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구가 작동되지 않아!”

누구 멀쩡한 응급 전기 충격기 작동되는 사람 있어!?”

왜 안 움직이는 거야?!”

방금 전까지 멀쩡했던 도구들이 모두 마비됐다. 비행도구는 물론이고 급한 환자를 이송하기 위한 구급 이동수단도 움직이지 않았다. 급하게 움직이는 사람들을 피해 골목길로 들어간 치트는 뒤에서 일어나는 소란도 신경 쓰지 않고 깊숙이 들어갔다. 사람들을 도우러 간 용사와 물러난 치트는 서로 이미 떨어진지 오래였다.

골목길에도 떨어진 사람들이 있었지만 길거리보단 적었다. 신음하며 도움을 요청하는 외침과 뻗어오는 손을 피한 치트는 그런 사람들조차 보이지 않을 정도로 깊숙이 들어왔다. 갑작스럽게 일이 터졌을 때 길거리의 조명들도 꺼진 상태라 안 그래도 어두웠던 골목은 한치 앞도 안 보일 정도로 어두웠다. 아랑곳 않고 들어가던 치트는 어느 부분에서 멈춰섰다. 무릎을 굽히며 천천히 몸을 숙인 치트는 아래로 손을 뻗었다.

역시 직접 들고 다녀야겠습니다.”

손 끝엔 주변과 마찬가지로 검은 게 있었다. 다른 거라면 주변은 빛이 없어서 어두웠다면 손 끝에 있는 건 원래부터 검은 상자였다.

 

사람들이 떨어지는 걸 보고 깜짝 놀란 퍼블리는 바로 밖으로 뛰어나왔다. 하늘을 날던 사람들 뿐만 아니라 걷고 있던 사람들도 위에서 떨어진 사람들과 부딪혀 큰 부상을 입어 상황은 꽤 심각했다. 하얗게 질린 얼굴로 난리통을 보고 있던 퍼블리는 곧 침착하게 주위를 살펴 다친 사람들에게 응급처치를 하고 부축했다.

비교적 부상이 가벼운 사람들을 근처 건물의 벽에 기대게 하고 심한 중상을 입은 사람들을 업고 치료소로 가던 퍼블리는 저 멀리 한 팔에 사람을 하나씩 들고 뛰는 용사를 발견했다.

용사님! 다친 사람 그렇게 들면 안 돼요!!”

기겁하며 외치는 퍼블리의 말을 들었는지 용사가 퍼블리를 향해 돌아봤다. 그대로 멈춰서서 빤히 바라보던 용사는 퍼블리처럼 사람을 업기 시작했다. 잠시 안도를 한 퍼블리는 숨 돌릴 틈이 없다는 걸 깨닫고 빠르게 치료소로 데려갔다. 하지만 치료소도 좋은 상황이 아니었다.

모두 먹통이야!”

대체 왜 이래?!”

여기 급해요! 제발!”

치료도구들도 모두 작동하지 않는지 치료소는 더 한 혼란 속에 잠겨있었다. 부상자들이 끝도 없이 밀려오는 이 상황은 도구가 멀쩡해도 부족해서 위급할 상황인데 도구 자체가 작동하지 않는 지금은 해결되는 게 아무것도 없었다. 부상자들과 당황한 사람들 사이로 정비사들이 달려와 도구들을 살펴보자 그들도 곧이어 당황하기 시작했다.

회로가 다 망가졌어!”

뭐야? 아까 터진 게 전자기펄스야?”

어떤 미친놈이야 도대체!”

당황과 분노에 찬 외침을 들은 퍼블리는 계속해서 밀려드는 부상자들을 보며 마찬가지로 혼란에 잠기기 시작했다. 용사는 자세한 상황도 모른 채 열심히 부상자들을 부축해 데려오기 바빴고 멀쩡한 도구들을 찾아다니거나 급하게 임시적으로 작동되게 부품을 뜯어 오는 사람들이 모여들었다.

난장판이 따로 없네요.”

골목에서 이런 상황을 지켜보고 있는 치트는 등에 검은 상자를 메고 있었다. 아무런 무늬도 없이 온통 까맣기만 한 그 상자는 사람 한 명이 들어갈 정도로 꽤 컸다. 보통 상황이었다면 사람들의 눈길을 끌었을 법했지만 치트를 제외한 모두가 바빴다. 그림을 구경하듯 보던 치트는 나른하게 눈을 깜빡이며 이렇게 속삭였다.

어떻게 해결하실래요? 패치.”

 

치트가 몰랐던 건 자기가 콕 집은 그 숙소 내부가 도시가 아닌 다른 공간이었다는 거였다. 내부의 소리가 외부로 새어나가지 않는다는 건 반대로 말하면 외부, 즉 지금의 도시에서 일어난 소란이 내부로 전해지지 않는다는 거였다. 패치는 그렇게 소란을 모른 채 페르스토의 얘기를 듣고 있었다.

중간마다 빼먹는 게 많은 것 같은데 이유가 뭔가?”

저도 전부 전해드리고 싶지만 입이 잠겼는 걸요? 이게 최대입니다.”

이상하다는 건 나도 알고 있고 거기까진 알아봤네. 다만 도시가 이런 상태인 줄은 오늘 처음 알았군.”

이상하다고 생각하시는 것치곤 굉장히 담담해서 인식을 못하는 상탠가 싶었는데 다행이네요.”

패치는 잠시 생각에 잠겼다. 페르스토의 말대로 자신의 상태는 특정 상황을 제외하면 지나치게 잔잔했다. 감정이 가라앉는 게 지나칠 정도로 순식간이었다. 그리고는 아무 일 없던 것처럼 평소와 다를 바 없는 상태가 되어버린다.

자네의 입이 잠긴 것처럼 이것또한 이상현상 중 하나겠지.”

글쎄요. 이상현상이라기보단 원래 그런 것 같은데요?”

냉정한 것과 한순간에 인식하지 않는 건 전혀 다른 걸세.”

다시 가라앉는 감정과 인식에서 벗어나려는 주제를 붙든 패치는 혀를 차며 신탁이랍시고 찾아온 사제들과 성기사들 끝으로 치트를 떠올리고 인상을 썼다. 신탁으로 내려온 여행은 절대 평범한 여행이 아니었고 평범한 여행이 될 수 없었다.

세계의 정상화가 각각 들려야할 장소의 이상현상을 없애는 거라니.”

이 도시에 들어온 순간 패치는 이상함을 느꼈다. 용사는 모르겠지만 퍼블리는 이상함을 눈치채지 못했고 치트는 어쩌면 처음부터 알고 있었을지도 몰랐다.

신전에도 이상현상이 발생해서 신관들의 눈과 판단력이 엉망이 된 거라고 생각하고 싶을 정도군.”

글쎄요. 이상현상이 사람의 성격까지는 영향을 주진 않는 것 같더군요. 그리고 신전에 이상현상이 생겼다면 신전을 방문해야할 텐데 그건 솔직히 싫잖습니까?”

반사적으로 표정을 찌푸린 패치는 한숨을 삼키며 말을 이었다.

자네 말대로라면 인식에 가장 큰 영향을 줘서 보통은 저 밖의 도시 사람들처럼 이상하다는 것 자체를 못 느낀다는 건데 자네는 어떻게 이상하다는 걸 인식했나?”

그에 페르스토는 이번엔 조금 작은 미소를 지어보였다.

마법의 도움을 받아 제가 존경하는 그 분처럼 머리가 보라색으로 물드니 구별하는 눈이 생기더군요.”

선글라스 속의 시선이 아래로 떨어졌다. 잠시 감정과 분위기에 잠긴 페르스토는 다시 큰 웃음을 지어보이며 패치와 눈을 마주했다.

어쨌든 여기 일은 금방 끝날 겁니다. 제가 퍼블리씨께 답을 다 알려줬거든요.”

스스로 말하길 입이 잠겼다는 페르스토는 퍼블리에게 전부 맡겼고 패치는 그 말에 눈을 감았다. 이 둘은 이제 퍼블리가 다시 그 건물로 가는 걸 기다리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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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 주인인가?”

주인은 아니지만 주인대신 맡고 있는 관리자입니다. 그보다 유명한 사람이 여기를 방문해주시다니 영광이네요.”

그저 오늘 막 도시에 도착한 여행객일세. 숙소를 소개받아 와봤는데 며칠 묵을 손님들을 받는 숙소는 아닌 것 같아서 나갈까 고민하던 참이었네만.”

오호? 그럼 추천자는 누굽니까?”

실내에 들어와서도 벗지 않는 선글라스를 노려본 패치는 이렇게 툭 대답한다.

어느 유명한 대사제.”

이제 여기서 웃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웃음을 내려놓은 페르스토는 선글라스를 다시 고쳐 쓰며 한숨처럼 말했다.

자세한 설명이 더 필요하네요.”

그 전에 그쪽이 어떻게 날 아는지가 더 궁금하군, 내 기억으로는 오늘을 제외하고 지난 5년간 단 한 번도 이 땅을 밟은 적이 없는데 어떻게 날 알아본 거지?”

이 도시에서 한 번도 못 본 사람이기도 하고 방금 전까지 이름이 퍼블리인 분의 길안내를 하다 왔거든요.”

그 말에 패치는 나름 납득했다. 용사를 제외하면 일행 내에서 타인에 대한 경계가 제일 적은 사람이 퍼블리였다. 아마 여기저기 구경하거나 할 때 여행 왔다며 일행 내에도 마법사가 있다며 자신에 대해 얘기한 듯 싶다며 정답에 가까운 추측을 한 패치는 상대를 쭉 훑었다.

