아니라는 걸 어렴풋이 느끼고 있지만 정확히 얼마나 시간이 흘렀는지는 알 수 없어 난감한 상황이었다. 게다가 마법사가 그동안 정신을 잃은 횟수가 꽤 됐다. 그에 마법사가 한 가지 방법을 생각했는데 그건 왕국 내의 집에서 걸어뒀던 마법을 천천히 풀어 남은 마력량을 탐지해 얼마나 시간이 흘렀는지 알아내는 거였다. 우선 첫 번째는 방 안에 잠가뒀던 서랍이었다.

“....결국 뒷마당에 걸어둔 마법까지 풀어버리게 됐군.”
식품에 걸어둔 보존 마법을 제외하면 마법사가 집에 걸어놨던 거의 대부분의 마법을 풀어버린 거나 다름없었다. 사실 뒷마당의 마법은 풀어놓을 생각이 없었지만 풀 수밖에 없게 된 상황에 다시 머리가 아파오는 기분이 들어 컵에 물을 따라 조금 마셨다. 아직 물이 남은 컵을 탁자 위에 툭툭 두 번 두드려보고는 찰랑거리는 물들을 빤히 지켜보다가 눈을 감았다. 그렇게 시계의 짧은 바늘이 두 번 정도 돌았을 때 문이 열리는 소리가 들렸다.

깨셨슴까?”

눈을 뜨자 문이 열린 소리가 난지 얼마 되지 않았는데도 벌써 제 옆에 와서 싱글거리며 웃는 얼굴이 보였다. 그에 혀를 차며 다시 눈을 감아버리자 들려오는 말이

그대로 키스해달라고 눈 감으신 검까?”

마법사는 조용히 물이 든 컵을 들어올렸다. 물을 뿌리려나 싶어서 당신이 마시던 물이라서 달다고 놀려줄 말을 준비했던 치트는 컵 째로 던지려는 손동작에 꺼내려던 말을 삼키고 잽싸게 마법사의 손목을 잡았다.

아무리 저라도 그걸 맞으면 아픔다?”
아프라고 던지지 안 아프라고 던지나? 아니 그래, 자네 말대로 아프지 않게 바로 죽길 바라며 던지면 되겠군.”
에헤이~ 그건 더 안 됩니다~”
컵 내려놓게 좀 놓으라는 말에 놓기는커녕 팔목과 손을 만지작거리는 모습에 기어이 다른 손까지 들어 올리게 만들자 그제야 놓는 모습이 얄미워 발로 잽싸게 정강이를 걷어차자 과장스럽게 맞은 데를 부여잡고 아파하며 맞은 편 의자에 털썩 앉는다.

그나저나 의외입니다?”
뭐가 말인가.”

지금까지 퍼블리에 대해 물어보지 않으셨잖슴까?”

그 말에 눈을 살짝 찌푸린 마법사는 덤덤하게 말을 꺼낸다.

자네가 퍼블리한테 손도 대지 않은 걸 알고 있으니까?”

이런 쪽으로 저를 믿어주시는 검까? 감동임다~”

만약 퍼블리를 붙잡아 인질로 썼다면 내가 여기서 처음으로 눈을 떴을 때 퍼블리를 언급했겠지.”

그 말에 치트가 눈을 살짝 크게 떴다가 짙은 웃음을 머금었다.

그 후에 잡아왔을지 어떻게 알고요?”
그렇다면 잡아온 그 때 자네는 운을 뗐겠지. 이번에 나를 잡아온 자네의 방식을 봤을 때 자네는 매우 철저하니 섣불리 퍼블리에게 손을 댈 수도 없고 손을 대서도 안 되는데다가 자네는 지금 손 댈 생각도 없잖나. 손을 댈 수 없고 안 되는 이유는 퍼블리가 마녀왕국 내의 학생이니 학기 중에 사라지면 상당히 곤란해지지. 학교 측에서 퍼블리의 행방에 대해 의문을 품게 될 거고 왕궁에서 실종된 학생을 찾는다는 신고를 접수하고 조사대를 파견하면 퍼블리가 왕국 내에서 사라진 걸 알게 될 테고 아직 성인이 되지 않은 마녀는 보호자의 동의나 같이 동행하지 않는 이상 왕국 밖으로 나갈 수 없으니까 말일세.”

하지만 보호자도 같이 없는 상황이니 함께 손잡고 왕국 밖으로 나갔을 거라 추측하고 거기서 멈추지 않을까요?”
마녀들은 왕국 밖으로 나갈 때 검문소를 방문해서 밖으로 나간다는 임시 확인서를 작성하고 나가는 게 법이잖나. 게다가 대체 어느 마녀가 아직 학교에 다니고 있는 제 아이를, 그것도 학기 중에 밖으로 데리고 나간단 말인가?”

그에 치트가 어깨를 으쓱이며 말을 받았다.

, 확실히 그렇게 되면 조사대가 더 넓게 움직이긴 하겠지만 그건 그들만이 피곤하고 저는 별 문제 없슴다? 우리 패치도 방금 말했다시피 전 매우 철저하다고요? 그럴 능력도 되는 걸 넘어서 뛰어나고 마녀 왕국 내에서도 그랬듯이 넓게 행사할 수 있다고 자부할 수 있슴다.”

물론 그건 자네 얘기고 난 아직 내 얘기 중이었네만?”
무슨 소린지 의아해하는 눈빛을 받고서도 마법사는 아무런 표정 변화 없이 물로 목을 축이며 말을 이어간다.

자네가 자네 능력 자부하듯이 나도 내 능력 좋다고 말할 수 있네. 자네가 찾아오던 그 집을 태우고 떠난 그 날부터 자네가 나를 납치해오던 날까지 마녀 왕국에서 마법사인 걸 들키지 않고 살아왔잖나. 거기다가 퍼블리를 다른 마녀들처럼 학교에 보낼 정도로 자연스럽게 살아왔지. 하지만 아무리 나라도 왕국 내의 탄생 기록은 손댈 수 없었네. 그 탄생기록은 장미정원에서 태어난 마녀들뿐만 아니라 결혼한 마녀들, 심지어 마법사와 결혼해 왕국을 떠난 마녀들의 아이가 마녀일 경우 기록하게 하는 대단한 기록일세. 내가 현 거주자들의 기록을 겨우 꼬고 가려서 이름을 등록해 살아온 처지니 말 다한 거나 다름없지. 가려진 걸 치우고 정리만 해놓는다면 왕궁은 내가 그 어디에도 속한 마녀가 아니란 걸 알아낼 테고.”
마법사는 눈을 가늘게 뜬 채로 치트를 바라봤다.

굳이 뒷말도 길게 덧붙여야하나?”
아뇨~ 훌륭합니다! 하지만 그렇게 돼도 딱히 제가 걱정할 일은 아님다. 전 우리 패치가 저를 떠나는 게 걱정될 뿐.”

그럼 역시 손댈 생각이 없는 쪽이군. 비록 길게 말하긴 했지만 떠본 걸세. 자네 반응을 보아하니 딱히 그런 생각은 해본 적 없을뿐더러 날 잡는데 혈안이었고 무엇보다 지금 퍼블리를 건드려봤자 자네에게 이득은 없으니까. 건드려봤자 나한테 더 반감을 사겠고 그에 맞춰 나는 내 몸도 신경 안 쓰고 날뛸 테니까 말일세.”

그에 치트는 그저 웃음으로 답했다.

Posted by 메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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