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빠!! 아빠아아아아아아!!!”
목청 터져라 외쳐도 응답은커녕 숨소리 하나 안 돌아올 정도로 안개 속은 고요했다. 퍼블리는 혹시나 싶은 마음에 마법을 써서 빛을 내보거나 불을 내봐도 안개는 걷히지 않고 앞은 여전히 뿌옇게 보여 길은 물론이고 나무도 보이지 않았다. 어찌해야하나 고민하고 있던 와중에 어디선가 대화소리가 들려왔다. 퍼블리는 기억이구나 싶어 어찌해야하나 고민했지만 퍼블리가 다른 데로 가기도 전에 안개가 걷히고 패치의 모습이 드러났다. 마치 선택권은 없다는 모양새였다.
“내일까지 부탁하네.”
“나도, 나도 할래~!”
“우선 자네 뒤에 있는 두더지부터 어떻게 하게나. 아까부터 자네만 보면서 기다리고 있네.”
“뚜더쥐이~?”
물론 용사 뒤에는 두더지가 없었다. 용사가 다른 데 신경을 쓰는 틈을 타 패치는 비둘기에게 눈짓했다. 비둘기는 이 상황이 꽤 익숙한지 작게 울고는 바로 편지를 달고 날아올랐다.
“뚜더쥐 없엉!”
“뒤돌자마자 땅으로 다시 들어갔지.”
바로 쭈그려 앉아 땅을 두드리는 용사에게 패치는 이제 해가 지고 있으니 가야한다고 하곤 앞장섰다. 있지도 않았던 두더지에게 작별인사를 건넨 용사는 바로 패치의 뒤를 따라갔다. 그러다가 뭔가 생각났는지 패치가 뒤돌아 용사에게 무슨 말을 하려던 순간 갑자기 기억이 사라지고 안개만 남았다. 지켜보고 있던 퍼블리는 얼떨떨한 눈으로 앞을 바라봤지만 다시 기억이 나타나진 않았다. 묘한 찝찝함에 자리를 뜨고 얼마간 걸으니 안개가 또 걷혔다. 이번에 나타난 건 퍼블리보다 더 작고 어린 패치였다.
“와...신기하다...”
어린 패치는 다른 어린 마법사들과 함께 종이와 깃펜을 들고 있었다. 그들이 있는 곳은 학교라기 보단 집이었는데 넓은 탁자 위에 각자 종이를 올려두고 무언가를 쓰고 있었다. 여기서 책을 들고 있는 건 어른 마법사 하나뿐이었는데 책을 읽어주다가 듣고 있던 아이들 중 하나라도 궁금한 거에 대해 물어보면 읽어주던 걸 멈추고 궁금한 걸 해결해주고 있었다. 아이들의 질문 공세로 더 이상 책을 읽어줄 수 없지 않을까 싶었지만 여기 모여 있는 아이들은 패치를 포함하면 열 명도 되지 않았다.
“패치는 궁금한 거 없니?”
“다른 애들이 먼저 다 물어봐서 없어요.”
퍼블리는 신기함과 흐뭇함이 가득한 얼굴로 어린 패치를 바라봤다. 요컨대 아빠도 이렇게 어린 시절이 있고 저렇게 안 딱딱한 말투를 썼었던 때가 있었구나 싶은 얼굴이었다. 퍼블리는 패치와 다른 아이들을 건들지 않게 조심조심 다가가 패치의 종이를 내려다봤다. 읽어준 내용이 토씨하나도 빼먹지 않고 그대로 써져있다 못해 그 아래엔 밑줄과 자체적으로 요약한 내용이 적혀있었다. 퍼블리는 고개를 돌려 다른 아이들의 종이도 봤다. 어른 마법사가 중요하다고 말한 부분만 몇 줄 써져있고 그 외엔 낙서였다. 퍼블리는 그래 이게 정상이지 하며 고개를 끄덕이고 물러났다. 어른 마법사가 쉬는 시간이라며 먼저 일어나 나가자 다른 아이들은 바로 다른 방이나 부엌으로 뛰어 들어가거나 집 밖으로 나갔는데 패치는 그 자리에 그대로 남아 썼던 걸 다시 읽어보고 요약하기 시작했다. 패치는 어려도 패치였다.