사제들 특유의 자세나 행동 버릇은 느껴지지 않았다. 다만 마법사인지 기계관련 전문가인지는 알 수 없었다. 사실 마법 쪽인지 기계 쪽인지는 문제가 아니었다. 종교 쪽에 잡은 손이 있느냐가 문제였다.

그보다 여길 추천해줬다는 유명한 대사제에 대해서 자세히 좀 설명해주실래요?”

나에 대해 안다면 자동적으로 알 수밖에 없는 그 유명한 대사제라네.”

제가 원하는 건 분명 서로 사이가 나쁘다 못해 최악인 사이일 텐데 여길 소개받아왔다는 터무니없는 상황의 자세한 설명입니다.”

그렇담 단도직입적으로 묻지. 자네 종교와 관련 있나?”

도시가 만들어진 이후론 5년 동안 성기사의 검은 물론이고 사제의 옷자락을 단 한 번도 본 적이 없네요.”

종교 측과 연관이 없다고 주장하는 말에 패치는 잠시 고민했다. 여러모로 의심스럽지만 퍼블리와 만났다면 5년 동안 도시에 발 한 번 안 들이다가 이번에 여행 일행까지 만들어서 들어온 자신에 대해 기본적인 궁금함이 있을 테니 어디까지 해소하는 게 좋을까 하다가 다시 한 번 확인 차 큰 정보를 던졌다.

신탁이 내려졌네.”

?”

신탁은 다짜고짜 여행해야할 사람들을 가리켰고 그 중에 내가 포함되어있었네.”

그 말을 들은 페르스토는 손을 입가에 가져가 톡톡 두드렸다.

혹시 퍼블리씨와의 관계가?”

빚을 졌지.”

인질이군요. 그런데 그 외에 다른 이유가 있습니까?”

묻는 저의가 뭔가?”

패치의 반문에 씩 웃더니

실력도 굉장하다 들었는데 인질이 있어도 그냥 대사제만 끌고 가서 묻어버리면 간단하잖아요?”

무시무시한 말을 아무렇지도 않게 한다. 사실 패치도 그런 생각을 안 한 건 아니었지만 고민할 새가 짧았다. 바로 용사를 만나러 갔고 용사가 해맑게 붙잡으면서 화해를 외쳤기 때문이었다. 여행이라는 이름의 기회를 조건으로 거래도 했으니 그러기엔 곤란했다.

복잡하게 얽힌 게 더 있네.”

고생하시는군요. 일단 제가 종교 측과 관련이 있는지는 걱정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이곳은 잠입한 사제는 물론이고 웬만한 기계관련 사람들도 들어올 수 없거든요.”

마법사만 들어올 수 있는 건가?”

단순히 마법사만 들어올 수 있다고 콕 집기엔...애매하군요. 특정 조건을 만족해야 들어올 수 있습니다. 거기에 마법은 어쩌다보니 덤으로 딸린 거라 생각하면 편합니다.”

조건에 대해선 자세히 말해줄 생각이 없어보였기에 패치는 더 묻지 않았다. 덤으로 딸려 있다 해도 이 숙소가 마법과 연관되어 있다면 종교 측에 가장 적대적일 마법사가 주로 이용하는 비밀스러운 곳이라서 이번 기회에 내부를 살펴보기 위해 콕 집은 게 치트의 속셈일 수도 있었다.

그렇담 이 도시에 그 대사제가 들어와 있다는 얘긴데...마법사를 감금시킨 것도 그렇고 보통 담이 아니네요.”

지금은 깐족거리기까지 하니 담이 큰 수준을 넘었다고 하려던 패치는 굳이 꺼낼 필요 없는 얘기다 싶어 도로 집어넣었다.

그럼 일단 앉을까요? 이렇게 계속 서서 얘기할 만큼 짧은 대화가 될 것 같진 않아서요.”

그러기엔 의자와 문이 가깝군.”

누군가 엿들을 걱정은 안 해도 됩니다. 저 문의 역할은 단순히 사람 가려 받는 게 아니라 일종의 통로거든요.”

페르스토는 특유의 큰 웃음을 지어보였다.

이 공간은 도시와 별개의 장소입니다.”

패치는 저렇게 내내 웃음 달고 있는 사람이 또 있구나라며 조금 뜬금없는 생각을 했다.

 

용사는 신나게 뛰어다니고 치트는 그런 용사의 뒤를 따라다녔고 퍼블리는 이제 막 숙소로 돌아와 자기 방으로 들어왔다. 아직 용사가 나간 줄 모르는 퍼블리는 도시를 그려놓은 종이들을 펼쳐 길을 살펴보고 대략적인 선을 그어놓으며 본격적으로 지도를 만들기 시작했다.

그렇게 한참 집중하고 있던 도중 갑자기 창문 너머가 환하게 빛나더니 곧이어 쾅! 커다란 폭음이 들려오자 깜짝 놀란 퍼블리는 펜을 떨어뜨렸다. 펜을 줍고 일어난 김에 무슨 일인가 싶어 창문 밖으로 고개를 내민 퍼블리는 떨어지는 물고기를 봤다. 그 다음으로 마주친 건 처음 보는 사람의 당혹스럽다는 표정이었다.

다들 나는 거 질렸엉~?”

이 광경을 보고 있는 건 용사와 치트도 마찬가지였다. 오히려 밖에 나와 있으니 바로 눈앞에서 물고기와 사람들이 떨어졌다. 비명소리 한가운데서 용사는 떨어지는 사람을 몇 명 받아냈고 치트는 부딪히지 않게 한 발 물러났다.

아프다고 울부짖는 소리와 살려달라는 비명이 끊임없이 울렸다. 땅 위로 걸어다니느라 떨어지지 않은 사람들이 분주하게 움직여 부상자들을 부축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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혹시 왜 알려주지 말라고 했는지 아십니까?”

그것도 아직은 알려주지 말랭!”

철저하게 정보가 새는 걸 막은 패치에 치트는 역시나 하면서도 아직이라는 단어에 주목했다.

그렇담 저는 언제 알 수 있습니까?”

다 물어보면!”

이로써 패치가 용사에게 질문을 했고 그 질문은 여러 개라는 걸 추측한 치트는 조금 고민하다가 지금은 이 정도로 만족스럽다고 생각했다.

퍼블리님은 어디 계십니까?”

~ 한 새에 없어졌엉!”

잠든 새에 나갔다는 걸 알아들은 치트는 지금 용사를 감당해야하는 건 자기 혼자라는 걸 깨달았다. 치트는 미묘하게 굳은 웃음을 지으며 용사를 바라봤지만 용사는 대화가 끝난 후 신나게 달려가기 바빴다. 까르륵 웃으면서 사람들과 어울리고 있는 용사를 지켜보던 치트는 하늘을 헤엄치고 있는 물고기들에게로 시선을 돌렸다. 해가 졌는데도 물고기들이 선명하게 모습을 보이며 불을 뿜고 있었다.

여기엔 과연 얼마나 머물러 있으려나요?”

처음이니까 오래 걸릴지도 모르겠네요?

 

이만 돌아갈게요.”

야경을 충분히 감상한 퍼블리는 그렇게 말하며 난간에서 멀어졌다. 페르스토도 그림을 충분히 감상했는지 종이들을 돌려줬다. 내려가려면 다시 마법진 위로 가야한다는 말에 퍼블리는 다시 한 번 신발바닥을 살펴봤다. 얼룩이 묻지 않는다 해도 정교하고 정성스런 마법진을 밟는 건 만든 사람에게 미안한 마음이 들었기 때문이었다.

이 마법진을 만든 사람은 누구예요?”

그 질문에 페르스토는 잠깐 말이 없었다. 마법진을 빤히 내려다보고 있더니 다시 웃으면서 이렇게 대답한다.

무토.”

이름만 들어선 모르는 사람이지만 퍼블리는 더 묻지 않았다. 그냥 무토라는 마법사가 만들었구나 싶어 그렇구나하며 고개를 끄덕이다가 패치를 떠올렸다.

저희 일행 중에도 마법사님이 있는데 이 마법진을 보면 저만큼은 아니어도 신기해할까요?”

“...마법사가 일행이라고요? 혹시 이름을 알 수 있을까요?”

패치라고 하셨어요.”

퍼블리는 스스로 말하고도 놀라 움찔했다. 당사자도 아닌데 다른 사람에게 함부로 신상을 말한 게 아닌가 싶었기 때문이었다. 이름을 들은 페르스토는 굉장히 놀랍다는 반응을 보였다.

...그 이름을 들을 줄이야. 여러모로 다른 사람과 엮이지 않는 걸 원하는 분일 텐데 같이 여행하는 일행이라니 놀랍군요?”

혹시 서로 아시나요?”

아뇨. 5년 전 사건으로 인한 유명인이잖습니까?”

퍼블리는 하하 어색하게 웃는 수밖에 없었다. 대체 무슨 일이 있었는지 본인도 알고 싶었지만 알 수가 없었다.

...떤 대사제님께서 미운털을 제대로 박았다고만 알고 있어요.”

굉장히 축소된 채로 알고 계시는군요. 사실 진실인지 아닌지는 저도 모르겠지만 이 도시가 만들어지게 된 계기를 제공한 사건이었으니 사람들은 진실 여부가 어찌됐든 지금의 상태를 유지하겠죠.”

여기서 그 대사제도 일행 중 한 명이라고 한다면 단순히 놀랍다는 감탄으로 끝나지 않을 거라는 걸 느낀 퍼블리는 더 말하지 않기로 했다. 그 외에도 환각 마법 분야에서 굉장한 실력도 갖추고 있다는 얘기도 들었다며 관심을 표했지만 더 이상 멋대로 말하긴 그랬던 퍼블리는 어색하게 웃으며 대답하지 않았다.

