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렇게 길었던 이번 기억은 끝났고 가만히 모든 걸 보고 있던 퍼블리는 이미 결과와 범인들은 알고 있었지만 이렇게 자세한 내용은 몰랐던 터라 받은 충격이 이만저만이 아니었다. 그대로 멍하니 앉아 있다가 손을 들어 얼굴을 쓸어내리다가 뒤로 벌렁 드러누웠다. 흐려졌다고는 하나 안개는 아직 하늘을 가릴 정도로 남아있었다. 몸은 피곤하지 않았지만 정신이 피곤해졌다. 메르시가 말한 비밀은 과연 이 비밀이었을까? 아니 어쩌면 메르시는 이렇게 패치의 기억이 흩어져 있는 건 예상치 못했을 거다. 다만 어떤 형태로든 과거에 벌어졌던 일의 흔적이 남아있을 거라고 생각했을 게 분명했다.
기억은 가만히 있어도 나타났었는데 이번엔 배려라도 하듯이 퍼블리가 한참을 누워있는데도 나타나지 않았다. 어쩌면 이 모든 상황이 다 꿈이 아닐까 싶었지만 현실도피를 하기엔 감각이 매우 선명했다.
“힘들엉?”
다시 기억이 나타났는지 용사의 천진난만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아직 지쳐있던 퍼블리는 눈을 뜨지 않았다.
“패치랑 또 만날 수 있어서 기뻤엉! 하지만 약속했구! 패치는 같이 갈 칭구가 있는데에~”
이건 무슨 말일까. 기억은 워낙 비슷한 일상이 많았어도 그 날 했던 대화가 완전히 똑같은 건 아니었고 기억은 상당히 띄엄띄엄했다. 아마 또 기억이 이어진 게 아니라 다른 기억이 나타난 건가 싶어 눈을 뜰까 고민했다. 하지만 지친 정신은 망설임을 만들어냈다.
“그러니까~ 나도 새 칭구처럼 빨리 나올께! 꼭 가치 가자!”
대체 새 친구는 누구를 말하는 걸까. 눈을 뜨고 일어나보니 기억은 이미 사라졌는지 안개 낀 숲이 퍼블리를 반기고 있었다. 여기 계속 누워있으면 아빠를 찾을 수 없다는 걸 잘 알고 있는 퍼블리는 그대로 일어나 다시 걷기 시작했다. 지쳤다고 해서 퍼블리는 포기할 생각은 없었고 이미 몇 번이고 계속 지쳐왔고 충격을 많이 받아왔으니 이젠 익숙할 지경이었다.
“제 발 따가운 왕궁 마녀들은 이제 공주님을 몰아세우기 시작했어.”
아무리 자신들 때문이라고 사고가 터졌어도, 죄책감에 사로잡혀도 어렵게 잡은 제 위치와 저주에 대한 불안감은 생각이 평범했던 마녀들의 시야를 좁히고 날카롭게 몰아가기엔 충분했다. 아마 일을 벌인 여덟 마녀들도 이렇게 일이 순조로우면서도 아슬아슬하게 극단적인 상황은 예상치 못했을 거다.
“흘러나오는 저주를 그대로 내버려둘 순 없으니 결국 더 심각해지기 전에 직접 그 숲으로 가서 저주의 원인을 없애야한다는 의견이 나왔지.”
물론 메르시 혼자서 그 숲으로 가는 건 당연히 무리가 있었다. 다행히 메르시의 뒤를 따르는 왕궁 마녀들은 있었고 흑기사단 또한 이 땅에서 사는 건 마법사도 마찬가지니 마법사인 자신들도 메르시를 따라 숲으로 갈 거라고 외쳤다. 그에 감명을 받았는지 마을 단위로 몇몇 무리의 마법사들이 왕국으로 오기 시작했고 그 중 가장 큰 무리가 바로 홀리와 프라이드가 이끄는 무리였는데 이들은 나중에 누구나 다 알고 있는 신성이라는 이름을 스스로 붙였다.