“패치야, 패치야 같이 놀자~”
“이것만 더 하고.”
“에이 너 그거 다 하고 나면 쉬는 시간 다 끝나 있잖아.”
“잠깐만. 금방 끝나.”
그렇게 두 번 더 같이 놀자고 조르던 아이는 다른 아이가 부르자 패치를 한 번 힐끔 돌아보더니 바로 나가버렸다. 패치는 본인이 한 말대로 쓰고 있던 걸 금방 다 끝냈다. 기지개를 한 번 켜고는 자리에서 일어나며 주위를 둘러봤지만 그 아이는 이미 나가버렸고 방 안엔 아무도 없었다. 뒤늦게라도 따라 나갈까 싶어 문고리를 잡아봤지만 잠시 머뭇거리면서 고민하다가 다시 제 자리로 돌아가려고 했다. 하지만 그 전에 어른 마법사가 책상 위에 두고 간 책이 패치의 눈길을 사로잡았고 이번엔 고민도 없이 바로 책으로 다가가 책을 펼쳐 읽어보기 시작했다. 그렇게 한참 집중하며 읽고 있을 때 문 너머로 다시 아이들이 돌아오는지 소란스러운 소리가 들려오자 그대로 책을 덮고 제 자리로 돌아가 앉았다. 그걸 마지막으로 기억은 사라졌다.
“기억이 나타나는 건 뒤죽박죽이네.”
맨 처음 본 기억과 용사와 함께 있던 기억 속의 패치는 어른이었다. 그런데 이번에 나타난 건 어린 모습이었으니 기억이 순차적이지 않고 마구잡이식으로 퍼블리 앞에 나타난다는 얘기였다. 퍼블리는 이러다가 자기가 어디서 왔고 어느 방향으로 다시 가야할지 헷갈리지 않을까 싶어 걱정이 들었다.
“왜 그러니?”
언제 따라왔는지 마법사가 뒤에서 나타나 퍼블리에게 물었다. 깜짝 놀란 퍼블리는 놀란 심장을 진정시키며 입을 열었다.
“어..언제 오셨어요?”
“네가 뛰어간지 얼마 지나지 않았고 난 이 숲을 그 누구보다 잘 알아. 더군다나 기억이 움직이면 나도 알 수 있고 볼 수 있단다.”
숲을 잘 안다는 말에 화색이 돈 퍼블리가 바로 다가가 말했다.
“그럼 아빠가 있는 데가 어딘지 아시나요? 아깐 너무 놀라고 정신없어서 바로 여기로 뛰어왔는데 아신다면 안내해주실 수 있나요?”
“나는 일단 지켜보기로 결정했단다. 이게 내 최대한의 배려고 네 아버지를 찾는 건 온전히 네 몫이란다. 게다가 내 기준으론 일부일 뿐이라도 기억이 존재고 존재가 기억이라 내가 보기엔 너는 이미 아버지들을 찾고 찾아낸 걸로 보인단다.”
무슨 말인지 이해는 안 갔지만 마법사는 퍼블리를 도와줄 생각이 없거나 도울 수 없다는 뜻을 내보였고 퍼블리는 이렇게 무작정 찾아다니기엔 끝도 없고 자신도 지칠 거라 예상해 어떻게 안 되냐고 요청했지만 그는 단호했다. 직접 안내해줄 순 없다는 말만 돌아왔다.
“지치는 건 네 몸이 지치진 않겠지만 네 정신이 지칠 순 있단다. 이 숲은 많은 마법사와 마녀들이 들이닥친 이후론 뒤틀렸거든.”
“그럼 안내는 안 되더라도 같이 가줄 순 있나요?”
아무리 생생하게 움직이고 볼 수 있는 기억이라도 말을 걸 순 없으니 퍼블리는 여기서 유일하게 말을 걸고 이야기를 나눌 수 있는 마법사와 함께 있으면 정신도 버틸 거라고 생각했다. 거절하면 어떡하나 걱정이 무색하게도 마법사는 순순히 고개를 끄덕였다.
“좋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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