마법진을 통해 내려온 그들은 출입문을 열고 등에 다시 비행 장치를 달아 안전하게 내려왔다. 해가 진 이후로 시간이 지난 지 조금 되었는데도 길거리의 사람들은 돌아갈 생각이 없어보였다. 여전히 복잡한 길을 보고 있던 퍼블리는 등에서 장치를 떼어내 페르스토에게 건넨다.

돌려주지 않으셔도 됩니다. 가지세요.”

? 그치만...”

오랜만에 길게 대화해서 즐거웠습니다. 그에 대한 선물이라고 생각하십쇼. 이 도시에 며칠 있으실 거라고 했으니 아까 그 건물로 다시 가려면 비행 장치는 있어야 하니까요.”

그렇다고 해도 이 장치의 값이 단순히 껌이나 사탕 값 수준이 아니라는 걸 아는 퍼블리는 머뭇거렸다. 페르스토 입장에선 정말 상관이 없었지만 퍼블리의 양심은 누구보다 컸다.

그렇담 제 부탁 하나만 들어주시겠습니까?”

부탁이요?”

간단합니다. 우선 도시를 먼저 둘러본 후 이상하다고 느꼈다면 다시 저 건물로 가셔서 마법진을 손으로 두 번 두드려주세요. 그러면 꽃이 하나 나타날 겁니다. 그 꽃에 대고 이렇게 말해주세요.”

퍼블리에게만 들리도록 작게 속삭인 말에 깜짝 놀란 퍼블리는 이렇게 대답했다.

그 말이 지금 제일 이상하게 느껴졌어요.”

하하! 그렇게 따지면 이 세계 자체가 이상합니다!”

그런데 정말 그걸로 되나요? 차라리 값을 드릴게요.”

그 정도면 충분합니다. 그럼 저는 이만 가볼게요.”

페르스토는 행여나 비행 장치를 돌려줄까 싶어 빠르게 사라졌다. 퍼블리는 난감한 표정으로 장치를 만지작거리다가 종이들을 넣어놓은 주머니를 고쳐들고 길을 걸었다.

 

2층까지 올라가본 패치는 이곳과 이곳을 콕 집은 치트에 대해 더더욱 의문이 들었다. 2층에도 방들이 있었지만 돈 받고 손님을 재우는 장사적인 숙소라기 보단 살펴보면 볼수록 특정 단체들이 자체적으로 지내는 숙소처럼 보였기 때문이었다. 만약 여기에 공구상자나 마법도구들이 있거나 건물 옆에 연구소가 있다면 연구원들이 지내는 숙소가 아닐까 싶었지만 모든 방은 침대와 책상만 딸려 있을 뿐, 그 외에는 아무것도 없었다.

2층에서 내려온 패치는 이대로 돌아갈까 아니면 수상한 게 있나 조금 더 탐색해볼까 고민했다. 만약 추측한대로 특정 단체가 사용하는 숙소라면 이건 무단침입이었다. 하지만 문을 잠그지 않고 그대로 둔 것도 이상했기에 어찌해야할지 선택해야했다.

그러던 순간 문 열리는 소리가 났다.

! 손님이 오셨군요?”

들어온 건 방금 퍼블리와 헤어지고 온 페르스토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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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치 좋죠?”

갑자기 밖이 보이게 됐는데 어떻게 된 거예요?”

마법진을 통해 맨 꼭대기로 올라온 거죠.”

마법진이라는 말에 퍼블리는 발밑의 그림을 내려다보며 뒤로 물러섰다. 흙도 밟아온 신발 밑창이 제법 지저분할 텐데 얼룩도 하나 없었다. 신기함에 마법진을 계속 살펴보던 퍼블리는 안내자의 말에 고개를 들었다.

높은 곳에서 보는 경치 보러 온 거 맞죠?”

, 맞아요.”

다시 생각해봐도 높은 곳을 고르는 안목이 좋네요. 사실 여기 말고 다른 높은 곳들도 많을 텐데 여기를 고른 이유가 따로 있나요?”

난간 가까이로 다가간 퍼블리는 아래를 내려다보았다. 사람들과 물고기들이 보였다.

물고기들이 아래에서 보일 것 같아서요.”

그리고는 천천히 경치를 감상하며 종이와 펜을 꺼내들었다. 우선 먼저 보이는 걸 간략하게 그리고 다른 방향으로도 가며 고개를 들고 숙이고를 반복했다. 그럴수록 종이에 그려지는 게 많아졌다.

열심이네요?”

곧 해가 지니까 안 보이기 전에 최대한 그려놓게요.”

, 해가 져도 걱정은 마세요! 오히려 해가 진 광경이 더 볼만할 겁니다.”

오히려 낮보다 밝을 거란 말에 퍼블리는 의아해하면서 해가 질 때까지 기다렸다. 그림들을 상세하게 완성하고 있을 때쯤 시야가 꽤 어둑해지더니 갑자기 밝아졌다. 해가 지니 건물 천장에 달려있는 등에 불이 들어온 거였다. 천장을 올려다보다가 까맣게 탄 하늘을 본 퍼블리는 다시 난간 너머를 바라봤다.

!”

야경이 끝내주죠?”

불이 들어오면서 하늘처럼 까만 땅과 대비되어 도시가 아름답게 빛나고 있었다. 퍼블리는 그리던 것도 멈추고 도시의 야경을 감상했다. 안내자는 그런 퍼블리를 구경하고 있다가 종이로 시선을 돌렸다. 이 건물을 중심으로 도시를 그린 밑그림은 길이 제일 강조되어있었다.

그림 좀 봐도 될까요?”

? , .”

안내자는 종이를 주워들어 자세히 살펴보기 시작했다. 선글라스를 끼고 있어도 천천히 그림들을 뜯어보는 게 보일 정도로 집중해서 보고 있었다. 퍼블리는 어쩐지 기분이 좋으면서도 조금 부끄러웠다. 완성한 것도 아니지만 저렇게 자세히 봐주는 사람이 있다는 게 기뻤고 안내해준 사람이니 거절하는 건 아닌 것 같았고 완성한 게 아니라서 아직은 보여주기 그랬기 때문에 안내자의 반응을 살폈다.

그러고 보니 서로 소개를 안 했네요? 제 이름은 퍼블리 셔예요.”

퍼블리의 소개에 그림을 보던 안내자가 고개를 들고 씩 웃었다.

전 페르스토입니다.”

 

반짝 눈을 뜬 용사는 기지개를 켜며 일어났다. 이제 막 해가 진 이후라 창밖의 하늘은 어둑했지만 사람들이 킨 불빛들 덕분에 낮보다 더 환해보였다. 방 밖으로 나온 용사는 복도를 둘러봤다. 사실 방에 들어오자마자 자다시피 했으니 다른 일행들의 방이 어느 방인지는 몰랐다.

우웅~”

조용한 복도 가운데에 선 용사는 고개를 기울이며 눈을 깜빡였다. 무언가를 생각하는가 싶더니

반짝반짝 축제~!!”

일행 그 누구보다 행동력이 빠른 용사는 단숨에 밖으로 뛰어나갔다. 퍼블리가 우려했던 일이 벌어졌다면 벌어진 거였다. 길거리는 불빛 덕분에 환했고 아예 그 빛을 이용해 시선을 사로잡는 이들도 있었다. 그 중심에 흥겹게 춤을 추는 이들이 있었다. 그들 뒤로는 재주를 넘는 사람들도 있었다. 재밌는 광경에 용사는 당연히 그쪽으로 달려갔고 어느새 용사의 손엔 관광물품들이 가득했다.

비눗방울 피리를 열심히 불던 용사는 익숙한 뒷모습을 발견했다. 검게 솟고 뒤로 넘겨진 머리는 굉장히 눈에 띄었다. 치트였다.

우웅...”

하지만 용사는 치트를 바로 부르지 않고 침음을 흘리며 눈을 깜빡였다. 이름이 기억나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패치는 대화를 나눠도 상대의 이름을 잘 부르지 않았고 치트는 열심히 패치 이름을 부르고 퍼블리의 이름도 제대로 불러줬지만 본인이 본인을 스스로 부를 일이 없으니 이름을 잘 말하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그나마 일행 내에서 퍼블리가 가장 많이 일행들의 이름을 골고루 불렀다. 용사에게 가장 많이 붙어있다시피 한 것도 퍼블리였으니 용사는 바로 퍼블리를 떠올렸다. 퍼블리는 치트를 이렇게 불렀었다.

...!”

아이고 용사님 아닙니까?”

단어가 완성되기 전에 치트가 잽싸게 달려와 용사의 입을 막았다. 도시의 길거리 한 가운데에서 사제님이라고 불렀다가 곧바로 일어날 난리가 눈에 훤했기에 치트의 뺨에 식은땀이 조금 흘렀다.

제 이름은 치트입니다. 치트.”

치투?”

치트.”

!”

앞으로는 부르려던 그 단어 빼고 편한대로 부르세요.”

퍼블리는 사제님 앞에 치트라는 이름을 꼬박 붙여 불렀지만 용사는 사제님 밖에 떠오르지 않았다. 치트는 이름으로 불리는 걸 더 좋아한다면서 용사를 설득했고 용사는 알았다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고 보니 용사님이랑 단 둘이 대화하는 건 이번이 두 번째네요~?”