“그리고 나도 갈 거니 한동안 못 볼 거고 그동안 말 안 했지만 난 제자가 있었어, 이름은 흑룡이지. 내가 숲으로 가있는 동안 GM이 맡아준다고 했으니 혹시 나에게 물어보고 싶었던 게 생긴다면 내 제자에게 찾아가 물어보면 웬만한 건 다 알려줄 거야.”
하늘의 현자에게 제자가 있었다는 건 또 처음 듣는 말이었다. 애초에 이룬 마법연구 업적만 가득하지 사적인 부분은 일절 알려지지 않았으니 이건 당연한 얘기였다. 패치 또한 제자가 있었다는 얘기는 처음 들었는지 살짝 눈을 크게 떴지만
“호의에 감사합니다.”
더 묻진 않고 넘어갔다. 다만 여기서 컨티뉴의 말을 듣고 있었던 게 패치와 용사만 있었던 게 아니었다. 소식지를 발에 달고 온 전서구가 깜짝 놀라 부리를 떡 벌리고 있었다.
“뭐요?! 제자!? 제자가 있었어요?!!”
비둘기들은 소식을 전하는 데 굉장히 탁월했다. 이게 다른 말로 본다면 소식을 알아내는데 엄청난 관심과 힘을 들인다는 얘기였다.
“아니 이런 엄청난 얘기를 그동안 마법연구보다 더 꽁꽁 숨겨왔단 거예요?!”
“하하 숨긴 적은 없지, 말하지 않았을 뿐.”
전서구는 이 얘기를 들은 틈을 타 제자에 대한 건 물론이고 지금 전서구도 알고 있는 일행을 제외하고 엄청난 일행이 있는지 물어보기 시작했다. 물론 컨티뉴는 하하 웃으면서 대답하지 않았다. 패치는 전서구의 집요함과 컨티뉴의 단단한 웃음을 구경하고 있었고 용사는 전서구의 발에 묶여있는 소식지가 궁금했는지 다가가 풀었다. 전서구는 정보를 알아내기 위해 계속 묻고 있느라 용사가 소식지를 풀어내는 걸 못 느꼈고 어차피 보여주려고 가져온 소식지였으니 별 신경을 쓰지 않았다.
“아, 쫌!! 쬐매만 알려주쇼!!”
패치는 소식지를 펼쳐 보고 있는 용사를 힐끗 보고 부엌에 들어가서 물통을 가지러 갔다. 저렇게 물어봐도 컨티뉴는 절대 말하지 않을 거고 전서구의 입만 아플 거라는 걸 아주 잘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직업의식이 투철하고 입담도 뛰어난 전서구지만 상대가 상대였다. 패치가 아무 말 없이 물통을 옆에 툭 놓자 묻다 지친 전서구가 자연스럽게 물통을 들어 마시기 시작했다.
“나 여기 갈래!”
용사가 환하게 웃으며 소식지를 모두에게 보여주려는 듯이 흔들어댔다. 물을 마시던 전서구는 그대로 마시던 걸 뿜으면서 기침을 해대기 시작했다. 패치와 전서구가 뿜은 물을 피한 컨티뉴가 용사가 흔들어대는 소식지를 잡아 읽기 시작했고 그대로 굳어버렸다.
“...혹시 왕국에 가보고 싶었나?”
“왕국도 가보고 싶구~ 거기 적힌 숲도 가구 싶어!”
패치는 내심 아니길 바라면서 물었지만 용사가 아주 단단하게 못을 박아버렸다. 소식지에는 왕궁 마녀들과 흑기사단과 밸러니의 숲을 조사할 마녀와 마법사들을 모집한다는 내용이 적혀있었고 용사는 여기 적힌 밸러니의 숲을 가고 싶다고 말했다. 누구나 다 알다시피 이 소식지에 같이 조사할 자들을 모집한다는 건 말 그대로 저주 가득한 밸러니의 숲을 조사하러 간다는 내용이었다. 다만 용사가 그 심각성을 아는지 모르는지 가고 싶다 아니 갈 거라고 외치고 있었다. 당연히 패치의 속은 까맣게 타들어가고 있었다.