환각의 숲에서 처음 만난 이후론 치트는 어디로 튈지 모르는 용사를 미아 방지 차원에서 자주 지켜보곤 했지만 정작 대화를 나눈 건 손에 꼽았다. 그마저도 용사님 그쪽이 아닙니다 하고 뛰어가지 못하게 잡아둔 거 외에는 대화라고 할 게 없었다. 이유는 두 가지였다. 패치가 둘이서 제대로 대화하는 상황이 이루어지지 못하게 자연스럽게 견제했기 때문이었고 치트 스스로도 용사가 일으키는 말썽에 휘말리고 싶지 않아 한 발짝 물러나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런가? 하며 고개를 기울이는 용사를 보며 미소 짓던 치트는 검은 색 가득한 가운데서 노란 빛을 띄우며 물었다.

그 때 빨간 머리 마법사님이 귓속말로 무슨 말을 했는지 알려주실 수 있습니까?”

알려주지 말랭!”

해맑게 웃으며 외치는 용사에 치트는 그렇군요 하며 마주 웃어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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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금 고민한 패치는 살짝 문을 당겨봤다. 삐걱거리는 소리도 없이 잘 열렸다. 망설임 끝에 문을 열고 들어가 보니 안은 굉장히 조용했다. 아니 조용한 수준을 넘어서 아무도 없었다. 식당이 딸려있는 건지 식탁들과 의자들만 있고 계산대를 지키는 사람도 없었다.

계십니까?”

혹시 안으로 들어갔나 싶어 불러봤지만 돌아오는 대답도, 사람도 없었다. 휴업 상태라면 문을 잠가두지 않았을 텐데 왜 아무도 없을까. 치트, 아니면 종교 측에서 심어놓은 사제가 있을 줄 알았는데 아예 사람 자체가 없었다. 이상함에 계산대로 다가가보니 계산대도 계산대라 부르기엔 애매했다. 단상이라고 부를 정도로 좁았다.

애초에 숙소가 맞나?

의심스러운 눈으로 패치는 조심스럽게 안을 살펴봤다. 식탁들도 식당에서 흔히 쓰는 둥근 식탁이 아닌 네모에 길이가 긴 식탁이었다. 전체적으로 다시 보니 음식을 파는 식당이라기 보단 한 단체가 사용하기 위한 식당처럼 보였다. 조금 더 안쪽으로 들어가니 부엌으로 통하는 문이 보였다.

계십니까?”

부엌문을 두드리며 한 번 더 불러봤지만 조용했다. 평소 같았으면 처음 들어오고 불러봤을 때 나갔을 테지만 치트가 말한 장소라는 게 신경 쓰였다. 치트는 왜 숙소도 아닌 이곳을 말했을까.

 

퍼블리는 길 안내를 하는 사람을 뒤따라갔다. 사람들 사이를 지나가는 게 익숙한지 발걸음이 느려지지도 않았고 부딪히는 일도 없었다. 마치 사람들이 자연스럽게 비켜주는 것 같았다.

도시 구경은 즐겁나요?”

날아온 질문에 눈을 깜빡인 퍼블리는 주위를 훑고 대답했다.

아직은 다 못 둘러봐서...처음 왔을 땐 신기했어요.”

그렇담 지금은요?”

퍼블리는 조금 고민하더니 단어를 골라냈다.

복잡해요.”

복잡하다는 건 두 가지의 의미였다. 신기한 만큼 처음 보는 게 많았고 길거리가 꽉 찰 정도로 사람이 가득한 것도 처음이었다. 처음인 광경은 어느 정도 상식이 섞인 상상만큼 신기했다. 다만 그 이상으로 많았고 길도 좁았다. 말 그대로 복잡했다.

다른 의미는 워낙에 상식 밖의 광경에 어떻게 반응해야할지 곤혹스러웠다. 하늘을 헤엄치는 물고기는 상식 밖이기에 신기하다고도 여길 수 있지만 상상 속에는 없었다. 그렇기 때문에 신기하단 마음은 들지 않았다. 놀라운 광경에 비해 심장은 그리 크게 뛰지 않았다. 그렇기에 퍼블리는 복잡한 마음이 들었다.

여기가 꽤 복잡하긴 하죠? 다른 데는 꽤 오랫동안 안나가봐서 잘 모르겠지만 제가 지금까지 본 바로는 지금 이 도시가 제일 복잡하다고 생각해요.”

제가 살았던 마을이랑 들렸던 마을은 여기에 비하면 굉장히 한적해요. 여기가 제일 복잡한 게 맞을 거예요.”

그런데 어쩌다가 여행을 하게 됐습니까? 요즘엔 여행하는 사람들이 줄어들어서 여행물품 물가가 꽤 올랐으니 적절한 때는 아니거든요.”

퍼블리는 또 한 번 고민했다. 신탁에 대한 내용을 함부로 말해도 되는지에 대한 고민이었다.

제가 지도제작자 지망생이라 원래 여행을 할 생각이었는데 마침 다른 사람들과 함께 여행할 수 있는 기회가 생겼거든요.”

신탁에 관한 건 숨기기로 했다. 사실 퍼블리의 선택이 퍼블리의 입장에선 좋은 선택이었던 게 지금 기술의 도시는 종교계를 경계하고 있는 대표적인 입장이었다. 그런데 도시 한 가운데에서 신탁이라는 단어만이라도 꺼내게 되면 전혀 좋지 않은 일이 벌어질 게 훤했기 때문이었다. 다만 퍼블리는 이에 대해선 몰랐기 때문이 운이 좋은 선택을 한 거라고 할 수 있었다.

기회는 있을 때 잡을수록 좋죠. 특히 여행 같은 경우엔 혼자가 아닌 단체로 여행하는 게 가장 편하고 즐거운 편이니 이해합니다. 꽤나 조건이 좋았나보군요?”

5년 동안 여행자금을 모아온 퍼블리였다. 이것도 언젠가는 바닥이 날 게 분명하니 일해서 돈을 모으고 여행하고 다시 돈을 모으는 삶을 사는 건 당장은 좋을지 모르나 오래 지속된다면 꽤나 막막할 게 뻔했기에 나름의 각오도 있었으니 지금의 여행이 둘도 없는 기회였다. 퍼블리는 그에 고개를 끄덕였고 사람 사이를 돌아다니느라 바빴는지 대답은 돌아오지 않았다. 퍼블리도 뒤에서 따라오지 않고 옆에서 함께 걷고 있었다.

도착했습니다!”

다른 건물보다 유독 높은 이 건물은 꽤 특이했다. 각지고 네모난 다른 건물들과는 달리 원기둥 모양에 건물 자체가 공중에 떠 있었다. 안 그래도 높은데 공중에 떠 있으니 더 높아서 유독 튀어보였다. 하늘을 날아다니는 도구가 없는 퍼블리는 당연히 당황스러워 했다.

이걸 쓰면 됩니다.”

등에 무언가 찰싹 붙었고 동시에 발이 땅에서 떨어지자 깜짝 놀란 퍼블리가 크게 움직이자 곧바로 건물의 입구까지 날아올랐다.

우와악?!”

혹시 날아봤습니까?”

처음인데요!?”

와오! 처음치곤 굉장한 실력이네요!”

더 이상 날아오르지 않게 문고리를 붙잡은 퍼블리는 등에서 도구를 떼어내는 동시에 안으로 들어갔다. 도구를 붙여준 안내자도 뒤따라 들어왔다.

다음엔 미리 말씀해주세요...”

저랑 다음에도 만나시려고요?”

도시에 며칠 정돈 머무를 테니 다음에도 만나지 않을까요?”

그렇게 생각할 수도 있군요.”

도구를 돌려준 퍼블리는 주위를 둘러봤다. 건물 내부는 굉장히 휑했다. 사람이 앉을 의자는 물론이고 물건 놓을 탁자도 없는 건물 내부에 유일하게 눈에 띄는 건 바닥에 그려진 그림 밖에 없었다. 동그란 테두리 안에 복잡한 그림들이 그려져 있었고 퍼블리가 호기심에 다가가 자세히 들여다보니 그림 하나하나가 굉장히 정교해보였다.

...”

굉장하죠?”

! 그리는데 굉장히 정성이 들어갔을 것 같아요.”

그 그림 위에 올라가보실래요?”

?”

이 정교하고 정성스러운 그림을 밟으라는 거나 다름없는 말에 퍼블리는 당황했고 그에 안내자는 얼른 올라가보라며 부드럽게 등을 밀었다. 얼떨결에 그림 위로 올라선 퍼블리는 당황하며 발밑의 그림을 내려다봤고 그 순간 빛이 반짝이더니 한순간 시야가 가려졌다. 당황한 퍼블리가 눈을 꾹 감고 빛이 잠잠해졌을 때 조심스럽게 눈을 떠봤다.

?”

눈을 뜨자 보이는 건 아무것도 없는 휑한 건물 내부가 아닌 지평선 저 너머가 빨갛게 타들어가는 하늘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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패치~? 이만 내려주세요~ 날아다니는 사람들은 많지만 전 발이 땅에 닿는 걸 좋아함다~?”

저 아래서 난 자네 얼굴 안 보는 게 좋다는 대답이 돌아왔다. 하늘을 날던 사람들이 등이나 신발을 보면서 신기하다는 눈빛으로 보거나 아예 다가와 장치를 소형화 했냐며 묻기까지 했다. 당연히 이에 관해선 설명할 게 없는 치트는 그저 미소만 보였다.

하늘에 떠있는 시간을 1시간으로 설정한 패치는 사람들 틈새로 모습을 감췄다. 어디로 가는지 치트가 알 수 없게 조금 돌아갈 생각이었다. 숨어있는 상대를 알기 위해선 패치는 직접 가볼 필요가 있었다.

내가 간 걸 알면 거기에 사람을 심어뒀겠지.

 

괜히 용사님 혼자 두고 나왔나?”

퍼블리는 불안한 얼굴로 연신 뒤돌아보았다. 본격적으로 도시를 구경하기 위해 짐만 풀고 간단하게 준비하고 나오던 도중 용사와 같이 나가야겠다는 생각에 용사를 찾아갔다. 하지만 용사는 옷도 갈아입지 않고 누워서 잠들어 있었다. 굳이 깨워서 같이 나가야만 하는 이유는 없었지만 돌아다니던 사이에 용사가 깨어나서 밖으로 뛰어나가면 과연 용사를 찾을 수 있을까하는 고뇌가 퍼블리를 잡고 놔주지 않았다.

결국 선택은 용사를 깨우지 않고 혼자 나오는 거였다. 그래도 완전히 걱정이 가시지 않았으니 이렇게 뒤돌아보기 바빴다. 그러다보니 앞을 덜 보게 되어 하마터면 맞은편에 오던 사람과 부딪힐 뻔 하거나 이미 부딪히는 일들이 생겼다. 미안하다고 사과하며 걱정을 떨치고 앞을 본 퍼블리는 얼마 안 가 도시 구경에 푹 빠졌다.

하늘색 긴 머리 분! 혹시 가방 필요 없어? 보니까 여행자 같은데 들거나 메고 다닐 필요 없이 따라다니는 가방이야, 특별히 할인해줄 테니까 한 번 봐봐!”

괜찮아요!”

날마다 오는 기회가 아니야!”

사람이 워낙 많아서 그런지 조금 거리가 있으면 크게 소리쳐야 들렸다. 이리저리 두리번거리는 퍼블리는 척 봐도 초행인 여행자였는지 많은 가게에서 이런 식으로 물건 보러 오라는 말들이 자주 나왔다. 가방을 비롯해 생필품을 파는 곳에서도 불렀지만 결국 퍼블리의 발을 다가오게 한 건 지도관련 물품들을 파는 가게였다.

이걸 누르면 거리 계산이 시작되고 자동으로 저장돼요.”

우와~”

매끈한 판을 들고 걸으니 판 위로 걸음의 수가 떠올랐다. 지도제작자인 퍼블리에게 있어서 이 가게는 동화나 전설 속에 나오는 신비로운 보물 상자처럼 보였다.

요즘엔 지도에 관해선 그럭저럭 길이 그려져 있거나 간략화된 걸 선호하는 사람들이 대부분이라 이렇게 좋아해주시는 분은 참 오랜만이라 기분이 좋네요.”

혹시 예전 지도도 있나요?”

아쉽게도 예전 지도는 없어요. 어쩌다가 사라지게 된 건지 몇 년 동안 한 번도 보질 못했어요.”

퍼블리는 예전 지도를 한 번도 본 적이 없었다. 어느 날 갑자기 모든 지도들이 사라졌고 사람들이 급하게 지도를 제작한 게 현재의 지도들이었다. 급했던 만큼 개인적으로 다니는 길이나 간략화 된 지도가 찍어내듯이 튀어나왔고 지도에 그려진 길들을 사람들이 이용하다보니 자연스럽게 모두가 쓰는 길이 되었다. 더군다나 복잡하게 그려지지 않아 오히려 이런 지도를 더 선호하게 되는 현상이 나타났고 현재까지 이어지고 있었다.

여러모로 아쉬워요. 간략하니 크게 길 잃을 걱정은 없긴 하지만 한 지도 안에 여러 길이 그려져 있는 게 참 매력적이었는데...”

혹시 더 자세히 말씀해주실 수 있나요? 제가 지도제작자 지망생이거든요!”

완전한 지도제작자라고 하기엔 아직 제대로 된 지도 하나를 완성하지 않았으니 지망생이라고 말하자 가게 주인의 눈이 빛났다. 안타깝게도 제대로 손님 잡았다는 눈빛이었다. 처음보다 훨씬 적극적으로 물건 성능에 대해 설명하고 지금이 아니면 이 가격에 살 수 없다며 고민을 흔들어놓았다. 그에 당황한 퍼블리는 나중에 여유로울 때 오겠다며 재빨리 밖으로 나왔다.

어지럽다...”

가게 안은 말로 정신없었고 밖은 지나다니는 사람들로 혼란스러웠다. 누군가가 띄우는 물고기에 하늘을 올려다본 퍼블리는 같이 날아다니는 사람들과 그 뒤에 더 높은 건물을 눈에 담았다. 뚫어져라 위를 보다가 다시 시선을 앞으로 돌려 사람들 사이로 길을 밟았다. 간간이 위를 보고 다시 앞을 보며 길을 찾아갔다.

오랜만에 여행자군요?”

열심히 걷던 중 갑자기 퍼블리 앞으로 불쑥 나온 사람이 있었다. 깜짝 놀란 퍼블리가 뒤로 물러났다.

와오! 놀라게 해드려서 죄송합니다! 여행자를 보는 건 꽤 오랜만이거든요?”

가장 먼저 눈에 들어온 게 선글라스였고 그 다음은 짧고 둥글게 풍성한 보라색 머리였다. 하지만 퍼블리는 모습보다 먼저 신경 쓰이는 게 있었다.

여행자가 오랜만이라뇨?”

물건 사러 온 사람과 여행자는 다르니까요!”

그렇군요...”

고개를 끄덕이던 퍼블리는 어색하게 웃으며 조금씩 몸을 옆으로 움직였다. 가던 길을 마저 가겠다는 거였다. 그러자 상대가 움직이는 쪽으로 고개를 기울였다.

혹시 어디 가고 싶은 데 있나요? 여행자를 만났으니 친절을 매우 베풀고 싶군요. 이래봬도 여기 길이 제일 빠삭한 사람이라서요?”

그에 퍼블리는 조금 고민했다. 무턱대고 처음보는 사람을 따라갈 정도로 어리진 않았기 때문이었다. 위를 잠깐 보고 주위를 둘러봤다. 위에도 사람이 있고 주위에는 사람이 가득했다. 고민은 짧았다.

저기 높은 건물까지 안내 부탁드려도 될까요?”

! 전망 좋은 데를 아주 잘 찾으시는군요! 금방 가지요!”

그렇게 혼자서 아무 말 없이 가던 길에 안내와 더불어 말동무가 붙었다. 요즘 도시 밖은 어떤지 도시는 어떤 이미지인지 물으며 착실하게 안내를 하기 시작했고 퍼블리는 그에 맞춰 대답했다.

그리고 둘이 그 자리에서 떠나고 얼마 지나지 않아 패치가 도착했다.

“...숙소가 맞나?”

퍼블리가 서 있던 자리 옆이 바로 치트가 말한 그 숙소였다. 치트와 마주치는 바람에 시간을 소요한 패치는 그 건물을 유심히 살펴봤다. 간판도, 창문도 없어서 숙소는 물론이고 가게처럼 보이지 않았다. 그나마 문이 다른 가게들과 같이 넓고 잠금이 걸리지 않은 문이라 들어갈 수 있어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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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름만큼 기술이 넘쳐나는 도시죠?”

하늘을 날아다니는 건 시작에 불과했다. 분홍색 구름이 터져 나오면서 주위를 감쌌고 사람들은 신나는 모습으로 구름에 뛰어들었고 손에 들어올 정도로 작은 사람들이 춤을 추며 노래를 불렀다. 민물에 있어야할 물고기가 하늘에서 헤엄치며 불을 뿜기까지 했다.

...성적인 기술이 많네요...”

이 정도는 해야 기술이라는 전제가 깔려있겠지.”

굉장하네요...”

눈에 보이는 게 워낙 비현실적이라서 신비롭다는 느낌보다는 당황스럽다는 감정이 먼저 나온 퍼블리는 그렇게 말하며 쭈그려 앉아 작은 사람들을 구경했다. 하늘에서 헤엄치면서 불을 뿜는 물고기는 아직까진 가짜라도 눈으로 받아들이기 힘들어보였다.

사람을 작게 만드는 마법이 있다면 반대로 크게 만드는 마법도 있나요?”

그건 진짜 사람이 아니라 만들어진 인형이네.”

?”

작은 사람들은 노래만 부르면서 그 외의 말을 하지 않았고 춤만 추면서 다른 행동을 하지 않았다.

그래도 대단하네요, 진짜 사람이 작아진 줄 알았어요. 어쩌면 나중엔 진짜 사람처럼 말하고 행동하는 인형이 나오게 되는 거 아닐까 싶을 정도예요.”

그게 우리의 목표입니다.”

인형을 만든 장본인인지 철로 된 막대를 든 사람이 뿌듯한 얼굴로 다가와 대답했다. 그리고는 인형들의 등을 누르고 서 있던 배치를 바꿨다. 그러자 인형들이 새로운 노래를 부르면서 새로운 춤을 췄다. 찬사에 대한 보답인 듯 싶었다.

안에 넣은 재료가 회색 돌과 은색 돌을 섞은 겁니까?”

? 맞아요. 어떻게 아셨나요?”

이쪽 분야에 관심이 있어서 말임다~”

그리고는 꽤 전문적인 내용들이 오갔다. 퍼블리와 용사는 무슨 소린지 모르니 멀뚱히 있다가 인형들에게로 눈길을 돌렸고 패치의 눈초리는 당연히 좋지 않아졌다. 대화를 나누던 인형장인은 간만에 말이 잘 맞는 사람을 만나 굉장히 흥분하면서 다른 얘기들도 쏟아냈고 엄청난 기세에 치트는 난감한 웃음을 지었다.