“이건 절대 놀러 가는 게 아니야!”
“웅!”
“저주를 조사하러 가는 거라고!!”
“웅!”
평소 용사에게 언성 한 번 높이지 않았던 패치가 소리쳤다. 심각한 그 분위기에 전서구는 부리를 닫고 슬금슬금 컨티뉴 옆으로 물러났다. 용사는 대놓고 제게 심각하게 소리치고 있는 패치를 마주하고도 여전히 순수하게 웃는 얼굴로 고개를 끄덕이며 긍정하고 있었다.
“안 돼.”
“갈랭!”
“절대 안 돼.”
“갈래앵~!”
패치는 소리치던 걸 멈추고 용사의 어깨를 잡으며 절대 안 된다고 하지만 용사는 계속 웃으면서 간다고 했다. 상대방은 심각성을 전혀 느끼지 않을뿐더러 받지도 않은 채 마치 평소처럼 어디 놀러간다는 어투로 웃고 있으니 여기서 저 혼자 심각하게 외치는 패치는 어쩐지 힘이 쭉 빠져서 더 외칠 기력이 나지 않았고 때마침 놀러온 들개들은 용사를 제외하고 심각해 보이는 상황에 무슨 일인가 전서구의 옆구리를 툭툭 치며 자초지종을 묻고 들은 후 패치와 함께 말리기 시작했다.
“거기가 무슨 소풍이라도 처 가는 덴 줄 알아?!”
“저주가 가득하다냐!!”
“목숨위험!”
들개들이 격렬히 말려도 용사의 고집은 전혀 꺾이지 않았다. 한숨을 쉰 패치는 손을 들어 얼굴을 쓸어내렸고 들개들도 뭐라 더 말을 하고 싶어 했지만 계속 소리를 질러대서 목이 쉬어버렸다. 전서구는 어찌할 줄 몰라 눈만 도륵도륵 굴리고 있었고 컨티뉴는 용사가 소식지를 흔들며 가고 싶다고 했을 때부터 아무 말 않고 지켜만 보고 있었다. 그러던 중 돌연 용사가 갑자기 말했다.
“들개 칭구들은 흑룡이랑 가치 먼저 가서 기다려!”
“뭐?”
“새 칭구 만나고 오고~ 또 새 칭구랑 가치 갈겡!”
그 때 컨티뉴가 용사의 말에 반응했다. 여태까지 가만히 있기만 했던 그는 다른 이들처럼 반대하기는커녕 자신과 같이 왕국으로 가면 되겠다고 했고 그 말을 들은 패치와 들개들은 당연히 환장했다. 말릴 판국에 이게 무슨 일인가. 그렇게 따지니 돌아온 대답은
“용사도 엄연히 마법사이고 어른이지.”
용사도 말릴 수 없었는데 컨티뉴까지 가세해버렸다. 이미 얘기는 끝난 거나 다름없었다. 심각하고 살벌한 분위기에서 마치 자기 자신을 지키듯이 날개로 제 몸을 감싸고 있던 전서구는 얘기가 거의 마무리가 된 이 틈을 타 집에서 나와 다시 제 둥지이자 일터로 돌아가기 위해 열심히 날갯짓을 했다. 일단 용사가 가기로 했다면 패치가 따라가는 건 당연했고 어두운 얼굴로 한숨을 쉬며 컨티뉴를 따라 왕국으로 갈 준비를 하기 시작했다. 들개들도 따라가려고 했지만 결국 용사와 컨티뉴의 말에 따라 GM과 함께 있을 흑룡을 찾아갔다. 그리고 훗날 이들은 비둘기 소식지에 이렇게 적혔다. 하늘의 현자 컨티뉴가 속한 소수정예 다섯 명중 세 명의 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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