짐들도 놔야하고 알아서 갈 테니 갈만한 숙소가 어디에 있는지 말하게.”

에이 무슨 소립니까? 같이 가아죠~”

닥치고 말해.”

확신과 노기 어린 눈빛에 치트는 순순히 말했다. 그리곤 바로 퍼블리와 용사를 데리고 자리를 떴다. 인형 장인에게 붙잡힌 치트는 결국 먼저 가서 쉬고 있으란 말을 하며 쏟아져 나오는 말들을 맞춰줬다.

실례합니다. 저쪽에 갈만한 숙소가 있습니까?”

? 저 강아지 동상을 지나서 안쪽으로 들어가면...”

패치는 결국 치트가 말한 데와 정 반대에 있는 숙소를 잡았다. 퍼블리는 이래도 되는 건가 싶은 얼굴로 치트를 두고 온 방향을 돌아봤다. 용사는 아무것도 모른 채 까르륵 웃으면서 짐들을 내려놨다.

잠깐 나갔다 오겠네.”

, 저도 같이 나가요!”

혼자 돌아다녀볼 생각이네만.”

사제님을 만나면 저희 여기에 방 잡았다고 해도 되나요?”

상관없네.”

그렇게 대답한 패치는 숙소 밖으로 나가자마자 바로 후드를 썼다. 패치는 이미 이 도시 내에 사제가 잠입해 있다고 확신을 한 상태였다. 어디서 마법사 아니면 정비공 모습으로 일행들을 지켜보고 있을지 몰랐다. 패치가 가장 먼저 간 곳은 치트가 말해준 숙소였다. 종교의, 치트의 속셈이 무엇인지 알아내야 했다.

 

인형 장인에게 붙잡힌 치트는 약 30분 후에 풀려났다. 즐거운 대화였다며 춤추던 인형 중 하나를 치트의 손에 쥐여 준 인형 장인은 방금 나눈 대화를 토대로 새로운 인형을 만들어야겠다며 자신의 공방으로 뛰어갔다. 치트는 인형을 내려다봤다. 손으로 잡기 전까지만 해도 작아진 사람처럼 노래하고 춤추던 인형이었는데 지금은 원래부터 인형이었다는 걸 주장하기라도 하듯이 축 늘어져 있다. 치트는 인형을 살펴보던 걸 멈추고 고개를 들어 앞으로 걸어간다.

진짜 사람처럼 말하고 행동하는 인형이라~ 오히려 만들기 쉬운데 말이죠.”

사람들은 모두 길거리에서 벌어지는 광경들을 구경하거나 자신이 만든 것들이 제대로 작동하는지, 더 화려하게 움직이는지에 대해 관심을 쏟느라 아무도 치트의 말을 듣지 않았다. 마찬가지로 사람들에게 눈길도 주지 않는 치트는 끝을 이었다.

인형에다 사람을 쓰면 되는데.”

주위는 고요했다. 광장에서 벗어나 골목으로 들어온 치트는 어두운 골목 안쪽으로 인형을 툭 던졌다.

사람을 안 쓰고도 만들 수 있긴 하지만 노래하고 춤추는 인형으로만 쓰는 건 아깝지 않슴까?”

대답은 없었다. 만족스러운 미소를 지은 치트는 고개를 꺾어 하늘을 올려다봤다. 하늘 위엔 물고기 말고도 풍선이 가득했다.

축포는 불이 가장 잘 보일 때 쯤이 최곱니다.”

치트는 그렇게만 말하고 골목에서 나왔다. 골목 안은 여전히 조용했지만 떨어져 있던 인형은 어느새 산산이 조각나 망가져있었다.

다시 길거리로 돌아온 치트는 어디로 가야할지 고민했다. 패치의 성격상 자신의 말을 곧이곧대로 들을 리가 없었고 분명 다른 숙소를 잡았을 게 훤했다. 능숙하게 기술에 대해 대화를 나눈 자신의 모습을 보고 이 도시 내에 사제가 숨어들었다고 확신을 내렸을 패치가 눈앞에 그린 듯이 나타났다.

“...길 한가운데에 멀뚱히 서서 뭐하나?”

패치가 어디로 갔을까 하고 고민했슴다~”

패치는 표정을 구기며 혀를 찼다. 이 도시가 초행인 건 패치도 마찬가지였다. 사람 많고 복잡한 길을 돌아다니다보니 길을 헤맸고 가는 시간 또한 지체됐다. 그러다가 마침 골목에서 나온 치트와 마주치게 된 거였다.

그보다 패치는 어디 가심까?”

신경 끄게.”

어디에 방을 잡으셨는지 저도 알아야죠~”

자네가 말한 데 가서 잡게.”

치트는 패치에게 끈덕지게 따라 붙었다. 사람이 많은 거리에서 능력을 써서 떼어놓기엔 휘말릴 사람들이 너무 많았다. 그런 패치의 속내를 읽었는지 치트는 능글맞게 웃으면서 속삭였다.

이러니 단 둘이 데이트하는 것 같지 않습니까?”

곧이어 치트는 물고기와 풍선들을 바로 눈앞에서 보게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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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의라고 해봤자 마법도구 파는 가게에 들어가서 기계를 찾거나 기계 고치는 정비소에 들어가서 마법도구를 고쳐달라고 하는 게 아닌 이상 주의할 건 없슴다.”

한 가지 더 추가하자면 기계들을 보러 갈 때 나와 동행하지 않아야 하겠지.”

그렇게 따지면 전 아예 도시에 들어가면 안 됨다~”

치트는 그렇게 말하며 사제복을 가리기 위해 온 몸을 둘러싸는 로브를 꺼내 입었다. 그러던 중 퍼블리는 퍼뜩 떠오른 게 있는지 다급하게 물어봤다.

혹시 하늘을 날 수 있게 해주는 마법이나 기계도 있어요?”

지금 당장이라도 쓸 수 있네만.”

퍼블리의 눈이 용사만큼 반짝이기 시작했다. 사람에게 쓸 때 좋은 용도로 쓴 적이 없었지만 패치는 굳이 그런 얘기를 덧붙이지 않았다. 바로 앞이 도시니 하늘을 나는 건 도시에서도 가능한 건지 살펴본 다음에 하는 게 나을 거라며 눈빛을 피한 패치는 도시 입구를 쳐다봤다.

패치도 기술의 도시에 온 적은 없었다. 마법과 기계가 뭉쳐져서 기술의 도시라고 불리게 된 것도 자신이 겪었던 그 사건 때문이니 좋은 쪽이든 나쁜 쪽이든 시선이 제게 쏠리는 건 당연했으니 패치 입장에선 전혀 달가운 일이 아니었다. 그런 이유 때문에 갈 수 있긴 했지만 일부러 가지 않았고 특별한 상황이 아닌 이상 올 생각 자체가 없었다.

어서오세요~ 기술의 도시는 처음인가요?”

아뇨, 예전에 들른 적이 있습니다.”

이전엔 상업도시라고 불렸던 만큼 초행인 여행객들에게 안내를 붙여주는 일이 남아있었다. 치트가 그렇게 말하며 안내를 거절했다. 와봤다는 말에 패치의 눈이 자연스럽게 좁아졌다.

그렇게 열렬한 눈으로 보면 부끄럽슴다~”

헛소리 집어치우고 여기에 왜 왔었는지 말하게.”

뭉쳐서 커지면 당연히 내부조사 하러 오지 않겠슴까?”

당당하게 하는 말에 어처구니없다는 눈빛이 따갑게 쏘아졌지만 치트는 전혀 개의치 않았다. 오히려 곱게 접은 눈을 마주해 빤히 쳐다보자 패치가 먼저 눈을 피했다. 얼굴 가득히 자리 잡은 찡그림에 주름 생긴다고 길다란 손가락이 다가오자 안 그래도 살벌했던 기세가 더욱 흉흉해졌다.

그래서 저 안에 사제들은 몇이나 있나?”

사제들이라뇨~ 사제들이 어떻게 저깄겠슴까?”

종교에 속했다고 해서 기술을 못 쓰는 건 아니지. 꾸준히 내부조사하려면 저 안에 사제 몇 명을 마법사나 정비공으로 만들어서 저 안에 숨겨놔야 하지 않나.”

치트는 계속 모르쇠로 일관했고 패치는 의심과 확신 가득한 눈으로 치트를 노려봤다. 치트가 끝까지 말할 생각이 없어보이자 패치는 추궁하는 걸 포기하고 길이나 안내하라며 퉁명스럽게 쏘아붙였다.

그럼 어디부터 가는 게 좋을까요~ 가보고 싶은 데가 있슴까?”

...처음 와보니까 여기저기 돌아다니면서 구경하고 싶어요.”

구경할래!”

그럼 잘 따라오십쇼~”

도시 안쪽으로 들어간 지 얼마 지나지 않아 머리 위로 무언가가 휙 날아갔다. 용사와 퍼블리가 고개를 들어보니 하늘엔 꽤나 많은 사람들이 날아다니고 있었다. 사람만이 아니었다. 처음 보는 물건들도 날아다니고 있었다.

!”

날아다니던 사람들 중 일부가 초행인 일행들을 봤는지 가까이 날아와 근처에 있는 물건들을 잡고 곡예를 펼쳤다. 일종의 환영인사였다. 퍼블리는 당연히 신기해하며 즐거워했고 치트와 패치는 신기해하진 않았지만 예의상 인사로 화답했다. 가장 의외의 반응을 보인 건 바로 용사였는데 용사는 늘 짓는 웃는 표정 외엔 아무런 반응도 하지 않고 그들을 멀뚱히 보고 있었다. 가장 눈을 빛내면서 즐거워할 거라고 생각했던 용사가 가만히 있으니 나머지 셋도 의아한 표정을 지었다.

조오기 등에 달린 건 모야~?”

하늘을 날게 해주는 장치입니다!”

~ 아래 뿜뿜! 하는 건?”

이것도 하늘을 날게 해주는 거예요.”

용사의 질문에 친절한 대답들이 돌아왔고 퍼블리는 감탄하며 등에 붙어있고 신발로 이루어진 비행도구들을 살펴봤다. 돌연 용사가 또 이렇게 물었다.

그냥 날 수는 없엉?”

?”

고것들 없이 둥둥!”

그 말에 친절히 대답해주던 도시의 사람들이 눈을 껌뻑였다. 제대로 들었다는 걸 조금 지나서야 인식했는지 난처하면서도 환상을 품은 여행자를 보는 표정으로 말했다.

이론상으론 가능할 거 같긴 한데 성공한 사람은 한 번도 못 봐서 모르겠네요.”

치트는 여전히 미소를 머금은 얼굴로 패치에게로 고개를 돌렸다. 패치는 바로 표정을 찌푸렸다.

솔직히 불가능할 겁니다. 어지간히 오래 연구한 사람들도 도구 없인 힘들었거든요.”

치트는 다시 패치를 돌아봤다. 패치는 두 번 봐주진 않았다.

내 칭구는 되던뎅?”

이야~ 눈속임이 굉장한 분이신가 봐요. 혹시 공연에 관심 있으면 저희에게 연락 좀 주라고 전해주세요!”

그들은 즐거운 도시 관광되라며 그대로 떠났다. 퍼블리가 옆을 보니 치트는 땅에 쓰러져있었다. 패치는 이걸 이대로 버리고 가고 싶다는 표정으로 내려다보고 있었다.

아야야 너무 아픔다~”

앞서 찾아온 사제들과 성기사들처럼 해주려고 했지만 보는 눈이 많아 그걸로 참았으니 엄살 작작 부려.”

엄살 아님다!”

용사는 눈속임이 뭐냐고 퍼블리에게 물었고 퍼블리는 보이지 않은 부분을 이용해 실제로는 불가능한 걸 눈에 보인 것처럼 하게 하는 거라고 설명해줬다.

눈속임 아니었는뎅?”

퍼블리는 조금 혼란스러워 했지만 마법과 기계의 원리에 관해선 잘 몰랐으니 도구 없이 날아다니는 게 얼마나 대단한 건지 감을 잡지 못했다. 그렇군요라고 긍정하며 패치를 보고 속으론 마법사님은 도구를 이용하시려나? 의문을 품으며 만약 도구를 이용한다면 굳이 패치에게 부탁할 것 없이 여기에서 비행도구를 구매해야겠다는 걸로 생각에 끝을 맺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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걱정돼서 들어온 사람을 이렇게 냉정하게 내쫓을 거냐는 말도 꺼낼 법한데 치트는 아무 말 않고 나갔다. 문이 닫히는 소리와 함께 검은 건 그림자뿐이었고 더 이상 노란 건 방 안에 없었다. 햇빛만이 창문을 통해 환하고 뜨겁게 자극했다. 패치는 자신의 표정이 어떤지 알 수 없었다. 거울이 있지만 멀리 있었고 볼 생각이 없었다. 손을 들어 천천히 입을 가리듯이 눌렀다. 언제나 그랬듯이 화난 것처럼 입꼬리가 아래로 내려가 꾹 다물어져 있었다. 검사를 마친 패치는 일어났다.

내가 제일 늦게 일어났나?”

아니요! 저도 방금 나왔어요!”

푹 잤엉?”

패치를 제외한 모두가 1층에 내려와 있었다. 평소보다 체력 소모도 더 하고 심적 소모까지 했다지만 갑자기 잠들어버리고 이렇게 늦게 일어났다는 게 이상하다고 느낀 패치는 아까부터 조용한 치트를 쳐다봤다. 언제나 그림처럼 웃고 있는 얼굴이었다. 그림 아래에 뭐가 있을 지는 가려졌으니 보이지 않았지만.

출발하지.”

가기 전에 사야할 게 있느냐 물으면서 완성한 목록을 들고 패치가 앞장섰다. 퍼블리는 아무래도 패치 혼자서 주문할 것 같은 느낌에 사고 있는 동안 마을을 둘러봐도 되냐고 물었고 패치는 어제의 장난 같은 걱정이 떠올라 고개를 끄덕였다. 가벼워도 말을 한 걸 보면 꽤 오래 붙잡을 것 같으니.

용사는...이미 갔군.”

부디 먼저 마을 밖으로 나가지 않거나 나가더라도 입구 근처에 있길 바라며 패치는 치트에게로 고개를 돌렸다. 그 시선에 담긴 의미를 치트가 모를 리 없었다.

혼자 들려면 무겁잖슴까.”

자네 신전에서 들어본 무거운 게 뭔가?”

신전의 책은 두껍답니다?”

신전의 책들을 가방에 넣고 들고 다녔나? 한 권씩, 아니면 손수레를 이용했겠지.”

. 그러고 보니 손수레 어떻습니까? 힘들게 들거나 메고 다닐 필요 없이 손수레에다 담아서 끌면 편하지 않겠슴까?”

울퉁불퉁한 흙길에서 뒤집어지지나 않으면 다행이네.”

결국 가게엔 둘이 들어가게 됐지만 패치는 옆에 있는 걸 신경 쓰지 않게 됐다.

그거에다가 이 끈까지 함께 사면 딱! 떨어지고 좋아요.”

생각 없네.”

싸게 얹어드릴 게요.”

됐네.”

빈틈을 공략하려는 창과 창으론 어림없을 돌 벽의 전투에 치트는 얌전히 아무 말 않고 기다렸다. 다른 건 하나도 사지 않고 적어놓은 목록 물건들만 전부 구매했을 때 퍼블리가 용사를 데리고 돌아왔다. 마을을 돌아다니다보니 용사와 만난 듯 싶었다.

적당한 때에 돌아왔군. 무게는 비슷하게 나눴으니 각자 들게.”

나눠놓은 짐가방을 들고 이리저리 휘두르는 용사의 팔을 잡아 제대로 메게 한 퍼블리는 미리 와서 도와주지 못한 거에 대한 미안함을 건넸다.

어차피 사는 것과 나누는 것밖에 할 일이 없었네.”

어이구 용사님 급하시네~ 우리도 얼른 뒤따라가죠?”

가방을 제대로 메자마자 뛰어나가는 용사를 따라 치트가 따라 나갔다. 퍼블리는 바로 따라가지 않고 걱정스러운 얼굴로 패치에게 물었다.

...괜찮으셨어요?”

물건 사느라 바빠 별 일 없었네.”

패치는 그렇게만 말하고 먼저 밖으로 나갔다. 가게 주인에게 꾸벅 인사한 퍼블리는 아침에 있었던 일을 떠올리며 걱정스러운 눈으로 앞서가는 뒷모습을 봤다.

일어나고 방 밖으로 나왔을 때 보였던 건 마침 나오고 있던 치트였고 일어나셨냐며 인사하려고 했지만 그 방이 패치가 있던 방이었다는 걸 깨닫고 그대로 굳어버렸다. 서로에게 무슨 일이 있었던 건지는 알 수 없었지만 패치는 치트에게 단순히 싫어한다는 수준으로 끝나지 않을 적대감과 경계를 보였고 치트는 웃으면서 그런 패치를 계속 자극했다. 그리고 나오면서 치트가 지었던 표정은...

퍼블리는 정말 별 일 없었냐고 물으려다가 말았다. 묻어놓은 건데 자극하는 걸 수도 있었고 아니면 정말 말한 대로 별 일이 없었던 걸지도 모르기 때문이었다. 묻는 것 자체가 자극이 될 수 있었다.

목적은 따로 있긴 하지만 일단 여행을 하겠다고 한만큼 처음과 같은 싸움은 가급적 일어나지 않게 할 테니 눈치 볼 필요 없네.”

...”

퍼블리는 아침에 용사가 나오기 전, 치트와 단 둘이 있었을 때 5년 전에 무슨 일이 있었는지 물어봤다. 그 때 치트는 의뭉스러운 미소를 지으며 이렇게 말했다.

제가 아주 큰일을 저질렀습니다. 그리고 패치는 잘못 알고 있는 게 있죠. 더 말하고 싶지만 안타깝게도 이 정도만 말할 수 있슴다.”

퍼블리는 그 다음엔 기운차게 뛰어나오는 용사에게 5년 전에 무슨 큰 일이 있었는지 들어본 적 있냐며 물어봤다. 용사는 친구들과 마지막으로 함께 신나게 날아다녀봤다고 얘기했다. 마을을 돌아다니면서 지나가는 사람들에게도 물어봤지만 그 때 사제 하나가 마법사에게 무슨 일을 저질러서 마법계가 떠들썩해졌다는 식으로만 기억하는 사람들이 대부분이어서 자세한 내막은 알 수 없었다.

기술의 도시엔 마법사도 많나요?”

거기 사는 사람들 전부가 마법사 아니면 공학자라고 생각해도 무방하네. 마을 내에서의 개인제작이 아닌 이상 지금 쓰는 모든 마법도구와 기계 전부 거기에서 제작되다시피 하고 있지.”

사실 본격적으로 뭉쳐서 기술의 도시라고 불린 지는 얼마 되지 않았다. 종교가 태도를 바꾸기 전에는 마법과 기계의 사이가 좋지 않았다. 기술의 도시가 된 땅의 터는 그리 좋은 편은 아니었지만 그만큼 땅 위로 자라는 게 없어 땅을 갈아엎고 교통지로 쓰기 적당했다. 다만 적당하다는 게 바퀴가 덜컹거리거나 빠질 일이 없다는 거였지 그 넓이가 작다는 게 아니었다.

도시를 이룰 정도로 큰 땅이었으니 거리가 꽤 되어 중간에 거리를 줄이기 위해 한 마법사가 가게 겸 작은 개인 연구소를 차린 걸 계기로 연구자와 장인, 그것들을 파는 상인들이 늘어나 도시가 만들어졌다. 그 과정에서 경쟁판매 전략 또한 세워져 마법과 기계가 뒤섞였고 더 뛰어난 성능을 자랑하기 위해 기술자들을 불러 모았다. 그래서 기술의 도시라고 정식으로 불리기 전엔 손님이었던 다른 마을 사람들은 임시적으로 상업도시라 불렀었다.

갈등의 골이 깊었던 만큼 이 도시는 갈등이 대놓고 일어났었다. 그러다가 종교라는 공공의 적이 등장했고 마침 도시는 신전과 제법 가까이 있었기 때문에 종교를 견제하기 알맞았지만 계기가 없어서 여전히 붙어만 있는 상태였었다. 그리고 5년 전 계기가 될 만한 사건이 벌어졌고 한 공학자가 기술이 넘치는 이 땅은 단순히 상업도시라고 불리기는 아깝다는 말을 꺼내 이 땅은 기술의 도시라는 이름이 붙여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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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면 마저 가볼까요?”

용사는 본인이 납득한 대로인지 아니면 이제 더 이상 주변에 흥미가 없어서인지 잘 따라오고 있었다. 대신 묻는 게 많아졌다.

요기 나비는 왜 색깔이 달라?”

나비도 사는 데마다 색이 달라요.”

사는 데마다 왜 달라~?”

일행 내에서 두 번째로 큰 용사는 말투는 물론이고 행동과 호기심 모두 천진난만한 어린아이 같았다. 그래서 퍼블리는 용사를 어떻게 대해야할지 혼란스러웠다. 자칫하다간 진짜 어린아이를 대하듯이 대해버릴 것 같아서 주의 깊게 말을 고르기 위해 잠시 침묵했다.

사는 곳에서 살아남기 위해 색이 다르다네.”

패치가 대신 대답하자 용사의 시선이 패치에게로 돌려졌다.

숲 안쪽에 꽃밭이 있었나?”

!”

그럼 그 꽃잎과 비슷한 색을 지녔거나 숲에 사니 나뭇잎처럼 보이게 색을 가졌겠지. 숲엔 나무가 많은 만큼 새 둥지도 많으니.”

녹색 풀이 가득한 가운데 조금씩 머리를 들고 있는 꽃들 위에 화려한 색의 나비들이 앉아있었다.

그리고 여기는 나무가 적지.”

용사는 이해를 했는지 더 신기하다는 눈으로 나비들을 둘러봤다. 그 이후부턴 자연스럽게 둘로 나뉘어 앞서가는 건 치트와 퍼블리였고 뒤따라가는 건 패치와 용사였다. 용사는 계속해서 물었고 패치는 조금 답답하다는 표정을 지으면서도 자신이 알고 있고 이해하고 있는 부분까지 대답했다. 간혹 가다가 나오는 어려운 단어에 용사는 그 단어가 무엇인지도 물었고 처음에 뭘 묻고 있었는지 까먹기 까지 했다. 그러다보니 패치는 용사의 곁에서 쉽게 떠날 수 없었고 떠날 생각도 없어보였다. 퍼블리는 옆에 같이 걷고 있는 치트를 힐끔 쳐다봤다. 혹시 마법사님은 일부러 이렇게 움직이게 되는 상황을 의도한 걸까.

드디어 마을이 보이네요.”

해가 완전히 저물기 직전, 마을에 도착하는 데 성공했다. 마을에 들어가면서 가장 먼저 찾은 건 여관이었다.

“1인실 넷으로.”

“2인실 하나에 1인실 둘도 좋습니다.”

헛소리 말고 가서 짐들이나 나눠서 정리하게. 자네가 2인실 쓸 건가?”

당연히 제가 쓰려고 물은 겁니다. 그러니까 저랑 같은 방 쓰는 게 어떻습니까?”

자네는 기억을 선택적으로 삭제하는 능력이라도 가졌나? 그런 일이 있었는데도 같이 방을 쓰자고?”

싸우지마아아앙~”

다시 터져 나오는 살벌한 기세를 진정시킨 건 용사였다. 덕분에 대화 흐름이 끊겨 진정한 패치는 다시 1인실 네 개를 말한 후 바로 돈을 내고는 열쇠를 챙겨들어 던졌다. 열쇠를 받아든 치트는 어깨를 으쓱이고는 짐을 챙겨들어 2층으로 올라갔다. 패치는 퍼블리와 용사에게 열쇠를 건네고 자신의 짐을 챙겨들었다.

여행에 필요한 물품은 내일 날이 밝으면 둘러보지. 혹시 당장 필요한 물건 있으면 찾아오게.”

!”

퍼블리는 열쇠를 만지작거리고 있는 용사를 끌고 2층으로 올라갔다. 패치는 그 자리에 남아 여행 물품을 파는 가게가 어디쯤에 있는지 물었고 두 건물 지나서 오른쪽으로 꺾으면 바로 나온다는 대답을 들었다.

하지만 오늘은 이미 해가 져서 문을 닫았을 거예요.”

해가 져도 아직은 저녁인데 빨리 닫는 이유라도 있습니까?”

요즘 여행객은 물론이고 마을 들리는 사람도 적어서 그런 것 같아요.”

그 가게 주인이 오랜만에 오는 손님을 붙잡아 많이 팔아치우려고 할 게 분명하니 조심하는 게 좋을 거라며 걱정 아닌 걱정이 들려왔지만 패치에겐 의미 없는 걱정이었다. 이제껏 걸어왔기 때문에 마을을 돌아다니고픈 마음도 없어 패치는 바로 2층으로 올라갔다. 방은 계단과 꽤 가까운 방이었다.

씻는 곳이 방마다 딸려있는지 물이 나오는 기계와 함께 세숫대야가 구석의 칸막이 안쪽에 있었다. 아쉽게도 찬물밖에 나오지 않는 것 같았지만 겨울도 아니었으니 못 씻을 정도는 아니었다. 손을 씻고 얼굴을 씻던 패치는 문득 더운 여름에도 뜨거운 물로 씻어야하는 사람도 있다는 걸 떠올렸다. 어디서 들었는지, 누가 말했는지는 자세히 기억나지 않았지만 이 얘기가 떠오른 이유는 고운 옷과 따뜻한 물로 씻으면서 살아왔을 게 뻔한 사제가 과연 이 찬물로 씻을 수 있을까라는 의문이 들었기 때문이었다.

“...내가 피곤하긴 정말 피곤한가보군.”

걱정은 아니었지만 이런 의문이 든 것 자체가 마음에 들지 않았던 패치는 거친 손으로 물기를 닦았다. 이렇게 무의식적으로 치트를 신경 쓰고 있는 스스로에게 못마땅했다. 그 아래에 깔린 게 의심과 경계라 해도, 지금처럼 곁에 없는 순간에도 생각과 감정을 소모하는 건 불쾌한 일이었다.

침대에 걸터앉은 패치는 가지고 있는 짐들을 살펴보며 내일 사야할 게 뭔지 짚어보았다. 작은 종이에다가 목록들을 적어놓고 퍼블리에게도 뭐가 필요한지 물어보러 가야겠다 생각하며 일어나던 순간 똑똑 두드리는 소리가 들렸다. 문제는 문에서 들린 게 아닌 창문에서 들린 소리였다. 돌아보니 창문 너머엔

용사?!”

대체 어떻게 서 있는 건지 용사가 환하게 웃으면서 손을 흔들고 있었다. 당황한 패치가 창문을 열었고 용사는 놀리듯이 멀어졌다. 패치가 용사를 노려보며 마법도구나 기계가 있는지 살펴봤지만 아무것도 없었다.

비행마법을 쓸 줄 알았나?”

칭구가 해줬엉!”

그 친구가 대체 누구냐며 물으려고 하니 갑자기 창문과 벽이 사라졌다. 이것도 그 용사의 친구가 한 짓인가 싶어 더 가까이 다가가 따지려고 할 때 뒤에서 누군가가 옷자락을 잡아당겼다. 문을 잠그지 않았나 싶어 돌아보니 옷자락을 잡고 있는 건 그림자였다. 손만 올라와 잡고 있던 그림자가 바닥에서 서서히 떨어져 똑바로 섰고 그림자 때문에 보이는 건 온통 검은 색 뿐이었다. 한 번 눈을 깜빡이니 그림자 안에서 노란 빛이 반짝이며 존재감을 키워나갔다.

일어났습니까?”

패치는 어느새 누워있었고 바로 앞에 저를 내려다보는 치트를 눈을 뜨면서 제일 처음 봤다. 고개를 천천히 돌리니 목록을 적다가 잠들었는지 쓰다만 종이가 손에 쥐여져있었다. 다시 고개를 돌려 치트와 눈을 마주한 패치는 치트가 뭐라 말하기 전에 딱 한 단어만 말했다.

나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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